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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토종 바람, 월천 사람 연가
김 익 하
입 틀어 막히고 이웃 사이 소통마저 단절된 코로나 사태. 7·80대 삼우회 회원들은 프랑스 바스티유 지하 감방에 갇힌 아이언 마스크 맨처럼 고립된 채 말수를 잃고 힘겨운 노년을 외로이 늙음에 침식侵蝕 당했다. 그나마 안부 전화로 듣는 목소리가 나날이 어눌하고 그 말이 귓전에 들릴 때마다 노년에 참으로 엄혹한 세상살일 하는 양 싶었다. 별스러운 통금 시간 속에서 체온을 건네며 악수하고 웃던 사람들의 부고가 속속 전해졌다. 사람 목숨이 숫제 가을비 맞은 가랑잎같이 남루했다. 연대 탓인지 근년에 부쩍 지인들의 부음이 잦았다. 저승으로 가는 길목까지 나가 배웅하는 조문은커녕 수의도 통곡도, 노잣돈마저 건네지 못한 채 유품만 받았다는 유족들의 소식이 전해졌다. 삶의 의미가 부추 끝 아침 이슬 같다더니 봄꿈 뒷자리처럼 허망하기 이를 데 없었다. 죽음도 이목을 두렵게 살펴야 하는 비정한 시대. 나와 비견해서 더 오래 살아야할 사람이 안부도 없이 졸지에 세상을 떠날 때마다 나는 서창으로 깔리는 노을을 바라보며 말수를 잃고 멍 때리는 시간에 갇혀 삶의 끝자락까지 쫓겨 온 듯 가쁜 숨마저 삼키고 눈만 껌뻑껌뻑했다. 구덩이 입구까지 정신을 잃고 쫓겨 와 할딱이는 숨조차 멈춰야 하는 두꺼비처럼.
2021년 12월 8일. 하루 앞서 삼척 원로 시인이 삶을 마감했다.
아침 8시 54분이라면 게을러터진 노년에선 그도 이른 시각, 권은영 선배가 카톡 부고를 보내 왔다. 전날 이성교 선생이 영면했단다. 순간 입 끝에 걸리는 혼잣소리가 ‘아니, 도대체 이게 뭔 소리야?’ 반신반의했다. 최근에 뵐 때 구순임에도 골골하지 않고 젊은이들 못잖게 정정했기에 당최 실말 같지 않아서다. 코로나19에 감염되어 격리 투병하다 당한 변고라 문병마저 못했다. 그러기에 앞서 11월 20일 오전 11시, 권은영 선배가 전화로 기별했다. 이성교 선생 내외분이 감염으로 본인은 의정부 성신병원에, 사모님은 부천 소재 병원에 격리 수용되었다는 근황이다.
돌림병 환자로서 격리 수용된 시인. 영혼이 훨훨 자유롭던 몸, 지금 홀몸으로 출입이 통제된 채 독방에 갇힌 셈이다. 바로 안부 전활 했으나 연결되지 않았다. 네 번째 시도 끝에 4시 21분경 가까스로 소통됐다. 목이 아파 아무것도 먹을 수 없다는 말을 간신히 건네고 전화를 끊었다. 평소 이성교 선생의 목소리와는 확연히 달랐다. 본디 선생의 목소리는 초면인 사람에게도 한 옥타브를 높이면서 반가움에 파르르 반색하는 특징이 있는데, 영 기운 없게 들릴 만큼 가느다랗고 심지어 투병생활에 몹시 힘겨워 하는 듯했다. 그러나 그게 마지막으로 들은 목소리였다.
카톡 부고를 받고 한참 지나 현실이라 직감했을 때, 나를 에워싼 울타리 가운데 상기둥 하나가 푹석 허물어지는 절망을 느꼈고, 하냥다짐하고 에둘러 떠난 사람에게서 느끼는 그런 섭섭함과 야속함이 밀려왔다. 지금껏 내 문학생활에 직간접으로 연관 없음이 분명한데, 숱하게 빚어낸 시와 타고난 온화한 성품의 결이 균일하기에 인간적으로 무한한 신뢰와 문학적 언행을 숭앙했던 분이라서 내 몸이 싱크홀로 거침없이 함몰하는 양 싶었다. 서툰 흉내짓거리와 내용마저 소루한 내 작품임에도 언제나 후했다는 생각과 여럿에게 베풀던 온화한 정나미와 선배로서 타이름을 다 건네지 못하고 서둘러 떠났다는 현실의 부재와 공백이 너무나 크게 다가들었다. 하기야 제 원하는 대로 삶을 마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마는…….
이성교 선생을 면대할 때면 나는 이런 물음과 마주한다. 삼척 출신 시인인 그는 삼척문학사에서 어떤 상관성이 있는가? 또 그 시풍이 어떻게 후학에 영향을 끼쳤으며 삼척문학사에서 어떤 위치에다 자리 매김 해야 홀대와 과오를 피하면서 온당하며 적확하다고 평가를 받을까? 지금껏 명료하게 정리된 바가 없긴 하다. 다만 내가 연전에 50년 두타문학사에서 언급했듯 이성교 선생은 삼척 현대문학의 개척자지만, 삼척문학사에선 분명 ‘탈향문인脫鄕文人’이다. 그러함에도 삼척문학인에게 정신적 지주라 규정하는 데는 삼척 문인들 다수가 동의하는 바다. 그래서 삼척 문학사에 자리매김이 온당하고 적확해야 한다는 거다. 이성교 선생의 문학적인 토양은 혹자가 강릉 출신 시인으로 착각할 만큼 1948년 호산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강릉공립상업중학교로 옮겨 그곳 문학 토양에서 배양되었기에 나름 ‘강원도 바람’ 특유의 시세계를 완성했지만, 삼척 문학 토양에 밑거름이 될 위치에 있지 않았다. 또한 문인들과 교류도 그곳에서 비롯되었기에 그곳 출신 문인으로 오해를 받을 만큼 왕성한 활동기에도 삼척 문학과 원격지에 있었다.그런데 삼척에서 문학의 꿈을 키워온 우리 연대 문학도에겐 시인 이성교는 공경의 대상이자 뚜렷한 향일적向日的인 존재였다. 문단 등단이 별 따기만큼 어렵던 시절, 일찍 중앙문단에서 활동했을 뿐 아니라 강원도의 민속과 동해안 자연을 모태로 한 향토의 토속미를 중시하고 전통적 율격으로 빚어진 짧은 형식의 서정시는 삼척 지리와 풍습에 익숙한 삼척 문학도의 정서에 대체로 부합됐다. 그런 까닭으로 직간접적으로 그의 시풍과 경향에 다소 영향을 받았다고 정리함이 타당하다고 본다.
