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배 | |
전적지 탐방 8 호텔 창에서 투이호아 해변을 바라 봅니다. 투이호아란 말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 거리면서 관심을 가진 도시입니다. 다시 오는 기약을 할 수는 없는 노병이지만 마음에 담고자 봅니다. 고향 마을 같기도 한 아쉬움이 남는것은 이 하늘아래 두고간 전우들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만일 다음에 8학년이 넘어 올수 있다면 오트바이가 자동차로 바뀌어 있겠구나 생각을 합니다. 하우손 역 가기전에 닌호아로 바로 둟힌 터널이 있습니다.유료 도로입니다. 까 고개를 지나지 않고 바로 닌호아로 가는 터널은 2017년 8월에 개통된 길이가 4,125미터 입니다. 터널 기술이 우리보다 못한지 직선으로만 잘 뚫혀져 있습니다. 1번 도로가 4차선으로 잘 다듬어져 시원하게 차가 달립니다. 2일동안 이용한 택시를 이용해서 나트랑으로 갑니다. 중간에 사단사령부를 탐방할려고 합니다. 도로옆 가게에서 시원한 야자 열매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다가 갑니다. 왼편에 현대 조선소가 보이고 바로 9사단 사령부 장소가 나옵니다. 탄흔의 큰 상처가 남은 사령분 정문 돌기둥은 여전한데 마을이 완전히 들어 섰습니다. 인정샷을 남기는데 오른쪽 기둥은 자세히 보면 탄흔을 세멘트로 다 메우고 있습니다. 다음에 전우들이 오시면 이 모습도 못보지 않나라는 생각을 합니다. 사단사령부 전 지역이 뺵빽히 마을이 들어서고 있는 중입니다. 29연대 자리를 가보아도 공장도 있고 전에 보았던 연대정문 기둥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정오가 다 되어 나트랑에 들어와 십자성 사령부 정문에 도착을 합니다. 구글지도에서 십자성사령부 정문을 검색하면 위치가 나옵니다. 도시가 들어 섰는데도 방카를 없에지 않고, 흔적이 남아 있어 우리를 반깁니다. 여기도 백마사단 사령부 이상으로 대 도시이니 발전을 합니다. 십자성 사령부가 있던 곳입니다. 1번 도로 까지 달려봐도 도시가 형성이 되고 있습니다. 돌아와 정문을 지나면 하노이, 호치민 가는 기찻길이 보입니다. 나트랑 가든 레스토랑은 한국인이 경영하는 식당 입니다. 임문오 전우가 고엽제 전우회와 같이 3년 전에 와 보았다고 추천을 해서 검색을 하고 찾아 왔습니다. 이곳에서 호치민 가는 차편을 알 아 보니 차량은 8시간이 걸린다고 합니다. 비행기는 1시간이 걸리지 않는다고 해서 예약을 합니다. 여행사에서 비행기 티케팅을 해서 직접 배달을 해주어서 호치민 가는 걱정을 들었습니다. 캄란공항 에서 출발을 한다고 합니다. 30연대 지역을 스쳐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식사후에 호텔에 도착을 해 서 투이호아 택시는 돌려 보내고 2시간 휴식을 하고 해질 무렵에 5분 거리인 나트랑 해변으로 나갑니다. 천지가 변했는데 우리가 어디쯤 내렸을까를 찾는건 의미가 퇴색을 했고 평화롭고 아름다운 해변에 젖습니다. 어디쯤 엠원을 메고 실탄 지급받고 따불백 메고 내린 기억이 머리를 스칩니다. 붉은 티를 입은 임문오 전우는 67년 1월 보충병이고 3명은 함께 페치호를 타고 나트랑에 도착한 동기 입니다. 날로 장족의 발전을 하는 나트랑 우리가 올때는 해변은 모래사장 뿐이었다란 생각을 합니다. 입갑판에 불이 들어오고 저녁이 시작이 되나 봅니다. 저녁은 길가 국수 사먹는 재미가 붙어 길가에서 자연스럽게 저녁을 먹습니다. 먹는 솜씨가 늘어 채소도 듬뿍 넣고 먹는 모습들이 월남사람 다된 느낌이 납니다. 우리가 가볼 전적지는 계획된 대로 다 가보았고 내일 호치민에 가서 전쟁기념관과 벤탐시장등 호치민 시내투어를 하면 모든일정이 끝이 납니다. 어렵사리 시작된 자 유여행의 일정이 서서히 마무리 되는감이 들어 아쉬운 마음도 들지만 안도가 됩니다. 먼저 자유여행을 다녀본 장영호 전우께 많은걸 물어봐 도움을 받아 감사 했습니다. 배경음악은 고 전재경 전우님 노래를 옮겨와 담았습니다. 해병이긴 하지만 같은 투이호아 출신인데 여행기 마감이 닥아오니 찡하게 그리운 마음이 듭니다.
