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는 사교육 대책… 교사 출신 학원강사 4명에 들어보니 경쟁력 있는 교사들이 학교에 남아 있도록 보상 시스템 만들어야 어떤 입시제도를 써도 사교육은 안 없어져 공교육과 함께 활용을
교육과학기술부와 여당이 연일 '사교육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학교 교사로 근무한 경험이 있는 학원강사 4명은 본지 대담에서 "이런 대책으로 사교육은 잡지 못한다"고 고개를 저었다.
"진단이 잘못됐다. 그래서 처방도 틀렸다" "틀어막으면 단기적 효과는 있겠지만, 제도를 손대 사교육 잡으려다간 '파생상품'만 나온다"….
공교육과 사교육의 현장을 모두 겪어본 이들은 "학교에 '1타 강사'(과목별 최고 인기강사를 뜻하는 학원가의 은어)가 있으면 학생들이 학원 절대 안 간다"고 잘라 말했다. 학교 교사가 학원 강사보다 잘 가르치도록 하는 게 정답이라는 것이다. 대담엔 강양구 종로학원 강사, 이만기 유웨이중앙교육 평가이사, 이석록 메가스터디 입시평가연구소장, 최정인 하늘교육 잠일교육원 팀장이 만났다.
▲ 왼쪽부터 최정인·이만기·강양구·이석록씨. 이들은 학원 심야교습 단속 등의 정부 대책이 단기적으로는 효과를 볼 것이라면서도, 궁극적으로는“학교가 학원보다 잘 가르치는 것”이 유일한 해답이라고 했다./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학파라치·심야 단속은 단기 효과, 장기 부작용"
이만기= 이번 대책에서 도입한 '학파라치'(교습시간·학원비 규정 등을 어기는 학원을 신고하면 보상금 주는 제도)가 혁혁한 공을 세울 것 같다. 경제가 안 좋으니 '전문 학파라치'도 생길 테고, 자녀가 다니는 학원을 신고하는 학부모도 나올 수 있다. 밤 10시 이후 커튼 치고 수업하던 학원들이 일찍 문 닫을 것이다.
강양구= 효력은 분명 있겠지만, 결국 소규모 보습(보충학습)학원들은 망하고 대형학원만 살아남지 않을까. 사실 한 반에 학생이 수십 명인 대형학원과 10명도 안 되는 동네 보습학원이 학원비를 똑같이 받는다는 게 불공평한 측면도 있다.
최정인=이 제도로 학원비가 안정된다면 찬성하는 학부모는 많을 것 같다. 강남 부유층 학부모들도 학원비에는 민감하니까. 그런데 심야 교습 단속으로 학원 운영시간이 줄어 나라 전체 사교육비는 감소해도, 중산층만 잡히고 부유층의 음성적인 사교육은 더 늘어나는 것 아닌가. 요즘도 밤늦게까지 자율 학습하는 학교의 우등생들은 집에 와서 과외를 한다.
이석록=그럴 경우 사교육비 절감으로 거두는 효과보다 계층 간 위화감이 조성돼 불만이 생기는 부작용이 더 클 수가 있다.
이만기=수능 탐구과목 2과목 축소도 (사교육 잡는) 효과는 지극히 미미할 것이다. 탐구에서 줄어드는 만큼 언어·수학·외국어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져 더 많은 투자를 하게 된다.
강양구=고육지책인 것 같다. 언·수·외보다 사탐·과탐 줄이기가 만만하고 쉬우니까. 학생 부담은 절대 안 달라진다. 과목을 줄여 사교육을 잡겠다면 문과는 수학 선택제, 이과는 영어 선택제를 하는 수밖에 없다.
최정인=사탐은 학원 안 다니고 혼자 하는 학생들이 많지만 과탐은 학교 수업만으로는 어려워한다. '화학2'를 '화학4'라고 부를 만큼 과탐 수능문제가 어렵다고들 한다. 과탐 과목 축소는 의미 있을 것이다.
