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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0일(목) Daily Golf News
1. 공기업 돈벌이 된 '퍼블릭골프장'‥"정부시책 나몰라라" - 머니투데이
- 인천공항, BOT 방식 '스카이72' 순익 77% 챙겨
- 토지사용료 그린피 전가 … 대중화 정책 모르쇠
인천국제공항공사에 이어 한국공항공사가 BOT(Build Operate Transfer) 방식으로 퍼블릭골프장 건설을 추진하지만 돈벌이에만 급급해 골프 대중화 등 정부 시책이나 사회적 책임은 수수방관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당 퍼블릭골프장이 각종 세제혜택에도 과도한 이용료를 받아 논란이 되지만 이를 관리해야 할 공기업이 제몫 챙기기에만 혈안이 돼 있다는 것이다. BOT란 개발사업자가 도로, 항만 등 인프라를 건설하고 일정기간을 운영한 후 국가나 지자체, 공기업 등에 기부채납하는 민간투자개발사업을 말한다.
◇인천공항 폭리 논란 '스카이72' 순이익 77% 챙겨
10일 금융감독원과 관련업계에 따르면 인천공항이 2005년 BOT 방식으로 추진한 인천 영종도 퍼블릭골프장 '스카이72'의 그린피(하늘코스 최고가 기준)는 주중 19만9000원, 주말 25만9000원에 달한다.
이는 퍼블릭은 물론 상대적으로 비싼 회원제 골프장의 평균 그린피보다도 20%가량 높은 금액이다. 한국레저산업연구소에 따르면 현재 회원제 골프장의 평균 그린피는 비회원 기준으로 주중 16만3000원, 주말 21만원 수준이다.
'스카이72'가 정부의 골프 대중화 정책에 역행하며 과도한 폭리를 취한다는 비난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는 골프 대중화를 위해 퍼블릭골프장에 개별소비세(2만1120원) 면제 등 각종 세제혜택을 주고 있다.
'스카이72' 그린피가 비싼 데는 개발방식과 수익배분 구조가 한몫한다는 지적이다. '스카이72'의 개발사업자 스카이칠십이㈜는 매년 연간 매출액의 9~10%가 넘는 토지사용료를 인천공항에 지급한다.
지난해 인천공항이 받은 토지사용료만 76억원에 육박한다. 이는 스카이칠십이㈜가 지난해 올린 매출액(613억원)의 12%, 순이익(98억원)의 무려 77%가 넘는 규모다. 사실상 인천공항과 스카이칠십이㈜가 비싼 이용료로 올린 골프장 수익을 나눠가진 셈이다.
◇"토지사용료 그린피 전가…골프 대중화 정책 역행"
이같은 수익배분이 가능한 것은 BOT 개발방식 때문이다. 당시 인천공항은 스카이칠십이㈜가 2020년까지 골프장을 개발·운영하고 돌려받는 조건으로 매년 토지사용료를 받기로 했다.
양사가 맺은 실시협약에 따르면 스카이칠십이㈜는 골프장 개장 후 매년 매출액의 일정비율(제5활주로 지역 9.11%, 신불지역 9.46%) 또는 최소 보장금액 중 큰 금액을 인천공항에 지급해야 한다. 골프장 매출이 늘수록 인천공항의 몫도 커지는 것이다.
서천범 한국레저산업연구소장은 "사업자는 막대한 금융비용과 토지사용료를 부담하고 일정 마진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그린피가 높게 책정되는 것"이라며 "애초 공기업이 수익에만 치중해 사업을 진행하면서 정부 시책에 역행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골프업계 한 관계자도 "골프장 매출이 늘면 인천공항이 가져갈 토지사용료도 많아지는 구조인데 그린피 등 이용료에 간섭할 필요가 있겠냐"고 지적했다.
이에 인천공항 관계자는 "사업구조상 단순 토지임대료를 받는 것일 뿐 사업자의 가격정책에는 간섭할 수 없고 그럴 권한도 없다"고 답했다. 내년 상반기 착공에 들어가는 한국공항공사의 김포공항CC(가칭)에 대해서도 같은 우려가 나온다.
