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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계시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종교인 기독교는 크게 천주교(구교)와 개신교(신교)로 나누어진다. 개신교(Protestant)는 중세의 로마 카톨릭이 너무나 성경에서 벗어나 구원이 아니라 멸망으로 인도하고 있는 것을 대항하여 생겨났다. 종교개혁은 '정통'이라 불리웠던 로마 카톨릭의 종교적 체계와 가르침을 거부하고 오직 성경을 최고의 권위로 인정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성령의 감동에 순종함으로 시작되었다.
1.장로교(長老敎, Presbyterian Church) : 약500년 역사
존 칼빈(John Calvin, 1509-1564)과 그의 추종자들에 의해서 이루어진 교파.
신약성경의 초대의 사도적인 교회의 증언에서 유래된 것이며 장로교는 장로들에 의해서 교회가 치리된다. 현대 장로교회의 정체성은 주로 16세기의 유럽에서의 그 신학적, 교회적 발전, 그리고 이에 따른 그 세계적인 발전과 관련되어 있다.
현대 장로교의 뿌리는 존 녹스(John Knox, 1514-1571)와 16세기 후반기와 17세기 중에 영국, 스코틀랜드, 아일랜드에서의 그 역사적 뿌리를 두고 있다.
장로교회는 신학적으로는 칼빈주의와 개혁교회의 영향 아래 작성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자신들의 신앙과 신학의 규범으로 삼고 있다.
장로교에서 장로란?
신약성경에서 사용하고 있는 감독, 목자(목사), 장로를 포함한다.
목사는 장로 위에 있는 직임이 아니고 가르치는 장로에 해당한다.
장로는 교회의 회중이 선출한다.
한국 장로교회역사 : 약 120년 역사
한국 장로교회는 구출라프 선교사가 1832년 7월 중국 위해를 떠나 충청도 안면도에 상륙하고 홍주 읍에 머물면서 선교활동을 하려고 하였지만 홍주성 관리의 거절로 철수를 하였다.
1866년 스코틀랜드 출신의 장로교 선교사 로버트 저메인 토머스가 제너럴 셔면 호를 타고 평양에 입국했다가 순교함(한국 첫 번째 개신교 순교자)
미국의 주재 선교사가 한국 땅을 밟기 이전에 만주에서 활동하던 존 로스(한국명 나약한)가 우리말 성경을 번역하고, 로스에게서 세례를 받은 서상륜 등에 의하여 시작되었습니다. 서상륜을 통해서 우리나라 최초의 교회인 소래(송천1884년, 松川)교회가 황해도에 세워지게 되었다.
1885년 4월5일 부활절에 인천 제물포항에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인 언더우드(H. G. Underwood)가 들어와서 1887년 9월에 언더우드는 정동로교회(새문안교회)로 모였다.
(신문내예배당-정동장로교회예배당)
1892년에는 미국 남장로교회 소속의 선교사들이 들어와 호남지역을 중심으로 선교활동을 시작했고, 1898년에는 카나다 선교사들이 입국하면서 선교는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한국 장로교는 1957년 성서비평학 수용문제로 보수적인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와 진보적인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로 분열되었다.
대한예수교장로회는 세계 교회 협의회 가입문제로 통합과 합동으로 갈라졌으며, 고신, 개혁1,2,3,4,5, 대신, 합신, 보수개혁, 개혁국제, 중앙, 백석, 개혁총연, 진리, 브니엘, 환원, 합동성민, 합동총신, 피어선, 합동개혁1,2,3,4, 고려개혁, 열린, 순장, 합동중앙, 합동보수, 성서, 합동개신, 호헌, 예장합동 등등이 있다.
2002년 문화관광부에 등록된 개신교 170개 교단 중 장로교가 명칭에 들어있는 교단은 118개이다. 2011년 7월 10일 장충체육관에서 한국장로교총연합회(한장총)가 제3회 장로교의 날 대회를 개최하면서 내년 총회 설립 100주년 맞아 연합 정신 강조하며 250개 이상의 교단으로 사분오열된 한국장로교회가 단일교단으로 연합하길 소원한다고 전했다.
