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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
밥은 먹었니 이경애 (수필가) 일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중이었다. 딸애에게 곧 집에 도착한다는 전화를 해야지 생각하는 순간 바지 주머니 속에서 전화기가 부르르 몸을 떨고 있었다. “엄마, 무서워!” 딸애다. “파출소에서 오빠 주민등록번호랑 집주소 묻는 전화 왔어” 얼굴이 보이지는 않지만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기세다. 경찰이라는 말에 겁부터 먹었나 보다. 의료보험카드 보고 가르쳐 드리지 그랬냐고 했더니 엄마가 곧 올 것이니 조금 있다가 다시 전화 해 달라고 했단다. 그러고 나니 나도 무섭다. 또 무슨 일이란 말인가? 중간고사를 앞두고 있어서 아들 녀석은 지금쯤이라면 독서실에 있거나 근처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있어야 하는데 파출소에서 전화라니. 누구랑 싸웠나, 아니면 교통사고라도? 상상은 자꾸 나쁜 쪽으로만 치닫는다. 인천 호프집 화재사건이 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유학 준비한다던 아들애 친구 하나가 캐나다에서 입학허가서를 받았다. 그 쪽지 하나에 세상의 종말이라도 온 것처럼 친한 친구 여섯 명은 그날 밤으로 당장 동네 호프집에서 만나기로 했던 것이다. 커피숍은 열 시에 문을 닫으니까 하는 수 없이 호프집으로 정했노라고 했지만, 녀석들의 전화통화를 엿듣기라도 한 것처럼 호프집에 들어가 앉자마자 들이닥친 경찰들에게 끌려 파출소로 가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그날 밤 파출소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가서는 경찰관이 부르는 대로 ‘모 아무개는 자 아무개를 인수해서 갑니다’ 라는 내용의 신병 인수증을 썼다. 그리고 엄지로 지장까지 꽉 눌러 찍은 다음에야 아들을 데리고 돌아온 적이 있다. 전에 그런 일이 있었는데 또 파출소라고 하니 놀랄 밖에. 집에 도착하자마자 우선 딸아이부터 진정시키고, 사정을 알아보려는데 파출소에서 다시 전화가 걸려 왔다. 오늘 댁의 아들 아무개가 현금과 카드를 빼앗기고 경찰에 신고했는데 지금 파출소에서 돈을 빼앗은 애가 조사를 받고 있다고 했다. 처음에는 별일 아니라고 생각해서 아들애를 돌려보냈는데 조사하다 보니 전과가 스무 건도 넘게 나오는 바람에 신고를 한 본인을 다시 부르게 된 것이라고 했다. 물증으로 현금카드 사진도 찍어둬야 하고 다른 조사도 더 할 것이 있으니 귀찮더라도 아들을 데리고 파출소로 잠시 나와 달라는 것이었다. 때마침 퇴근하는 남편과 함께 세 식구가 함께 파출소로 갔다. 가는 길에 아들에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물었다.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던 아들 녀석이 친구와 함께 저녁을 먹으려고 걸어가고 있을 때였다고 한다. 어떤 아이가 다가오더니 손바닥만한 쪽지를 하나 내밀며 여기가 어딘지 좀 가르쳐 달라고 하더란다. 어두워서 글씨가 잘 안 보인다고 했더니 그러면 저 쪽 주차장 쪽으로 가서 봐 주겠느냐고 해서 몇 발짝 걸어가는데 그 아이가 갑자기 앞을 막아서더니 “돈 가진 것 있으면 다 내 놓으라”며 강도로 돌변하더란다. 그래서 얼떨결에 갖고 있던 돈 오천 원과 은행 현금 카드까지 몽땅 주고 말았다는 것이었다. 현금 카드까지 주어 버린 것이 걱정이 되었던 아들 녀석은 바로 파출소에 가서 신고를 했고 마침 독서실이 파출소 옆 건물이다 보니 돈을 빼앗긴 지 오 분도 안 되어서 순찰차를 타고 찾으러 나가게 됐다고 한다. 빼앗은 현금카드로 녀석은 근처 은행 365일 코너에서 통장에 들어있던 약간의 돈을 찾기는 했지만 겨우 이백 원을 쓰다가 덜미가 잡혀 파출소에 있다는 것이다. 현금 카드까지 빼앗았으면 멀리나 갈 것이지 하필 간다고 간 곳이 바로 길 건너 오락실이였으니. 파출소에 들어서니 중3 이나 고1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고개를 푹 떨군 채 의자에 앉아 있었다. 전과가 무려 스무 건이 넘는다는 말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어려 보이는 얼굴이었다. 얘기를 듣고 보니 결코 애만 나무랄 수도 없었다. 아버지는 감옥에 있고 새엄마는 아버지가 검거되자마자 전셋돈을 빼내서 이복동생을 데리고 어디론가 가버렸다는 것이었다. 돌봐줄 부모도 돌아갈 집도 없는데 애가 길거리를 헤매고 다녔을 건 불을 보듯 뻔한 일, 당장 돈이 필요하니까 학생들을 협박해서 돈을 빼앗다가 붙잡혀서 안양에 있는 소년감별소라는 곳에 보내졌다. 