김포공항CC 역시 BOT 방식으로 추진돼 토지사용료 부담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서다. 김포공항CC의 토지사용료는 연간 최소 30억원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경쟁입찰과정에서 더욱 높아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김포공항CC는 경동과 귀뚜라미, 금호개발 3곳의 컨소시엄이 입찰경쟁을 벌인다.
서 소장은 "현재의 BOT 방식으로는 또다시 정부 시책에 역행하는 결과만 낳을 것"이라며 "한국공항공사는 내부자금으로 골프장을 건설하고 적정비용에 위탁 운영해 골프 대중화에 앞장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임상연 기자
2. 굿마이크 LSA, 골프대회로 사회 공헌.. 표영호 김정렬 등 참여 - 파이낸셜뉴스
좋은 말을 전하는 기업 굿마이크의 최고위 과정 아카데미 ‘리더스 스피치 아카데미(이하 LSA)’에서 사회 공헌을 위한 총동문회 골프대회를 개최했다.
4월 9일 수원 CC에서는 동문회원 32명이 참가한 가운데 기부천사 골프대회가 열렸다. 참가자들은 대회 성적에 따라 사랑의 연탄 배달 기금 마련에 일조하게 된다.
이 자리에는 굿마이크 대표인 방송인 표영호와 개그맨 김정렬, 한명윤 총동문회 회장, 김태균 3기 회장 그리고 최재순 4기 회장 등 비롯해 총 32명이 참가했다.
표영호 원장은 “오피니언 리더들의 향기 나는 교육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리더의 덕목인 사회기여를 통해 더 끈끈한 LSA 원우회를 만들고 싶다”고 전했다.
김정렬은 “원우 구성원들 간의 끈끈한 우정과 사회적 기여를 통해 리더의 덕목이 무엇인지 좀 더 생각하는 시간이 됐다”고 대회 참여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굿마이크는 최고위 과정의 교육 프로그램 ‘굿마이크 리더스 스피치 아카데미’를 통해 많은 인재를 배출해내고 있다. 방송인 표영호가 대표를 맡아 설립했으며 지금까지 홍영만 Kamco 사장, 방기태 부장검사, 오치오 삼성전자 상무, 신승희 검사, 장혜원 (주)신흥정보통신 대표, 박병기 이지스자산운영 전무, 홍순간 금감원 팀장, 안상현 새한트레비스 대표, 최재순 부석건설 대표이사, 이복규 (주)도담 대표이사, 유영선 (주)참컴 대표이사, 정성택 ㈜풀잎라인 대표이사, 임종하 ㈜투에이치트레이닝 대표이사, 김동운 SBS 전 국장, 김선기 산업통상자원부 홍보팀장, 박지만 (주)선우판지 대표이사, 김태균 KMK 에듀홀딩스 대표, 강상원 삼일회계법인 이사 등 총 100여명이 굿마이크 LSA를 수료했다. (주) 메자인의 한명윤 대표이사가 총동문회장을 역임하고 있다.
한편 굿마이크 LSA는 현재 5기를 모집 중이며 다음달 15일까지 수강 신청을 받는다.
3. 근대 설계의 아버지 앨리스터 매킨지 - 골프다이제스트
근대 설계의 아버지 앨리스터 매킨지
골퍼는 설계가가 짜놓은 코스라는 무대에서 18개의 희로애락을 경험한다. 설계가의 성향과 특징에 따라 다양한 코스가 나오고 기억된다. 역대 코스 설계가와 그들의 작품을 살펴본다.
첫 번째는 ‘근대 골프 코스 설계의 아버지’로 꼽히는 앨리스터 매킨지다. 글_남화영
앨리스터 매킨지 Dr. Alister MacKenzie(1870~1934) 박사의 인생은 여러 면에서 부조화스럽다. 의사였지만, 실제로 수술을 하거나 병원에서 환자를 본 적은 없다. 남아프리카에서 발발한 보어 전쟁(1899~1902년)에 군의관으로 참전했을 뿐이다. 코스를 많이 설계했지만 뛰어난 골퍼도 아니었다(당시엔 프로 선수가 설계를 했다). 최고의 설계가로 대접받았으나 죽었을 때는 파산 지경이었다.