처음 이성교 선생을 맞대한 건 내가 문단에 등단한 1980년 그해 겨울로 기억된다. 강원도 출신 재경강원문우회 연말모임에서다. 선생의 첫인상은 수선스럽지 않고 조용한데 웃는 모습이 시골아이들처럼 천진스럽도록 해맑았다. 또한 장신이라 할 수 없는 나지막한 키임에도 바늘 한 땀 쉬이 뚫지 못할 만큼 안팎이 단단해 보였다. 그러나 환하게 웃음 띤 얼굴에 말투는 나직하면서도 은근하고 온화했다. 문단 햇내기인 나를 동향이고 같은 문학지로 등단했다면서 무척이나 살갑게 대했는데, 말할 땐 삼척 노인들 끼리 오가는 촌스러운 말투가 거침없이 튀어나와 어제 헤어진 고향마을 춘삼이 아저씨처럼 특유의 삼척사람 냄새가 났다. 얼굴 가득 눈웃음을 지으며 ‘허 허 그래요. 맞아요. 맞아.’ 그런 긍정적인 모습으로 상대방을 배려하는 너그러운 인상, 또 좀체 언성을 높이지 않는 그런 초대면에 보였던 첫인상은 돌아가실 때까지 초지일관했다.
내 기억에는 삼척과 문학적으로 인연을 맺기 시작한 건 1984년 10월로 여겨진다. 그때 이성교 선생은 쉰 셋. 개인사에도 기억에 남을 해였을 터다. 자랑스러운 삼척군민상을 수상했고, 문학 박사 학위 취득, 순복음교회 장로 취임, 시선집詩選集 『대관령을 넘으며』를 발간했기 때문이다. 두타문학과 인연은 제3회 삼척군민의 날, 제1회 영동지구 주부·학생 백일장을 개최한 당일 문학 강연회 강사로 임하고 부터였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삼척문인 자격으로 지역문학 활동에 참여하긴 이듬해인 1985년에 발간된 연간「두타문학」제8집에 시 ‘교곡리柯谷里’를 발표하면서다.
이성교 선생을 더욱 자주 만나긴 삼척출신 문인 모임인 삼우회三愚會가 결성된 뒤다. 초대 회장을 맡았기에 모임 때마다 만났다. 그날이 2000년 9월 16일인데, 종로 YMCA회관 뒷골목, 쇠고기 석쇠구이와 묵사발을 맛깔스럽게 하는 <시골집>에서다. 나중에 열댓 명 되었으나 첫 회합에는 이성교, 정일남, 김정남, 박종철, 김익하, 최홍걸, 김형화, 박선옥 여덟 명으로 기억된다. 이때 이성교 선생 나이는 예순 아홉으로 이태 앞서 성신여자대학교에서 정년퇴임 하고 대한민국 국민훈장(목련장)을 받은 터였다. 모임에서 이성교 선생은 월간 문예지에 실린 작품이나 두타문학 연간지에 게재된 작품 대상으로 토론을 이끌곤 했다. 교단에 섰던 열정이 채 식지 않은 때라 학생들을 가르치듯 열의가 대단해서 모두 그 분위기에 휩싸이지 않을 수 없었다. 모두 문단 이력이나 나이를 떠나 문학 토론에 열을 올리다가 뒤풀이는 꼭 호프집에서 그 투박하기 짝 없는 삼척 말투거리로 옛일을 시시콜콜 마 파다 입 끝이 나른해서야 서운한 눈빛을 감추며 뿔뿔이 헤어졌다. 이성교 선생은 그만큼 허투루 모여 허튼 얘기만 하다가 흐지부지 헤어지는 소득 없는 상투적인 모임을 몹시 싫어했다.
또한 독특한 독서습관이 있었다. 전철을 이용하면서 부지런히 작품을 읽으셨는데 책을 통째로 가지고 다니긴 무겁다면서 월간지에 실린 작품은 낱장으로 발췌해서 꼼꼼히 읽으면서도 행간에다 일일이 메모를 했다. 관심 있는 작품이 있으면 모임 때 복사해서 회원들에게 돌려 합평에 참여토록 유도했던 터라 분위기가 학구적으로 꽤나 달아올랐다. 낱장으로 뜯어 독서하는 게 매달 들이닥치는 월간지를 작품은 작품대로 읽고 서가에 그것들이 쌓이지 않게 정리하는데 으뜸방법이라 귀띔했다.
이성교 선생은 후배들의 작품에 대체로 친절하고 후한 점수를 주었다. 남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않으려는 천성에서 기인하기도 하지만, 타고난 성품과 교단에서 제자를 가르치던 관습 때문인 듯했다. 남의 작품에선 거부감 없이 순도 높은 금광맥을 찾는 광부와 같은 눈으로 작품을 꼼꼼히 살펴 기어이 좋은 부분을 찾아내서 여성스러운 목소리로 당사자에게 그 느낌을 고스란히 전해주곤 한다. ‘어이, 그 작품 그 부분이 참으로 좋습디다.’ 늘 상대에게 기분 좋은 소리만 골라 해서 애당초 악인 배역은 맡을 수 없는 선량한 배역 전문배우처럼 보였다. 작품을 해석하는 열정과 사람을 맞는 온정 탓인지 제자들을 여럿 문단에 내보냈다. 그런 연유로 선생의 문학상 시상 때는 앞자리에 가슴에 꽃다발을 안은 그들이 항상 가득 차 있었다. 특히 여성제자들이 많아서 늘 웃음이 얼굴에서 지워지지 않았던 게 기억에 남아있다.
