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진강 이어걷기 2회차 ,6월 9일.
신태인읍 실내체육관 앞 집합.
오늘은 참여인원이 모처럼만에 한 자리 수로 줄었습니다. 현충일과 주말이 징검다리로 연결되는 탓인 듯. 어제까지 내린 비로 습도가 높은 강변길. 아홉 시가 조금 넘은 시각부터 푹푹 찌는 느낌입니다.
-신태인읍 시가지 구경 -
신태인 시가지를 잠깐 걸으며 이곳 또한 타임 슬립을 한 듯한 분위기를 경험합니다.
특히 왜인들이 거의 점령하다시피 했던 주거지역의 그 당시 집들이, 어떤 곳은 깔끔하게 손질되어 아직도 살아있으나 대부분은 부서져 가고 있는 안쓰러운 모습.
(위 사진 : 제일 예식장 겸 사진관. 나중에 코아 예식장으로 바뀐 듯. 지금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건물.)
(위 사진 : 담장이로 뒤덮인 옛 창고?)
(위 아래 사진 : 옛 아카기 정미소 건물.)
아카기 미네타로오(赤木峰太郞)라는 왜인 농업이민자가 세운 거대한 도정시설 겸 곡물창고가 읍내 한 가운데 있습니다. 지금은 정읍시 생활문화센터로 활용되고 있네요.
화강암으로 기초를 놓고 붉은 벽돌로 쌓은 외양부터, 복잡한 삼각형 트러스가 높은 지붕을 받치고 있는 천장구조 등이 꼭 근대화시기 일본의 양옥건축의 전형입니다.
이런 건물, 전라북도 지역에는 참 많네요. 얼마 전에 가보았던 군산 대야역 앞의 옛 정미소 건물도 그 중 하나지요. 그만큼 ‘식민지 경영’에 있어서는 뽑아먹을 것이 많았던 외에밋뜰이라는 증좌이겠습니다.
벽골제가 백제시대 바닷물을 막으려는 둑이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바다 수면과 거의 차이가 없는 서해안지방의 낮은 땅을 농경지로 바꾸려는 조상들의 노고가 그대로 느껴지는 곳입니다. 결국 전라도 지방의 생활은 백제 건국 이래 오늘까지도 계속되어 온 방조(防潮)와 간척(干拓), 수리사업의 역사로 이루어졌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런 피와 땀의 산물인 징게맹경뜰의 소출에 일제가 수탈대상 1호로 착목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할 수도 있겠습니다.
- 우리 스스로 더욱 망친 전라도 -
일제 패망 이후 우리 정부의 무위(無爲)는 더욱 기가 찹니다.
그 때 이후의 투자는 거의 없다시피 한 전라도의 실상에 분노마저 느끼게 됩니다.
삭아가는 채 방치되고 있는 농촌지역의 마을들이.
“일본놈들이 수탈하려고 지은” 사실이 아무 것도 하지 않아야 할 이유라도 되는 듯 수십 년 동안 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는 현실이.
안내하는 중년여성의 친절하고 수준 높은 해설에 감사 드립니다.
-칠보면 출발 -
우선 버스로 칠보면까지 되돌아갑니다. 지난 번 1차 여행 때의 종착점이었지요.
출발점은 출발지점이라는 이유로 오래 머물지 않는 것이 상식으로 되어 있나봅니다. 혼자 하는 여행이라면 옛 태인군의 중심지라는 칠보면 구경을 조금 더 했을테지만…. 무성서원, 태인방각본 전시장, 칠보발전소에서 쏟아져 내린 「정읍 시내수로」 따라 가보기, 물테마공원에 들러보기 등 할만한 놀이가 꽤 있었으니까요.
강둑길로 올라섭니다. 전규리님이 쏜 꽈배기 한 가닥씩을 뱃속에 채워 넣고, 걷기를 시작합니다.
사실 오늘 여정은 낙양리를 빼고는 크게 볼 것도 재미도 없을 것이 충분히 예상됩니다.
김제·정읍 간선수로가 시작되는 낙양리 수문을 지나면 정작 동진강물의 본류는 형편없이 줄어들어 강물을 보기조차 힘들어지니까요.
(위 아래 사진 : 강 건너편 무성리 이모저모. 위는 '태산 선비문화관'.)
(위 아래 사진 : 정체불명의 이 구조물을 놓고 설왕설래. )
(타꾸왕을 담그는 시설이었을 거라는 기발한 추측도 있었으나...
민물장어 양식 수조였다는.)
(위 사진 : 칠보 물테마 유원지가 건너다 보이는. 산 아래 건물은 물테마 체험전시관.)
이미 열시가 훨씬 지난 시각, 햇빛을 하얗게 반사하는 포장길이 무섭습니다.
높낮이 차이도 없고 양쪽으로 펼쳐진 넓은 들판이라는 풍경에도 차이가 없는 강둑길. 그나마 아직은 풍부한 강물을 내려다볼 수 있는 것이 위안입니다.
맑고 파란 하늘과 강물 위에 비치는 흰 뭉게구름 그림이 또한 위안입니다.
(수문 셔터에 기발한 목욕탕 광고. 입욕료가 1천원이었던 시절?)
첫댓글 칠보장어도 꽤 이름이 있던데요...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