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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1137
고난과 여호와의 인자하심(애 3:19-33)
2023-7-9
성도는 극심한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소망을 잃지 않습니다.
애가 3장을 지은 성도는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집들도 성전도 파괴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멀리 바벨론으로 노예로 끌려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쇠사슬에 매여 잡혀 갔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자처럼, 백성을 심판하신 것을 알았습니다. 백성의 죄에 대한 정당한 심판이었습니다.
이 성도는 말할 수 없는 절망에 빠져 헤어나올 수 없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를 깨닫았습니다. 하나님을 새롭게 만났습니다. 언약의 사랑의 하나님이므로 하나님이 구원해 주실 것을 믿고 인내하며 기다렸습니다.
우리도 깊은 절망 가운데서 새로운 소망을 주시는 삼위 하나님을 이 시간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여호와의 언약적 사랑 때문에 고난 가운데 소망합니다(19-24절)
2. 고난을 참고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에게 여호와는 좋으신 분입니다(25-33절)
3. 우리를 대신하여 고난받으며 하나님을 소망한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믿음시다.
이 시간 성령님께서 새로운 희망으로 우리를 가득하게 해 주시기를 소원합니다.
1. 여호와의 언약적 사랑 때문에 고난 가운데 소망합니다(19-24절).
1) 고난 가운데 소망함(19-21절)
18절에서 말했습니다. “여호와께 대한 내 소망이 끊어 졌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성도는 완전한 절망에 떨어지기 전에 여호와 하나님을 기억했습니다. 19절부터 무드가 바뀝니다. 극심한 고난을 하나님께서 기억해 달라고 합니다. 성도는 고통을 생각하면서 낙심이 되지만, 다음 내용을 마음에 되새겼습니다. “그것이 오히려 소망이 되었음은” 소망이 끊어졌다고 말하다가 소망이 있다고 말합니다. 무엇에 대한 생각이 그에게 소망이 되었을까요?
2) 여호와의 언약적 사랑 때문에 여호와를 소망함(22-24절)
22-24절 내용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고백하면서 희망이 솟아 났습니다. 22절을 직역하면 이렇습니다. “여호와의 인자로 우리는 진멸되지 않고 그분의 긍휼은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인자(헤세드)- 언약에 헌신한 사랑입니다. 나는, 우리 공동체는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우상 숭배, 동족에 대한 착취 등 악한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항상 언약에 신실하십니다.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함 때문에 모든 사람을 다 멸하지는 않았고 남겨 두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은 끝이 없습니다.
이제 23절,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마다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이 새롭습니다. 여호와의 신실하심이 큽니다. 신실은 언약에 신실하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집도 잃어버렸고 사랑하는 가족과도 헤어졌습니다. 그러나 불행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24절에 말합니다. “나의 기업은 여호와 그러므로 그분을 나는 소망합니다.” 기업은 하나님께서 언약을 맺으면서 선물로 주신 재산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가나안 땅을 조상에게 기업으로 주셨습니다. 그 땅에서 일하고 먹고 살게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 기업으로 주신 땅으로부터 쫓겨났습니다. 손에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가장 좋은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민수기 18:20에는 제사장은 땅을 따로 받지 않고 “주님을 그들의 기업”으로 받았습니다. 주님께 바친 제물로부터 먹고 살았습니다. 그 제사장들처럼, 바벨론에 끌려간 포로들은 가진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기업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양식과 보호를 받을 것입니다.
“나의 분깃은 여호와다”는 여호와의 주권을 인정한다는 뜻도 있습니다. (삼하 20:1 “우리는 다윗과 나눌 분깃이 없으며 이새의 아들에게서 받을 유산이 우리에게 없도다. 이스라엘아 각각 장막으로 돌아라가”). 애가를 지은 성도는 그의 주권자는 바빌론 왕이 아니라 여전히 하나님임을 고백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에게 땅은 없어도, 하나님이 주인이요, 공급해 주시는 분입니다.
“나의 기업은 여호와 입니다.” 여호와께서 일하실 것을 소망 가운데 기다립니다.
---> 형제자매님은 어떻습니까? 지금 직장이 분깃입니까? 아니면 하나님 그 분이 나의 기업입니까? 내가 누리는 안정된 것도 하나님께서 나의 기업이 되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2. 고난을 참고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에게 여호와는 좋으신 분입니다(25-33절).