나는 아둔한 문학 작업에 비견하여 선생에게서 늘 과분한 덕담만 들었다. 이성교 선생은 작품을 읽은 뒤면 지체 없이 전화로 격려를 보내왔다. 졸작 단편 「어목魚目」을 읽고 리얼하게 그려낸 어촌 이야기에 흥미를 느꼈다면서 ‘졸곡제’란 어휘를 오랜만에 들어본다면서 직분에 자긍심이 충만한 문화해설사처럼 새삼 관련된 옛 얘기를 늘어놓기도 했다. 특히『소설 이승휴』,『토렴』을 알뜰히 읽으시고 본인이 참석한 모임에서 여럿에게 내 얼굴이 붉어질 만큼 과찬하여 민망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마지막 격려는『철암에서 돌아오는 길』이다. 돌아가시기 2개월 앞선 일로 기억된다. 마침 외출해서 인파가 북적이는 거리를 부지런히 발걸음 하는 나에게 반가운 목소리로 전화를 주셨다. ‘어이 김익하 선생! 책 잘 읽었어요. 늙은 사람 자꾸 이렇게 공부시킬 거야?’ ‘아예, 선생님. 죄송합니다.’ ‘죄송할 거 없어 눈이 아무리 어두워도 당신 작품은 보내주는 쪽쪽 다 읽을 거야. 요번 철암 얘기는 아주 좋았어. 누가 보면 작가가 광부 출신인줄 알겠어.’ ‘선생님, 독자들 눈을 속여서 죄송합니다.’ ‘아니야. 아주 흥미 있게 읽었어.’ 지금에선 그 대화가 나의 졸작에 붙인 마지막 격려의 언사가 되고 말았다.
한번은 삼척 나들이 길에 내가 태어난 곳이 궁금했다면서 일행들과 같이 일부러 오지 고향마을인 조비2리를 둘러왔다고 나에게 전할 때, 나는 보잘것없는 내 문력을 몹시 부끄러워하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하룻밤 새 피었다 지는 달맞이꽃처럼 궁금증을 일으켜 시간과 걸음을 낭비하게 해서 황송했다.
평론가 윤병로尹炳魯가 1992년에 간행된 이성교 제6시집 『강원도 바람』에 시평을 붙였는데, 그 글 108쪽에 아래와 같은 구절이 있다.
‘일찍이 이성교는 김소월, 박목월, 서정주의 뒤를 잇는 한국의 리리시즘의 대표적 시인으로 평가받아 왔다. 그래서 김소월이 평안도를 노래했고, 박목월은 경상도를, 서정주가 전라도를 각각 노래했다면, 이성교는 강원도를 노래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게 된 것이다.’
이 두 줄의 평문으로 이성교 선생은 강원도 정서를 대변하는 서정시풍의 시인으로 자천타천 회자되어 규정되고 고착되었다. 나름 추측건대 자천타천 수식어화修飾語化로 묵계黙契된 이 단 줄 평이 이성교 선생에겐 계관桂冠이자 족쇄足鎖로 작동했으리라 추측된다. 동시대 삼척권역 출신 시인들 가운데 일관된 현실적인 소재와 동일한 정서, 그러면서도 모호성과 애매성이나 군더더기 없는 토속적 이미지와 언어를 명확한 형식으로 탁월하게 조탁한 문학적 업적을 남겼으나, 시세계 확장성과 대중성에선 윤병로가 열거한 예의 3인 시인을 뛰어넘지 못했다는 게 중평이다. 내가 계관과 족쇄의 근원으로 규정하는 소이도 바로 그런 까닭에서다. 아니 이성교 선생 스스로 그런 카테고리에 만족하고 안주했는지도 모른다. 결과론적으로 주변 울타리를 탄탄히 칠수록 자신은 더 폐쇄적인 고립경孤立境에 빠지는 이율배반적인 지경에 묶였다고 정리할 수 있겠다. 이는 타자화他者化, 차별화는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대중화에선 태생적으로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었던 요인으로 작동했다고 본다.
그럼 도대체 시인 이성교로 규정된 ‘강원도 바람’의 리리시즘lyricism의 정체는 무엇인가. 강원도 삼척 외딴 촌에서 살아 경험한즉 강원도 바람은 태백산맥을 넘는 양간지풍襄杆之風이 아니라 7번 국도를 타 내리는 산맥 동쪽 해안, 바다에서 뭍으로 내치는 샛바람일 터다. 이 바람이 내륙풍과 섞이지 않는 순수한 강원도 토종 바람이다. 그 바람은 찝찔한 바다냄새를 풍기면서도 깊은 산골을 누벼 맑고 서늘하기까지 하며 때로는 골바람 영향으로 풍향과 풍속이 수시로 변덕을 부린다. 그러나 그 바람은 강원도 동해안, 그곳 사람 인성의 특질을 양생하고 물성의 형질을 특정지우며 언어와 풍습을 차별지도록 정형화하여 외지사람의 관점에선 신성하기보다 이질적으로 느낄 만큼 사뭇 생소하고 이물스럽기기까지 하다. 이성교 선생의 시세계를 일별하면 그곳에 공생하는 무수한 물상들이 토종 ‘강원도 바람’을 맞아 무뚝뚝하게 투박하기 이를 데 없도록 억센, 또 휘황하거나 대의는 없지만 소략하고, 촌스럽지만 수수하고 소박하면서 담백한 토종 서정을 품기며 평이한 언어로 직조된 채 선생의 시집 속에 습생하면서 반사경처럼 강원도 향토색을 돌이끼처럼 표징해내고 있다. 흔히 7번 국도주변에서 거창하지 않지만 나름대로 존재의 내력이 뚜렷한 경물들, 그러나 그곳 삶과 연고를 맺었던 사람들에게 무심하게 잊어지고 버려진 것들인데, 선생의 시를 마주하면 하나하나 생생한 형상과 내력으로 다가와 단절된 폐쇄 공간의 통로를 열어 시린 속살까지 파고들면서 뜨거운 회한과 아릿한 연민으로 가슴 밑이 들썩거린다. 그때면 소통의 통로도 자연 열린다.
