이애란 경인여대 겸임교수/북한 전통음식문화연구원장 남쪽에 살다보니 음식·언어·문화 北과 달라 된장국과 된장지지개는 있어도 된장찌개는 北에 없는 음식 南·北 음식을 한 상에 차린 '통일 밥상' 앞에 서로 화합하는 게 나의 꿈
▲ 이애란 경인여대 겸임교수/ 북한 전통음식문화연구원장 | "꿈을 안고 왔단다/내가 왔단다/슬픔도 괴로움도/모두 모두 비켜라/쨍하고 해 뜰 날 돌아온단다."
베트남 하노이의 한 노래방에서 나는 하염없이 이 노래를 부르며 앞으로 내가 찾아갈 미지의 땅, 대한민국에 대한 막연한 기대에 부풀었다. 지금으로부터 13년 전 고 황장엽 선생의 탈북소식을 들은 지 꼭 6개월이 되던 1997년이었다. 4개월 된 아들을 등에 업고 친정식구들과 함께 압록강을 넘어 탈북을 감행해 베트남에 머물며 한국행을 기다렸다.
우리는 이야기한다. 우리는 5000년의 역사를 가진 단일민족이고, 말도 같고 피부색도 같아 정착에 어려움이 덜할 것이라고…. 하지만 꿈을 안고 찾아온 남쪽 땅에서 정착하는 것은 탈북에 버금가는 어려운 일이었다.
정말 어느 하나 같은 것이 없다고 느껴졌다. 식품을 공부한 내겐 남북의 음식 차이가 더 크게 보였다. 나는 신의주 경공업대학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했고 북한의 과학기술위원회에서 식품 품질 감독하는 일을 맡아 했다. 한국에 와 식품영양학 박사학위도 받았다.
어느 집 가사도우미로 들어간 탈북 여성은 한 달 만에 그만두었다고 한다. 집 아주머니가 된장찌개를 끓여달라고 했다. 그런데 맛을 보더니 "이게 무슨 된장찌개냐"는 핀잔을 주었고, 그 일로 서로 마음이 상하여 등을 돌리게 된 것이다. 탈북 여성이 끓인 것은 된장찌개가 아니라 된장지지개였다. 북한에는 된장찌개라는 음식이 없다. 북쪽 사람들은 된장국을 자주 끓여 먹는데 된장국에는 국물이 많다. 그러나 된장지지개는 국물이 거의 없고 된장을 걸쭉하게 넣어 국물이 잘박잘박하게 만든 음식이다. 찌개라는 말도 북한에서는 밥과 함께 먹는 모든 반찬을 통칭하는 것으로 남한의 찌개와는 완연히 다르다. 반찬이란 말도 마찬가지다. 북한에선 생선이라는 의미가 많이 포함돼, "반찬이 없다"고 하면 '밥상에 생선으로 만든 찌개가 없다'는 얘기인 것이다. 동탯국도 그렇다. 북쪽사람들은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동탯국을 끓일 때 식용유를 두르고 양파와 간장을 넣고 볶는다. 거기에 동태를 넣고 살짝 볶은 다음에 국물을 부어 끓인다. 그렇게 끓이면 남쪽 사람들은 "동탯국 맛이 왜 이러냐"고 타박하기 일쑤다. 북쪽 사람들은 이처럼 기름을 넣어 볶다가 만드는 음식을 좋아하는 반면, 남쪽 사람들은 국에 기름 방울이라도 뜨면 큰일 났다고 한다.
남쪽 사람들은 북한의 유명한 평양 냉면인 옥류관 냉면이 맛없다고 한다. 소의 내장을 솥에 넣고 삶으면서 거품을 걷어내면서 오랫동안 끓이면 맹물같이 맑아진다. 이렇게 끓인 육수에 동치미 국물을 섞어서 메밀국수를 마는 것이 전통적인 평양냉면이다. 메밀이 많이 들어가 면발이 질기지 않고 뚝뚝 끊어지는 대신 구수한 맛은 남쪽의 냉면보다 더 웅숭하고 깊다.
남한에는 평양냉면, 함흥냉면처럼 북한 지역 이름을 딴 음식점이 넘쳐난다. 그러나 북쪽엔 남쪽의 지명을 딴 음식점이 한 곳도 없고 남쪽의 음식은 전혀 맛볼 수 없다. 남쪽사람들은 북한음식에 대해 나름대로 일가견을 가지고 얘기하지만 북쪽 사람들은 남쪽의 음식을 접해본 적이 없어서 어떤 이야기도 할 수가 없다.
음식만이 아니다. 한 탈북여성이 회사에 취직하기 위해 면접을 보았는데 면접 장소에서 "월급은 어느 정도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북한에선 이런 질문 자체가 없다. 이 여성의 답변은 간단했다. "그렇게 물어보시면 따분합니다." 북쪽에선 따분하다는 말이 '직접 말하기가 딱하고 어렵다. 그리고 좀 미안하다'라는 뜻이다. 이렇듯 의사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아 생기는 갈등과 상처가 많다.
이젠 남과 북의 상황은 너무 차이가 나서 서로를 연결할 고리조차 별로 없다. 그래서 내 꿈은 '통일 밥상'을 차리는 것이다.
음식은 추억이고, 고향이고, 어머니이고, 가족이다. 평양온반과 제주갈치, 전주비빔밥과 함흥의 명태식해(食��)를 올려놓은 밥상에서 서로 소통하고 이해하며 화합해 나가는 꿈을 꾼다. 그런 자리라면 상대방에 좀 화가 나는 것이 있어도, 이해가 되지 않고 황당한 일이 있을지라도 서로의 오해를 줄이고, 보다 서로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려면 먼저 북한이 기아 선상은 면해야 할 것이다. 북한 주민들은 국수를 많이 먹고 좋아한다. 그런데 이유를 알고 보면 조금은 슬프다. 북쪽엔 잡곡 중에서도 옥수수를 많이 심어 먹는데, 사실 소화가 잘 되지 않는다. 그래서 소화가 잘 되게 만든 게 국수다. 북쪽 주민들은 식량배급의 80% 이상을 옥수수로 받아 대부분 저녁을 옥수수 국수로 먹게 된다. 옥수수를 이용한 음식에는 속도전 가루떡, 속도전 국수도 있다. 즉석 음식이란 뜻이다. 또 북쪽은 1990년대 이후 기근을 겪으면서 이탄(泥炭·흙)국수, 이탄빵, 벼뿌리· 옥수수뿌리떡, 송기떡 등 조선시대에도 먹지 않았던 구황식품들이 나와있다. 먼 훗날, 역사에 이탄국수, 이탄빵, 벼뿌리떡, 옥수수 뿌리 국수가 기록될 때 북한 주민들의 애환도 함께 적혔으면 한다.
출처 : 조선일보 2010.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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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통일된 밥상을 함 무거보고 잡네예..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