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 손, '손재주가 없는 손, 뭘 만들어도 희한하게 못 만드는 사람'이다.
반대말은 금손, '손재주가 좋아서 이것저것 예쁘게 잘 만드는 사람, 손이 금처럼 귀하다'라고 해서 그렇게
부른다.
자칭 똥 손이다. 손으로 하는 것은 유독 재주도 자신도 없다. 금손이 부럽지만 넘사벽이다.
태생이 손재주와는 거리가 멀다. 그런 똥 손이 그림에 빠져서 분투 중이다.
오래전부터 그림을 배우고 싶었다. 중학생 시절 아무렇게 그린 그림인데 미술 선생님이 색감이 좋다고
칭찬하셨다. 잠깐 착각했다. 그림에 소질이 있다는 건가?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수채화 그리기를 시작했다. 읍 행정복지센터에서 취미강좌로 일주일에 한 번
3시간 정도 그림을 그린다. 강좌반 회원 중 가장 초보로 선 긋기부터 시작했다. 어느 세월에 다른 회원들
처럼 멋진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아득하지만 용기를 가져본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용기와 도전은 나의 힘이다.
취미로 시작한 그림은 오래도록 할 것이고 오랜 시간이 남아있기에 실망하지 않는다.
불광 불급, '미치지 않으면 미칠 수 없다'
지치면 지는 것이고 미치면 이기는 것이다. 지치지 않고 미쳐보기로 했다.
밤을 새우며 그림을 그리는 데도 재밌다. 누가 보면 대단한 전시회를 준비하는 것으로 오해할지도 모른다.
똥 손의 기억.
강원도 오지에서 살던 시절 아이들이 어렸을 적이다. 큰 아들이 다섯 살, 작은 아들이 세 살 무렵.
전역 후 잠깐, 부대에서 군인가족(남편이 현역일 당시)을 대상으로 취미 강좌를 개설했다.
미용 취미반이 있었다. 잘 배워보겠다며 호기롭게 신청을 했다. 매번 미용실 가는 것도 번거로운 일이고
직접 배워서 두 아들 머리를 손질해 주고 싶었다.
미용 가위, 빗, 이발기, 연습용 마네킹도 사고... 그까짓 것 미용쯤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건 착각이었다.
간단한 커트와 파마 기술을 배웠다. 커트는 가위와 이발기를 사용해서 남자의 머리를 깎는 방법이었는데
강사의 말을 들으면 어려울 것이 없어 보였다. 이렇게 저렇게 배운 대로만 하면 멋진 미용 솜씨를 발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습대상은 두 아들, 먼저 큰 아들의 머리를 호기롭게 깎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머리를 만지고 돌리고
자르고 이발기로 윙~윙~ 얌전히 앉아있던 아들의 얼굴이 조금씩 일그러졌다. 머리가 이상하게 변하고
있음을 눈치챈 것이다.
"나, 안 해. 머리가 이상하잖아." 냅다 도망친다.
다음 타깃은 둘째 아들이다. 세 살이라 뭣도 모르고 나의 꼬임에 빠져 의자에 앉는다.
"예쁘게 잘라줄 테니 움직이면 안 돼."
이발기가 돌아간다. 윙 윙~~ 머리는 점점 짧아지고 좌우 대칭은 맞지 않고... 땀은 삐질삐질 나고...
어떻게 수습을 해야 하나 마음속으로 걱정하면서도 아이를 안심시킨다.
"조금만 참아, 엄마가 예쁘게 잘라줄게. 움직이지 말고"
아뿔싸!! 좌우대칭 맞추기가 이렇게 어려웠나? 강사가 가르쳐준 대로 했는데 왜 이렇게 됐지?
자르고 자르고 또 자르다 보니 이상한(?) 해병대 머리가 되었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결국 빽구
(빢빢이, 일명 스님 머리)를 만들었다. 아들은 울음을 터뜨렸고 난리(?)가 났다. 겨우 반 윽박과 과자로
달랠 수 있었다.
아들의 머리를 본 남편 왈, 다시는 애들 머리 자르지 말란다. 영구처럼 만들었다고.
차마 남편 머리를 잘라주겠다는 소리는 못했다.
저질러 놓은 과거(?)가 있고 내게도 염치란 것이 남아있어서다.
똥 손 엄마에게 머리를 맡긴 순진한 울 아들들! 미안했다. 지난 과오를 깊이 반성하는 엄마의 고백을
너그러이 용서해 주렴.
미용실 가면 유일한 요구사항이 손질하기 편한(드라이로 말리기만 해도 되는) 머리를 해달라는 것이다.
미용사가 어떻게 하라고 알려줘도 막상 해보면 전혀 딴 판이된다. 같은 손이 같은 손이 아니다.
포기!! 이 똥 손을 어찌하리오.
손으로 하는 것은 왜 이리 재주가 없는지...
중년은 지금~~ 물감놀이 중
중년은 지금 물감놀이 중이다.
똥 손이지만 그림 그리기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100일만 그려보자. 미친 듯이~~ 100일의 기적을 이뤄보자.
처음부터 잘 그릴 수는 없는 일, 열심히 그리다 보면 잘 그리는 날도 오겠지?
노년에는 멋진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상상하고 있다. 상상만으로도 행복하고 만족스럽다.
오늘은 비록 똥 손이지만 내일은 달라질 것이다.
똥 손의 기억에서 벗어나 금손이 되는 그날까지 포기하지 않고 그리고 또 그릴 것이다.
똥 손의 도전을 계속된다. 쭈~~ 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