시는 시인 삶의 궤적인 족적이 묻어있다. 시인의 시를 이해하자면 그가 살아온 시대와 환경을 모르고선 접근할 수 없다. 접근 분석하고자 시도해본들 포피에 그칠 뿐 핵심에 근접하지 못한 채 피상적이고 관념적인 언어유희로 끝날 수 있다. 시는 개인사個人史의 산물이고 반사체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향토와 토속을 소재로 현장의 일상적인 언어로 서정시를 쓰는 시인일수록 그런 경향은 더 뚜렷이 드러난다. 머지않아 후학들 손끝으로 이성교 선생의 문학이 정리 집대성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를 위해 선생이 자란 시대와 환경에 결부된 시들을 임의로 모집단으로 추출해서 분석적 방법론을 위한 하나의 단초를 제시해 본다.
이미 기술된 약력처럼 이성교 선생은 1923년 음력 2월 초하루 삼척 원덕읍 월천리 234번지에서 부친 이덕필, 모친 김옥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일본인 교장과 심하게 다퉈 미움을 사서 호산초등학교 입학시험에서 세 번 낙방 당하고 이십 리나 떨어진 벽촌 이천理川의 이천간이학교(2년제)에 입학한다. 열세 살 때에야 일본인 교장이 바뀐 호산초등학교로 비로소 편입한다. 어린 나이에 이십 리 길을 걸어 통학했던 이천에서의 기억이 어린 마음에도 가슴에 사무쳤던지 그의 시집 곳곳에 절절히 묻어 있는데, 그런 흔적은 작품 ‘이천간이학교’ ‘이천’ ‘이천 사람들’ ‘이천 별곡’ ‘이천의 정기’ 제목하의 10편에서 살펴볼 수 있다.
1951년. 모친이 돌림병(장질부사)으로 향년 서른일곱에 요절하자 강릉 중앙감리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으며 강릉상업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변두리 박월리博月里로 옮기면서 하숙집 여주인 김진애 여사를 양모로 삼는다. 이때 정황과 시인의 심경을 그린 ‘박월리 바람’ 연작 3편이 제6시집 『강원도 바람』에, ‘박월리’가 다른 시집에 수록되어 있고, 박월리에서 왕산골로 옮겨간 그의 양모를 그리는 ‘왕산골 어머니’ 연작 4편이 제9시집 『싸리골 연가』에 상재되어 있으며 ‘왕산골 새 빛’ ‘왕산골의 봄’ 작품들이 기타 시집에 분재로 상재되어 있다. 이들 시에서 시인이 양모지만 모정을 향하는 간절한 심회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대학 3학년인 1956년『현대문학』9월호에 서정주 추천으로 ‘윤회’ 초회, 12월호에 ‘혼사’가 2회 추천, 1957년 2월호에 ‘노을’로 추천을 완료하고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이때부터 가장 왕성하게 시동인 활동을 한다. 1990년 문교부 해외 파견 교수 계획에 따라 한 해 동안 일본 히로시마대학 객원 교수로 재직했는데, 이때 조선인이 겪은 역사적 아픔을 시화詩化한 ‘광도廣島연가’ 10편이 제6시집 『강원도 바람』에 연작 형식으로 실려 있다. 또 1997년 중국 연변에서 개최한 제3회 국제 문학 심포지엄에 한국 대포로 참석했는데, 제7시집 『동해안』에 실린 ‘중국 인상’ ‘해 지는 서안西安1·2’와 기타 시집에 등재된 ‘북간도 생각’ ‘백두산 가는 길’ ‘장가계張家界환상’ ‘황포강黃浦江의 눈물’에서 그때 풀어낸 정회를 유추해 볼 수 있다.
모두 유형별로 분리해 열거하자면 방대하기에 지면상 시에 대한 분석 하나의 접근 방법론을 텍스트 삼아 제시했을 뿐이다. 아마 이성교 선생의 시세계를 개괄하자면 이런 접근방법도 무의미하다고 보지 않기 때문이다.
시인 이성교의 유년이 가장 농밀하게 육화肉化된 작품의 소재는 무엇일까?
시인에겐 가장 내밀한 부분이라 관심 깊게 살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성교 선생의 시집 11권 688편을 일별하다 보면 어머니에 관한 시들은 더러 눈에 띄는데 아버지를 표상으로 한 작품은 인색할 만큼 극히 적다. 그런데 특이한 현상은 제7시집에 ‘소1·2·3’과 제8시집『운두령을 넘으며』에 실린 연작시 ‘소’ 아홉 편의 필두로 ‘새벽에 우는 소1·2’ ‘소는 늘 내 마음속에’ ‘소의 한 때’ 등 무릇 열여섯 편의 소를 모티브로 한 작품이 있고, 인간과 소를 매개로 하는 소장수를 소재로 한 작품도 ‘소장수1·2·3·4·5’ 다섯 편이나 된다. 반면 여느 동물을 시화詩化한 작품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들 작품을 분석하자면 해결의 실마리로 선생의 부친 생업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부친의 생업은 소장수였다. 따라서 이성교 선생의 시에 등장하는 소는 가족과 숙식하며 농경을 공경共經하는 ‘가축’이 아니라 내일이면 우시장으로 끌려가야 하는, 즉 하룻밤만 스쳐가는 인연인 한갓 ‘매물賣物’이다. 그 매물에는 새끼를 떼어낸 어미소도 있을 테지만, 어미 품을 막 떠난 두풀 난 새끼소도 있을 거다. 그러나 작품에 시화된 ‘소’는 원초적인 소의 목가적인 동물성 형상이 아니라 아버지의 장사잇속에 따라 타자 의지로 움직여야 하는 현실에 매인 상품으로서의 ‘소’일 수밖에 없다. 즉 아버지인 소장수의 의중이 상징적으로 물화物化된 대상이 ‘소’이기 때문이다. 이성교 선생은 ‘아버지’를 바로 이미지화하는 시작법을 우회적으로 피했다는 분석이 가능한 부분이다. 그러니 당연 직접 아버지를 언급한 시는 희소할 수밖에 없다. ‘소장수’ 시편은 ‘아버지’와 ‘소’의 연결고리로 작동하여 ‘아버지’ ‘소장수’ ‘소’로 아버지의 이미지가 환유로 변주되어 뚜렷이 형상화함을 엿볼 수 있다. 즉 ‘아버지’에서 ‘소장수’라는 매체로, 그리고 다시 ‘소’로 전이되어 비로소 ‘아버지’의 사유로 상징적으로 환유된다. 이럴 듯 세 이미지로 연결된 시가 이성교 선생의 다른 시들보다 시인의 아픈 육성이 많이 형상화되어 리리시즘 바탕의 근간에 영향을 주었으리라 여겨진다.