◆"내신 때문에 학원 오는 학생 없다"
이만기=여권 대책에 '내신 사교육'이 전체 사교육 시장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돼 있는데, 실제로 내신을 위해 학원 오는 학생은 없다. 학원에서 내신 지도는 그냥 '끼워팔기' '대민(對民) 서비스' 차원이다. 엄마들이 학원 와서 "여기 수능 하죠? 내신도 봐주나요?"라고 물어보지 "여기 내신 하죠?"라고 안 묻는다.
이석록=평상시 수능 수업하다가 내신 기간이 되면 대비해주는 것이다. 실제 학원 강의의 본질은 내신이 아니다. 내신 절대평가로 대학들이 고교 내신 무력화 장치를 한다면 학생들은 학교 수업 안 듣게 된다.
강양구=교육 철학으로는 절대평가가 맞는 방향이지만 사교육 줄이는 대안으론 맞지 않는다. 내신이 무력화되면 공교육이 죽도 밥도 안 될 것이고 학생들은 사교육으로 더 몰려가게 된다.
이만기=내신은 사실 이래도 문제, 저래도 문제다. 절대평가로 하다가 문제 생겨서 상대평가로 바꿨는데 또다시 옛날로 돌아가는 게 해법인가. 학업성취도평가 결과로 학교 간 학력차를 조정한다면 '학업성취도평가 대비 사교육'이 또 생길 것이다.
최정인=각 대학에 다 맡기면 될 텐데 왜 나라에서 자꾸 나서는지 모르겠다. 정부가 이것저것 간섭하고 규제하니까 '여기 누르면 저기 올라오고, 저기 누르면 여기 올라오는' 결과를 낳는다.
◆"학원보다 더 잘 가르치는 방법밖에 "
이만기=이번 대책은 한마디로 졸속이다. 머리가 아플 때 기력이 약한지, 혹시 다른 부위에 문제가 있는지도 살펴야 하는데 지금은 '머리 아프면 연고 바르든가 머리를 잘라버려라' 하는 것이다. 학교에 유능한 교사 있으면 학생들이 학원 안 간다. 내가 학교 교사로 있을 땐 우리 반 애들 학원 못 가게 했다. 일선 학원 교재들을 내가 전부 연구해서 가르쳤다.
이석록=최근 뛰어난 교사들이 학교 현장에서 많이 나오고 있다. 문제는 그런 분들이 새로운 걸 해보려 하면 기존 교사들로부터 '왕따'를 당한다는 것이다. '정년까지 편하게 지낼 수 있는데 뭐가 잘나서 피곤하게 하느냐'는 것이다.
강양구=경쟁력 있는 교사들이 학교에 남아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 방법은 하나, 보상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수준별 수업도 학교가 해야 한다. 웬만한 동네 학원도 상·중·하로 반을 나눠 수업하는 건 다 한다.
최정인=방과후학교에 좋은 외부강사가 왔다면서 학원을 그만두는 사례가 있었다. 방과후학교를 잘 운영하면 사교육을 어느 정도 잡을 수 있다고 본다. 좋은 강사 데려와서 잘 가르치면 학생도 알고 학부모도 안다.
이만기=사교육비를 줄이는 차원이라면 비용이 저렴한 온라인 강의를 적극 활용할 수 있다. 우수한 현장교사 강의를 녹취해 각 학교에 제공하는 방법도 좋다.
강양구=어떤 입시제도를 써도 사교육은 못 잡는다. 가위바위보로 뽑아도 가위바위보 과외가 생기고 뜀뛰기로 해도 뜀뛰기 학원이 생길 것이다. '무엇이 옳은 교육인가'에 대한 방향을 먼저 잡고 공교육·사교육을 둘 다 활용하는 식으로 가야 한다.
이석록=지극히 단순하게 생각해보자. 애들이 왜 학원에 갈까. 학교 선생님보다 더 잘 가르치니까 간다. 그러면 학교 교사가 학원 강사보다 더 잘 가르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주면 된다. 학교에 '1타 강사' 있으면 애들한테 학원 가라고 해도 절대 안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