거기서 있다가 나온 지 두 달만에 또 이런 일이 생긴 것이다. 조서도 써야하고 조사할 일이 더 있다면서 파출소에서 경찰서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 경찰서에 가서 아까 파출소에서 한 얘기를 처음부터 다시 했다. 경찰관은 주고받은 모든 이야기를 시나리오 쓰듯이 묻고 대답하는 식으로 써 나갔다. 그러는 동안 시간이 한참이나 흘러갔다. 그때까지 아무도 저녁을 먹지 못 했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초저녁부터 조사를 받느라고 얼이 반쯤 나간 듯한 그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내 배가 이렇게 고픈데 애는 배가 얼마나 고플 것인가 싶어서 별 생각 없이 “너는 밥은 먹었니?” 하고 물어 보았다. 그 말에 녀석의 눈에 그렁그렁하게 눈물이 고이고 굵은 눈물이 주루룩 뺨을 타고 내려가 흐르더니 어깨를 들썩이며 울기 시작했다. 서러운 일이 많고도 많은지 애써 울음을 참으며 흐느끼는 소리가 마치 자동차 급브레이크 밟는 소리처럼 들렸다. 눈물은 얼굴을 타고 내려서 목으로 들어가 가슴으로 흘러내리며 셔츠를 적시고 있었다. 작은 가슴을 가린 얄팍한 셔츠 앞자락이 반이나 넘게 젖도록 아이는 울음을 그치질 못했다. 경찰들은 아까부터 윽박지르기만 하니 주눅이 들었지, 배까지 고픈 참에 밥 먹었느냐는 말 한 마디가 녀석으로 하여금 엄마를, 가족과 함께 단란하게 지냈던 기억을 떠올리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측은한 마음에 어쩔 줄을 몰라하고 있는데 갑자기 녀석이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다시는 그런 짓 않겠으니 제발 용서해 달라고 비는데 애처롭기 짝이 없었다. 애타게 애원하는 애를 더이상 보고 있을 수가 없어서 소년계장이라는 이에게 이제 얘는 어떻게 되느냐고 물어봤다. 전과가 너무 많고 한번 구속된 적이 있어서 당연히 구속이라고 했다. 아직 나이도 어린데 구속은 너무 심하지 않느냐고 했더니 내보낸다고 해도 아이를 인수해갈 부모도 없고 거처도 없으니 얼마 못 가 다시 잡혀 들어 올 것이 뻔하다는 것이었다. 부모가 데리러 올 때까지 구속을 하는 것이 아이를 위해서 더 잘된 일이라는 대답이었다. 또 이미 위에 보고된 사항이라서 피해자측이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해도 구속여부가 달라질 수는 없는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자꾸만 용서해달라고 애원하는 아이가 마치 자기를 우리 집으로 데려가 달라는 것으로 느껴지는 것은 왜였을까? 내게 그럴 만한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아무리 좋게 생각한다고 해도 나는 내 아들을 협박해서 돈을 빼앗은 아이를 맡아서 데려올 만큼 그렇게 너그럽지는 못하다. 설사 그 정도 마음은 먹을 수 있다 하더라도 그 아이의 아버지가 아들을 찾으러 올 때까지 먹이고 입히고 학교에도 보낼 여력이 내게 있을지는 더욱 의문일 수밖에 없었다. 바라보는 심정이 아프기는 했지만 역시 그 아이를 데려온다는 것은 내 능력 밖의 일이었다. 다음 날 아침 8시 30분에 영장을 청구한다니 이제 그 아이는 다시 소년감별소에서 자기를 버린 새엄마와 세상을 원망하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밥은 먹었느냐는 말 한 마디에도 그토록 많은 눈물을 쏟아내던 걸로 봐서는 심성은 여리고 고운 애 같았는데…. 좋은 부모만 만났더라도, 적어도 전세금을 빼들고 도망쳐버린 새엄마만 아니었더라도 그 지경은 되지 않았을 텐데 어른들 잘못으로 애가 그렇게 된 것 같아서 정말 안타까웠다. 조사가 끝났으니 우리는 가도 좋다고 하는데도 영 발길이 떨어지질 않더니만 잠자리에 누워도 좀처럼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인수해갈 사람이 있으면 구속은 면할 수 있을 테니 삼촌이나 친척들이 있으면 전화번호를 대보라고 해도, 아무도 오지 않을 거라며 힘없이 고개를 떨구던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 묻는 말에 대답을 하고 있는 아이의 목소리에는 확실히 세상에 대한 원망과 자신을 버린 어른들을 향한 애소哀訴가 묻어 있었다. 흐르는 눈물로 가슴을 흥건히 적시며 앉아있던 녀석의 등이 꼭 내 아들 녀석의 등넓이가 되어 눈앞에 어른거렸다. 바보같은 녀석, 카드까지 빼앗았으면 멀리 도망이나 갈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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