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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7.신명기-067 모세의 고별설교(신명기 1장 1-8절)
성경말씀은 신명기 1장 1절에서 8절까지 봉독합니다.
[신명기 1장]
1 이는 모세가 요단 저편 숩 맞은편의 아라바 광야 곧 바란과 도벨과 라반과 하세롯과 디사합 사이에서 이스라엘 무리에게 선포한 말씀이니라
2 호렙 산에서 세일 산을 지나 가데스 바네아에까지 열 하룻길이었더라
3 제 사십 년 십 일 월 그 달 초일 일에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자기에게 주신 명령을 다 고하였으니
4 때는 모세가 헤스본에 거하는 아모리 왕 시혼을 쳐죽이고 에드레이에서 아스다롯에 거하는 바산 왕 옥을 쳐죽인 후라
5 모세가 요단 저편 모압 땅에서 이 율법 설명하기를 시작하였더라 일렀으되
6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호렙 산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여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산에 거한 지 오래니
7 방향을 돌려 진행하여 아모리 족속의 산지로 가고 그 근지 곳곳으로 가고 아라바와 산지와 평지와 남방과 해변과 가나안 족속의 땅과 레바논과 큰 강 유브라데까지 가라 하셨나니
8 여호와께서 너희의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사 그들과 그 후손에게 주리라 하신 땅이 너희 앞에 있으니 들어가서 얻을지니라
지금까지 민수기를 살펴보았고, 이제 몇 시간에 걸쳐서 신명기를 함께 살펴보면서 은혜와 진리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신명기라는 말은 우리가 얼른 들어서 제목을 이해하기 조금 어려운 말인데 ‘신(申)’자를 한문으로 써놓고 보면 납 신(申)자를 써 놓았습니다. 그런데 ‘납’이라는 말이 뭐냐 하면요 ‘잔나비’예요. 납 하는 말이 원숭이를 말해요.
‘납 신(申)’자 혹은 ‘원숭이 신(申)’자 이렇게 보는 것인데, 그러면 이걸 신명기 혹은 원숭이 신자로 보면 ‘원숭이 계명에 대한 기록이다.’ 이렇게 되는 거야. 그러면 말이 안 되죠?
그래서 이 신(申)자를 가만히 더 들여다보니까 아주 큰 한자 사전을 보면 이 신자가 용례가 때로는 ‘되풀이 할 신(申)’자로 나옵니다. ‘되풀이 할 신(申)’.
그러면 해석이 되는 거죠? ‘계명을 다시 한번 되새김질 한다. 재해석하고 재음미한다.’ 그런 의미예요.
워낙 한자 실력이 있는 분들이 이름을 지어서 신명기(申命記) 이렇게 했는데 지금까지 우리가 신명기라고 그냥 그 의미 없이 신명기, 신명기 하지 이것이 계명에 대한 재해석이다. 하는 말을 하는 분을 한번도 못 만나 봤어요.
그리고 신명기를 전체로 강해하는 경우도 잘 없고, 이 신명기라는 말씀이 무슨 말씀인지 알려하는 사람도 많지 않고, 뭐 구약 전체가 다 그저 기독교에서 외면당하고 있는데 레위기라든지 민수기 신명기 다 그저 무관심하게 지나치고 습관적으로 그저 읽으라고 하니까 그 읽을 뿐이지, 그 속에 담긴 내용을 좀 제대로 알아보겠다. 그런 사람들이 많지 않아요.
그래서 우리 기독교가 꽤 그 성경에 어두워 있습니다. 어이없을 정도로 성경을 안 가르치고 못 가르치고 모르고 혹은 잘못알고 또 알아도 또 부분적으로 알고 이렇게 되어 있는 게 참 안타까운 일이야.
그래서 저는 그 구약 성경 중에서도 역시 더 중요한 책이 있고 덜 중요한 책이 있습니다.
차이가 나요. 아마 가장 중요한 책이 구약에서는 오경 전체가 어떤 책보다 중요합니다.
오경을 바르게 알면 역사서를 원만하게 이해 할 수 있고, 또 역사서를 어느 정도 알아야만 예언자가 왜 그렇게 예언했는지 이런 것도 정리가 되는 거야.
모든 그 신학과 우리 학문과 또 우리 신앙의 맨 기초는 역시 오경입니다. 오경을 터를 잘 닦아 두지 않으면 그 후에는 어디로 흘러갈지 알 수가 없는 그래 반드시 그 근간 뿌리가 되고 큰 줄기가 되는 그런 기본, 근본을 잘 붙들고 있어야 돼요.
그리고 이 오경 중에서 신명기는 율법전체에 대해서 율법전체에 대해서 그 의미를 다시 한번 그 되새겨 보는 그런 내용인데 우리가 어떤 율법을 들었거나 배웠거나 해도 그 참된 의미를 우리가 그 인식을 하지 못하면 그 모든 노력한 수고 공부한 수고가 전부 헛된 거야.
의미를 찾아야 해요. 그 안에서 무의미하게 이렇게 공부하면 안 되고 그 속에서 진짜 원래 하나님의 뜻이 어떻게 담겨 있는가? 이런 것을 그 살펴봐야 하는데 일반 성도들이 삶에 쫓기고 그 직장에서 뭐 가정에서 이 크고 작은일 늘 상 하면서 또 이 어려운 성경을 제대로 참 의미를 정리한다는 것 쉬운 일이 아냐.
그래서 교회에서라도 좀 그렇게 해 주면 좋겠는데 제가 볼 때 대부분의 교회가 또 그렇게 못해요. 설교 주일날 낮에 뭐 낮에 한 30분정도 하는 것 거기다가 뭐 예화 몇 개 집어넣고 시사가 몇 개 들어가 버리고 또 무슨 설교자 목회자 의지가 거기 섞여 버리면 하나님의 뜻은 거의 성도들 마음속에 흘러가지 않는다는 거야.
이런 점은 내가 평소에 늘 안타까워하는 점인데 그래서 우리가 창세기부터 시작해서 신명기 까지 왔는데 신명기는 사실 뭐 세 번 내지 네 번에 걸쳐서 그냥 나누어서 읽으면 되는 정도입니다. 어려운 게 아니고 역사적인 배경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신명기는 그리 어려운 책이 아닙니다.
간단하게 정리를 하자면 1장 1절에서 4장 43절까지는 그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과 40년간 그 함께한 지난날을 회고하는 내용이죠. 회고하는 것.
그리고 정작 4장 44절부터 28장 68절까지가 율법을 설명한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율법은 물론 레위기를 말합니다. 레위기를 설명을 하는데 설명하되 주석 설교 식으로 한 것이 아니예요. 그 주석 설교 식으로 하면 한절, 한절, 한 단어, 한 단어까지 꼼꼼하게 풀어서 이렇게 하면 이른바 주석 설교인데 모세가 하는 설교는 주석 설교라기보다 의미 설교 제가 좀 좋아 하는 설교죠.
그 속에 담겨있는 문자, 단어 이런 것보다도 그 안에 담겨 있는 그 의미. 하나님의 뜻의 알갱이 이런 것을 찾아서 설명하는 그런 설교로 알고 있어요.