이런 시들을 읽고 있으면 갑자기 이성이 무너지며 감성이 물큰해진다. 과연 서른일곱의 젊은 아내를 저승으로 보낸 젊은 아버지가 창알거리는 자식을 등에 업고 소 울음을 듣는 상황을 훗날 시인 아들은 어떠한 시어로 유추해냈을까, 관련 시 2편을 추려 보았다.
고독이 뼛속까지 스며들 때
소가 땅 밑에서 운다
으뭉 으뭉……
그 옛날 수수 잎에 싸인
청개구리를 먹고 울던 소
바람이 문제다
어둠속에 마구 바쳐
온 산을 엎으려 한다
깜박이는 호롱불 밑에
아이를 업은 홀아비 마음을
누가 아랴,
별로 먹을 것 없이
샛목이 자주 차오를 때
어디선가 소가 운다
으뭉 으뭉……
땅에 묻었던 항아리 속
나비도 날아오를 모양이다.
-‘소·1’ 전문 제8시집 『雲頭嶺을 넘으며』수록
늘 유랑하는 마음이었다
비 오는 날
사랑에 누웠어도
골짜기 골짜기가 일어선다
소들이 전진하는 모습이 보였다
풀잎이 일어섰다
물이 일어섰다
간밤 이상한 소울음 소리를 듣고
비방약 막걸리를 먹였다
그리고 어미 없이 자는 아이들을 보고
벽을 향해 울었다
-‘소장수’ 전문 제8시집『雲頭嶺을 넘으며』수록
어린자식을 두고 서른일곱에 요절한 시인의 ‘어머니’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 시인이 추억하는 어머니는 이런 분이다.
어머니 눈동자에
해가 지지 않았다
하고픈 말
산같이 쌓여있었다
어스름이 끼어드는 방구석에
흰나방이가 포올폴 날았다
피의 말
큰 글자 되어
벽에 어렸다
자식들 얼굴
하나하나 떠올리며
이름을 간신히 불렀다
속 깊은 눈물이
핏빛 되어 주르르 흘렀다
-‘어머님의 마지막 말씀’ 전문 제11시집 『영일만을 바라보며』수록
차제에 이성교 선생의 시에 얽힌 나의 일화 하나를 소개하겠다.
2011년 3월 영등날, 제10시집 『끝없는 해안선 그 파도를 따라』을 낙관해서 보내주셨다. 38쪽에 실린 ‘삼척三陟사람들’ 이 내 마음에 침전되어 있던 향수를 울컥 휘저어 놓았다.
해 떠오르는 표시가
그려져 있는 동부고속
누가 웃었기
그리도 밝은 빛을 싣고 가는가
해면처럼 물기 어린
퍼런 동공 속에
고향이 마구 떠오른다
정라진 산모롱이도
마구 둔갑을 한다
해변의 정기로 살은
삼척 사람들
모두 다 버스 속에서
온갖 시름을 보따리 속에 묻어둔 채
지그시 눈을 감고 바다를 그리고 있다
-‘삼척 사람들’ 전문 제10시집 『끝없는 해안선 그 파도를 따라』수록
독자 처지에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울컥한 김에 내처 아래와 같이 즉흥적인 감정을 적어 시와 함께 내 블로그에다 올렸다. 그때 감정은 다분히 즉흥적이고 직선적이었음은 물론이다.
‘고향을 삼척에 두고 온 사내가 동부고속에 올라 눈을 지그시 감고 출발을 기다린다. 그 심정을 아는 사람만 안다. 고향을 삼척에 두었어도 자가용 승용차로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오가는 사람은 모른다. 어느 누가 바라지도 않고 있는데, 삼척행 동부고속에 오르는 그 설렘이 가슴에 파도치는 것을. 그런데 운전기사는 떠날 생각을 않는다. 낸장맞을……. 이 시를 읽으면 그런 떨림이 금시 가슴을 휘저어놓는다.’
며칠 뒤 이성교 선생께서 전화를 주셨다. 고맙다고 했다. 누군가 시집을 검색하다가 내 감상문을 읽고 선생께 귀띔했던 모양이다. 이 시집에 손창섭 교수가 시 해설을 붙였는데 편집자가 띠지에다 다음과 같이 주요 대목이라 여겼던지 아래와 같이 추려놓았다.
‘아주 평이한 시어로 내면세계를 열어 보이는 강원도 시인의 더없이 밝고 겸허하고 담백한 기술이 관조적인 시각에서 직조되어 특유의 색깔과 정조, 발성에 이르기까지 순수서정의 세계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어떤 매체에선 두 글을 인용하면서 감상 평자에다 내 이름을 넣고 내가 쓴 글에 손창섭 교수 이름을 달아놓았다. 이름을 서로 바꿔놓았으니 나는 얼굴이 붉어지며 아연실색했다. 내 느낌은 즉흥적으로 적었으니 매우 감성적으로 흘렀으나, 서평을 미사여구 언사로 쓰는 자질이 없는 나는 무안해지며 소태를 씹듯 씁쓰레한 기분을 맛봤다.