2.감리교(監理敎, Methodism) : 약300년 역사
존 웨슬리(John Wesley)는 고교회파(高敎會派)로서 영국국교회에 속해 있으면서 미국으로 전도여행을 떠나는 중 극심한 파도로 요동치는 배에서 안정을 찾지 못하고 죽음에 따른 공포로 심하게 영적으로 흔들리고 있을 때 배안에는 모라비아교도들의 차분하고 안정된 찬송과 집회를 통해 자신이 구원받지 않음을 알게 되었고 이후 영국에 돌아와 1738년 5월 24일 모라비아 교도들이 모인 올더스케이트 거리의 집회소에 참석하여 오후 8시 45분경 인도자가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의 로마서(書) 서문을 읽을 때 갑자기 마음이 뜨거워짐을 느꼈다고 한다. 이 회심의 사건은 존 웨슬리의 생애에서 일대 전환점이 되었고, 감리회의 구원·신앙·성결의 교리를 설명해 주는 산 증거가 되었다.
종교개혁이후 개신교가 생겼으나 오직 성경의 진리만을 좇던 영적 분위기는 사라지고 형식과 교리만을 강조하여 교회는 갈수록 냉랭해져 가고 있었다. 종교 개혁 후 100년이 채 지나지 않아 17세기 중엽부터 유럽 대륙에선 경건주의 운동이 일어났고 영국에서는 옥스퍼드대학교를 중심으로 존 웨슬리(John Wesley)와 그의 동생 찰스 웨슬리(Charles Wesley), 그리고 G.휘필드 등의 대학생 그룹을 중심으로 신앙부흥운동이 전개되었는데 이 형제들에게 영향을 받은 사람들도 초대교회의 신앙원리를 좇고자 새롭게 모임을 만들었다. 이것이 감리교의 기원이다.
감리회의 신앙과 교리는 존 웨슬리가 발표한 25개조의 종교강령과 그의 53개의 ‘표준설교’, 그리고 그가 지은 신약성서 주석에 잘 나타나 있다.
조직의 기본단위는 구역이며, 그것은 하나 또는 그 이상의 교회로 조직된다. 구역들은 지역적으로 지방회를 조직, 감리사가 피차 협동하여 교회조직과 사업발전에 힘을 기울이고 지방회는 다시 더 큰 집단을 형성하여 연회를 조직하며, 연회는 감독이 관할한다. 그리고 최고기관인 총회가 있다.
한국 감리교역사 : 약 120년 역사
1884년 6월 감리교 선교사 R.S. 맥클레이가 김옥균(金玉均)을 통하여 감리교의 선교사업에 대한 허가를 요청한 바 있었다. 그리고 고종 황제는 같은 해 7월 3일 교육과 의료사업에 한해 활동을 허가하여 미국 남감리회는 교육사업을 위하여 아펜젤러를, 의료사업을 위하여 W.B. 스크랜턴을 각각 선교사로 임명했다. 아펜젤러는 1885년 8월부터 자신의 숙소에서 한국인 학생에게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하여 후일 배재학당으로 발전했다.
1895년 10월에는 미국의 북감리회가 한국선교활동을 시작하였다
기독교조선감리회에서 출발하여 현재에는 기독교대한감리회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에 있는 조선 말기의 교회건물. 사적 제256호. 지정면적 1,143.8㎡. 1887년 10월 미국 감리교 선교사인 아펜젤러(Appenzeller, H. G.)에 의하여 미국형감리교회인 베델예배당(Bethel Chapel)이 세워졌다.
(베델예배당- 정동교회예배당)
신약성경에서 감독(bishiop, overseer)이나 장로(elder, presbyter)는 동일한 사람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감독과 장로는 별개 직책의 별개 인물이 아니고 동일한 사람에 대해 사용되고 있는 다른 명칭이라는 사실이다.