그리고 제가 이 신명기 중에서도 4장 44절부터 28장 68절까지를 이렇게 분량을 보니까 한 42페이지 정도 되거든요. 그런데 오히려 그 본문이 어떤 레위기는 45페이지라는 거야.
그 해석을 했는데 그 해석한 것이 본문 레위기 보다 오히려 줄어들었습니다. 늘어난 것이 아니라.
자, 이런 설교가 아주 그 짭짤한 설교야. 알차고 아주 짭짤한 그런 설교인데요. 제가 가끔 CBS라든지 CTS. 여기 오면 마산 오면 CTS가 나와요. 저 산청은 CBS만 위성으로 보이는데 거기에서 가끔씩 그야말로 한국에서 아주 유명한 그런 목사님들 설교가 나오고 CTS를 틀면 미국목사들 얘기가 그 설교가 가끔 나오는데, 그 미국 목사님들 보니까 점점 그 청바지 목사로 그렇게 가더라고 그렇죠? 아예 뭐 넥타이도 안 매고 청바지도 그 다 떨어진 거, 헌것그런 거. 넥타이는 뭐 어디다 잃어버렸는지 그냥 나와서 강단을 이리 왔다 갔다 뛰어다니고 하는데 그 내용을 가만히 움켜지고 보니까 한 시간 내내 들었는데도 보니까 한두 마디야 그걸 되씹고 곱씹고 그렇게 하는 거예요.
그런데 사람들이 많이 모였어. 보니까 얼른 내가 보니까 그 수천 명은 될 것 같은데 그 저렇게 사람들을 많이 모아 놓고도 겨우 저런 말 밖에 할 게 없는가? 할 정도로 애가 타요. 그런데 제가 보기로는 그 앉아 있는 사람들은 참 듣고 싶어하고 듣고자 하는 자세가 되어 있어요.
그런데 전하는 사람은 그렇게 진지하지도 않아. 그 내용을 볼 때 부분적으로 유익이 됩니다. 유익이 되지만 그런 식으로 해서는 평생을 설교해도 하나님의 뜻이 전체로 원만하게 전달되기 어렵겠다. 제 결론은 그래요.
그래서 참 저도 평생을 예수님을 믿고 믿자마자 1년 남짓 되면서부터 설교를 하기 시작했는데 평생에 설교를 벗어나지 못하고 설교라는 짐을 안고 살면서 어떻게 하면 나의 작은 봉사로 말미암아서 성경책에 있는 하나님의 뜻이 누락되거나 훼손되거나 불순물이 섞이지 않고 바르게 흘러 갈수 있게 하겠는가? 그게 제일 저의 과제고 고민이죠! 그래서 신명기 같은 책도 모세도 보니까 그래요. 레위기라는 책이 좀 딱딱 하니까 그 딱딱하면 참 사람들 마음에 잘 안 들어가요. 너무 딱딱하면 그래서 조금은 좀 이게 그 대화체로 그리고 그 부드러운 말로 하는 것이 설교죠.
그런데 오늘날 대부분의 설교는 그런 도를 너무 넘어서서 예수님이 많이 우려하던 그런 문제가 들어 났는데 그 예수님이 하시던 말씀이 뭐냐하면 바리새인의 누룩을 조심하라. 그런 말씀을 한 적이 있어요. 그 누룩이라는 것이 부풀게 하는 것인데 그게 누룩 넣지 않은 빵이 딱딱하거나 그래서 맛이 없죠!
거기다가 약간의 누룩을 넣으면 조금 부드러워지니까 그 정도 하고 말아야 하는데 누룩을 너무 많이 넣은 거야. 바리새인들은 누룩을 너무 많이 넣어서 본질은 온데 간데 없고 성경을 가지고 미쉬나 하면서 미쉬나로 만들면서 거기다가 해석을 더 하고 탈무드를 만들면서 거기 또 사람 생각을 많이 집어넣고 게메라, 토셉타, 바라이다, 할라카, 하카다 하면서 자꾸 보태니까 나중에 뭐 눈 덩이처럼 그 말씀의 본질이 온데 간데 없고 그저 이상한 종교 형식만 남는 그런 걸 예수님께서 경계하신 것인데 대체로 ‘바리새인의 누룩을 조심하라.’ 하는 그 말씀 자체도 별로 이해를 못한 것 같아요.
오늘 진리가 신학적인 어떤 누룩이나 과잉해석의 어떤 누룩이나 어떤 프로그램의 누룩이나 무슨 찬양 문화의 어떤 누룩이나 이런 누룩들이 자꾸 들어와 가지고 교회를 정말 혼잡하게 한 겁니다. 그러나 그런 온갖 것을 다 해봐도 성도들의 마음속에는 그 은혜와 진리로 말미암는 그런 충만도 또 그런 어떤 변화도 잘 없어요.
그래서 그 어떤 성도들이 뭔지 모르게 그 속에 채워지지 않는 어떤 불안감 불안이 있어가지고 이리 저리로 막 해매는 데 그런 사람들에게 꼭 이단이 다 달라드는 거죠.
제가 볼 때는 지금 지구상에 그 우리 종교개혁으로 말미암아서 성경으로 돌아가자고 하는 그 개혁교회가 미국하고 한국에 조금 남아 있고 유럽에 그 가물가물하게 남아 있고 그런 정도인데 미국교회도 많이 변절되고 미국신학이 프린스톤 대학부터 변질되기 시작했습니다. 유대교가 유대인들이 교육계 이런 언론계 이런 것을 전부 다 잡으면서 미국의 기독교는 많이 훼손 되었습니다. 청교도적, 청교도라고 해서 뭐 다 옳은 것은 아니지만 그런 신앙이나 신학 바탕도 다 흔들리게 되었고 또 거기에서 공부하고 온 한국교회도 지금 비 본질 적인 것, 성경이 아닌 다른 것을 자꾸 가져 와서 교회를 어렵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 샤론교회가 뭐 다른 교회와 달리 성경 말씀을 좀 능률적으로 그리고 더하지 말고 빼지 말고 성경전체를 좀 볼 수 있도록 그 운동을 뭐 한 1년 남짓 됐죠! 그동안에 우리가 겨우 오경밖에 못 나갔는데 앞으로 조금 더 속력을 내야 되겠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신명기 1장]
1 이는 모세가 요단 저편 숩 맞은편의 아라바 광야 곧 바란과 도벨과 라반과 하세롯과 디사합 사이에서 이스라엘 무리에게 선포한 말씀이니라
거기 줄을 그으세요. ‘선포한 말씀’. 기록한 말씀이 있고, 선포한 말씀이 있습니다.
선포한 말씀을 우리가 보통 설교라고 하죠. 설교. 기록된 말씀을 성경. 선포한 말씀을 설교 이렇게 말해요. 그러니까 그 책의 성격이 설교문을 기록으로 남긴 선포한 말씀이라는 거죠.
2 호렙 산에서 세일 산을 지나 가데스 바네아에까지 열 하룻길이었더라
자, 이렇게 놓고 호렙산에서 세일산을 지나 가데스 바네아에까지 열 하룻길이 된다. 이런 말을 놓고 지도를 펴놓고, 우리가 일반적으로 성지순례 가서 보면 호렙산 세일산 가데스바네아 하는 게 그 정확하지가 않습니다. 말이 참 잘 안 돼요.