젊은 시절 영국 리드에 살면서 취미삼아 시작한 설계가 나중엔 직업이 됐다. 스코틀랜드 애버딘의 해즐헤드파크 Hazlehaed Park골프장이 그가 설계한 최초의 코스이며 1907년 알우드리 Alwoodley GC는 설계한 뒤에 골프장 지배인으로 일하기도 했다. 세계 1차 대전이 일어나자 그는 군의관이 아니라 공병대의 ‘은폐’ 전문가로 차출된 것을 보면, 그 무렵은 의사 대신 설계 전문가로 돌아섰다.
전쟁 후인 1919년엔 해리 콜트 Harry Colt, 찰스 앨리슨 Charles Alison과 함께 런던에 코스설계 회사를 차렸지만 4년 뒤에 독립한다. 그의 설계가 너무나 독특했기 때문이다. 매킨지는 20년에 펴낸 저서 <골프설계 Golf Architecture>에서 ‘은폐’라는 군사 용어와 코스 사이에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설명하고 ‘코스 설계의 목적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모방하는 것이어야 한다’라고 정의한다.
매킨지 코스 설계 철학은 그가 남긴 ‘13개 원칙’으로 귀결된다. 후대인은 그걸 ‘전략형 Strategic’ 코스 설계의 시작’이라고 평가한다. 이전까지 등장한 코스는 대부분이 ‘벌칙형 Penal’ 코스였다. 잘 친 샷만 가려내고 못한 샷은 모두 벌을 받아야 했다. 그린 주변으로 벙커가 둘러싸이거나 그린으로 향하는 길은 오로지 하나 뿐이었다. 하지만 매킨지는 다양한 벙커를 요소요소에 두어 코스를 전략적으로 공략하도록 했다.
이전까지의 벙커는 둥그렇기만 했지만 매킨지 벙커는 둘쭉날쭉한 모양에 넓고 깊었다. 그러면서 페어웨이쪽은 잔디가 짧고 러프를 향하는 부분은 길었다. 페어웨이 벙커의 배치에도 다양성을 주었다. 왼쪽 오른쪽의 구분을 두어 골퍼가 공략 루트를 선택하도록 했다. 또한 나무 등의 지형지물을 코스에 끌어들여 그린을 방어하고 은폐하는 기제로 삼았다.
매킨지식 그린도 있다. 전략성을 위해 그린에도 언듈레이션을 두기 시작했고, 페어웨이 방향에서 봤을 때 길고 좁은 그린을 만들었다. 이전까지의 그린은 둥글고 똑바른 형태였으나 매킨지 이후 코스매니지먼트에서 공격 각도의 중요성이 높아졌다.
그는 유럽, 남북 아메리카, 호주 3개 대륙에 걸쳐 총 46개의 코스를 설계했다. 세인트앤드루스 올드 코스 리모델링을 비롯해 미국에선 심미성에서 세계 최고로 꼽히는 태평양 해안의 사이프러스포인트, 크리스탈다운스 등이 있으며 아일랜드에선 라힌치, 영국에선 갠톤, 무어타운, 호주에서는 로열멜버른 서 코스, 킹스턴히스, 뉴질랜드에선 티티랑이, 아르헨티나에서는 자키클럽 등이다. 마지막 코스는 보비 존스의 의뢰로 참여한 오거스타내셔널이지만 애석하게도 이 코스가 완성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숨졌다. 그가 만든 중에 가장 사랑했던 파사티엠포 6번 홀에 무덤이 있다.
오늘날 매킨지 코스는 ‘매킨지소사이어티’를 결성하고 매년 교류하면서 설계가의 우수성을 기념한다. 지난 2005년 미국PGA는 ‘골프 명예의 전당’에 그를 헌액했다. 전설적인 선수가 추앙받는 곳에서 코스 설계자가 헌정된 것은 처음이었다.
13 General Principles
앨리스터 매킨지의 코스 설계 13개 원칙
1. 코스는 아름다운 주변 환경을 가져야 한다.
