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의경의 눈물의 하소연
안녕하십니까? 저는 인천지방경찰청 소속 기동 3중대에서 군복무를 하고 있는 의경 성진욱
이라고 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제가 이렇게 글을 올리는 이유는 너무 억울하고 속상해서 글을 올리게 되었
습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지난 2001년 4월 10일 대우 자동차시위 진압과정에서 많은 사
람이 부상당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하지만 언론과 매스컴에 비친 모습은 우리
전·의경이 살인기계처럼 빛추워진체로 왜곡 된체 보도되었습니다.
저는 이 보도를 보며 너무 황당하고 억울해서 그날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흥분 됐습니
다. 그리고 머리 속엔 이사회가 냉정하게 판단을 못하고 한쪽만 감싸는지 안타까웠습니다.
저는 이사회를 상대로 조금의 과장도 없이 진실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알리고 싶
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기동3중대는 교통 및 진압근무를 같이 하는 기동대입니다. 그날도 (4월 10일)
저는 시위대가 점령하고 있는 부평 경찰서 관할에 있는 전방사거리에 근무를 나갔습니다.
시위대가 점령한 도로 때문에 저는 그날도 어김없이 땀을 흘리며 수신호를 하고 있는데, 오
후쯤 시위대를 막아서고 있는 우리 동료들에게 갑자기 흙과 돌기타 던질 수 있는 물건이 하
늘로 날아다니며 우리 전·의경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항상 상황은 순식간에 일어나듯 모든 것이 아수라장이 됐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폭력시위속
에서도 저희동료들은 꿋꿋이 그들의 돌을 맞아가며 자리를 지키고 인내 진압을 하고 있었습
니다. 하지만 그들은 계속 폭력시위를 했고, 도저히 사람으로는 할 수 없는 만행을 연속적으
로 전·의경에게 계속 가했습니다. 가래침을 뱉고, 흙을 눈에 뿌리고, 집단으로 의경을 납치
하여 구타하는 등 사람의 짓이라 볼 수 없는 처참한 일들을 그들은 저질렀습니다.
여러분도 생각해보십시오. 군 생활하는 동안 같이 고생하며 땀을
리며 정든 친구가 바로 눈앞에서 피를 흘리며 집단구타를 당하고 있으면 어떤 기분일지.....
하지만 이런 만행 속에서도 저희 동료들은 참았습니다. 마음속으론 백번이고, 천번이고, 그
들과 싸우고 싶었겠지만 저희들은 어금니를 깨물며 참았습니다
단지 경찰이란 이유로.....
옆에서 지켜보는 저도 너무 불쌍하여 당장이라도 진압복으로 갈아입고 그들과 같이 끌려간
동료들을 구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10분에서 30분에 시간이 흘렀을 때쯤 한 택시 운전기
사 아저씨가 의경 둘이 다 죽어 간다며 소리를 질렀고, 진압부대를 지위 하는 지휘관이 더
이상 참지못하고, 그들을 구출하기 위해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러게 하여 시위대와 충돌이
생겨 부상자가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매스컴에 보도된 내용은 어떻습니까?
완전히 시위대만 감싸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그들로 인해 눈이 멀고 팔과 다리가 부러지
는 피해를 당했는데도 누구하나 우리를 불쌍하게 여기는 사람이 지금 없지 않습니까?
왜 우리의 이야기는 듣지도 않고, 시민이 접하는 중요한 언론이 경솔하게 그들의 이야기만
보도하여 경찰의 이미지를 아니 우리를 시민의 의식 속에서 그늘로 몰아 부치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좀더 그들이 파렴치한 만행을 좀더 이야기하자면 도로를 점거하여 행진
하는 시위대를 안내하는 평화적 시위를 한다고 하였으면 경찰의 안내에 따라 평화적인 시위
를 해야지 자신들이 신고된 내용대로 집회를 하지 않고 도로 전부를 점거 한 채 안내하는
교통경찰을 마구 짓밟고 구타하여 병원에 입원시키는 등 불법행위를 일삼으면서 이런 불법
행위를 제지하는 경찰들이 조금이라도 과격한 진압을 하게 되면 언론 등에 뭇매를 맞는 것
을 당연히 하고 있지 않습니까?