뒤끝으로 정라진 곰치국을 유독 선호하는 이성교 선생이 삼척으로 향한 마음은 어떠했을까. 궁금할 성싶어 기어이 시 한 편을 붙이며 이 추모 글은 여기서 마감하고자 한다.
오래간만에
봉황산이 웃고 있다
그 옛날
산 밑으로 흐르던 강물
풍요함을 노래해주고 있다
다정한 산봉우리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고 있다
마음 허전할 때
새로 날개를 달고
훨훨 정라진으로 가서
얼큰한 곰치국 한 그릇 먹고
속을 풀면 어떠리
다시 바닷가에 나가서
배를 쑥 내밀고
수평선 바라보며
새천년 꿈을 꾸면 어떠리
-‘다시 삼척에 살리’ 전문 『두타문학』 제39집(2016) 게재
* 자료 첨부
이성교 시집 목록 색인
제1 시집 山吟歌(1965.文學社刊 : 제11회 현대문학상 수상)
序 : 徐廷柱
Ⅰ
山門/山火/갈령재/山茱萸/갈매골/大關嶺을 넘으며
Ⅱ
미루나무/바람소리/수양버들/어머니 얼굴·Ⅰ/婦道/歷史 時間/紙鳶/살궁리/밤비·Ⅰ/밤비·Ⅱ/諦念/江陵의 가을비/새벽에 우는 소·Ⅰ/새벽에 우는 소·Ⅱ/돌아가고 싶은 태봉골/瞑想/무지개/門/墨湖港口·1/未練/가믐이 들 때/비 오는 世上
Ⅲ
장날/鄭道令님에게/그리운 이에게/여름이 가는 날/눈 오는 날·Ⅰ/黃金鐘/節介·Ⅰ/節介·Ⅱ/春分/은진미륵불/雨水節/道程·Ⅰ/望夫石/저녁·1/저녁·2/동짓달·1/新羅의 小曲/바다/노을/혼사/輪廻
■ 跋(Ⅰ)...李東柱
■ 跋(Ⅱ)...朴在森
■ 跋(Ⅲ)...成春福
제2 시집 겨울바다(1971.한국시인협회刊)
■刊行辭
漁村·1/漁村·2/겨울바다·1/겨울바다·2/墨湖港口·2/海岸線·1/海岸線·2/海岸線·3/개나리꽃/鳳仙花/相思花/藥쑥/열매·1/봄바람/비 오는 원두막/풀벌레 소리/여름 집/裸木/할머니像/洋裁師/잔나비의 生日·1/잔나비의 生日·2/彌勒寺/거울/貞陵/천둥이 지난 後
제3 시집 보리 필 무렵(1974.창원사刊 :‘가을 운동회’가 국정교과서 중 국어1-2에 수록)
Ⅰ
春窮期·1/春窮期·2/가래질하는 날/梅花詞/淸州의 봄비/보리필 무렵/햇비/博月里/고향 사람들/고향 사투리/嶺東上空/東海線/한 때의 바다/가을 운동회
Ⅱ
流水作用·1/流水作用·2/물결의 印象·1/물결의 印象·2/물결의 印象·3/물소리/溪谷에서/瑞氣/봄산/숲/樹木 아래서/울타리·1/비온 뒤/果樹園/가을의 지혜/눈 오는 날
Ⅲ
어머니 얼굴·1/修道行/四十代/産母/마지막 電車/테이블/까치집/山동네/電柱/항아리
■ 後記
제4 시집 눈 온 날 저녁(1979.지인사刊 : 제14회 월탄문학상 수상)
Ⅰ
울릉도/墨湖港口·3/江陵 一帶/東海號/나의 집/木器 앞에서/鳶/山間驛/明堂/山 비/伯父님/고추밭/눈 온 날 저녁
Ⅱ
石雁/항아리·2/울타리·2/피아노 소리/골목 아희들/陸橋/무용소 골목/李慶光氏宅·1//李慶光氏宅·2/樹木이 우거진 마을/굴뚝 모퉁이/고향 바다/찜질하는 날/어느 날 午後
Ⅲ
돌/믿음의 뿌리/비둘기 내리는 뜨락/해바라기 피는 마을/慈善냄비/十字架 있는 마을/馬牌/편지/河回/얼굴/基谷里/푸르름 속에/가을 마당/보리밭 매는 날/모내기하는 날/파도소리
■ 後記
제5 시집 南行 길(1986.청문사刊)
■ 自序
Ⅰ
우리 외삼촌/어머니 얼굴·2/어머님 얼굴·3/큰 산/고향을 생각하며/봄춤·1/봄춤·2/비 오는 날·1/비 오는 날·2/동짓달·2/가을 海邊/갈매골 밭/영등날 지난 후/삼천리엔/봄산/마을/正初에/山吟歌/안개꽃
Ⅱ
갈령재·2/갈령재·3/臨院바다/江門바다/明堂·2/酒飮峙里·1/酒飮峙里·2/酒飮峙里·3/三陟別曲/溫陽別曲/天源別曲/旌善別曲/浮石里/甫吉島 素描/南行 길·1/南行 길·2/南行 길·3
Ⅲ
새하늘이 열리던 날/임의 幻像/임의 얼굴/하늘가는 길/기도원에서/새 아침에/날아온 편지/女人에게/道程·2/自畵像/그 사람·1/그 사람·2/그 사람·3/낯모를 門牌 앞에서/해지는 公園에서/임이 만든 하늘/까치집·2/처음으로 산짐승 되어/春三月 새 아침에/굴뚝 청소부의 노래
■ 跋文 : 成春福
제6 시집 강원도 바람(1992.문학세계사刊 : 회갑 기념)
■ 독자를 위하여
Ⅰ 바람 부는 月川
바람 부는 月川江邊·1/바람 부는 月川江邊·2/南陽村/才山別曲·1/才山別曲·2/德丘 할머니·1/德丘 할머니·2/물 건너 속섬엔/소는 늘 내 마음에/理川簡易學校/표적/가을 들판/沼/아지랑이/태봉골 소년들/돌 위에 꽃이 피기까지는/내 사랑은
Ⅱ 강원도
