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5편
의인에게 복 주시는 하나님 찬양
(찬송 4장)
2024-6-28, 금
맥락과 의미
오늘 말씀은 언어 폭력 때문에 고통당하던 성도가 하나님께 드린 기도입니다. 가슴이 찢어지는 언어 폭력을 하고 교묘하게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에 둘러 싸인 성도는 하나님께 솔직히 부르짖습니다.
자신의 주위로 사람의 위로를 찾아 나서지 않았습니다. 또 안으로 자기 감정에 빠져들지도 않았습니다. 위로 하나님을 향해 탄식했습니다. 기도 가운데 하나님은 이 성도를 만나 주셨습니다. 성령님은 성도의 탄식을 하나님 품 안에서 확신과 기쁨으로 바꾸셨습니다.
우리도 지금 관계의 어려움을 생각하며 기도합시다. 상처와 고통을 안고 다 함께 하나님께 나갑시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던 것도 생각나게 하기 바랍니다.
이 말씀으로 기도할 때 성령께서 우리의 상처를 치료하시고 하나의 품 안에 달려나가 기쁨으로 예배하게 하실 것입니다. 구원의 복을 주신다는 굳센 믿음과 강하고 담대한 의지로 일상을 살아가도록 하실 것입니다.
1.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기도함(1-3절)
2. 악인은 하나님 앞에 들어오지 못함 (4-6절)
3. 예배를 드리려는 열망 (7-8절)
4. 악한 자에게 벌 내리시기를 간구함 (9-10절)
5. 하나님의 구원과 예배드릴 것에 대한 확신 (11-12절)
1.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기도함(1-3절)
기도한다는 말을 “말”, “중얼거리다’, ‘부르짖다’, ‘기도하다’ 등 다양한 표현으로 반복합니다. 이 성도가 얼마나 힘든지를 알 수 있습니다. 나의 말에 귀를 기울여 들어달라고 합니다.
기도하는데 너무 힘들어서 말을 분명히 하지 못하고 중얼거립니다. 기도할 때 분명한 소리가 나지 않고 신음소리 내고 슬피 웁니다. 어려움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는 고통 가운데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우리의 신음소리까지도 분별해서 들으시는 분입니다.
2절에서 성도는 이제 크게 소리치며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귀가 먹어서 부르짖는 것이 아닙니다. 긴장으로 초조하고 고통스러워서 크게 말로 소리치며 터져 나왔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왕입니다! 나를 보호하는 힘있는 왕, 정의로운 왕입니다! 나를 보살피는 자애로운 하나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탄식을 하나님께 아뢰는 이 성도는 고통스럽지만 복됩니다. 하나님을 무시하면서 속으로 불평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과 싸우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돌보심을 바랍니다.
이 성도는 아침에도 일어나 기도할 것입니다. 여기서 “기도하다”는 기본적으로 ‘늘어놓는다’는 의미입니다. 아침 저녁으로 번제드릴 때 번제물을 불과 나무 위에 “올려둔다”(레 1:7,8,12, 6:12)고 할 때 쓰는 말입니다. 아침 번제의 시간은 공적인 기도의 시간이었습니다. 시인도 성전에서 드리는 이 공적인 기도에 참석했을 것 같습니다.
성소 안의 등대에 불을 ‘보살피다’(출 27:21), ‘정리한다’(레 24:3,4)는 표현도 ‘늘어놓는다’와 같은 말입니다. 아침을 기다리며 성소의 등불이 타고 있을 때부터 이 성도는 집에서 기도한 것 같습니다.
“아침에 저의 소리를 들으실 것입니다.” 미래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잠시 후 공적인 기도 시간에 하나님이 응답할 것을 기다리며 집에서 중얼거리며 흐느끼며 기도합니다. 때로는 “아버지”하며 울부짖고 탄식하며 기도합니다.
‘늘어놓는다’는 말은 군대가 싸우기 위해 질서 정연하게 대열을 갖추어 놓는다는 뜻도 있습니다. 나를 말로 괴롭히는 그들을 향해 군대처럼 싸우기보다 하나님을 향해 기도를 늘어놓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기도하며 마음을 정리합니다.