누구를 욕하고 나무라기 전에 자신들이 먼저 원인제공으로 불법 행위를 한 부분을 먼저 생
각하여 잘못된 부분을 뉘우치고 이를 과잉 진압한 경찰관을 욕해야 순서가 맞지 않습니까?
어느 선진국을 보더라도 우리 나라 경찰처럼 시위대에 관대한 나라는 없는 것 같습니다.
불법행위를 하는 사람들에게 인권을 먼저 찾기보다 잘못 없는 보통사람들의 인권을 먼저 찾
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어떤 경우든 과잉진압을 동호할 생각은 없습니다 단지 시위대의 불법이던 경찰의 과잉진압
이던 잘못된 부분을 같이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며 경찰의 과잉진압만을 나무란다면 앞으로
도 불법시위문화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젠 더 이상 구차한 이야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단지 제가 바라는 것은 더 이상 우리를 왜곡하지 말고 언론인이라면 공평성을 갖고 양쪽입
장을 다시 한번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부디 우리 전·의경의 억울함이 세상에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보셨나요? 이 나라 모든 노동자들이 힘든건 압니다. 그게 모두 정치인들 때문이죠? 하지만
여러분들의 잘못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경찰들도.. (이번 경찰의 대우노조원들 폭력사
건에 대해서..)
이번 폭력은 먼저 대우노조원들에게 원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경찰들의 행위는 어쩔수 없
는 거였고요.. 이번 총 궐기 대회는 삼가해줬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써...
또다른 동영상 주소 : mms://211.176.61.119/do/2000/joseph_2.asf
"그것은 불법시위였다 납치된 12명의 의경 구출하려다가..."
부평경찰의 반론: 당시 무전통제 담당관 인터뷰
최경준 기자 hosiuhang@hanmail.net
▲ 경찰청은 14일 발표한 해명자료에서 붙잡힌 진압부대원을 구출하려다 우발적으로
폭행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부평경찰서 경비주임 "구출해산 작전은 부득이했다"
"경찰은 왜 꼭 그렇게 무자비하게 대우자동차 노동자들을 해산시켜야 했나?"
당시의 비디오를 보는 네티즌들이 한결같이 던지는 질문이다.
경찰청은 14일 이와 관련해 ´해명자료´를 냈다.
그 요지는 이렇다.
"지난 10일 오후 3시45분∼4시께 노조측에 붙잡혀 폭행을 당하던 진압부대원
12명(경찰 3, 의경 9)을 구출하고 노조원들을 해산하려다 일부 흥분한 대원들의
돌발적인 행동으로 불상사가 발생했다. 대우차 노조원들은 경찰장비를 탈취하고
경찰 얼굴에 흙을 뿌리고 침을 뱉는 등 격렬하게 대항했다."
경찰청은 위와 같은 사실을 당시 지휘관들 사이의 무전내용을 토대로
밝혀냈다고 주장했다.
<오마이뉴스>는 그 지휘관들을 만나 더 구체적인 주장 들어보기 위해 14일
밤 시위대에 의해 빨간색 페인트를 뒤집어쓴 부평경찰서를 찾았다.
당시 현장에서 진압을 직접 지휘하던 경찰 간부들은 현재 전원교체된 상태였다.
남아있는 간부중 당시 상황을 가장 잘 알수 있는 사람은 현장에서 들어오는 소식을
무전으로 받아 상황을 통제하던 김선태 경위(부평경찰서 경비주임, 당시 상황유지 담당)다.
<오마이뉴스>는 그를 어렵게 설득해 당시 상황을 들어봤다. 그는 이 인터뷰가
실명으로 나가는 것을 허락했다.
-노동자들이 법원으로부터 노조사무실 출입을 허가받았는데 경찰은 왜 막았나?