2. 코스는 가능하면 9홀씩 두 개의 고리처럼 정리되어야 한다.
3. 코스는 4개의 원온하는 홀과 여러 개의 투온하는 홀로 구성되어야 한다.
4. 그린과 다음 홀 티잉그라운드는 걸어서 갈 정도의 가까운 거리여야 한다.
5. 모든 홀이 서로 다른 개성을 가져야 한다.
6. 어프로치 샷에서는 블라인드 그린이 최소한이어야 한다.
7. 홀마다 다른 클럽을 쓰면서 다른 거리의 샷 공략이 가능해야 한다.
8. 코스 흐름이 골퍼에게 화나게 하거나 로스트 볼을 찾을 때 짜증을 유발시켜서는 안 된다.
9. 코스는 충분히 재미나야 하며 스크래치 골퍼도 스코어를 줄이도록 자극을 주어야 한다.
10. 스코어가 잘못 나와도 모든 실력대의 골퍼가 게임을 즐기도록 정리되어야 한다.
11. 코스는 여름과 겨울에도 동일하게 좋은 관리 상태여야 하며 그린, 페어웨이, 어프로치 조건이 동일한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
12. 장타자가 마음껏 힘을 쓸만한 영웅적인 홀이 충분해야 한다.
13. 그린과 페어웨이는 충분히 언듈레이션을 이루고 있어야 한다.
4. [방민준의 골프세상] 바비 존스를 알면 마스터스가 보인다 - 골프한국
지구촌 '골프명인'들이 총출전해 최고의 골프향연을 벌이는 마스터스 토너먼트가 10일 밤(한국시간)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내셔널GC에서 막이 오른다.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39·미국)의 불참으로 흥행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없지 않지만 마스터스에 대한 골프팬들의 흥분과 설렘은 결코 덜 할 수 없다. 마스터스이기 때문이다.
마스터스가 왜 마스터서인가는 많은 이유가 있다. 까다로운 출전조건으로 참가선수를 정하기 때문에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총출전한다. 여기에 코스 자체가 안고 있는 예술성과 자연미, 인간의 의지와 심성을 테스트하는 코스의 특성으로 직접 경기를 벌이는 선수는 물론 갤러리와 시청자들까지 탄성과 탄식을 토해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마스터스가 마스터스인 것은, 마스터스가 오늘 날 지구촌 최고의 골프향연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은 이 골프코스를 만들고 대회를 창설한 바비 존스라는 불세출의 골퍼가 있기 때문이다.
골프 사가들은 로버트 타이어 존스 주니어(Robert Tyre Jones Jr.: 1902~1971), 즉 바비 존스(Bobby Jones)를 20세기 최고의 골퍼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당시 4대 메이저, 즉 미국과 영국의 오픈 및 아마선수권을 13회나 우승한 그를 골프 사가들은 ‘골프의 황제’ ‘구성球聖’이라고 칭송했다. 그의 기록이 얼마나 위대한 것이었던가는 4대 메이저대회에 출전했던 기간은 겨우 13년, 그것도 9년은 고교와 대학시절로 평생 출전게임 52회 중 23회를 우승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특히 지성파 골퍼로도 유명했다. 1922년 미국 아마선수권 쟁취 후 하버드대학에서 영문학, 조지아공대에서 기계공학, 에모리대에서 법률을 전공해 변호사자격까지 취득했을 뿐만 아니라 프랑스어, 독일어, 영국사, 독일문학, 고대문화사, 비교문학 등을 공부하기도 했다. 그의 골프전성기는 학업에 열중하던 시기와 일치해 운동과 학문을 동시에 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탁월한 골프기량에 풍부한 학식, 뛰어난 유머감각과 겸손함을 겸비한 그에게 온갖 최상급의 찬사가 따라다닌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는 다섯 살 때 부모와 함께 골프를 배우기 시작했다. 스튜어트 메이든(Stewart Maiden)이라는 동네골프장의 프로를 만나 많은 것을 배우게 되는데, 그는 메이든을 만난 것을 골프인생 최대의 행운이라고 실토했다. 훗날 그는 7년간의 슬럼프에 빠진 뒤 “모든 행운은 자신만을 외면하고 있다고 생각한 바 있었으나 그 후 이것을 반성하면서 인간은 패한 경기에서야말로 여러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나는 이긴 경기에서 아무 것도 얻은 것이 없었다”는 명언을 남겼다.