1) 여호와는 그분을 소망하는 자에게 고난 가운데서 선하심(25-27)
여호와 하나님을 생각할 때, “좋도다”를 세 번말합니다. 25-27절은 원문에는 모두 “좋도다”로 시작합니다.
첫째, 25절, 여호와는 좋으신 분입니다. 여호와를 기다리며 소망하는 자, 그분을 구하는 영혼들에게 여호와는 좋으신 분입니다. 지금 나는 환난과 어려움 가운데 있지만 변하지 않는 사실이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분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선한 목자입니다. 좋은 목자로 우리를 돌보십니다.
둘째로, 26절,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조용히 기다리는 것이 좋습니다.
성도가 조용히 침묵하는 것은 하나님이 일하실 것을 기다리는 행동입니다.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바라기 때문에 침묵합니다.
셋째로, 27절, 젊었을 때 멍에를 메는 것이 좋습니다. 어려움 가운데서 하나님이 하실 일을 소망하면서 고난이 새로운 의미를 띱니다. 고난을 받는 것이 좋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고난을 참고 인내하는 것이 좋습니다. 멍에를 메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명령에 순종한다는 뜻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며 하나님이 주실 복을 기다리는 것이 좋습니다.
이 성도는 고통들을 인내하며 견뎠기에 그의 고통들로부터 배울 수 있었습니다. 성도는 고난을 당하면서 동시에 기다립니다. 수동적으로 기다림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하심 안에 적극적으로 안식하는 것입니다. 언젠가 나의 시련이 끝날 것을 소망하며 기다립니다.
우리가 많은 고통 가운데 있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일 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다림은 좋습니다. 하나님은 기다릴 가치가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구원은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올 것입니다.
2) 삼위 하나님을 소망하는 자가 할 일(28-30절)
좋으신 하나님 앞에서 멍에를 메고 기다림은 좋습니다. 28-30절은 사람이 해야 할 구체적인 행동을 말합니다.
혼자 앉아서 잠잠하라. 왜냐? 여호와께서 그에게 멍에를 메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우신 짐을 묵묵히 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짐을 집니다.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향해 원망하지 않습니다. 기대하지 않습니다.
입을 땅의 티끌에 닿을 정도도 엎드려 겸손하십시오. 하나님이 구원해 주실 것에 대한 소망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빰을 때리는 사람에게 자신의 뺨을 때리게 내어 줍니다. 보복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수치를 당해도 잠잠하게 하나님을 기다립니다.
좋으신 하나님은 이 고난 가운데 벗어나게 하실 것입니다.
3) 그분의 언약적 사랑 때문에, 영원히 버리지는 않으심(31-33절)
31-33절, 세 절은 모두 “왜냐하면”으로 시작합니다. 고난 가운데서 묵묵히 하나님을 기다려야 할 이유를 말합니다. 첫째, 31절, 주님께서는 우리를 영원히 버리지는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주님이 우리를 버린 것 같이 보여도 구원의 손길을 베풀 것입니다.
둘째, 32절, 비록 주님께서 우리를 심하게 대우하시지만 인자하십니다. 22절에도, 언약에 신실하여 사랑하십니다. 넘치는 인자하심을 베풉니다. 수치스런 일을 많이 당한 성도에게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풍성합니다. 그렇습니다. 고난 가운데서 우리가 기억할 것은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은 풍성하다는 것입니다.
셋째, 33절, 하나님께서 사람을 고생하게 하시지만, 그 고생하게 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고난과 치욕을 참고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에게는 여호와는 좋으신 분이십니다.
3. 우리를 대신하여 고난받으며 하나님을 소망한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믿음시다.
고난가운데서 하나님의 언약의 사랑을 믿으며 인내한 가장 모범적인 분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지만 우리의 죄를 자기 것으로 가져 가서 죄인으로 인정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 멍에를 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면서도 우리 죄 때문에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으셨습니다. “할 수 있거든 이 잔을 내게서 떠나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 십자가 위에서 아버지 하나님의 버림을 받는 것이 아버지가 뜻하신 일임을 알았습니다. 이 고난을 달게 받았습니다. 십자가를 지시는 것을 좋게 생각하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아버지께 부르짖었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사람들을 향해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께 고통을 하소연하셨습니다. 마지막 숨을 거두며 하나님만 잠잠히 바라 보았습니다.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께 맡깁니다.” 무덤에 묻혔습니다. 그 모든 일을 하시면서 잠잠히 여호와를 바랐습니다.
