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 닭의 실상實狀
박 순 태
주부 손에 답이 실린 게다. 달걀을 쌓아놓은 진열대 앞에 선 그녀들은 유정란이란 글자가 찍힌 꾸러미를 고른다. 유정란, 암탉 홀로서는 이루어낼 수 없는 결정체가 아니던가.
산행을 마치고 어느 시골집 마당에 들어섰다. 벌겋고 누런 깃으로 단장한 닭들이 방금 뿌린 모이를 쪼고 있다. 몇 마리인가 세어보려니 한 자리를 지키지 않고 이리저리 옮겨 다녀서 셈이 어렵다. 수컷이 다섯, 암컷이 열일곱이라고 주인이 일러준다. 암수 스물둘이라, 닭 가족 구성원 숫자가 흥미를 끈다. 조금 전 산에서 눈에 넣었던 진달래 가족의 암수 조합과 대비對比되어서다. 그들 가족은 송이마다 암술 하나에 수술이 열이었다.
경쟁자 없이 일처다부제의 진달래 암술은 수술들을 호령하면서 일사천리로 가사를 처리하는 여장부다. 이곳 닭 가족은 근엄한 대장 닭이 어슬렁거리면서 무리를 이끈다. 기죽은 듯이 지내던 졸개 수탉 한 마리가 다리에 힘을 주고 몸에 기를 모아 불타오르는 욕정을 목으로 풀어낸다. 이어서 다른 수컷들도 차례로 목청을 다하여 존재감을 알린다. 이쯤 되자 대장 닭이 웅대한 울대를 빼 올려 산천을 울린다. 일순간에 분위기를 압도한다. 진달래 가정이 철저한 가모장제라면 닭 가족은 확실한 가부장제이다.
대장 닭의 일거수일투족이 시선을 당긴다. 낯선 사람이 다가서면 세차게 달려와서는 껑충 뛰어올라 쪼는가 하면, 주인이 모이통을 들고나오자 목을 치켜들고 날개를 펴면서 가족을 불러모은다. 굵고 날카로운 발톱으로 거름 무더기를 헤집으며 지렁이를 찾아내어 “꾸꾸 꾸꾸” 구애를 펼치니 암탉들이 가장에게로 몰려든다. 모이를 쪼아 먹을 땐 졸개 수탉들은 군림자와 거리를 두었다.
암탉이 ‘고올골 고올골’하면서 알 낳을 시간이 다가온다는 신호를 보낸다. 그 암탉이 대장 닭에게 살랑살랑 다가와서는 자세를 낮춰 꼬리털을 살짝 올리더니 엉덩이를 내민다. 대장 닭은 암컷 등에 올라 자신의 임무를 삽시간에 완수한다. 또 한 마리의 암탉이 지아비 앞으로 다가와 생리현상을 알린다. 유정란을 생산하기 위해 암컷들이 차례로 몸을 맡긴다. 암탉 숫자가 열 하고도 일곱이니 버겁기도 하련만, 의욕을 가진 졸개 수탉이 욕정을 풀어내려는 낌새를 보이면 절대권력자는 쪼고 할퀴어 피 맛을 톡톡히 보게 했다. 닭 무리엔 이인자가 보이지 않는다.
대장 닭 행세를 지켜본 일행들 반응이 다양하다. 군침을 삼키는 이, 혀를 차며 도리질하는 이, 넋을 잃고 생각하는 이도 있다. 해석도 각양각색이다. 한 입에선 열일곱 아내를 거느려서 좋겠다 하고, 다른 입에선 걱정하는 기색을 보이며 명대로 못 살겠다고도 했다. 그런가 하면 눈빛 하나로 가솔을 거느리니 가화만사성이 따로 없다며 엄지척을 했고, 경쟁자가 호시탐탐 노리는지라 긴장의 삶이겠다는 염려도 빠트리지 않는다. 암수가 주고받는 사랑만은 나눔이 없다는 사실엔 모두가 한입이었다.
주인이 거들었다. 대장 닭이 발톱을 다쳐 격리 기간 중, 졸개 수탉 네 마리가 그동안 쌓였던 욕정을 해소하느라 시도 때도 없이 암탉을 괴롭혀 온통 수라장이 되고 말았다는 설명이다. 어떤 암탉은 수컷들에게 윤간을 당해 털이 뽑히는 수난을 겪다가 지쳐 쓰러졌다며 웃음 짓는다. 졸개 수탉의 다급함과 완력을 당해내기 어려워 어느 암탉은 진저리를 쳤는가 하면, 이리저리 눈알을 두리번거리면서 순정을 저버리지 않는 일편단심도 있었다고 전한다. 물론 며칠간 유정란도 시원찮았을 것이란 짐작도 얹었다.
독수리가 공중에서 날개를 펴는 날이면 무리를 데리고 재바르게 곳간으로 향한다는 대장 닭의 예지력도 알렸다. 식솔의 배를 채워주기 위해 먹이를 찾아 나서는 책임감, 적이 나타나면 몸으로 막아내는 용맹성, 동료 수탉을 꼼짝없이 제압하는 통솔력, 암탉 무리의 욕구를 차별 없이 만족시키는 기력. 내치와 외치의 전능자이자 집단을 지켜내는 수호신이다. 무엇보다 유정란을 산란하도록 열일곱 암탉과 차례로 합일하는 웅건함이 더없는 압권이다.
조류鳥類는 번식을 위해 암수가 잠깐 한 몸이 될 뿐이다. 암컷의 알 낳기도 한 개가 아니면 몇으로 끝난다. 하지만 닭은 가축이 되면서 점차로 개량되어 매일 산란하기에 이르렀다. 인간은 이것으로 만족할 수 없어 유정란까지 바란다. 이런 연유로 암탉은 알을 낳기 직전에 수탉과 합하여 착상한다. 유정란은 암탉의 몸속에서 이미 만들어진 알이 자궁 밖으로 나오는 동안 수탉의 정자를 받아들여 수정된 알이다.
도올 김용옥 선생은 질문했다. 지구상에서 가장 정력이 센 동물을 답해보라고. 물개, 뱀, 개, 말, 호랑이, 두꺼비, 악어…. 차례차례로 별별 동물을 올렸다. 지목한 명물이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수탉을 아예 점찍지 못했던 게다.
인간의 이기심이 읽혀서일까, 닭 앞에서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대장 닭의 품새, 인위적 육종育種에 의해 변환變換된 마력魔力이리라.
첫댓글
엄지척에 한표
비실비실한 남자들
수닭 강의실로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