그는 타고난 모방의 천재였다. 골프장 전속프로의 플레이를 모방해 좋은 기본을 구축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골프도 하나의 게임으로써 단지 개인적인 승부를 가리는 것으로 인식했다. 그래서 스트로크 플레이보다는 매치 플레이를 즐겼다. 스코어란 어떤 사람과의 승부의 자료일 뿐이었다.
11세 때 그는 새로운 골프철학을 깨닫는다. 계기는 1913년 US오픈. 이 대회에는 ‘스윙의 시인’이란 명성을 듣고 있던 영국의 해리 바든(Harry Vardon), 그리고 같은 영국의 테드 레이(Ted Ray)가 출전했다. 마지막 라운드에서 당시 19세의 미국 아마추어 프란시스 위멧(Francis Ouimet)이 두 영국 프로와 동타가 되어 연장전에 들어가 우승을 차지했다. 어린 존스는 이 경기야말로 진정한 게임이라고 생각했다. 비록 우승은 못했지만 아름답고 부드러운 스윙에 견실한 플레이, 모든 홀을 파를 목표로 주변과 초연한 자세로 플레이하는 해리 바든의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어린 존스의 눈에는 바든이 경쟁자나 갤러리들을 잊은 채 다른 그 무엇과 플레이하는 것처럼 보였다.
존스는 중얼거렸다. “골프란 어느 사람에 대해서가 아니고 어느 것에 대해서 플레이하는 것이다.” ‘그 어느 것’이란 바로 파(PAR)였다. 홀마다의 파와 경쟁한다는 것인데 그는 그 무엇을 ‘올드 맨 파’라는 친근한 이름으로 의인화하고 외부의 경쟁자가 아닌 내부의 ‘올드 맨 파’와 게임을 하는 철학과 지혜를 터득하게 된다.
1916년 14세 소년으로 처음 미국 아마추어선수권대회에 출전, 전국대회 첫 준우승을 하게 되는데 이때 결승에서 젊은 혈기와 흥분,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무릎을 꿇고 난 뒤 마음을 다스리는데 역점을 두게 된다. 이듬해에 그는 15세 나이에 챔피언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그러나 이후 2위 시대가 계속 이어지는 7년간의 길고 긴 슬럼프에 빠졌다가 1923년 US오픈에서 우승하고 1925년 US 아마추어대회에서 우승하는 등 전성기를 맞는다.
1925년 US오픈에서 그는 골프사에 회자되는 유명한 일화를 만들어낸다. 마지막 라운드에서 1타차 선두를 유지, 우승을 목전에 둔 존스는 러프에서 어드레스 하는 사이 볼이 움직이자 아무도 본 사람이 없었지만 경기위원회에 자진 신고했다. 이를 두고 그의 친구이자 언론인인 O.B 킬러 기자는 “나는 그가 우승하는 것보다 벌타를 스스로 부가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 한 타가 없었더라면 플레이오프는 없었을 것이고 존스의 우승으로 끝났을 것이다. 이번 대회에서 우승하는 것보다 더 멋있는 것이 바로 존스의 이 신고사건이었다”고 기록했다. 이 사건을 두고 매스컴이 칭송하자 존스는 “당연한 것을 했을 뿐이다. 당신은 내가 은행 강도를 하지 않았다고 나를 칭찬하려는가?”라는 반응을 보였다.
당시 미국의 프로 골프계에선 월트 헤이건이 ‘왕’으로, 존스는 ‘불세출의 아마 황제’로 불려 졌는데 1925년 둘만의 72홀 매치플레이 시범경기에서 존스가 완패했다. 골프비평가들은 이를 두고 “존스의 기술적인 패배라기보다는 올드 맨 파의 룰을 스스로 포기, 처음부터 스코어카드 대신 헤이건과 대결한 실수를 했다”고 평했다. 정곡을 찌른 것이었다.
