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소개 : 백마산은 경북 김천시 농소면과 성주군 초전면의 경계에 자리하며 금오지맥 줄기에 있다. 정상엔 2등 삼각점과 정상표지석, 이정표와 밴취가 있어 쉬어가기 좋다. 활기재를 넘어 594.5m 삼각점봉과 554m 산불 초소봉이 보이고 그 뒤로 금오산이며 우측의 영암산과 성주골프장이 보인다. 백마산 김천시 농소면 봉곡리에 고방사가 있다. 고방사(古方寺, 古芳寺)라고도 표기한다.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이다. 418년(눌지왕 2) 아도(阿度)가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그 뒤 1636년(인조 14) 옥청(玉淸)이 적묵당을, 현철玄哲)이 설선당을, 그리고 1656년(명종 11) 학능(學能)이 청원루를 지었다. 현재의 건물은 1719년 (숙종 45) 수천(守天)이 옮겨서 중창한 것이다. 원래의 절터는 현재의 위치에서 동남쪽으로 약 1㎞ 떨어진 곳에 있는 약수터 자리에 있었는데, 그곳에 빈대가 많아서 사람이 머무를 수 없었으므로, 법당인 보광전(普光殿)을 헐어 현재의 자리로 옮겨 짓고 나머지 건물은 모두 불태웠다고 한다. 그 뒤 1923년 벽암(碧巖)이 중창하였고, 1981년부터 법전(法田)이 감로당을 이전 하였으며 관음전, 삼성각, 향로실, 사천왕문, 범종각, 청원루를 새로 짓고 보광명전을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규모가 큰 보광명전 안에는 목조삼존불이 봉안되어 있고 법당 안에는 지름 1.8m, 둘레 4m에 이르는 조선 중기의 법고와 경명(經名)을 판단할 수 없을 만큼 부식이 심한 경판(經版)이 있다. 보광전 지붕에는 청기와 3장이 덮여 있는데, 청기와는 큰 건물의 낙뢰를 방지하는 구실을 해준다고 전한다. 원래 절이 있던 자리에는 어떠한 불치의 병이라도 치료할 수 있다는 약수가 있다. 갖가지 금기를 지키고 백일 동안 약수를 먹으면 효험을 볼 수 있다고 하나, 백마산의 산신이 엄하여 금기를 범할 때 반드시 벌을 내린다고 하여 함부로 먹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성주 사드 배치장소 성주골프장 680m봉에서 서북쪽으로 바라 보이는 높은 봉우리가 백마산이다. 전형적인 육산으로 정상 부근에는 암봉과 전망데크에서는 김천 방향으로 조망이 좋다. 산 자락에 사실(寺室)이란 마을 은 고방사(高方寺) 아래에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고 다른 한편으론 마을에 새가 많다고 해서 새실 또는 새 조(鳥)자를 써서 조곡(鳥谷)이라 부르기도 한다고 한다.
※ 세종대왕 자태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88호. 각 태실은 지하에 석실을 만들어 그 속에 태항(胎缸)과 태주(胎主)의 이름 및 생년월일을 음각한 지석(誌石)을 넣고 지상에는 기단·간석(竿石)·옥개(屋蓋)의 형식을 갖춘 석조물을 안치하는 한편 어느 왕자의 태실이라는 표석을 세웠다. 기단이 일석(一石)이고 간석·옥개도 하나의 돌로 만들었으며, 기단면석부와 옥개에는 연화문이 새겨져 있다. 옥개 뒤에는 보주형(寶珠形) 꼭지를 조출(雕出)하였다. 이 곳 태봉(胎峯)은 뛰어난 명당으로 세종대왕의 왕자의 태실을 모아 봉안하였다. 1977년 태실복원 정화사업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세종의 원손인 단종의 태실도 일단 여기에 마련하였다가 다른 곳으로 옮겨간 것으로 알려졌다. 정화사업시 석실내에서 토기태항(土器胎缸),분청사기대접(粉靑沙器大接),분청상감연화문개(粉靑象嵌蓮花紋蓋) 등이 지석과 함께 출토되었다. 분청사기는 조선 초기 도자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곳에 봉안된 19기의 태실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문종(文宗, 推定)·세조(世祖)·안평대군(安平大君)·임영대군(臨瀛大君)·광평대군(廣平大君)·금성대군(錦城大君, 추정 1977년 보수시 지석 출토)·평원대군(平原大君)·영응대군(永膺大君)·원손(元孫, 1441, 端宗으로 추정, 1977년 보수시 지석 및 분청상감연화문개 출토)·화의군(和義君, 추정)·계양군(桂陽君)·의창군(義昌君 추정, 1977년 보수시 분청상감연화문개, 분청사기대접, 토기태항, 지석 출토)·한남군(漢南君)·밀성군(密城君)·수춘군(壽春君)·익현군(翼峴君)·장(璋)·거(乫)·당(瑭) 등이다.