博月里 바람·1/博月里 바람·2/博月里 바람·3/울진 아저씨·1/울진 아저씨·2/흐린 하늘 아래서/陳仁凙 선생/陳憲燮氏 閤夫人/강원도·1/강원도·2/강원도·3/강원도·4/강원도·5/해안선 천리/제주도 생각/노란 하늘 아래에서
Ⅲ
廣島 戀歌·1/廣島 戀歌·2/廣島 戀歌·3/廣島 戀歌·4/廣島 戀歌·5/廣島 戀歌·6/廣島 戀歌·7/廣島 戀歌·8/廣島 戀歌·9/廣島 戀歌·10/新羅 靑年/아침해 돋을 때/흑석동·1/흑석동·2/흑석동·3/흑석동·4
Ⅳ
바람 속에/큰 징조/크신 銅像 앞에서/어머님의 성경책/그 사람·4/그 사람·5/그 사람·6/아침 강물/당신이 있으므로/열매·2/약속의 말씀 부여잡고/늘 푸른 땅을 위하여/큰 흐름 앞에서/임의 말씀으로/들판 연가
■ 解說 : 尹柄魯
제7 시집 東海岸(1997.형설출판사刊 : 제15회한국기독교 문학상 수상)
■ 머리말
Ⅰ가을 햇살
섣달 매목장날/가부랑골 큰 어른/삼산골 큰 어머니/옛날 추위/모심는 날 아침/門中 秘史/다복솔 秘話/소장수·1/소장수·2/소장수·3/午後의 冥想/雪話/江陵 느름내의 밤/가을 햇살·1/가을 햇살·2/첫 눈이 왔을 때/풀 냄새/서로 눈을 주며/흐린 날에
Ⅱ東海岸 抒情
샛바람 부는 날/孟芳 큰 詩人/큰 벼랑을 가며/金達莫 할머니의 눈물/中國 印象/해지는 西安·1/해지는 西安·2/東海岸 抒情·1/東海岸 抒情·2/東海岸 抒情·3/東海岸 抒情·4/東海岸 抒情·5/東海岸 抒情·6/東海岸 抒情·7/東海岸 抒情·8/東海岸 抒情·9/東海岸 抒情·10
Ⅲ 해질녘 수수밭에서
決行/雙墳/아침 전철에서/풀꽃 마음/漁村 크리스마스·1/漁村 크리스마스·2/임에게/사랑의 말/해질녘 수수밭에서/돌아온 蕩子/富邱里 別曲/新南의 秘話·1/新南의 秘話·2/葛南 앞바다/섣달 까치집/임의 길/水下里 悲歌/水下里에 오는 비/水下里 옛 주인/甫吉島로 가며/汀羅津
Ⅳ南陽村 悲歌
겨울 漁村·1/겨울 漁村·2/東海 바닷가에 오는 눈/漁村의 王/東海岸을 지나며/바다의 表情/바닷가 사람들/飛火津 누님·1/飛火津 누님·2/三陟 사람들/幼年期/湖山의 感懷/고향으로 돌아갈 때/江原道 사람/大關嶺의 눈·1/大關嶺의 눈·2/江陵으로 들어가며/南陽村 悲歌/竹西樓/汀羅津 고모
■ 解說 : 韓英玉
제8 시집 雲頭嶺을 넘으며(2001.태학사刊)
■ 머리말
1. 雲頭嶺을 넘으며
雲頭嶺을 넘으며/回心/江陵 여자들/江陵을 얘기를 하면/芽田里 洪思根/바람에 떠 있는 詩洞 /南大川 송장꽃/南大川 둑방길/汀羅津 곰치국/竹邊港/새벽달/束草 大浦港/東海 日出·1/東海 日出·2/幻仙窟 가는 길에·1/幻仙窟 가는 길에·2/三陟 點景/拓野山 진달래/珍富를 지나며/理川 別曲·1/理川 別曲·2/理川簡易學校
2. 名節을 다 보내고
名節을 다 보내고/北間島 생각/白頭山 가는 길에/巨濟島에서/夫婦/淸州의 부름/平澤에서/仁寺洞 골목/말의 울림/가을과 병원/그 얼굴/퇴직/퇴임사를 쓰면서/想念/白紙 앞에서/安眠島/長項線에서/배다리집/金光里 들판/달맞이꽃/彦別里 언덕/江陵 사람들/江陵 느름내/旌善의 풀/그림 맞추기
3. 가을의 悔改
가을의 悔改/네 가고 난 午後/공동묘지·1/공동묘지·2/어머님 재 넘어 오신 후/말씀으로 오시는 이/木瓜/末世의 詩/고난 받을 때/잘 믿는 사람들/북녘을 위한 기도/새천년 바다/나뭇잎이 곱게 물들 대/빈 밭에서/비 뿌릴 때/灰色門 앞에서/
4. 소
소·1/소·2/소·3/소·4/소·5/소·6/소·7/소·8/소·9/소장수/눕실이의 고백/한낮/산모롱이에 핀 꽃/산을 지키던 날/굴뚝새/무우밭/혼자 있을 때/노실別曲/노실 앞바다/喪家/양지말 산마루에서/臨院에 와서·1/臨院에 와서·2
■해설 : 趙南翼
제9 시집 싸리꽃 靈歌(2008.刊)
■ 머리말
제1부 왕산골 어머니
외할머니 설음/빈 자리/운두령을 바라보며/고향 친구들/墨湖 외삼촌/月川 냇물/옛 편지/나무 위에 단 行列/江陵 느름내의 밤/거제도 포로수용소/왕산골 어머니·1/왕산골 어머니·2/왕산골 어머니·3/왕산골 어머니·4/은행나무 길/구름 위에 떠 있던 집/섣달 대목장날/敦岩洞 살 때/섣달 그믐날/어버님 만주 가실 때
제2부 돌담 素描
돌담 素描/紹修書院에서/이제야 말해야 하리/바랭이풀/漆夜/城이 무너지는 아픔/고인돌 앞에서/복다혜리 새바람/훈련병의 한 때·1/훈련병의 한 때·2/땅의 큰 이름/마지막 말/가을의 치과의사/푸른 詩人/안촌 사람들/고향 마을을 지나며
제3부 종소리 따라