장 성 표: 알차고 보람찬 여행을 마치신 최 전우님과 세 분의 전우님께 축하의 박수를 보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05/15-09:50]- 홍종만: 백마1진 전우님들의 追憶旅行을 잘보고있습니다. 50여년의 歲月을 거슬러 記憶하며 닌호아 백마사단사령부도 , 나트랑 십자성사령부 痕跡도 살피시네요. 그곳에서 戰死하신 전우님들과 作故하신 沈大興 ,全在炅 전우님도 반가와할 것이라 생각해봅니다. -[05/15-10:11]- 김병장: 네분 선배 전우님 전적지 여행기 앉아서 잘 보았습니다...감사드리며,항상 건강하시고 사모님과 함께 행복하시길 빕니다. -[05/15-10:15]- 박호범: 그동안 베트남 전적지 탐방과 관광 시리즈를 잘 보았습니다. 백마 28연대, 투이호아 짭짜이산, 봉로만 신작로, 까고개가 나올 때는 가슴이 울렁거렸습니다. 고맙습니다. -[05/15-17:07]- 박남철: 네 분의 전적지 탐방기 알차게 짜여진 스케줄 함께하며 관심을 가지고 잘 보고 있습니다. 저는 맹호이지만 당시에 가까운 지역이라 가끔 가봤던 지역이라 관심 있게 보지만 큰 산은 그대로지만 시내는 날 설 군요. 2008년 하우손역 지나 까 고개를 넘어 봉로만 그리고 백마사령부 정문 오른쪽 기둥 중간 탄흔에 철근이 길게 나와 있어 흔들어 보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 자리 시멘트로 메워져 있네요. 나트랑 십자성 사령부는 군인들이 사용하고 있어서 사진도 못 찍었는데. 나트랑 해변은 여전합니다. 해상 케이블카 타고 건너편 리조트 휴양지 모습도 보이고 나트랑 해변은 참 아름다웠던 것 같습니다. 감사히 잘 보고 있습니다. -[05/15-18:37]- 김영배: "투이호아엔 지금 나무가 백빽히 많고 큰 도로가 여기저기 생기고 터널도 생기고 주택이 많이 들어서고 학교도 있고 모텔도 는 큰 도시가 돼서 28연대 라는건 흔적도 없으니 차라리 다른데 가서 놀다 오는게 좋다!!" 베트남을 십여차례 갔다 왔다는 서너명의 어떤 전우들이 내가 28연대 얘기만 하면 그런 말을 해서 옛날말로 내 야코를 죽이곤 했습니다.그런말을 들으면 투이호아를 한번도 못가본 나는 그야말로 가슴이 덜컹 내려 앉는 말이기도 합니다."투이호아 많이 가봤는데 정말야 거기 가나 마나 라니깐그래!" 월남에 많이가본 우월감...한번도 못가봐서 더욱 그리운 나에겐 고향땅 같은곳을 무책임하게?말했습니다. 근데 이번에 제가 가 보니 주택도 별로없고 모텔도 없었으며 학교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도대체 어딜 갔다 왔길래 그런말을 했을까요.그래도 나는, (투이호아에 가면 그래도 뭔가 흔적이 있을꺼야.)그렇게 굳게 믿었습니다.(이사람들이 딴동네를 갔던게야!) 그렇잖습니까? 부산에가서 하루종일 헤메도 대구에 팔공산이 있겠습니까! 중구 대신동이 있겠습니까? "50 여� -[05/15-18:48]- 김영배: "50 여년전, 전사한 전우들을 위해서 술이라도 한잔 따라주며 靈魂을 위로해 줄려면, "혼바산 아래라면 어디던 좋다" 그렇게 일말에 희망만 가득 했습니다.(투이호아가 어디로 이사를 하지 않는한) 베트남을 가기위해 집 앞으로 운행하는 공항버스를 타면서도 줄곳 그생각만을 했습니다. 내가 혼바산 바로 아래에 있어서 청룡바위가 안 보였다"는 내 말을 주목하고..찾은곳 그런데 저 말고 일해 세명은 참 굉장한 기억력을 갖고 있었습니다."