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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암과 아론의 불평(1-2)
하나님께서는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역자들에게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권위를 부여해줍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사실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려 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권위에 도전하고 질서를 파괴하는 것에 대해서 강하게 다스리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행위는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옵니다.
1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더니 그 구스 여자를 취하였으므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니라 2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하매 여호와께서 이 말을 들으셨더라(1-2)
하세롯에서의 사건은 모세가 구스 여인을 취했다는 사실로부터 시작됩니다. 그것은 바로 미리암과 아론이 잡아낸 모세의 약점이었습니다. 하세롯에서의 불평은 미리암과 아론을 통해 제기되었습니다. 미리암이 아론보다 먼저 등장한 것은 그녀가 이 시간의 주도한 일임을 시사합니다. 사실과 그로 인해 아론은 화를 모면했으나 그녀가 나병이 걸리게 되었음을 암시합니다.
미리암과 아론의 불평은 단순한 시기나 질투가 아니라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중재자였던 모세의 권위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었습니다. 사실은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먼저 제기한 문제는 모세의 선지자적 지도력의 문제가 아니라, 모세의 도덕적 흠결로 도전합니다. 미리암과 아론은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한 것에 대해 비난했습니다(1). 모세는 이미 미디안에 있을 때 미디안 제사장의 딸인 십보라와 결혼했었습니다. 그리고 두 아들을 낳았습니다(출 2:21). 모세가 출애굽을 위해 애굽으로 돌아갈 때 십보라는 아이들을 데리고 장인의 집으로 되돌아갔고, 출애굽 이후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로 나왔을 때, 그들이 다시 만나게 됩니다. 이 일은 민수기 12장보다 약 1년 정도 지난 시점입니다. 구스 여자의 정체에 대해서 성경이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기 때문에 특정해서 결론을 짓기는 어렵습니다. 전통적으로 구스가 에티오피아 지역을 가리키지만, 구스(Cush)를 구산(Cushan)과 연결시키기도 합니다(합 3:7). 모세가 이방인 여자를 둘째 아내로 취한 것은 이스라엘의 정체성에 대한 심각한 역행이 분명합니다. 따라서 현재의 미리암과 아론의 문제 제기는 지극히 정당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빌미로 모세의 특권을 질투하며 권위에 도전했던 것입니다. 미리암은 곧장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2)라고 매우 도발적으로 반문합니다. 모세의 도덕성에 흠집을 내고, 이참에 모세의 독점적 권리를 형제들이 함께 나누기를 원한 것입니다. 어쩌면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보다 나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모세의 지도력에 순종해야 하는 상황이 싫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여호와께서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셨느냐?”(2)라고 강조합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모세의 독특한 지위를 부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모세를 향한 도전을 모세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들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진노(3-10)
우리는 지도자들의 문제를 제기할 때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성을 안고 살아갑니다.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 언제 떠질지 모르는 폭탄과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도자의 단점을 문제를 제기합니다. 그렇지만,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문제를 제기하는 의도가 순수한지, 또한 방법이 옳은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자신이 이해되지 않는 것이라 할지라도, 설령 어떤 상황에서 시기와 질투가 난다고 할지라도, 어떤 것을 빌미로 삼아 사람들을 비방하지 말아야 합니다.
3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4여호와께서 갑자기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에게 이르시되 너희 세 사람은 회막으로 나아오라 하시니 그 세 사람이 나아가매 5여호와께서 구름 기둥 가운데로부터 강림하사 장막 문에 서시고 아론과 미리암을 부르시는지라 그 두 사람이 나아가매 6이르시되 내 말을 들으라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환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 7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내 온 집에 충성함이라 8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하지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9여호와께서 그들을 향하여 진노하시고 떠나시매 10구름이 장막 위에서 떠나갔고 미리암은 나병에 걸려 눈과 같더라 아론이 미리암을 본즉 나병에 걸렸는지라(3-10)
모세는 침묵했고, 하나님께서 들으셨습니다. 이제 내레이터의 목소리로 모세에 대한 평가가 제시되는데, 모세는 온 땅에서 가장 온유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적어도 본문에서 그를 공격하는 말에도 침묵하는 모세는 분명 온유한 사람이 맞습니다.
