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안 통화' 시비 끝 교수와 여대생의 난투극…
강의 중 휴대폰 울린 학생은 학점 깎아
(사진) 1999년 2월 6일 저녁 서울 자하문 터널 부근을 지나던 시내버스 안에서 59세 대학교수가 22세 여대생과 난투극을 벌였다. 버스 안의 휴대폰 통화가 발단이었다. 여대생이 큰 소리로 통화하는 것을 본 교수가 "야! 너희 아버지가 그렇게 가르치더냐"고 나무랐다. 언쟁이 격화되면서 교수가 여학생 뺨을 때렸다. 하필이면 태권도 여자 라이트급 국가대표 선수 출신인 여대생은 교수의 옆구리를 발로 걷어차 쓰러뜨렸다. 두 사람은 모두 경찰에 입건됐다. 다음 날 한 신문은 사회면 머리기사로 사건을 크게 보도했다(경향신문 1999년 2월 8일 자). 이 일 때문인지는 몰라도, 한 달 뒤 정부는 지하철·버스에서 휴대전화 사용 자제를 당부하는 방송을 한다고 발표했다.
공공장소의 휴대폰 사용 문제는 1998년 무렵부터 사회적 관심사로 부각됐다. 1988년 7월에 시작된 휴대폰 서비스가 10년을 넘겼고, 휴대폰 보급이 1100만대쯤을 돌파한 시기였다. 국민 4명 중 1명꼴로 휴대폰을 갖고 있었다. 보급률은 같은 시기 미국·일본·독일보다도 앞섰지만 전화 예절은 후진국 수준이었다. 설문 조사 결과, 비행기·병원 등에서 휴대폰을 꺼 둔다는 사람은 46.1%에 불과했다. 장례식장에서 갑자기 '밀양 아리랑' 벨 소리가 흘러나와 분위기를 깨고, 영화 상영 도중 휴대폰으로 잡담하던 관객이 다른 관객과 멱살잡이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1998년 10월 20일 판문점에서 열린 첼리스트 정명화씨 연주회 도중 객석에서 휴대폰이 여러 번 울려 분위기를 망쳤다는 사실은 신문에도 보도됐다.
특히 대학 강의 중 '띠리리리' 울리는 학생들 벨 소리는 교수들의 신경을 긁었다. 벨을 울린 학생을 교실에서 내쫓는 교수도 있었다. 어느 교수는 수업 중 휴대폰 소리 1회 적발 땐 지각, 2회 땐 조퇴, 3회 때는 결석으로 처리했다. 1999년 2학기엔 대학 당국도 나섰다. 서강대는 '도서관에서 휴대폰 소리를 낸 사람은 한 달간 도서관 출입 정지'라고 공고했다. 이화여대는 강의 도중 휴대폰 소음을 일으킨 학생에 대해 교수 재량으로 학점을 깎거나 30시간 이내의 강의실 청소를 시키는 방안을 마련했다(동아일보 1999년 6월 4일 자).
그래도 휴대폰 문제는 끊이지 않았다. 1999년 11월 17일 대입 수능시험 땐 서울의 한 시험장에서 외국어 듣기 평가 도중 휴대폰이 울려 차질을 빚었다. 결국 그 교실에서 시험을 치르던 수험생 32명 전원이 시험이 끝난 뒤 따로 남아 듣기 평가 재시험을 치르는 소동을 벌였다. 우리의 휴대폰 문화는 이런 시행착오를 겪으며 조금씩 만들어졌다.
북한도 벌써 수 년전 '손전화' 보급 600만대를 돌파하면서 공공장소의 통화에 따른 문제가 부각되고 있다고 한다. 관영 매체들은 '자극적인 손전화 호출음을 피하라'는 등 캠페인에 들어갔다. 그러고 보니, 인구의 약 4분의 1이 휴대폰을 가졌고, 휴대전화 서비스가 개시된 지 10년쯤 됐다는 점도 20년 전 우리나라 상황과 닮았다. 고기 섭취 부족 등 북한의 식생활 사정이 우리의 40~50년 전 수준인 데 비하면 정보통신 격차는 작다고 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