성지순례에 가서 갈등이 뭐 고고학자들이 다 동원되도 해결이 안 되는데, 어떤 데는 보면 시내산을 호렙산으로 한 것 같이 된 곳이 있고, 어떤 데는 보면 시내산을 호렙산이 따로 된 것처럼 된 데가 있어요. 아직도 이 문제가 해결이 안 됐습니다.
성경기록이 상당히 그 모세가 단숨에 이걸 오경을 다 기록한 것 같지가 않거든요.
지난번에 우리가 본대로 그러다 보니까 호렙산하고 시내산이 같은 산이다. 하고 보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심지어는 시내산도 어디인지 모르겠다. 지금 우리가 성지순례 가서 그 정말 시내산이냐? 그렇게 의문을 던지는 학자도 상당히 있습니다.
그게 아직도 해결이 안 나요. 저도 뭐 지도를 가지고 연구해 보고 성경 본문 놓고 따져 보고 또 거기 시내산도 두 번 가 봤지만 가 봐도 별수가 없어요.
가데스 바네아가 어디인지 아직도 우리가 일반적으로 그 지도책에 점찍어 놓고 여기가 아니겠냐 하는 것은 그냥 어떤 학자가 한번 말하니까 그게 그리 된 건데 이걸 놓고 보면 말이 안 되게 되어 있어. 그 방향도 안 맞고 순서도 안 맞아요.
‘호렙산에서 세일산을 지나서 가데스 바네아까지 열 하룻길이었다.’ 하는 말도 지도를 놓고 보면 참 해결이 안 되는 그런 얘기야.
3 제 사십 년 십 일 월 그 달 초일 일에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자기에게 주신 명령을 다 고하였으니
아론이 언제 죽었죠? 40년 5월 초하루에 아론이 세상을 떠났죠.
그러면 그 뒤로 한 6개월 지나서 제 40년 11월 그 달 초일일에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자기에게 주신 명령을 다 고하였으니
4 때는 모세가 헤스본에 거하는 아모리 왕 시혼을 쳐죽이고 에드레이에서 아스다롯에 거하는 바산 왕 옥을 쳐죽인 후라
여기까지가 모세가 할 일을 다 한거죠.
다시 말하면 요단강 동편 땅을 나누어 줘야 하는데, 그 요단강 동쪽 땅이 바로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이 차지하고 있던 그런 땅이죠. 그걸 쳐 죽였기 때문에 모세가 처음에 약속하고 계획했던 대로 르우벤 지파, 갓 지파, 므낫세 반 지파에게 요단강 동편 땅을 나누어 줄 준비를 한 것이고, 그리고는 모세가 마지막으로 하는 이 고별설교가 5절이하에 있습니다.
5 모세가 요단 저편 모압 땅에서 이 율법 설명하기를 시작하였더라 일렀으되
‘율법 설명하기를’ 거기 줄을 그으세요.
율법을 설명한 것이 바로 이 신명기라는 책이다. 그런 뜻입니다.
.. 율법 설명하기를 시작하였더라 일렀으되
6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호렙 산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여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산에 거한 지 오래니
자, 이것 놓고 봅시다. 시내산을 호렙산으로 보면 시내산에서 거한 것은 오래가 아니거든요. 오래가 아니고 한 1년 밖에 안 돼요.
그런데 그들이 오래 거한 그 산이 어디냐 하면, 오래 거한 산은 오래 거했던 곳은 그 세일산이라고 하는 그 세일산하고 가데스바네아 그 사이 어간에 있는 그 신광야라고 하는 그 쪽에 오래 거한 거야. 한 38년동안..
그러면 거기 어디에 호렙산이 있어야 말이 되는데 이것 또 그 앞뒤 문맥을 쭉 보면 그것도 석연치 않아요. 아무리 연구하고 그 궁구하고 해도 결론이 아직 나지 않습니다. 어디쯤인지를..
지난번에 우리가 두 번째로 그 시나이 반도를 갔다 올 때 그들이 거한 그 신 광야에 오아시스를 둘러보지를 못했어요. 그 둘러보려면 그것 때문에 또 하루를 빼야 하는데 그 한곳을 가 보려고 하루를 빼지 못하고 그 아쉽게 왔는데 다음에 다시 한번 간다면 그 신 광야 오아시스 이스라엘 백성들이 38년 살았던 그 쪽도 다시 한번 답사를 해보는 것도 좋겠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7 방향을 돌려 진행하여 아모리 족속의 산지로 가고 그 근지 곳곳으로 가고 아라바와 산지와 평지와 남방과 해변과 가나안 족속의 땅과 레바논과 큰 강 유브라데까지 가라 하셨나니
8 여호와께서 너희의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사 그들과 그 후손에게 주리라 하신 땅이 너희 앞에 있으니 들어가서 얻을지니라
전에 제가 이 신명기 1장을 설교할 때 ‘들어가서 차지하라.’ 그런 제목으로 설교한 적이 더러 있습니다.
바로 이 8절 끝에 들어가서 얻기만 하면 된다. 하나님이 다 준비해 놓은 거죠.
그런데 40년 전에 모세가 지금 이때를 회고하면서 말씀 하시는데 40년 전에 하나님께서 ‘그냥 들어가서 차지하라.’ 하는 말씀을 그들이 믿지 못하고 기어이 가서 뭐 정탐꾼을 보내자. 그들이 우겨가지고 보고 와서는 엉뚱하게 보고하기 때문에 믿음이 없어가지고 40년간 지금 지연 된 거야.
그래서 한 38년간 진작에 차지 할 수 있는 것을 믿음이 없어 가지고 그렇게 늦어진 거죠.
우리가 때로는 벌써 차지 할 수 있는 걸. 때로는 우리가 믿음이 없어가지고 차지하지 못하는 그런 경우가 있다는 거예요.
우리도 어디 우리 샤론교회를 위해서 예비한 어떤 땅이 있으면 어디 있겠죠? 그래 믿음이 없어가지고 현장 답사 가서는 ‘에이 파이다.’ 그런 일이 벌어질지 몰라요. 교훈을 삼으라는 얘기예요.
잘 보고 그 믿음이 없어가지고 그 기회를 놓쳐가지고 40년간 또 광야에서 해매지 말고 들어가서 얻으라 하는 땅이 나타날 때까지 기도하고 딱 가서 보면 보는 눈이 딱 있어가지고 그리고 믿음도 있고 해서 또 차지해야하는데 이 사람들이 그 12명이나 가 가지고 실패하는 거죠.
9절,
9 그때에 내가 너희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는 홀로 너희 짐을 질 수 없도다
10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번성케 하셨으므로 너희가 오늘날 하늘의 별같이 많거니와
11 너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현재보다 천 배나 많게 하시며 너희에게 허락하신 것과 같이 너희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12 그런즉 나 홀로 어찌 능히 너희의 괴로운 것과 너희의 무거운 짐과 너희의 다툼을 담당할 수 있으랴
13 너희의 각 지파에서 지혜와 지식이 있는 유명한 자를 택하라 내가 그들을 세워 너희 두령을 삼으리라 한즉
그런즉 나 홀로 어떻게 이 짐을 지겠느냐? 했더니 각 지파별로 지혜와 지식이 있는 유명한 자를 택하라. 해서 한 지파에서 여섯 명 정도 택하니까 12지파니까 72명 정도 되는 거죠.