3절에 “바라본다”는 원래 ‘보초선다’는 말입니다. 적들이 언제 어디서 올지 모르니까 두 눈 똑바로 뜨고 보초 섭니다. 그것처럼 내일 아침 공적 기도시간에 찾아와 응답하실 하나님을 기다리겠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기도의 응답이 나타날 때까지는 보초처럼 긴장된 마음을 가집니다. 그러나 참을성 있게 기대하며 기다립니다. 처음에는 흐느끼고 부르짖었지만, 기도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응답을 기대하는 차분한 마음으로 변합니다.
2. 악인은 하나님 앞에 들어오지 못함(4-6절)
이렇게 기도 중에 하나님을 만나니까 자신을 괴롭힌 사람 앞에서 여유있는 마음이 생깁니다.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으시고 나를 괴롭히는 그 악한 자를 벌하신다는 확신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성품 때문에 불의하고 악한 자를 징벌할 것이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하나님은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닙니다. 악이 하나님 앞에 손님으로 대접받지 못합니다. 이 성도는 무시당하지만 기도 가운데 이미 하나님 앞에 귀한 손님으로 받아들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성도를 괴롭히는 그 악한 자는 하나님 앞에 나오지 못합니다.
그들은 악한 일을 행하면서도 거짓말로 자기는 선한 것처럼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파멸시키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거짓으로 속이면서 나와 성도들에게 고통을 주는 그 사람을 가증스럽게 여기십니다. 그들의 거짓 때문에 흘려진 피와 고통에 대해 증오하시는 일은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가증스럽게 여긴다”는 거룩하지 못하기 때문에 성전에 들어오지 못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성도는 고통 가운데 기도하며 하나님의 품으로 예배하러 도망가지만, 그들은 하나님 앞에 가증스러우니까 예배의 처소로 따라오지 못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성도는 미움에서 벗어납니다. 내가 거짓말하는 자의 거짓을 밝혀서 그들에게 보복하는 힘든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성도의 마음에 일어나는 증오심을 하나님께 맡기고 평화를 얻습니다.
여기서 성도가 당한 고통은 주로 말로 당한 고통입니다. 거짓말로 기만을 당하고 자기 자랑과 교만의 말로 무시당했습니다. 이 모든 모욕에서 벗어나는 길은 바로 정의로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모든 악인을 멸망시키는 것이 하나님께서 하실 일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기도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3. 예배를 드리려는 열망(7-8절)
이제 성도는 하나님의 집에서 예배드릴 것을 열망합니다. 기도 가운데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리겠다는 약속을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장차 완전한 안전 가운데 있게 될 것을 확신합니다.
경외는 두려움과 함께 하나님에 대한 공경심과 사랑의 친근함이 있는 마음입니다. 이 성도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본 다음에 계속 하나님께서 자기를 자비롭게 대하신다는 것을 생각하며 굳게 섭니다. 다시 예배할 수 있도록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간구합니다.
“하나님의 의”는 당신의 백성을 보호하고 보존하시는 의로운 다스림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의로우신 도우심으로 자신을 보호하셔서 적들의 악한 계획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합니다.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나의 원수들 때문에 굽고 힘든 길을 열어 주십니다.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는 벗어날 길이 열리지 않습니다. 하나님 당신이 지혜와 능력 주셔서 길을 보여 주시고 열어 주시길 구합시다. 적들의 악의가 득세하고 있을 때, 우리는 자신에 대한 신뢰를 버립시다. 모든 능력을 가진 하나님의 품으로 예배하며 신속히 달려 갑시다.
4. 악한 자에게 벌 내리시기를 간구함(9-10절)
악인의 입에는 견고함이 없습니다. 바르고 신실하게 말하지 않습니다. 자기 편리대로 말을 바꿉니다. 마음에 악이 가득 찼습니다. 마음에 가득한 악이 목과 입을 통해 나옵니다.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정신적 고통과 죽음을 주는 말이 나옵니다. 그들의 혀로 아첨합니다.
악한 자들을 유죄선고 해 달라고 합니다. 그 사람은 자기의 죄를 인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위선에 빠져서 자기가 악한 일을 행하는지도 모를 수 있습니다.