갑자기 언쟁에 여호와께서 개입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세 사람을 회막으로 부르셨습니다. 갑자기 부르심은 두 사람의 문제 제기를 신속하게 차단하기 위함입니다. 세 사람을 “회막으로 나아오라!”(4)라고 명하시는 것을 두고, 당시 회막이 진영 밖에 있었음을 암시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이 또한 명확하지 않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모세, 아론, 미리암의 순서로 부르셨습니다. 1절에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대적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순서를 바꾸어 부르심으로 모세의 지도력을 명확히 인정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선지자들과의 다른 점들을 말씀하십니다(6-8). 다른 선지자들은 꿈이나 환상을 통해 말하지만 모세는 충성되어서 대면하여 명백히 말한다고 하십니다(출 33:17-23). 모세의 특별하고 독특한 지위를 인정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모세를 ‘내 종’이라고 칭해주십니다. 아론과 미리암도 선지자로서 꿈이나 환상을 통해 말씀을 듣지만, 모세가 하나님을 친밀하게 대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말씀하시며 은밀하거나 모호하게 대하지도 않으십니다. 심지어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을 보기까지 합니다. 물론이 말씀은 하나님을 직접 보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모세도 하나님을 직접 보지 못하고 바위틈에서 하나님께서 지나가시는 것을 보았을 뿐입니다(출 33:21).
하나님께서는 미리암과 아론에게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고 책망하십니다. 미리암과 아론이 제기했던 문제에 대한 최종적인 답을 주십니다. 이는 미리암이 2절에서 던졌던 질문인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입니다. 이로써 하나님의 재판정에서 두 사람의 주장이 명백하게 잘못되었음이 드러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향해 진노하시고 그들에게서 떠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성막에서 떠남과 동시에 미리암의 몸에 피부병이 돋았고, 그녀의 몸은 눈과 같이 희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징계를 받은 표시입니다. 미리암에게 동조했던 아론은 두려운 마음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아론의 간청(11-12)
하나님께 범죄 했을 때, 먼저 자신이 죄를 지었다고 인정해야 합니다. 자신의 행동으로 다른 사람에게 끼칠 수 있는 피해에 대해 진심으로 죄책을 느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고 미래에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능력을 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회개는 행동을 바꾸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진지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11아론이 이에 모세에게 이르되 슬프도다 내 주여 우리가 어리석은 일을 하여 죄를 지었으나 청하건대 그 벌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소서 12그가 살이 반이나 썩어 모태로부터 죽어서 나온 자 같이 되지 않게 하소서(11-12)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미리암이 나병이 걸려서 진 밖으로 쫓겨난 것을 보았습니다. 이 모습을 아론에게도 충격이 컸습니다. 아론은 미리암과 함께 권위에 도전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아론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세에게 “슬프도다 내 주여 우리가 어리석은 일을 하여 죄를 지었으나 청하건대 그 벌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소서”(11)라고 자백하듯이 말합니다. 이로써 모세와 아론, 그리고 미리암 사이의 지도력 논쟁이 일단락됩니다. 아론은 모세가 가진 지도력을 나눠 갖고 모세와 같이 되기를 원했으나, 결국 모세에게 중재를 요청함으로 그의 특별한 지위를 받아들였습니다.
아론은 모세를 “내 주여!”라 부르고, 자신들이 어리석은 일을 행했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두려워하며 그 죄에 대한 벌이 자신들에게 내리지 않도록 요청합니다(11). 먼저는 미리암에게 임한 심판이 자신에게 임하지 않도록 해달라는 요청입니다. 또 미리암의 “살이 반이나 썩어 모태로부터 죽어서 나온 자같이 되지 않게 하소서”라며 미리암에게 내린 벌을 거두어줄 것을 요청합니다(12).