보통 이것을 70인 공회, 산헤드린 해가지고 70인 공회라고 말하기도 하고, 지금도 그 이스라엘에 70인 장로회처럼 랍비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렇게 만들어요.
지금 현재 이스라엘은 좀 복잡합니다. 뭐 공산당도 있고 노동당도 있고 리쿠드당도 있고 아주 복잡합니다. 그 조그마한 나라에 우리나라처럼 그 당이 많아요.
그래도 국회가 좀 다르기는 하지만 옛날에는 이 70인 장로라는 제도가 오래 지속 됐습니다. 이스라엘 출애굽부터 시작해 가지고..
14 너희가 대답하여 이르기를 당신의 말씀대로 하는 것이 좋다 하기에
15 내가 너희 지파의 두령으로 지혜가 있는 유명한 자들을 취하여 너희의 어른을 삼되 곧 각 지파를 따라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과 패장을 삼고
16 내가 그때에 너희 재판장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너희 형제 중에 송사를 들을 때에 양방간에 공정히 판결할 것이며 그들 중의 타국인에게도 그리할 것이라
그래서 그 한 지파에서 어른들을 취하고, 또 그중에서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 패장을 삼아 가지고 조직을 했죠. 그래서 재판을 하게 했는데,
17절,
17 재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인즉,
이걸 꼭 명심하시고요. 우리가 뭐 교회에서는 재판이 안 일어 는 것이 잘 하는 것이지만 혹 재판이 일어나면 재판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다. 재판을 하는 사람이나 재판을 받는 사람이나 하나님 앞에서 재판을 한다. 그런 의식이 필요합니다.
.. 너희는 재판에 외모를 보지 말고 귀천을 일반으로 듣고 사람의 낯을 두려워 말 것이며 스스로 결단하기 어려운 일이거든 내게로 돌리라 내가 들으리라 하였고
18 내가 너희의 행할 모든 일을 그 때에 너희에게 다 명하였느니라
간단한 것은 자치적으로 다 해결하고 정말 해결하기 어려운 것은 내게로 돌려라. 그러면 나도 하나님께 물어서 재판하겠다. 이게 모세가 지시했던 것입니다.
19절입니다.
19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대로 우리가 호렙 산에서 발행하여 너희의 본 바 크고 두려운 광야를 지나 아모리 족속의 산지 길로 가데스 바네아에 이른 때에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신 아모리 족속의 산지에 너희가 이르렀나니
이 아모리 족속이 참 강하고 그리고 처치하게 어려운 그런 성인데 그 땅에 왔죠.
21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 앞에 두셨은즉 너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신 대로 올라가서 얻으라 두려워 말라 주저하지 말라 한즉
22 너희가 다 내 앞으로 나아와 말하기를 우리가 사람을 우리 앞서 보내어 우리를 위하여 그 땅을 정탐하고 어느 길로 올라가야 할 것과 어느 성읍으로 들어가야 할 것을 우리에게 회보케 하자 하기에
23 내가 그 말을 선히 여겨 너희 중에서 매지파에 한 사람씩 열 둘을 택하매
24 그들이 앞으로 가서 산지에 올라 에스골 골짜기에 이르러 그 곳을 정탐하고
25 그 땅의 과실을 손에 가지고 우리에게로 돌아와서 우리에게 회보하여 이르되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땅이 좋더라 하였느니라
26 그러나 너희가 올라가기를 즐겨 아니하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을 거역하여
27 장막 중에서 원망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미워하시는 고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 붙여 멸하시려고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도다
자, 이게 똑같은 사실을 두고 이런 자기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을 오해하기 시작한 거죠.
그러니까 미워해서 애굽에서 불러냈다는 거야.
사랑을 하셔서 불러냈는지 미워해서 불러냈는지 이걸 판단을 해야 돼. 그런데 그 앞에 아모리 족속이나 그 아낙자손이나 이런 기골이 장대한 어떤 문제가 우리 앞에 있다 해 가지고 그걸 하나님이 우리를 미워하신 증거다 이렇게 오해한 증거죠.
그러면서 28절에,
28 우리가 어디로 갈꼬 우리의 형제들이 우리로 낙심케 하여 말하기를 그 백성은 우리보다 장대하며 그 성읍은 크고 성곽은 하늘에 닿았으며 우리가 또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노라 하는도다 하기로
29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그들을 무서워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30 너희 앞서 행하시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31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 아들을 안음같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행로 중에 너희를 안으사 이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
32 이 일에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도다
결과적으로는 하나님을 믿지 아니한 거야.
여러분 그 믿음이라는 것이 하나님 계신 것을 안 믿는 게 불신앙이 아니라, 하나님 계신 것을 믿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안 믿고 미워하셨다고 믿는 게 잘못된 거야.
여러분 하나님 계신 것은 다 믿습니다. 그 바리새인들도 믿고 이 사람들도 다 믿는다니까..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여 내신 목적이 우리를 미워해 가지고 아모리 족속에게 맞아 죽게 하려고 우리를 인도 했다. 이렇게 믿으니까 믿긴 믿는 게 여러분 믿음이 없는 게 아닙니다. 믿기는 믿는데 그 잘못 믿는 거예요.
그래서 믿되 어떻게 믿느냐는 거예요. 어떻게..
그래 제가 자주하는 말로 하나님 우리를 사랑하는 걸 믿는 게 믿음이라는 거예요.
우리를 미워하셨다고 믿으니까 그 하나만 뒤집어 버리니까 모든 게 전부다 부정적으로 보이고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가정에서도 마찬가지고 회사에서도 마찬가지고 교회에서도 마찬가지고 하나님 앞에서도 마찬가지야. 회사가 뭐 투자를 하기 위해서 분배를 조금 고려하고 투자에 뒤져 버리면 회사가 경영에 뒤지니까 그래서 조금 분배가 늦어지거나 조금 미흡해도 그 회사를 믿으면 저렇게 막 결사반대 저런 것 안 하는 거야.
그리고 정부가 하는 것도 우리가 좀 믿어주고 또 같이 동참해 주면 될 텐데 안 따라 가니까 뭐 지도자가 무슨 누가 와도 안 돼. 모세가 와도 안 돼.
한국 사람들은 아무도 지도자 할 사람이 없어요. 그러니까 우리 민족에 지도자가 무슨 위대한 분이 뭐 많지 않지만 지도자를 지도자 되게 따라주지를 않습니다. 한국사람 들이 특히 우리 경상도 사람들이 심하고 제가 보니까 호남사람들은 지도자가 좀 부족하고 시원찮아도 따라주는 것만큼은 대단해. 우리가 이 믿음이라는 것이 참 중요해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뿐 아니라, 사람도 좀 서로 믿고 신뢰해야 하는데 이런 것이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하나님 믿는 것은 뭐 어렵지 않겠는데 사람을 믿는 게 어렵습니다.