※ 선석사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桐華寺)의 말사이다. 692년(효소왕 1)에 의상(義湘)이 화엄십찰(華嚴十刹) 중 하나로 창건하여 신광사(神光寺)라 하였으나, 현재보다 서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1361년(공민왕 10)에는 나옹(懶翁)이 신광사 주지로 부임한 뒤, 절을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그런데 당시 새 절터를 닦다가 큰 바위가 나왔다 하여 터 닦을 ‘선(禪)’자를 넣어 절 이름을 선석사라 하였다고 한다. 지금도 바위는 대웅전 앞뜰에 묻힌 채 머리 부분만 땅 위로 나와 있다.
임진왜란 때 전소된 뒤 1684년(숙종 10)에 혜묵(惠默)·나헌(懶軒) 등이 중창하였다. 1725년(영조 1)에 서쪽의 옛터로 이건하였다가 1804년(순조 4)에 서윤(瑞允)이 신도들의 도움을 얻어 지금의 자리로 이전하고 대웅전·명부전·칠성각·산왕각·어필각(御筆閣)·정법료(正法寮) 등의 당우를 갖추었다. 세종의 왕자 태실(胎室)이 있는 태봉(胎峰)에서 약 200m 거리에 위치하고 있었던 이 절은 왕자의 태실을 수호하는 사찰로 지정되었으므로 영조로부터 어필을 하사받기도 하였다. 이 어필을 보관했던 곳이 어필각이었으나 그 뒤 화재로 소실되어 현재 영조 어필의 병풍은 정법료에 보관되어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명부전·칠성각·산신각·요사채 등이 있다. 이 중 대웅전은 정면 3칸의 맞배지붕 다포집이다. 이 절의 어필각 주위에는 바람이 불면 이상한 소리를 내는 쌍곡죽(雙谷竹)이라는 대나무 숲이 있었다고 한다. 이 대나무를 잘라 만든 피리는 그 소리의 맑고 깨끗하기가 다른 피리와 비길 바가 아니었으며, 이를 교방적(敎坊笛)이라고 하였다 한다. 그러나 지금은 이 쌍곡죽이 남아 있지 않다. 성주지방에서는 가장 큰 절이다.
>12월 29일 : 절영 해안길 (부산 영도)
> 출발 시간 : 두호동 사무소 앞 (8:10) - 고속버스 터미널 건너편 (8:20) -
운동장 건너편 GS칼택스 앞 (8:30) - 경주 황성공원 시계탑 (9:00)
> 회비 : 30,000원. (석식 및 하산주 제공 : 현지식)
> 차량 : 제일 고속 관광.
☎ 연락처 : 가배 산악회 회 장 서 백 수 : 010 - 3823 - 9147
등반대장 양 재 우 : 010 - 3527 - 4746
총 무 진 홍 근 : 010 - 7587 - 76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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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량은 당일 인원에 따라 탄력적으로 운행 예정임 |
첫댓글 불참(포교단행사)
감사 합니다.
김봉길 참석합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