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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는 한라,지리,설악,덕유등 많은 산들이 있다. 지리산(智異山)의 별칭은 두류산(頭流山) 혹은 방장산(方丈山)으로서 선현(先賢)들의 유산(遊山)기록을 위시한 글들이 많은 것은 이 산이 우리 인간과 교감하는 지리심성(地理心性,geomentality)이 굳고 영산(靈山)이기 때문이다. 16세기 조선의 지리산을 인문지리적 관점에서 평론한 <新增東國輿地勝覽(1530年) 慶尙道晉州牧 山川>편을 살펴본다.
● 진주 서쪽 1백 리에 있다. 상봉(上峯)을 천왕봉(天王峯)이라 하는데,산 북쪽은 함양군 경계이다.
● 고려 때에 명사(名士)가 이 산에 숨어 살았는데, 지조가 높고 행실이 깨끗하여 세상 일을 간섭하지 않았다. 그때 임금이 듣고 사신을 보내 맞아오려 하니, 사례하기를, “외신(外臣)이 아는 것이 없사오니 왕명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한 다음 문을 닫고 나오지 않았다. 사신이 문을 밀치고 들어가서 보니 벽에다가, “한 마디 임금의 말씀 골에 들어오니, 이름이 인간에 떨어진 줄 비로소 알았네.”라는 한 구를 적어두고 북쪽 바라지를 통해 도망쳐 버렸다. 후세 사람들은 한유한(韓惟漢)이 아니었던가 의심한다. <고려사(高麗史)>에, “유한이 여러 대로 서울에 살았으나 벼슬하기를 즐기지 않았다. 최충헌(崔忠獻)이 정사를 제멋대로 하여 벼슬을 파는 것을 보고, ‘난(亂)이 장차 일어날 것이다.’ 하고, 처자를 이끌고 지리산에 들어가 버렸다. 맑은 수양과 굳은 절조로써 외인과 교제하지 아니하니, 세상에서 그의 풍치를 높게 여겼다. 나라에서 서대비원녹사(西大悲院錄事)를 제수하여 불렀으나, 끝내 나아가지 아니하고 깊은 골짜기로 옮겨가 종신토록 돌아오지 않았다.” 하였다.
● 고려 김부의(金富儀)의 시에, “험한 곳을 지나 태화봉(太華峯)에 오를까 의심되더니, 돌아오는 길에 도리어 석양이 붉음을 겁내네. 우연히 왕사(王事)로 인해 세상밖에 노닐지만, 도리어 당년의 양차공(楊次公)에게 부끄럽다.” 하였다.
● 고려 김돈중(金敦中)의 시에, “오르고 올라 최상봉에 이르러, 진세(塵世)를 돌아보니 한 조각만 하구나. 노을 속에 배회하여 그윽한 정취를 얻었으니, 풍류는 진(晉) 나라 양공(羊公)에게 부끄러울 것이 없네.” 하였다.
● 고려 중 정명(靜明)이 벗을 전송하는 시에, “그대는 곧 바로 천 봉우리 속에 들어갔다 하니, 몇 겹의 연기와 노을속에 있겠네. 흐르는 물 떨어지는 꽃에 가신 길 아득하니, 다른 해 어느 곳에서 그대 자취 찾을고.” 하였다.
● 이색(李穡)의 시에, “두류산(頭流山)이 가장 크다. 신선이 표피자리 깔았네. 나무 끝에 두 다리가 날고, 구름 속에 반신(半身)만 내놓네. 사람들은 삼무(三武)에게 곤란 당했음을 기롱하고, 혹은 진(秦) 나라를 피했다고 말하네. 어찌 그윽하게 살 곳이 없어, 풍진(風塵)속에 백발이 새로워졌나.” 하였다.