제가 보기로는 목사님들도 성도들을 너무 어린애 취급하는 것 같아요. 못 믿어 주고 그래서 일일이 다 간섭하고 뭐 이런 것도 가끔 보거든요. 좀 믿을 필요가 있습니다.
보니까 예수님도 그 어떤 지역에 갔는데 사람들이 예수님을 안 믿어주니까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그런 말이 나와요. 믿어지지 않으니까.
그래서 믿어주고 따라주고 해야 그리고 힘들어도 ‘우리가 따르겠습니다.’ 이런 마음이 있어야 지도자들이 일을 할 수 있는데, 뭐 모세가 뭐 말할 때마다 뭐 추진 할 때마다 계속해서 딴지 걸고 못 믿고 하니까 그 모세도 힘 드는 것이고 하나님도 마찬가지야.
그래서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도다.’ 이것은 정말 심각한 문제거든요. 그리고 하나님을 못 믿는데 또 누구를 믿겠어요? 하나님을 못 믿는 사람들이 누구를 믿겠습니까? 이 믿음 없다는 것 자체가 악한 겁니다. 사실은..
늘 그저 의심하거나 믿음 없고 하는 것이 다 자기가 악하거나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진실하지 못하거나 이럴 때 또 남을 믿지 못하는 거야.
그래서 성경에서는 맨 그 관계에 있어서 하나님과의 관계나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맨 기초는 믿음이죠. 신뢰. 신뢰가 있어야 일도 하고 또 발전도 하는데, 그게 신뢰가 깨져 버리면 만약에 뭐 그 사주가 사원을 못 믿는다든지 사원들이 그 사장을 못 믿는다면 그러면 일이 안 돼요.
그래서 이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도 그렇지만 사람을 서로 믿는 것도 믿어야 일을 할 수 있어요.
결론은 너희가 믿지 아니하였다는 것이고 믿어도 잘못 믿는 거죠. 하나님이 우리를 미워하셔가지고 우리를 끌어냈다. 이렇게 믿는 것 때문에 문제가 되는 거죠.
33절,
33 그는 너희 앞서 행하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의 행할 길을 지시하신 자니라
34 여호와께서 너희의 말소리를 들으시고 노하사 맹세하여 가라사대
35 이 악한 세대 사람들 중에는 내가 그들의 열조에게 주기로 맹세한 좋은 땅을 볼 자가 하나도 없으리라
36 오직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온전히 여호와를 순종하였은즉 그는 그것을 볼 것이요 그가 밟은 땅을 내가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리라 하시고
37 여호와께서 너희의 연고로 내게도 진노하사 가라사대 너도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리라
38 너의 종자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그리로 들어갈 것이니 너는 그를 담대케 하라 그가 이스라엘에게 그 땅을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처음에 성경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어요.
아이고 하나님께서 이 까짓 것 뭐 그 아무것도 몰라서 안 믿는데 그걸 꼭 갈궈야 되는가? 그런 생각을 몇 번 했어요.
그런데 그 내 생각이 틀린 게, 믿을 만한 증거를 많이 보여 줬잖아. 애굽에서 그렇게 많은 증거를 많이 보여 주셨고, 홍해 바다를 가르고 마른땅을 건너 왔고, 매일 같이 하늘에서 만나를 먹었는데 그것도 자꾸 먹으니까 이 기적도 아니고 예사로 생각했나봐.
그렇게 이 충분한 믿을 만한 증거를 보여줬는데 눈앞에 현실이 좀 어둡고 어렵다고 그만 또 의심하고 미워해서 또 우리를 불러냈다. 이런 식으로 하니까 미워하면 내버리지 뭐 하러 불러내 불러내기는 애굽에서 그저 종살이 하다가 맨 날 그저 벽돌 굽고 종살 하다가 그만 죽어라 그냥 하고 내 둬버리지 뭘 그 인도해 내기는 그러니까 그 참 중요한 거죠.
그래서 결국은 그 자기들 입으로 말한 대로 차라리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겠다. 그런 말 한대로 그래 너 말한 대로 내가 해 주겠다.
그래서 너희들은 하나도 그 좋은 땅 못보고 딱 여분네의 아들 갈렙하고 여호수아만 들어갈 거야.
그래서 결국은 이들이 믿음을 가지고 따라 갔으면 금세 그저 들어가서 차지할 땅을 그 불평하고 믿음 없어가지고 여기 38년 동안 지연되는 동안에, 그 38년은 무슨 기간이냐 하면 그 믿음 없는 것들 다 죽을 때까지 기다리는 거야.
안 들어가고 다 죽어 다 죽어 빨리 죽어라 빨리 죽어. 너희 다 죽을 때까지 안 들어 가.
그래 한 40년 있다가 다 죽었어. 그것들이 다 죽고 이제 새로 난 세대. 그 새로 난 세대가 뭐냐면 너희가 말하기를 우리 애들이 다 사로잡히겠다. 사로잡혀? 안 잡혀! 내가 사로잡히겠다는 그 아이들만 내가 데리고 들어갈 거야. 그런 얘기가 쭉 나와요.
그러니까 여러분 하나님도 꽤 감정적입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의 감정적인 측면은 잘 고려하지 않는데 한번 화가 나시면 그리고 말로 가지고 우리가 행동도 생각도 그렇지만 말로 가지고 하나님을 그 진노하시게 하는 일이 많은 거야. 그 말을 조심을 해야 돼. 스스로 스스로를 자기 스스로를 저주하는 것 같은 말을 함부로 하지 말도록..
39절,
39 또 너희가 사로잡히리라 하던 너희의 아이들과 당일에 선악을 분변치 못하던 너희 자녀들 그들은 그리로 들어갈 것이라 내가 그 땅을 그들에게 주어 산업이 되게 하리라
그래서 결국은 그런 불신앙이라든지 고집 같은 것 자기 생각에 치우쳐서 일을 그르치는 거죠.
40 너희는 회정하여 홍해 길로 하여 광야로 들어갈지니라 하시매
그래서 너희는 그저 홍해 길에서 다시 광야로 들어가라 뒤로 들어가..
그렇게 하니까,
41 너희가 대답하여 내게 이르기를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사오니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대로 우리가 올라가서 싸우리이다 하고 너희가 각각 병기를 띠고 경솔히 산지로 올라가려 할 때에
42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올라가지 말라 싸우지도 말라 내가 너희 중에 있지 아니하니 너희가 대적에게 패할까 하노라 하셨다 하라 하시기로
43 내가 너희에게 고하였으나 너희가 듣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명을 거역하고 천자히 산지로 올라가매
올라가지 말라고 했는데 또 올라간다고 또 만용을 부리는 거야. 그 올라가지 말라고 했는데 또 올라갔다가 또 수많은 사람이 죽고 그런 추태를 부리는 대요.