지혜로운 하나님께서 그들을 어리석게 만들어 자기 함정에 스스로 빠지가 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백성을 억압하는 자들이기 때문에 아예 그 백성이 되지 못하도록 쫓아 버려 달라고 합니다. 요즘으로 치면 교회에서 출교해 달라고 심판을 간구합니다.
이유는 주를 배반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참 성도에게 고통을 주고 있는 그들은 사실 하나님을 반역하고 있는 것입니다(신 1:26, 43). 우리 성도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께 매우 귀한 존재입니다. 성도들이 고통당할 때 하나님 당신이 그들 안에서 직접 모욕받고 상처를 당합니다.
5. 하나님의 구원과 예배드릴 것에 대한 확신(11-12절)
하나님께 기도하며 달려간 자들에게 기쁨을 주실 것입니다. 교회에서 모든 성도들도 이 기쁨에 함께 참여할 것입니다. “기뻐하다”, “외치다”, “즐거워하다”는 성전에서 감사의 찬송을 드릴 때 사용하는 말들입니다.
참 성도는 사람의 공격이 힘들 때 하나님께 피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당신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입니다. 이 땅의 어떤 행복보다 하나님 그분을 사랑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이 찬양하는 이유는 이 성도가 믿음으로 바라보고 있는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성도는 고통의 기도 가운데 이미 축복을 받았습니다. 성령님은 그의 믿음의 눈을 열어서 그를 돌보시는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게 하셨습니다. 이 성도는 자신이 모든 방향에서 보호되고 있음을 압니다. 아무리 크고 다양한 위험들이 성도를 공격한다 해도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을 것입니다.
성도들의 영혼은 그를 괴롭히는 사람에 대한 두려움, 집착, 미워하는 마음에서 벗어났습니다. 그 고통 때문에 하나님께로 달려가서 성전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기대와 기쁨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모든 성도와 함께 하나님을 만나고 찬양하는 기쁨의 소망과 기대로 충만하게 하였습니다.
그 성도는 고통 가운데 하나님 그분 자신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예배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예배하는 공동체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믿고 복종할 일
고통 가운데 하나님을 향해 기도하며 달려갑시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두려움과 미움에서 벗어나게 하십니다. 예배 가운데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해 주십니다. 바깥에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은 계속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품 안에 안겨 기뻐하며 나갑니다.
1. 오늘 말씀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2. 오늘 말씀에서 주신 교훈은 무엇입니까? 3. 오늘 말씀에서 순종할 내용은 무엇입니까? |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3절, 기도하다(아라크)
3절에서 “기도하다”는 본래 “늘어놓는다”(아라크)는 뜻입니다. 아침 저녁으로 번제드릴 때 번제물을 불과 나무 위에 “올려둔다”(레 1:7,8,12, 6:12)고 할 때 쓰는 말입니다.
번제물의 연기가 하나님께 올라갈 때 하나님은 그 냄새를 향기로운 냄새로 기쁘게 받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레 1:9, 13). 아침 번제의 시간은 공적인 기도의 시간입니다. 제사장은 바깥 들에서 번제를 드린 다음, 성전 안에 들어가서 분향단에 향을 피우며 하나님께 기도드립니다. 그 시간에 바깥에서 성도들은 서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성소 안의 등대에 불을 “보살피다”(출 27:21), “정리한다”(레 24:3,4)는 표현도 ‘늘어놓는다’와 같은 말입니다. 성전에는 밤새워 어두운 밤을 밝히는 불이 있습니다. 어두운 밤 동안 아무도 없는 성소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등불, 계시의 등불이 늘어놓아져서, 어둠을 물리칠 것입니다.
“늘어놓는다”는 군대가 싸우기 위해 질서 정연하게 “대열을 갖추어 놓는다”는 뜻도 있습니다. 나를 말로 괴롭히는 그들을 향해 싸우기 위해 늘어 놓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해 늘어 놓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기도하며 마음을 정리합니다. 사람을 찾아다니며 위로받으려 하지 않습니다. 혹은 자기의 인간적 지혜를 의지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