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이면 소록도에 다닌것이 여러 해가 되었다. 금년에는 깜짝 반가운 분과 동행하였다.
서울서 목회하는 조현삼 목사님(광염교회,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이 멀고 먼 남도,
기도의 성지 소록도까지 내려온 것이다.
내가 소록도 형제들을 소개한 뒤로 성탄절이면 ‘한국교회 사랑의 선물’로 3년이나
좋은 선물을 보내와서 내가 심부름을 했었다.
‘금년에는 어떻게 하겠느냐’고 전화를 하니
“황 목사님, 오전에 작업해서 제가 내려가겠습니다.” 하더니,
조 목사님이 집사님 몇 분과 함께 오후에 출발하여 자정 넘어 녹동에 도착했다.
오래 전부터 소록도 형제들을 보고 싶었지만 목회일정 때문에 미루고 미루었는데
황 목사님의 전화를 받으면서 ‘이번 기회에…’ 하고는 모든 일 제쳐놓고 내려왔다는 것이다.
나는 다음날 아침 녹동에 도착하여 조 목사님을 끌어안고
‘서울서 여기가 어디라고…참말로 반갑고 고맙습니다.’ 하며 반겼다.
아침 특식으로 매생이 국을 먹고 소록도로 건넜다.
박주천 담임목사님과 인사를 나누고는 다섯 교회에 배분된 숫자대로 선물박스를 배달했다.
선물을 받는 교인들은 3년 동안 지극정성이 담긴 ‘사랑의 선물’을 받았던 일을 기억하여
광염교회 팀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선물박스에는 싱싱한 쇠고기, 설탕, 라면, 국수, 참치 캔, 식용유, 과자, 밀가루, 치약, 칫솔,
고무장갑, 세제…. 생필품으로 채웠다.
탑 차 한 대를 채웠지만 전 교인에게 드리지 못해서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이 크다.
모처럼 기도의 성지에 찾아온 조 목사님과 은혜를 나누고 싶어서 교인 몇 분을 만났다.
남성교회 고흥주 장로님(74)은 성탄선물만 아니라 광염교회 봉사팀이 또 내려와
여러 교회 천정 전등을 교체해 주었다며 감사인사를 드렸다.
유복자로 태어난 그는 8세에 발병하여 ‘벌레’ 같은 인생을 살아왔다고 자기를 소개했다.
성경 말씀(시편22편)과 같이 사람들의 조롱거리요 비웃음이며 외면 가운데 살았다고 말했다.
사람들의 발길에 뭉개져 죽는 그런 벌레 같은 천한 인간이라서 극약을 먹기도 했지만
죽음이 피해 갔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지금까지 살아왔으니
내 삶의 범사가 하나님의 은혜라 했다.
이남철 장로님(신성교회) 댁에 갔다.
나라에서 집을 고쳐주었는데(리모델링) 완전히 새집이 되었다.
세대마다 화장실이 있고 냉난방시설도 갖추었다.
지금까지 일제 때 건물에서 공동생활을 했던 것을 생각하면 이렇게 좋고 고마울 수 없단다.
이 장로님은 1970년에 소록도에 들어왔는데 이곳에서 같은 형편의 아내를 만나서
행복하다고 말한다.
올겐을 연주하며 찬양대를 지도하는 장로님은 사진취미가 있어서
소록도 역사를 사진으로 남기는 일로 ‘소록도 지킴이’ 카페를 열었다.
부인 정월선 집사님이 애틋한 음성으로
‘낮에나 밤에나 눈물 머금고 내 주님 오시기만 고대합니다…’ 찬양하니
함께 한 일행이 큰 감동을 받았다.
이웃에 사는 장인심 권사님(74세)도 금방 달려왔다.
소록도에 들어올 때(16세)는 구경이나 하고 죽자했었단다.
수요일 밤에 처음으로 교회에 갔는데 그 날 밤 설교가 자살은 죄악이라는 것이었다.
말씀에 깜짝 놀라서 자살보따리를 내려놓고 예수님을 만나서
하나님의 은혜로 살게 되었다고 간증한다.
병원에 입원한 중증 환자들 돌보며 봉사활동을 했는데 금년에는
본인도 넘어져서 병원 신세를 졌다. 매일 정오면 신성교회 정오기도회를 인도하며
세계 선교와 민족 복음과 그리고 나라를 위한 기도를 이어간다.
성탄절이면 예수탄생을 기념하며 예배와 함께 나눔 행사를 갖는다.
‘저 높고 높은 별을 넘어 이 낮고 낮은 땅위에 죄 범한 영혼 구하려 그 아들 보내사…’
성탄 찬양이다. 예수님이 속죄 제물로 오셨던 그때나 오늘이나 인간세상은 여전히 어둡다.
교회는 병들고, 배고프고, 외롭고, 쓸쓸하고, 갈 곳 없고, 삶을 포기한 사람을 만나서
예수 복음을 전해야한다.
교인들이 행사에 매이고 선물이나 받고 있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성탄절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