그래서 그때,
44 그 산지에 거하는 아모리 족속이 너희를 마주 나와서 벌떼같이 너희를 쫓아 세일 산에서 쳐서 호르마까지 미친지라
45 너희가 돌아와서 여호와 앞에서 통곡하나 여호와께서 너희의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며 너희에게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셨으므로
아모리 족속이 벌떼같이 와서 그들을 쳐서 호르마까지 미쳐가지고, 올라가라고 할 때는 안 올라간다고 하다가, 올라가지 말라고 하는데 또 올라가서 또 만용을 부리다가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너희가 돌아와서 여호와 앞에서 통곡했지만 그때는 또 하나님께서 통곡이고 뭐고 안듣기로 한 거야.
그래서 결국은 46절,
46 너희가 가데스에 여러 날 동안 거하였었나니 곧 너희가 그곳에 거하던 날 수대로니라
그래서 38년 정도를 거기서 보내게 되죠.
2장입니다.
[신명기 2장]
1 우리가 회정하여 여호와께서 내게 명하신 대로 홍해 길로 광야에 들어가서 여러 날 동안 세일 산을 두루 행하더니
‘여러 날 동안 세일 산을 두루 행하였더니’ 한 말이 약 38년간 입니다. 세일산 밑에 거기 신 광야가 있는데 세일 산은 우리가 에돔 족속이 살던 그런 산지인데 쭉 그저 남북으로 길게 뻗어져 가지고 그 세일 산이 머금었던 어떤 물들이 어느 한 쪽으로 이렇게 서쪽으로 내려가 가지고 그것이 솟아나면서 그 신광에 오하시스를 만든 것 같다 하는 생각은 가능합니다.
2 여호와께서 내게 고하여 이르시되
3 너희가 이 산을 두루 행한 지 오래니 돌이켜 북으로 나아가라
4 너는 또 백성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세일에 거하는 너희 동족 에서의 자손의 지경으로 지날진대 그들이 너희를 두려워하리니 너희는 깊이 스스로 삼가고
5 그들과 다투지 말라 그들의 땅은 한 발자국도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세일 산을 에서에게 기업으로 주었음이로라
하나님께서 ‘다투지 말라.’한 민족이 몇 개 있는데, 첫째 에서자손과 다투지 말라 하고, 그리고 모압 백성을 괴롭게 하지 말라. 그리고 암몬 족속하고도 다투지 말라.
이렇게 2장에 보면 ‘다투지 말라’ 하는 민족이 있는데, 이것이 전부다 세일 자손은 야곱의 형 자손들이니까 쌍둥이 족속이니까 다투지 말라는 것이고, 그 다음에 모압 족속은 또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딸들에게서 난 족속이니까 다투지 말라. 이렇게 했는데,
나중에 하나님께서는 그래도 에서자손이나 모압자손, 암몬자손들은 그래도 아브라함과 좀 관계있다고 해서 아브라함 연고로 이들을 참 은근히 긍휼히 여기려고 했는데, 이 에서자손이나 모압이나 암몬 자손이 너무 너무 악하게 하니까 결국은 ‘다 진멸해 버려라’ 그렇게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때로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해라.’ 말씀 하셨다가도 그들이 하는 것을 봐 가면서 다르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곳이 성경에 여러 곳 있습니다.
가령 예를 들면 엘리 제사장 같은 경우도 그렇잖아요. 하나님께서 ‘너와 네 집이 내 앞에 영원히 행하리라.’ 했으나 ‘너 하는 것을 보니까 내 그리 안 해야겠어.’ 하고 하나님 생각을 바꾸는 거예요. 은혜 베풀고 사랑하시가다가도 해도 해도 너무 하면 그때 가서 하나님께서 생각을 바꾸신다는 거예요.
그리고 거기 24절에 보면,
24 너희는 일어나 진행하여 아르논 골짜기를 건너라 내가 헤스본 왕 아모리 사람 시혼과 그 땅을 네 손에 붙였은즉 비로소 더불어 싸워서 그 땅을 얻으라
이 아모리 자손은 가나안 족속에 속한 사람들인데, 이런 사람들은 싸워서 이기라는 거야.
그래서 25절이 아주 중요하죠.
25 오늘부터 내가 천하 만민으로 너를 무서워하며 너를 두려워하게 하리니 그들이 네 명성을 듣고 떨며 너로 인하여 근심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니까 아모리 왕 시혼이라든지 바산 왕 옥은 요단강 건너편에서 가장 막강한 그런 세력인데 모세로 하여금 그 아모리 왕 시혼이나 바산 왕 옥을 때려주겠다 하는, 그리고 미디안을 쳐부셨다 하는 그 소문이 결국은 여리고로 들어가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거야.
그러니까 그 소문들 때문에 여리고 백성들이 간담이 녹는다. 하는 것이 기생 라합의 보고죠. 하나님께서 때로는 신경전을 벌이는 거야.
그러니까 미리 소문을 가지고 가나안 사람들을 전부다 간이 콩알만하게 얼어붙어 버리게 사기가 팍 떨어지게 일부러 그리 하는 거야. 일부러.
26 내가 그데못 광야에서 헤스본 왕 시혼에게 사자를 보내어 평화의 말로 이르기를
27 나를 네 땅으로 통과하게 하라 내가 대로로만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라
28 너는 돈을 받고 양식을 팔아 나로 먹게 하고 돈을 받고 물을 주어 나로 마시게 하라 나는 도보로 지날 뿐인즉
나는 또 걸어서 가겠다. 기병대도 아니고 도보로 갈 테니까 전혀 뭐 위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먼저 화해의 사절을 보냅니다.
여러분 전쟁을 할 때 오늘 아침에 우리가 미디안 얘기도 했는데, 그 책에는 안 나오지만 반드시 전쟁을 할 때에 먼저 그 화해 사절부터 보냅니다.
그 예를 들면 성경에 나오지 않지만, 미디안에 사자를 보낼 때에 지난번에 발람의 사주를 받아가지고 우리 백성을 음란에 빠지게 해서 죄를 짓게 해서 그 우리 백성이 많이 그 죄에 연루 되어서 24,000명이 죽었는데 거기에 연루된 사람들을 처단하라. 그리하면 우리가 같이 함께 공존하게 될 것이다. 뭐 이렇게 화해의 사절을 보냅니다.
그런데 그걸 거절하게 되는 거죠. 그 거절을 하면 전쟁을 하게 되는 거야.
또 그 옛날에 그 페르시아 전쟁 같은 것도 보면 그 전쟁하기 전에 먼저 사자를 보내요.
그 아테에 보낼 때에 사자가 가서 흙과 물을 받치라. 이렇게 하면 흙 한줌하고 물 한병을 이렇게 보내면 이 땅과 이 물이 페르시아 황제에게 속한 겁니다. 하고 우리가 그 종주국 되는 페르시아에게 속주 국으로서의 예를 하겠다. 1년에 얼마간 세금을 내겠다. 뭐 이렇게 하면 동맹국으로 지켜주는 대신에 땅을 점령하지 않고 관계가 유지 되는 건데, 그 페르시아가 보낸 사자를 갔다가 데리고 가지고 흙하고 물하고 주겠다. 그래 놓고 가서 우물에다 묶어가지고 집어 던지고 내려가면 물도 많이 있고 흙도 많이 있다. 마음대로 가져가라. 이렇게 하거든요.