● 이첨(李詹)의 시에, “내 들으니, 백두산이 남으로 와서 바다에 닿아 뿌리가 서리었다네. 멀고 멀리 3천리에 멧부리가 연했는데, 험한 곳은 모두 관문(關門)으로 되었다네. 구불거리다가 정기(精氣)가 모여 갑자기 솟아났는데, 천궁(天宮)이 정상에 있어 제사를 누리네. 천궁이 하늘과 한 자도 안 되는 거리여서, 뭇 산을 당기고 뭇 물 삼킨다네. 바람과 구름이 부벼대서 나무가 못 크고, 응달엔 6월에야 눈이 처음 녹는다네. 천태산(天台山)이 4만 8천 장이라지만, 이 산과 견주면 하늘과 땅이로세. 유인(幽人)이 은거하여 이 속을 다니면서 만 구렁 솔바람 소리 모두 겪었네. 문득 선부(仙府)를 찾아 옥피리를 부노라니, 그 소리 완연히 봉황 울음 같아라.” 하였다.
● 이륙(李陸)의 유산기(遊山記)에, “지리산은 또 두류산이라 칭한다. 영남,호남 사이에 웅거하여서 높이와 넓이가 몇 백 리인지를 모른다. 목 하나, 부 하나, 군 둘, 현 다섯, 속읍 넷이 산을 둘러 있는데, 동쪽은 진주,단성이고, 남쪽은 곤양,하동,살천,적량(赤良),화개,악양이며, 서쪽은 남원,구례,광양이고, 북쪽은 함양,산음(산청)이다. 높은 봉우리가 둘이 있는데, 동쪽은 천왕봉(天王峯)이고, 서쪽은 반야봉(般若峯)으로서 서로 거리가 백여 리나 되는데, 항상 구름에 가려 있다. 천왕봉에서 조금 내려와서 서쪽에 향적사(香積寺.폐사됨)가 있고, 또 서쪽으로 50리쯤에 가섭대(迦葉臺)가 있다. 대의 남쪽에 영신사(靈神寺.폐사됨)가 있으며, 서쪽으로 20여 리를 내려오면 넓게 트인 땅이 있는데, 편평하고 비옥하여 가로 세로의 넓이가 모두 6-7리 됨직하다. 간간히 하습(下濕)하여서 곡식 심기에 알맞다. 늙은 잣나무가 하늘에 치솟았으며, 낙엽이 쌓여서 정갱이까지 빠진다. 복판에 서서 사방을 돌아보면 끝이 없어 완전히 하나의 평야(平野)이다. 빙빙 둘러 남으로 내려오면, 시내를 따라 의신(義神.폐사됨),신흥(新興.폐사됨),쌍계(雙溪)의 세 절이 있고, 의신사에서 서쪽으로 꺾여서 20리 지점에 칠불사(七佛寺)가 있다. 쌍계사에서 동쪽으로 재 하나를 넘으면 불일암(佛日菴)이 있고, 그 나머지 이름난 사찰은 이루 다 기록할 수 없다. 산꼭대기에 있는 향적사 등 몇몇 절은 모두 널판지로 덮었고, 거주하는 중이 없다. 오직 영신사만이 기와를 사용했으나 거주하는 중은 한두 명에 불과하니, 산세가 아주 험준하여 사람 사는 마을과 서로 닿지 않았으므로, 높은 선사가 아니면 안주하는 자가 드문 것이다. 물의 근원은 영신사(영신봉 아래) 작은 샘물로부터 이 신흥사 앞에 와서는, 벌써 큰 냇물이 되어 섬진강(蟾津江)에 흘러드는데, 여기를 화개동천(花開洞天)이라 한다. 