모세의 중보와 하나님의 응답(13-16)
자신의 권위는 스스로 확보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셨고 하나님께서 보장하시는 권위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에 기초하여 백성에게도 명령할 수 있지만, 하나님께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실수할 가능성을 인정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용서와 연민을 받을 가치가 있음을 상기할 수 있습니다.
13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하나님이여 원하건대 그를 고쳐 주옵소서 14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그의 아버지가 그의 얼굴에 침을 뱉었을지라도 그가 이레 동안 부끄러워하지 않겠느냐 그런즉 그를 진영 밖에 이레 동안 가두고 그 후에 들어오게 할지니라 하시니 15이에 미리암이 진영 밖에 이레 동안 갇혀 있었고 백성은 그를 다시 들어오게 하기까지 행진하지 아니하다가 16후에 백성이 하세롯을 떠나 바란 광야에 진을 치니라(13-16)
하나님꼐서는 심판 이후에 하나님의 위대한 긍휼과 자비가 있었습니다. 그분은 미리암의 죄를 용서하시고 그녀를 치유하셨습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 회개하고 부르짖기만 한다면 우리 죄들을 용서하시고 깨끗하게 하실 것입니다.
(1) 미리암을 위한 중보기도(13-14)
아론의 중보 요청을 들은 모세는 즉각 여호와께 부르짖었습니다. 미리암에게 내린 심판에 대해 아론이 모세에게 요청했고, 모세는 여호와께 요청했습니다. 그는 중보자로서 단순하지만 확실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기도에 즉각 응답하지 않으시고, 미리암이 7일간 수치 가운데 있도록 하심으로 그 죄의 심각성을 알게 하셨습니다. 미리암은 즉각 진 밖으로 내쳐져서 7일간 갇혀 지내게 됩니다. 그가 7일 만에 회복되어 진영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하신 것은 율법의 명령과 차이가 있습니다. 율법에 의하면 나병으로부터 회복되어 진영 안으로 들어오기까지는 최소 14일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레 13:5). 먼저 피부에 병이 발생하면 7일을 기다려서 진단을 받고 나머지 7일 동안은 정결례를 치러야 했습니다. 하지만 미리암은 단지 7일만을 요구하고 있으므로 이것은 미리암에게 특별하게 적용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대신 이 모든 과정은 대중 앞에서 그녀의 죄악으로 인해 수치를 당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심(15-16)
미리암이 진영 밖에 격리되어 있던 칠일 동안 이스라엘 백성의 행진도 중단됩니다. 미리암이 여전히 이스라엘 공동체에 중요한 인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하게 그녀가 중요한 인물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적어도 미리암과 아론이 제기했던 모세의 지도력 문제는 공동체 안에서 일정 부분 공유되고 동조하는 이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본문은 미리암이 격리된 7일 동안 백성들이 행진을 멈추었음을 굳이 밝힘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이 미리암의 징계에 동참하며 회개와 회복의 기간을 가졌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미리암이 회복된 이후(16), 이스라엘 백성은 하세롯을 떠나 바란 광야에 머물렀습니다. 비록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구름기둥이 성막에서 떠나면 이스라엘이 행진하는 패턴을 유지해왔지만, 본문은 지도자들의 불평이 오히려 백성들의 행진을 늦추는 역할을 했음을 알립니다. 10:12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 광야를 출발해서 바란 광야에 머물렀다고 요약적으로 진술했는데, 12:16은 드디어 바란 광야에 도착한 이야기를 소개함으로 10:12에서 소개했던 첫 번째 광야 여정을 마무리합니다.
참된 권위는 하나님에게서 나옵니다. 그것을 인정하는 자에게 ‘부리는 권력’은 없고 ‘섬기는 권위’만 있습니다. 권위적인 사람은 권력과 위압으로 상대를 제압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참된 권위를 가진 사람은 권면과 위로를 통해 성대를 설득할 수 있습니다. 자기 것이 아니니 무례하지 않을 수 있고, 권위가 도전받는 상황에서도 온유할 수 있습니다. 권위를 주신 분과 지켜주시는 분이 하나님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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