그래 전쟁이 벌어지는 거야. 그래 반드시 그 전쟁하기 전에 무대뽀로 가서 밀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먼저 화해의 조건을 걸고서 사자를 보냅니다.
여기도 그렇게 한 거죠. 길만 좀 내 달라. 그런데 그 아모리 자손들이 벌써 아말렉을 쳐부순 사건하며, 미디안을 쳐부순 사건을 들었는데 길만 내 달라 해 놓고 길이 아니라, 그저 나라를 다 짓밟지 않겠는가, 우리 땅의 풀을 다 뜯어 먹고 갈 것이 아니냐, 해가지고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게 되니까, 결국은 전쟁을 해서 바산 왕 옥을 쳐 죽이고 아모리 왕 시혼을 때려 죽였는데, 아모리 왕 시혼은 얼마나 기골이 장대한지 거기 3장에 가서 보세요.
역시 거인 족 같은 데 3장 11절,
[신명기 3장]
11 (르바임 족속의 남은 자는 바산 왕 옥 뿐이었으며 그의 침상은 철 침상이라 지금 오히려 암몬 족속의 랍바에 있지 아니하냐 그것을 사람의 보통 규빗으로 재면 그 장이 아홉 규빗이요 광이 네 규빗이니라)
그러니까 길이가 아홉 규빗이면 4미터 50이야. 우리 보통 침대가 2미터죠.
우리는 보통 뭐 키가 커봐야 뭐 1미터 70~80 이니까 2미터면 침대가 되는데 침상이 4미터 50. 그러니까 아마도 키가 3미터는 훨씬 넘었다는 거예요.
그러면 얼마나 크겠어요? 뭐 우리나라 같으면 그 이봉걸이도 거기가면 뭐 유치원생같이 보이는 거예요. 그 정도로 큰 놈을 하나 때려 눕히니까 가나안땅 전체가 아주 두려워 떠는 거죠.
3장 12절,
12 그 때에 우리가 이 땅을 얻으매 아르논 골짜기 곁에 아로엘에서부터 길르앗 산지 절반과 그 성읍들을 내가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에게 주었고
13 길르앗의 남은 땅과 옥의 나라이었던 아르곱 온 지방 곧 온 바산으로는 내가 므낫세 반 지파에게 주었노라
그러니까 바산 골란 그러니까 지금 현재 시리아 땅인데 거기에 바산 골란 고원 그쪽은 므낫세반 지파가 차지했다는 거죠.
그리고 16절,
16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에게는 길르앗에서부터 아르논 골짜기까지 주었으되 그 골짜기의 중앙으로 지경을 정하였으니 곧 암몬 자손의 지경 얍복 강까지며
17 또는 아라바와 요단과 그 가요 긴네렛에서 아라바 바다 곧 염해와 비스가 산록에 이르기까지의 동편 지경이니라
긴네렛은 갈리리 호수를 말합니다.
18 그 때에 내가 이 땅을 받은 너희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이 되게 하셨은즉 너희 군인들은 무장하고 너희의 형제 이스라엘 자손의 선봉이 되어 건너가되
19 너희에게 육축이 많은 줄 내가 아노니 너희의 처자와 육축은 내가 너희에게 준 성읍에 머무르라
20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것같이 너희 형제에게도 안식을 주시리니 그들도 요단 저편에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주시는 땅을 얻어 기업을 삼기에 이르거든 너희는 각기 내가 준 기업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고
21 그 때에 내가 여호수아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두 왕에게 행하신 모든 일을 네가 목도하였거니와 네가 가는 모든 나라에도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행하시리니
22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하였노라
해서 같이 건너가서 싸우게 됩니다. 그래서 이 르우벤 지파, 갓 지파, 므낫세 반지파가 요단강 동편에 땅을 얻었어도 반드시 건너가서 오히려 앞장서서 너희는 땅을 다 차지했으니까 앞장서서 열심히 싸워서 함께 요단강 서편전쟁을 다 끝나고 나면 너희의 분깃된 그 땅으로 돌아가라. 이렇게 명령하는 거죠.
3장 26절,
26 여호와께서 너희의 연고로 내게 진노하사 내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내게 이르시기를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
모세가 자꾸 가나안 땅 들어가고 싶다고 하니까 하나님께서 안 들어 주는 거죠.
27 너는 비스가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눈을 들어 동서 남북을 바라고 네 눈으로 그 땅을 보라 네가 이 요단을 건너지 못할 것임이니라
그래서 사실은 모세가 섰던 땅에서 볼 때 눈을 들어서 서쪽을 보면 요단강 건너편에 가나안 땅이 보이고 거기서 눈을 들어서 쳐다보면 하늘이 보이는 거라. ‘너 어디로 갈래?’
모세는 쉴 만큼 일을 많이 했어. 그렇죠? 쉴 만큼 했으니까, ‘또 너가 거기 또 들어가면 전부 너만 쳐다 볼 거야. 그러면 역사가 어떻게 되겠냐? 너 말고 여호수아가 얼마든지 할 수 있어야 돼.’ 맨날 그저 뭐 모세 없으면 안 된다. 그러면 안 되거든요.
그래서 모세는 하늘로 올라가고 여호수아가 뒤를 이어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데 여러분 여호수아가 잘 해요. 어떤 모세든지 여호수아든지 다윗이라든지 누구든지 에 사람을 절대화 하면 안 돼요. 사람은 다 상대적인 것이지 절대적 존재가 아니라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모세를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가게 해야 하는데, 무슨 구실을 삼아서 못 들어가게 할까 하다가 딱 기회를 보고 있다가 한번 혈기를 부리니까, ‘옳지 됐다. 저걸 가지고 못 들어가게 해야겠다.’ 들어가지 못할 이유가 마땅치 않거든요.
그래서 모세가 한번 혈기 부리는데 그걸 꼬투리 삼아가지고 못 들어가게 한 거야. 제가 볼 때 잘 한 거예요. 사람을 너무 절대화 하지 않도록..
28 너는 여호수아에게 명하고 그를 담대케 하며 그를 강경케 하라 그는 이 백성을 거느리고 건너가서 네가 볼 땅을 그들로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29 그 때에 우리가 벧브올 맞은편 골짜기에 거하였었느니라
그런 이야기죠.
그래서 오늘 우리가 이 신명기의 1장부터 3장까지 쭉 보았는데, 모세가 들어가지 못한 이유는 도 은근히 그저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희의 연고로 들어가지 못하게 됐다. 사실은 자기가 실수 해 놓고 말이야. 그 실수가 뭐 모세 혼자 실수를 한 것이 아니라, 하도 뭐 이스라엘 백성이 속을 썩이니까 혈기를 좀 부렸는데 그런 것을 두고, ‘왜 들어가지 못하게 했는가?’ 하는 것을 두고 옛날에 어떤 분들은 이 율법이기 때문에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뭐 거기는 믿음으로 가는 곳인데 모세의 율법 때문에 못 들어갔다. 이게 이른바 지방 교회의 워치만 리라든지 위트니스 리 같은 분이 막 그런 식으로 해석을 하는 것을 봤어요.