시편 16편은 예수님이 고난 중에서 이런 고백을 하셨다고 말해 줍니다. 시편 16:8- 11입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 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 10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다 11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 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 이후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살려 주실 것을 믿고 고백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자비롭고 언약에 신실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죽음에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부활하게 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참되고 영원한 즐거움을 누렸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며 찬양할 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합니다. 지금 우리의 이 고난에 우리 홀로 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고 약속하신 예수님은 우리의 고난의 그 순간에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와 함께 고난받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고난받을 때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성령님도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며 우리의 기도를 돕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의 고난의 순간을 지나도록 삼위 하나님께서 우리 손을 잡고 함께 걸으십니다.
우리는 한 순간만 고난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생 전체가 고난가운데 있습니다. 죄와의 싸움이 있습니다. 여러 고통들이 있습니다. 죄에 대한 심판으로 고통을 당하기도 합니다. 우리를 연단 시키려는 하나님의 계획하심 때문에 고통을 당하기도 합니다.
이 땅의 고통의 날들이 끝난 후에, 우리도 예수님께서 부활하여 먼저 가신 그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갑니다. 지금은 교회를 통해 부분적으로 맛보는 하나님 나라의 즐거움을 천국에서 완전히 누릴 것입니다. 그 영원한 안식의 시간이 오고 있습니다. 이 안식을 소망하면서 지금 내게 주신 자리에서 수고합시다. 우리의 몫으로 주신 고난을 기꺼이 당하며 선한 일에 힘씁시다. 선한 일은 크게 두가지 입니다. 첫째, 삼위 하나님을 믿고 예배하며 영광돌리는 일이 선한 일입니다. 둘째, 우리 주위의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 선한 일입니다.
적극적으로 고난을 향해 나갑시다.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즐거움을 포기하는 것도 고난입니다. 서로 사랑하기 위해 사랑의 수고를 다하는 것이 우리에게 맡겨 주신 고난입니다.
우리가 함께 해야 할 사랑의 수고 중 하나는 우리 교회에 처음 출석하는 새신자들을 섬기는 일입니다. 얼굴 잘 모르는 성도에게 먼저 인사하고 자기 소개를 하며 가까이 갑시다. 우리 교회에 새신자로 오신 형제 자매님도 이 교회는 여러분의 교회입니다. 교회는 사랑을 받고 사랑할 수 있는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여러분에게 주신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형제 자매여러분, 고난 가운데서도 어려움만 생각하지 맙시다. 이 어려움을 주신 좋으신 하나님을 바라 봅시다. 내 죄에 대한 채찍을 맞아 고난을 받을 때도 고난 보다는 이것을 주신 삼위 하나님을 바라 보고 믿읍시다. 하나님께서 이 어려움을 벗어나게 하실 그 때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신뢰합시다. 하나님의 자비하심 때문에 소망을 굳게 붙듭시다.
나를 개인적으로 사랑하셔서 나를 위해 십자가의 고난을 지신 예수님을 다시 믿읍시다. 나 보다 먼저 천국으로 가셔서 나를 위해 중보기도하시는 예수님께서 이 시간 새 힘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나의 내면의 마음의 흐름에 따라 너무 흔들리지 맙시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시는 하나님의 이 객관적인 사랑에 우리의 마음의 닻을 내립시다. 마음이 우울하더라도 믿음으로 기뻐합시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로니가 전서 5:16-18, 신약 332).
내가 받는 고난만 생각지 맙시다. 형제 자매들도 나름대로의 고난이 있음을 기억합시다. 내가 힘든 그 순간 하나님의 언약의 사랑을 받은 다른 형제 자매님을 기억하며 섬깁시다. 성령님 안에서 사랑의 열매를 계속 맺읍시다. 고린도전서 16:13의 말씀을 기억합시다.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고린도전서 1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