明洞 入口/몽룡이沼/싸리꽃 戀歌/수수밭가에서/달동네/산이 한 마을이 되어/청계천 연가/종소리 따라/밧모 섬/小鹿島 悲歌/모란시장에서/욕소리 美學·1/욕소리 美學·2/새벽 北港/南國 抒情/迎日灣
제4부 갈령재 산마루에서
「노래 한줌 가슴 한줌」 詩人에게/東幕골을 지나며/理川簡易學校/보 역사하는 날은/江陵 삼시기탕/注文津港/幻仙窟 전설/束草 東明港/東海岸 설날/東海岸을 지나며/갈령재 산마루에서/枯浦里 한 마음/月川뿌구리탕/유년기·1/유년기·2/유년기·3/유년기·4/理川의 精氣/꾀보네 할아버지/가부랑골 욕쟁이할머니/처음 대관령굴을 지나며/갈골 悲話/江陵 入城/江陵을 생각하면/백두산 가는 길
제10 시집 끝없는 해안선 그 파도를 따라(2011.마음刊)
■ 책머리에
제1부 안촌 연가
월천 바닷가 해당화/고포枯浦 마을·1/고포枯浦 마을·2/가곡천柯谷川/경계境界/갈령재 소곡·1/갈령재 소곡·2/대곡 목재의 빛/안촌 연가·1/안촌 연가·2/안촌 연가·3안촌 연가·4/안촌 연가·5/강릉의 큰 환영幻影/왕산골 새 빛/삼척 사람들/금당계곡金堂溪谷/고향 친구들/동해변을 지나며/속초 영금정靈琴亭/바닷가 사람들/죽변항竹邊港/
제2부 울릉도를 바라보며
울릉도를 바라보며/울릉도 바다/다정한 이름/소록도小鹿島 비가悲歌·1/소록도小鹿島 비가悲歌·2/소록도小鹿島 비가悲歌·3/소록도에 오는 비·1/소록도에 오는 비·2/해안도로를 걸으며/해안선 천 리/해안선을 달리는 기차/꽃방우타령·1/꽃방우타령·2/크고 붉은 꽃/나뭇잎이 곱게 물들 때/승리한 사람들/퇴임하면서/옛정/돈암동 추억/향기로운 그 말씀이/임의 얼굴
제3부 잔나비의 생일
가을의 독백/가을 햇살/망우리 서정/서울 살림/종묘공원에서/잔나비의 생일/밤에 피는 말/석양 한때/눈眼 속에서/행복열차를 타고/구원의 새/소의 한때/물방울 전설/미로迷路/큰 달로 오시는 임/명당자리/이천간이학교/영월 가는 길
제4부 작은 돌의 염원
하얀 종鍾/카리브 해협에서·1/카리브 해협에서·2/황포강黃浦江의 눈물/장가계張家界 환상/신안 앞바다/청계천 연가·1/청계천 연가·2/산이 한 마을이 되어/거제도 영상/외도 정경情景/법원法院의 하늘·1/법원法院의 하늘·2/법원法院의 하늘·3/아침 해 돋을 때/경주에 다시 와서/두 얼굴/산골 피난살이/산의 깊은 소리/작은 돌의 염원/제주도 용두암
■ 책 끝에 : 엄창섭
제11 시집 迎日灣을 바라보며(2019.도서출판 천산刊 : 米壽 기념 시집)
■ 책머리에
제1부 돌아가는 길 위에 아침 해 돋을 때
꿈의 숲/東明港/迎日灣을 바라보며/산의 얼굴/아침 해 돋을 때/태봉골 경사/세월 속 돌멩이/돌아가는 길 위에/겨울나무/여름 한 때
제2부 고향 그리운 사람들
갈령재/대곡 목재/이천사람들·1/이천사람들·2/숫터 옛집/상상의 구름 속에서/눈물의 밧줄/옛 편지를 보며/고향 그리운 사람들/은행나무마을 잔치
제3부 강릉 연가 月川里
강릉 연가·1/강릉 연가·2/강릉 연가·3/강릉 연가·4/강릉 연가·5/月川里 소묘·1/月川里 소묘·2/月川里 소묘·3/月川里 소묘·4/月川里 소묘·5
제4부 왕산골의 봄
강릉에 오면/꿈의 숲, 겨울이야기/파도 속 그리운 이름들/草谷港/산을 지키던 날/눈물의 상봉, 그날을 기리며/그 이름을 위하여/사패산 얼굴/은혜의 눈 속에/왕산골의 봄
제5부 한 마리 학이 되어
십자가 섬마을/생명의 소리/芳林을 지나며/팽목항의 아픈 사연, 그 파도/독도 연정/한 마리 학이 되어/구름 속 큰집/두 모녀 꽃집에서/靑丘園/봄 오는 고개
제6부 설을 쇠고 난 후
설을 쇠고 난 후/안목 연가·1/안목 연가·2/큰 그림을 보며·1/ 큰 그림을 보며·2/부거실 새 노래·1/부거실 새 노래·2/宿岩里 산정/북해도·1/북해도·2
제7부 貞陵에 다시 와서
貞陵에 다시 와서/ 仁寺洞 골목/빈자리에서/쑥국새 승리의 소리/큰 징조/회화나무 頌·1/회화나무 頌·2/孝石山/성령의 바람 속에/강릉 대관령
제8부 어머니 마지막 말씀
奉祭沓/소장수/큰 한자리/어머니 마지막 말씀/양주 가는 길/찬란한 빛 그 가슴 속에/믿음의 언덕/남국의 시/훈련병의 한 때/고향을 바라보며/다시 큰 언덕에 서서/눈물로 씨 뿌린 임/빛이 차 있는 바닷가 마을/큰 하늘에 피는 꽃/남도의 영원한 꽃/무지개 뜬 날 아침
제9부 책 끝에 : 기독 예술대상 수상 시인 인터뷰 기사.年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