천왕봉에서 동쪽으로 내려오면 천불암(千佛庵.폐사됨)ㆍ법계사(法戒寺)가 있고, 천불암에서 조금 북쪽으로 올라가자면 작은 굴이 있다. 동쪽으로 큰 바다를 임했고, 서쪽으로 천왕봉을 등져서 매우 맑은 운치가 있는데, 암법주굴(巖法主窟)이라 한다. 또 두 물이 있는데, 하나는 향적사 앞에서, 하나는 법계사 밑에서 나오며, 살천(薩川)에서 합쳐져 하나로 되어 소남진(召南津) 아래쪽으로 흘러 들어서 진주를 둘러 동쪽으로 가는데, 이것을 정천강(菁川江.남강)이라 한다. 소남진이란 것은 산 북쪽 물이 동쪽을 돌아 오다가 단성현(丹城縣)에 이르러 서쪽으로 꺾인 것이다. 살천촌(薩川村)에서 20여 리를 가면 보암사(普庵寺)가 있다. 살천촌 앞쪽을 내산이라 하고, 바깥쪽을 외산이라 한다. 보암사에서 바로 올라가 빠른 걸음으로 하루 반이면 천왕봉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러나 돌 벼랑이 가파르고 험하여 길을 찾을 수 없고, 또 느티나무와 노송나무가 하늘을 가렸으며, 밑에는 가는 대가 촘촘하고, 간혹 말라 죽은 나무가 천 길 벼랑에 걸쳐 있는데 껍질에는 이끼가 끼어 있다. 또 폭포가 멀리 구름 끝으로부터 그 사이에 내리쏟아 길이를 측량할 수 없다. 앞으로 나아가자니 발길을 돌리지 못하겠고, 돌아보면 뒤를 볼 수 없다. 수십 개 나무를 베어야 비로소 한 자 넓이의 하늘을 볼 수 있다. 일 만들기를 좋아하는 자들이 가끔 돌을 주워, 바위 위에 두고 길을 표시하기도 하였다. 벼랑과 골짜기 사이에는 얼음과 눈이 여름을 지나도 녹지 않는다. 6월에 서리가 처음 내리고 7월이면 눈이 오고 8월이면 얼음이 크게 언다. 첫 겨울이 되면 눈이 몹시 와서 골과 구렁이 모두 편평하여지므로 사람이 왕래할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산에 사는 사람들이 가을에 들어갔다가 늦은 봄이라야 비로소 산에서 내려온다. 혹 산 아래에는 뇌성과 번개가 크게 치면서 비가 와도, 산 위에는 날씨가 청명하여 한 점 구름도 없기도 하니, 대개 산이 높아서 하늘에 가까우므로 기후가 평지와는 아주 다른 것이다. 대체로 산 밑에는 감과 밤나무가 많고, 조금 위에는 모두 느티나무이다. 느티나무 지대를 지나면 삼나무와 노송나무이다. 절반은 말라 죽어서 푸른 것과 흰 것이 서로 섞여져 있으며 바라보면 그림과 같다. 맨 위에는 철쭉꽃만 있을 뿐인데, 나무 높이가 한 자 길이가 채 못 된다. 맛있는 나물과 진귀한 과실이 딴 산보다 많아서 산에 가까운 수십 고을이 모두 그 이익을 입는다.” 하였다.