갓바치가 세명이면 제갈량을 이긴다"고, 거기다가 대구장로와 서울장로님은 포대 출신이니 혼바산 아래 2중대지역 위치를...그 근방에 이르렀을때, 내가 혼바산 바로 아래에 있어서 청룡바위가 안 보였다"는 내 말을 주목하고..찾은곳.모래와 정글화를뚫는 선인장� -[05/15-18:50]- 김영배: "50 여년전, 전사한 전우들을 위해서 술이라도 한잔 따라주며 靈魂을 위로해 줄려면, "혼바산 아래라면 어디던 좋다" 그렇게 일말에 희망만 가득 했습니다.(투이호아가 어디로 이사를 하지 않는한) 베트남을 가기위해 집 앞으로 운행하는 공항버스를 타면서도 줄곳 그생각만을 했습니다. 내가 혼바산 바로 아래에 있어서 청룡바위가 안 보였다"는 내 말을 주목하고..찾은곳 그런데 저 말고 일해 세명은 참 굉장한 기억력을 갖고 있었습니다."갓바치가 세명이면 제갈량을 이긴다"고, 거기다가 대구장로와 서울장로님은 포대 출신이니 혼바산 아래 2중대지역 위치를...그 근방에 이르렀을때, 선인장밭인...하늘을 덮었던 정글은 사라졌지만 잎에도 가시가있는 나무와 긴 풀잎에도 가시가 많은곳... 그 어떤 그리움...소름이 돋는 서러움이 한꺼번에 몰려(그래 여기가 2중대가 있었어..)흐른는 눈물을... 그렇지만 햇볕은 쬉쬉..사람의 힘을 빼놓는 살인적인 더위에 시키지 않아도 -[05/15-18:51]- 김영배: 그렇지만 햇볕은 쬉쬉..사람의 힘을 빼놓는 살인적인 더위에 시키지 않아도 에어컨 켜져 있는 車 안으로. 몇번을 말하지만 세분의 전우님 덕에 제가 근무했던 지역을 찾고 돌아 봤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일 입니다. 위에 사진 나트랑 해변은 완전 국제적인 관광지더군요. 날씨가 더운 탓도 있지만 바닷물이 뜨듯 합니다.위에 우리 네명이 짝은 사진 뒷쪽에 세워진 아파트 같은 건물은 호텔식 폔션일 겁니다.그리고 그 뒷쪽으로 보이는 해변가 .. 거기 어딘가에 부산 3부두에서 백마 1진을 담은 배(船)가 도착 했을꺼..라고 짐작 합니다. 거기 모래 사장에 내린 우리는 바로 트럭을 타고 캄란으로 달렸습니다.길가에 보이는 집들...날은 컴컴해 지는데 전등 켜진 집은 없고...여섯시간쯤 달려 캄란에 도착..그곳에 있던 청룡과 이틀밤 지내며 임무교대.그리고 청룡은 출라이로 떠났습니다.그당시 캄란은 비행장 만들려고 평탄 작업을 하고 있었고.동시에 다낭에도 몇배 더큰 비행장을 만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28연대는 한달 20일 근무하다가 그때 도착한 29연대에게 인계하 -[05/15-19:11]- 권신기: 백마선배전우님 덕택에 베트남 전적지여행 잘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05/15-21:24]- 조병장: 가슴 벅찬 여행기 잘 봤습니다. 전재경님 생각도 나네요. -[05/15-22:58]- 최덕종: 김영배 전우님이 근무한 2중대 지역을 찾았다니 얼마나 감격스럽겠습니까? 그곳은 외딴곳이라 발전이 안돼 당시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을테니 더 울컥하였겠지요. 동거동락하던 전우를 눈앞에서 10명이나 잃었다니 더 설움도 컷겠지요. 나트랑의 모습은 천지개벽했습니다. 당시는 모래 사장이였는데 저기쯤일거다 하고 짐작만 하게 됩니다. 같이 여행간 기분입니다. -[05/16-06: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