"노조측 박훈 변호사가 회사에 와서 법원의 판결을 통보하고 나가서 노동자들을
데리고 왔다. 그들이 허가 받은 것은 정상적인 노조활동이었다. 그들이 정상적인
노조활동을 했다면 막을 이유가 전혀 없다. 그러나 그날 노동자들은 회사에
들어오기 위해 집단적으로 도로를 점거하며 시위를 했다. 이는 정상적인
노조활동이 아니다. 그래서 실질적인 노조활동으로 보지 않았고, 일단 차단했다."
-노조 사무실에 들어가기 위한 노동자들을 차단했을 당시 상황은 어떠했나.
"우리가 노동자들을 차단하자 그들은 경찰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흙을 뿌렸다.
게다가 그들을 막고 있는 전경의 헬멧과 방패, 봉 등을 빼앗아 집어 던졌다.
그 때 뺏긴 방패가 30여개, 헬멧이 20여개, 봉이 10여개 정도된다. 그렇게
경찰이 구타당하는 상황이 계속 진행됐다."
-당시 현장에서 충돌했던 두명의 노동자가 구속돼 있다고 들었는데 이들의
혐의는 무엇인가.
"그들은 채증요원(집회 등에서 증거사진을 찍는 경찰)을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법원도 이를 인정해 이들을 구속시켰다. 노동자들에게 끌려간 한 체증요원은 옷이
모두 벗겨지고 심하게 구타를 당했다."
-경찰중 다친 사람은 몇명인가.
"당시 6명이 다쳤고 그 중 3명이 입원해 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훨씬 더 많은 사람이 다쳤다. 비디오를 봤는가.
"봤다. 그러나 그 비디오는 노동자들이 맞는 모습만 편집해 놓은 것이다.
실제 이전 상황이 더 중요하다."
-이전 상황이라면...
"의경 12명이 노동자들에게 납치돼서 현장에 있는 ´만도용품점´ 앞 도로에 구금됐다.
이들은 그 자리에서 무장해제 당하고 폭행도 당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폭력진압을 할 수 있나.
"과잉진압은 인정한다. 그러나 납치된 의경들을 구출하려다 우발적인 감정을 그런
것이지 의도적이지 않았다. 자기 동료들이 폭행당하고 감금당하고 시위대가 뺨 때리고,
침 뱉고 하니, 젊은 의경들이 감정이 북받혔던 것 같다. 말릴 ン황이 못됐다."
-그렇다면 당시 진압명령은 정당했나.
"노동자딩은 그 이전에도 이미 3시간이나 도로 점거를 했다. 교통소통도 시켜야 하고
더 이상 경찰이 폭행당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납치된 의경도 구출해야 하고,
시위대도 해산시켜야 되고...구출해산 작전은 부득이했다."
구속영장에 나타난 경찰의 인식 "불법시위였다"
위와 같은 경찰측의 입장은 구속된 두 노동자(성00, 장00)에 대한 구속영장
(4월 12일 18시 청구)에서도 그대로 반영돼 있다.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구속영장에는 경찰이 당시 노동자들의 ´노조사무실 진입 시도´를 어떤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었는지를 ´공문´으로 보여주고 있다.
"...(전략)..2001년 4월 10일 12시 50분경 산곡성당 피정의집 마당에서
노조간부-해고자 등 350여명이 집결하여 집회를 갖고 남문쪽 노조사무실
진입 강행을 결의하고...
동일 13시10분경 인천 부평구 산곡동 소재 부대앞 노상에서 위 350여명과 공동하여,
350명씩 단체로 이동하는 것은 법원의 결정문에 명시한 ´적법한 노조활동´으로
볼 수 없다는 판단아래 진압경찰이 진로를 차단하자 왕복 4개 차선을 점거하여
구호를 외치는 등 불법시위를 하므로 부평경찰서장이 여러번에 걸쳐 해산토록
명령함에도 불구하고 계속하여 동 명령에 따르지 않고 도로점거 불법시위를 하고...
...13시 19분경부터 16시 22분경까지 약 3시간동안 위 장소 왕복 4개차선을
점거 불법시위를 하고...