●『신증』 성현(成俔.허백당)이 김종직(金宗直.점필재)의 두류록(頭流錄) 끝에 쓴 시에, “위태롭게 높도다. 산이 둥그스름하며 넓게 퍼졌음이여. 아래로 땅을 누르고 위로 하늘에 닿았네. 뿌리가 몇 천 백 리나 서리었는지 내 모르거니와, 우뚝하게 하늘 동남쪽에 중진(重鎭)이로다. 원기가 발설되고 천기가 뱉었다 머금었다 한다. 구름과 연기가 침침하게 중턱을 감췄고, 그윽한 골짜기엔 아름다운 나무가 많다. 처음 숲 기슭을 좇아 참 취미를 찾아서 선경을 샅샅이 깊이 더듬었네. 벼랑에 달린 나는 폭포가 비같이 쏟아지며, 우레처럼 아래로 깊은 못을 진동시킨다. 산이 깊을수록 물이 맑으니, 맑은 그림자가 쪽빛보다 푸르다. 몸이 최고봉에 오르니 뭇 멧부리가 쇠못을 꽂은 것 같구나. 손으로 은하수를 만질 듯 하늘과 가까운데, 하늘 바람이 머리털을 불어 차게 흩날린다. 부상(扶桑.동쪽바다)과 약목(若木)은 어디쯤인가. 푸른 바다 만리에 맑은 이내(남기) 뜨고 큰 물결이 어지럽게 부딪쳐 신기루 빛이 서로 잠기네. 퇴계(椎髻)와 훼복(卉服)이 바다를 건너 잇따라오니, 성군의 덕화가 멀리 미쳤음을 볼 수 있네. 아래로 보니 수십 주(州)의 인간들이 아득하게 굼틀거리는 어린 누에 같다. 산의 높음은 더할 수 없고, 산 속은 즐겁기도 하다. 흔들거리는 패다(貝多) 잎이고, 펄럭거리는 우발담(優鉢曇) 꽃이라. 아름다운 꽃과 이상한 나무 다투어 피는데, 봄바람이 일렁거리니 향기가 그윽하다. 진기하고 이상한 이름 모를 새가 푸른 날개로 너울너울 춤춘다. 푸른 이끼가 길에 가득하니 속인(俗人)의 발자취 없어지고, 그윽한 바위 끊어진 벼랑에 붙여 감실(龕室) 열렸네. 은은한 절을 우러러보니, 찬란한 단청(丹靑)이 눈부셔라. 당간의 깃발은 아득하게 비치고 종과 북소리 은은하게 들린다. 이 속에 마땅히 은거한 군자 있어, 검푸른 눈동자 푸른 머리털의 팽조(彭祖),노자가 많으리라. 구절장(九節杖) 짚고, 부용관(芙蓉冠) 쓰고, 쌍성(雙成 서왕모의 시녀)이 말고삐 끌고 왕모(王母)가 말을 몰리라. 구하(九霞)의 푸른 술을 마시고, 동정(洞庭)의 누런 감자로 안주한다. 영지(靈芝)와 요초(妖草)가 나날이 자라고, 푸른 이무기 검은 사슴의 잠이 한창이라. 달밤 숲이 침침한데 신령스러운 바람소리는 헌원(軒轅)이 풍악을 벌여서 관함(官函)을 두드리는 듯, 고운(孤雲)이 도를 듣고 그 지경에 웅경(熊輕) 조신(鳥伸)의 묘한 법 배운 지 오래였다. 커다란 필적이 푸른 절벽에 비치니, 천재에 미담을 남겼네. 세상 사람은 무엇 때문에 부귀만 생각하고 술에 빠지는가. 그대는 거기에 돌아가 누웠으니, 구름 숲은 본성이 달게 여기던 바이네. 내 지금 속세의 그물에 떨어졌으니, 허덕거림이 어찌 부끄럽지 않으랴. 마음으로는 그대와 함께 소원대로 좋은 땅 가리어 띠 암자 얽고 싶었네. 작은 관록을 탐내어 능히 가지 못하고, 고생스럽게 파리처럼 구하며, 동어(鮦魚)처럼 탐낸다. 한 몸의 마음과 일이 서로 어긋나니, 둥근 자루를 모난 구멍에 끼움과 무엇이 다르랴. 그대는 하늘 위에 학(鶴)이요, 나는 언덕에 메추라기라. 몸을 기울여 남쪽을 바라보니, 조심하는 마음에 속이 타는 듯하네. 어찌하면 칡덩굴 부여잡고 새삼 덩굴 넘어뜨리며, 상상 꼭대기에서 긴 휘파람 불어 호연한 기운이 천지와 아울러 셋이 될꼬.” 하였다. 청학동(靑鶴洞)은 지리산 속에 있다. 진주에서는 서쪽으로 1백 47리의 거리이다.
