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백범일지
김구 지음
민족에 내 놓은 몸
-184쪽
이렇게 목전에 보면서도 가서 내가 아무개요 하고 절을 할 수 없는 것이 괴로웠다. 박씨 집 맞은편 집이 안호연 의 물상 객주였다 안씨역시 내게나 부모님께나 극진하게 하던 이였다. 그도 전대로 살고 있었다. 나는 옥문을 출입할 때마다 마음으로만 늘 두 분께 절 하였다.
7월 어느 심히 더운 날 돌연히 수인 전부를 교회당으로 부르기로, 나도 가서 앉았다 이윽고 분감장인 왜놈이 좌중을 향하여,
" 55호!"
하고 부른다.
나는 대답하였다 곧 일어나 나오라 하기로 단 위로 올라갔다 가출옥으로 내보낸다는 뜻을 선언한다. 좌중 수인들을 향하여 점두례 ( 고개를 끄덕여 예를 표하는 것) 를 하고 곧 간수의 인도로 사무실로 가니 옷 한벌을 내어준다. 이로써 붉은 전중이가 변하여 흰옷입은 사람이 되었다. 옥에 맡아 두었던 내 돈이며 물건이며 내 품값이며 조수히 내어 준다.
옥문을 나서서 첫번째 생각은 방영문 . 안호연 두 분을 찬는 일이었으나 지금 내가 김창수라는 것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 이롭지 못할 것을 생각하고 안 떨어지는 발길을 억지로 떼어서 그 집 앞을 지나 옥중에서 사귄 어떤 중국 사람의 집을 찾아가서 그날밤을 묵었다.
이튿날 아침에 전화국으로 가서 안악 우편국으로 전화를 걸고 내 아내를 불러 달라고 하였더니 전화를 맡아 보는 사람이 마침 내게 배운 사람이라 내 이름을 듣고는 반기며 곧 집으로 기별 한다고 약속하였다.
나는 당일로 서울로 올라가 경의선 기차를 타고 신막에서 일숙 하고 이튿날 사리원에 내려 배넘이 나루를 건너 나무리벌을 지나니 전에 없던 신작로에 수십 명 사람이 쏟아져 나오고 그 선두에 선 것은 어머니었다. → 다음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