...같은 일시 장소에서 도로를 점거한 시위대를 인도로 올라가도록 밀어붙이는
진압경찰을 상대로 발과 주먹으로 폭행하고 노변의 흙을 뿌리므로 그로 인하여
인천으로 지원되어온 강원지방경찰청 307전경대 소속 전투경찰 상경 박00에게
좌완관절 열창 등 향후 2주간의 치료를 요하는 상해를 가하는 등 도합 6명의
경찰에게 상해를 가하고....
즉 위 김 경위의 주장과 위 구속영장에 나타난 경찰의 입장은 1) 350명이라는
다중이 4차선 도로를 점거하는 불법시위를 해 적법한 노조활동으로 보지 않았으며,
그런 판단하에 노조 사무실 진입을 막았으며 2) 경찰이 먼저 노동자들로부터 폭행을
당하고 있던 상황이었기에 ´구출작전´의 일환으로 진압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집회장 주변서 만난 경찰들 "10일 사태는 진압차원 넘어선 ´생존경쟁´"
14일, 부평역 앞에 모인 2천여명의 노동자들과는 대조적으로 전국에서 모인 경찰
6천여명이 부평역 주변에 줄지어 배치돼 있었다.
노동자들의 시내행진이 시작되기 1시간 전인 3시 30분부터 경찰은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떤 부대는 경찰봉을 함께 모아놓기도 하고, 또 다른 부대는 개별적으로
등에 꽂아 놓기도 했다.
부평역에서 150여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박상규 민주당 국회의원 사무실에는
셔터가 내려져 있고, 골목 입구에도 1개대대가 배치돼 있다. 이들은 노동자가
진입할 것을 대비해 진압 연습(?)도 했다. 한 대대장이 중대장들을 향해
"일단 저 파란선(버스전용차선)만 넘으면 치란 말이야. 우리가 당하고 있을
이유는 없어"라고 지시했다.
이날 만난 경찰들은 지난 10일의 사태에 대해 여러가지 반응을 보였다.
당시 현장에서 지휘하지는 않았지만 여러 차례 시위대를 막아봤다는 한 경찰 간부는
"우리가 일부러 먼저 때렸겠느냐?"며 "그 전에 먼저 대원 12명이 노동자들에게
잡혀가 무장해제 당하고 맞았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과잉 진압이라는 것은 인정한다는 그 간부는 "노동자들이 찍은 비디오를 봤다"
면서 "훈련할 때 그런 식의 진압방식을 가르치지는 않았기 때문에 윗선에서도 당시
사태와 관련 잘못을 인정한 것이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그러나 비디오는 노동자들이
편향되게 찍은 것으로 객관적이지 않다"며 "오늘(14)자 조선, 동아일보 기사를 보니
우리 입장에서 잘 쓴 것 같다"고 덧붙였다.
또다른 경찰간부는 "그것은 생존경쟁이었다"고 잘라 말했다.
"그 당시는 진압차원을 넘어섰다. 그 때부터는 생존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젊은
애들인데 뺨 때리고, 침 뱉고 그러는데 가만이 있을 애들이 어디 있겠는가.
노동자들도 잘못한 면이 있다. 화염병 던지면서 쇠파이프 휘두르는 걸 보면 꼭 뭐 같다.
전경 애들이 가만히 26개월 채워서 나가고 싶지 왜 나서서 그런 짓을 하겠는가.
그렇게 하면 자기만 손해인데. 견디다 못해 이성을 잃은 거다.
당신도 생각해봐라. 내가 당신 때리면 가만이 있겠는가?"
마침 집회에 참가하기 위해 줄을 지어 가는 대학생들을 발견한 그 간부는
다시 한 마디 덧붙인다. "질서도 모르는 것들이 무슨 민주주의야!"
그 간부는 "이 사태와 관련해 윗선에서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는가?"라고 묻자 "우리 애들도
많이 다쳐서 병원에 입원해 있다"며 "노동자가 1대 맞으면 경찰은 10대 맞는다"고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