● 이인로(미수)의 <파한집(破閑集)>에, “지리산이 백두산에서부터 시작하여 꽃같은 봉우리와 꽃받침 같은 골짜기가 면면하게 잇따라서 대방군(帶方郡.남원)에 와서는 수천 리를 서리어 맺히었는데, 산을 둘러 있는 것이 10여 주(州)이다. 한 달이 넘게 걸려야 그 주위를 다 구경할 수 있다. 늙은이들이 서로 전해 오는 말에, ‘그 안에 청학동이 있는데 길이 매우 좁아서 사람이 겨우 통행할 만하여, 엎드려서 몇리를 지나면 넓게 트인 지경에 들어가게 된다. 사방이 모두 옥토(沃土)여서 곡식을 뿌려 가꾸기에 알맞다. 푸른 학이 그 안에 서식하는 까닭에 이렇게 청학동이라 부른다. 옛날 속세를 피한 사람이 살던 곳으로 무너진 담이 아직도 가시덤불 속에 남아 있다.’ 한다. 지난날 나는 최상국(崔相國) 아무와 함께 이 속세를 떠나 길이 숨을 뜻이 있어서 청학동을 찾기로 서로 약속하였다. 장차 대롱[竹籠]에 송아지 두세 마리씩을 담아가지고 들어만 가면, 속세와 서로 상관하지 않아도 되리라. 화엄사에서 출발하여 화개현에 이르러 신흥사에서 유숙하니, 지나는 곳마다 선경 아닌 데가 없었다. 천 바위가 다투어 빼어났고 만 구렁[萬壑] 물이 다투어 흐른다. 대 울타리 초가 지붕에 복숭아꽃이 가렸다 비쳤다 하니, 자못 인간 세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른바 청학동이란 것은 마침내 찾지 못하였다. 나는 바위에다가 시를 적기를, ‘두류산 멀고 저녁 구름 낮으막한데, 만 구렁 천 바위[萬壑千巖]가 회계(會稽)와 같네. 지팡이 끌며 청학동을 찾으려는데 숲을 격해서 원숭이 울음소리만 들린다. 누대는 아득히 삼신산이 멀고, 이끼 끼어 네 글자[雙.磎.石.門]가 쓰인 것이 희미하네. 신선이 있는 곳 그 어디런가. 떨어지는 꽃, 흐르는 물이 아득하기만 하네.’ 했다.” 하였다.
● 유방선(柳方善)의 시에, “둥그런 지리산을 바라다 보니 만겹 구름에 항상 침침하여라. 뿌리가 백여 리 서리어 산세가 절로 빼어나니, 뭇 구렁이 감히 겨루지 못한다네. 층층한 멧부리와 가파른 돌벽은 기세가 뒤섞였고, 성긴 소나무와 푸른 잣나무는 차갑게 우거졌다. 시내가 감돌고 골이 굴러 별천지 되었는데, 한 구역 좋은 경치는 참으로 별천지로세. 사람 없어지고 세상 변해도 물은 제대로 흐르며, 초목이 우거져서 동서가 아득하다. 지금도 푸른 학은 홀로 깃드니, 벼랑에 붙은 한 가닥 길이 겨우 통하리. 좋은 밭 비옥한 땅이 편평하기 상과 같은데, 넘어진 담과 무너진 길이 쑥대 속에 묻혔구나. 숲이 깊으니 닭과 개 다니는 것 안 보이고, 해 지니 원숭이 울음만 들린다. 아마도 옛날에 은자가 살던 곳, 사람은 신선되고 산은 비었는가. 신선이 있고 없음은 논할 것 없고, 다만 높은 사람이 속세 벗어났음을 사랑한다. 나도 여기에 집 짓고 숨어서 해마다 요초 캐며 생을 마치고 싶다. 천태산(天台山.중국의 산) 지나간 일은 참으로 허황하고, 무릉도원(武陵桃源) 유적도 다시 몽롱하다. 장부(丈夫)의 출처(出處)를 어찌 구차하게 하랴. 제 몸만 맑게 하고 인륜을 어지럽힘은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다. 내 지금 노래 지으매 뜻이 무궁하니, 그 날에 시 남긴 늙은이 우습기도 하여라.” 하였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