1930년 영국 오픈과 영국 아마선수권, 미국 오픈과 미국 아마선수권을 독차지하는 사상 초유의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는데 US아마 선수권대회에서 경기 중 한 레스토랑 주인으로부터 격려전보를 받았다. 거기에는 ‘E TONE EPISTAS’라는 그리스어가 쓰여 있었다. 영어로 ‘With it, or on it’(함께 아니면 그 위에)라는 뜻이다. 옛날 스파르타의 한 노모가 전쟁터에 나가기 위해 방패를 닦고 있는 아들에게 한 말로, 이겨서 방패와 함께 무사히 귀환하던지 아니면 전사하여 방패 위에 실려서 돌아오라는 뜻이다. 과연 존스는 이 경기에서 이겨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세운다.
그는 1930년 11월 28세의 나이에 은퇴를 선언했다. 당시 언론은 그를 ‘미국에서 로버트 리 장군 이래 가장 인기 높은 남부인’이라고 표현했다. 미국 골프계는 그가 은퇴선언을 하자 ‘존스 없는 골프는 파리가 없는 프랑스와 같다’는 말로 슬픔을 표했다.
그는 은퇴 후 금융계 친구 클리포드 로버츠와 함께 1934년 조지아 주 오거스타에 오거스타 내셔널코스를 만들어 마스터스 토너먼트를 개최함으로써 골프 팬들의 아쉬움을 달래주었다. 매년 5월 열리는 이 대회는 4대 메이저대회 중 가장 권위 있는 대회로, 존스는 이 대회와 함께 불멸의 전설로 살아남게 되었다.
바비 존스는 불세출의 골퍼로서의 전설적인 삶을 살면서 많은 명언을 남겼다.
“위대한 영혼은 승리의 장미밭길이 아니라 실패의 불길 속에서 만들어진다.”
“골프선수권대회는 오믈렛(Omelets)과 많이 닮았다. 달걀을 깨지 않고는 오믈렛을 만들 수 없듯이 희망과 좌절함이 없이는 오픈에서 우승할 수 없다.”
“골프에서 운이란 상당 기간 길어지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돌아간다.”
“골프란 그 누구도 정복할 수 없다. 스코틀랜드 사람이 말했듯 골프란 끝이 없는 게임이다. 오늘날까지 그 누구도 골프를 자신이 생각한대로 플레이한 사람은 없었고 또 그 이상 절대로 더 잘 칠 수 없었다고 만족할 만큼 흡족하게 잘된 라운드를 해본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골프가 모든 게임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이다. 결코 인간을 상대로 플레이하지 말고 게임을 플레이하라. 오직 올드 맨 파와 플레이하라.”
“성공한 토너먼트 골퍼와 실패한 자를 설명할 때 매우 편리하게 쓰이는 말이 있다. 그것은 바로 기질, 즉 템퍼러먼트(temperament)이다. 즐기는 골퍼와 토너먼트 골프는 완전히 다른 별개이다. 아무리 위대한 골퍼라도 위대한 토너먼트 골퍼가 될 수는 없다.”
“불운이란 나 혼자에게만 닥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닥치기 마련이다. 어느 경기에서나 실점을 만회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초조감 없이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인내로 대처해야 한다.”
“토너먼트 골프에서 또 한 가지 다른 점은 챔피언십의 우리(The cage of championship)이다. 처음 골퍼들은 우선 그 우리 속에 들어가고 싶어 한다. 그리고 한번 그 속에 들어가면 계속 머물려 한다. 그러나 누구도 그 안에 오래 머물 수는 없다. 그리고 쫓겨나면 다시 들어가려고 노력하게 되는 기이한 우리이다.”
“좋은 스윙의 첫째 조건은 단순함이다. 스윙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임팩트 순간 불을 끝까지 쳐내는 것(hit through)이다. 결코 볼을 때리는 것(hit at)이 아니다.”
위대한 바비 존스를 기리며 마스터스의 향연을 즐겨보자.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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