제가 볼 때는 이것은 뭐 그런 의미가 아니고 모세는 할 만큼 했어요. 모세의 일은 거기까지라는 거야.
우리도 어디까지가 우리의 일인가, 분수를 헤아리고 꼭 그 사람 없으면 안 된다고 사람을 절대화 할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어떤 예는 또 나 없으면 안 된다는 그것 또한 잘못된 거야. 그 사람 없어도 할 수 있어요.
진리라는 것은 보편 타당성이 있어 가지고 바르게 이해하고 바르게 받으면 누구든지 전할 수 있고 받을 수 있고 하는 것이지, 어떤 한 사람에게 막 절대시 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는 거예요.
우리 한국 교회도 그 한 사람으로서는 뭐 굉장했는지는 몰라도 뒤에 그 사람 없으면 안 된다 그런 교회가 한국교회에 몇 교회 있거든요. 지금 대형교회를 볼 때 그런 우려가 좀 있다는 거죠. 사람이 너무 절대화 되고 있다. 너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자, 우리가 신명기를 쭉 공부할 때 여러분들이 제가 읽어서 같이 살핀 것 외에는 또 예습을 좀 해서 읽어 놓으시고 그리고 또 복습도 하고 이렇게 해야 머리에 남습니다. 우리 사람들의 기억이라는 게 보통 3단계 내지 4단계를 해야 기억에 남게 돼요.
한번 이렇게 듣고 넘어 가 버리면 거의 20%, 30%만 남고 나머지는 다 흩어져 버립니다. 그게 기억의 원리예요. 그래서 반드시 세 번에서 네 번, 다섯 번은 해야 그 기억에 남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한번 따라 합시다. ‘예습, 학습, 복습’ 그러니까 반드시 예습, 학습, 복습. 예습, 학습, 복습 이렇게 하면 머리에 남는 거예요. 세 번. 그러니까 그 복습이라는 것은 한달 안에 해야 돼요.
예습, 학습 하고 한달 안에 다시 한번 이렇게 그 더 정리하면 거의 80~90%가 기억에 남는 거야. 물론 사람마다 차이가 나지만 예습, 학습, 복습을 하면 그런데 마지막 복습을 안 하면 절반 정도 기억에 남거나 해요. 예습, 학습, 복습을 하면 90%정도 기억에 남는데 그리고 6개월 안에 한 번 더 살펴야 돼요. 한 번 더 그러면 영원히 잊어버리지 않는다. 이것이 공부의 원리입니다.
우리 학생들도 머리가 나빠서 공부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예습, 학습, 복습을 하고 그리고 6개월 뒤에 한 번 더 보는 것 이걸 하지 않기 때문에 넘어가 버리는 거야.
여러분 제가 뭐 인명, 지명, 연대 이런 걸 같다가 왜 기억을 잘 하느냐? 머리가 썩 좋은 게 아니라, 제가 성경강좌 하면서 예습, 학습, 복습. 예습, 학습, 복습 그것을 워낙 오래 하니까 머리에 남아 있는 거예요.
그걸 해도 나이가 50대 중반 넘어가면 기억이 잘 안나요. 최근 것은 그 옛날에 예습, 학습, 복습한 것은 거의 그저 내가 녹음을 해 놓고 보니까요. 어떤 데는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이 해 보니까 그런데 문제는 그 젊어서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야. 늙어서는 공부는 아니고 이해하는 것은 되는데 기억하는 것은 잘 안 되거든요.
그래서 우리 성도님들이 예습, 학습, 복습을 잘 해가지고 그리고 6개월 안에 또 한번 정리를 해서 중요한 것은 영원히 잊지 않도록 이렇게 정리를 해야 되요. 제가 우리 교회 보니까 우리 교회에서도 성경을 가르치고 합니다만 교회 바깥에서도 여기저기에서 몇 사람들을 모아놓고 공부방을 만들어서 성경을 그렇게 가르치는 그런 소식을 듣거든요. 얼마나 그 감사한 일입니까?
여러분도 어디든지 간에 그 봐서 교회 안에서 뿐만 아니고 그 주중에 하루 저녁이나 그런 시간을 정해가지고 공부방을 하나 만들어서 샤론교회 성도들은 누구든지 다 성경 교사다. 그 예습, 학습, 복습 잘 해서 그 모세의 말처럼 여호수아에게 말하기를 ‘이 사람아 네가 나를 질투하느냐? 이 백성 모두가 다 나는 예언자 됐으면 좋겠다 말이야.’ 제 소원이 그래요. 우리 모두가 다 성경 교사 다른 것은 다 몰라도 다 배우니까 그런데 한번 설교 듣고 마는 것 하면 안 되고 반드시 오시기 전에 한두 번 읽어보고 좀 이게 무슨 말인가? 하고 고민을 가져 와야 돼요.
그 고민을 가져 왔다가 저와 함께 학습을 하고 그리고 집에 가서 복습을 하고 복습을 한 김에 그 뒤에 연장선상에 가서 다음에 그 우리가 살펴 볼 것 조금 읽어서 정리 하고 오고 이 같이 공부를 하고 저는 이렇게 뚝뚝 잘라만 줘도 꼭꼭 씹어서 또 심도 있게 깨닫는 것은 여러분 스스로 해야 재미가 있는 거죠!
목사가 다 깨달아가지고 막 되씹고 곱씹고 하면 그것은 사실 그 은혜가 안 되고 듣는 사람도 힘들어요. 여러분 스스로 좀 깨달을 수 있다고 제가 좀 믿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진도를 빨리 나가는 겁니다. 앞으로 더 빨라 질 거예요.
오경에서는 좀 이게 워밍업을 해 가지고 가는 것이고 앞으로 좀 나갈 때는 좀더 빠르게 그렇게 나가게 될 겁니다.
그래서 요한 계시록까지 쭉 가고 나면 인간사에 겪는 대부분의 어떤 그 사건들하고 케이스가 거의 다 망라되기 때문에 66권을 그냥 잘 배우면 우리 인생에 일어나는 그 크고 작은 모든 일들을 거의 다 은혜로 또 진리로 또 대처 할 수 있는 그런 하나님의 사람들이 될 줄로 믿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했던 40년을 회고 하면서 기록된 신명기의 말씀을 오늘 살펴보면서 그 모세의 애환도 녹아 있고 또 하나님의 아픈 사연들도 이 말씀 속에 들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불신앙과 그 강팍함을 인하여 진작에 들어갈 수 있는 땅을 38년이나 지연 되어서 마침내 이루어지기는 하지만, 그 불신앙으로 잘못된 그런 믿음을 가졌던 사람들은 끝내 가나안 땅 들어가지 못하고, 믿음과 그 신뢰를 가지고 있던 여호수아 갈렙과 새로 난 시대가 가나안땅 들어가서 얻게 되는 그런 장면들을 우리가 잘 배우고 살펴서 이 속에 기록된 은혜와 진리를 놓치지 않도록 맑은 영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특별히 우리가 청년의 때에 하나님 말씀을 잘 분별하여 혼란한 가치관 속에서 허우적대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길로 이 진리의 길 바르게 인도할 수 있는 우리 청년들이 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