(행20:17)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행20:28)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딛1:5~9)
“내가 너를 그레데에 떨어뜨려 둔 이유는 부족한 일을 바로잡고 나의 명한대로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니 책망할 것이 없고 한 아내의 남편이며 방탕하다 하는 비방이나 불순종하는 일이 없는 믿는 자녀를 둔 자라야 할지라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며 오직 나그네를 대접하며 선을 좋아하며 근신하며 의로우며 거룩하며 절제하며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이는 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스려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 이와 같이 기록됨은 장로와 감독을 동일시하는 것을 볼 수 있다.
3.침례교(浸禮敎,baptist) : 약 400년 역사
개신교의 한 교파이다.
침례교는 예수에 대한 믿음을 고백한 후, 신약성경에 근거하여 물에 완전히 잠기는 침례를 주장하기 때문에 침례교회라는 교단 명칭을 갖게 되었다
어떤 견해에서는 침례교의 기원을 신약성서의 침례 요한과 그리스도로 보기도 한다. 이 견해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침례교라 불리지는 않았으나 기독교인들이 회중으로 모여 현재의 침례교의 방식 및 전통을 이어 왔다고 주장한다. 이 견해를 따르면 침례교는 종교개혁 그 이전부터 존재하는 것이며, 일부 근본주의적인 침례교인들을 제외한 대다수의 침례교인은 이 주장을 근거없는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1609년 암스테르담에서 영국인 분리주의자 존 스미스를 목사로 한 침례교회가 최초의 침례교회라고 한다. 신약성경에 근거해 스미스는 영아의 침례나 세례를 거부했고, 신앙에 대한 구체적인 고백이 있는 이들에 대해서만 침례를 주었다.
청교도들은 성공회의 주교제와 예복사용에 반대하고, 민주적인 교회정치제도인 장로제를 요구하며 17세기 분리된 칼뱅주의자들을 말하는데, 이들중 일부가 1620년 영국 런던에 침례교회를 세웠다고 보는 것이다
영국 국교인 성공회의 카톨릭적인 요소와 비 성경적인 행사를 타파하고 초대교회의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운동이 일어났는데 이를 청교도 운동(Puritan. 정결 운동)이라 부른다.
1602년경 청교도들은 집회를 시작하여「독립교회」를 세워나갔다.
이들 중 일부는 신앙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과 유럽으로 이동하였고 1660년 이후 영국 청교도들은 성공회에서 분리하여 회중교회, 장로교회, 침례교회 등의 모임으로 조직되었다.
침례교의 각 교회는 정책, 조직 형태, 가르침에 있어서 각 교회의 독립을 강조하여 전 신자가 제사장 직분자라는 만인제사장설은 모든 기독교인은 성직자들의 도움 없이 하나님과 직접 만날 수 있으며, 성경을 통해 계시된 진리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교리는 "그리스도인은 왕같은 제사장이요, 하나님의 백성이요, 거룩한 민족이며, 우리를 어둠에서 빛으로 이끄신 하나님의 구원을 선언하기 위해서 부름을 받았습니다."라고 고백하는 베드로전서 2장 9절 내용에 근거하고 있으며, 마르틴 루터에 의한 종교개혁 및 15세기 영국교회의 종교개혁자 존 위클리프에 의해 대중화되었다. 침례교의 모든 신자의 제사장 직분은 그들의 종교의 자유에 대한 믿음을 지지하는 기둥 중 하나이다
1792년에 윌리암 케리(William Carey, 1761-1834)는 최초의 침례교선교회를 조직하고 자신이 직접 1793년에 인도의 첫 선교사로 파송되었다. 그는 침례교 내에서 현대 선교의 아버지로 칭송되는 인물로 바이블을 26개의 인도 방언으로 번역까지 하는 열성적인 선교를 전개하였다. 그리고 특수침례교는 1804년에 바이블 번역과 출판사업을 목적으로 특수침례교 나름의 바이블번역회를 조직하였는데 이 일은 미국과 우리나라에서 침례교가 타교단과 독립적으로 바이블 번역 사업을 전개하는 데 선구적인 사례가 되었다
한국침례교회 역사 : 약 120년 역사
침례교회는 1889년 캐나다 독립선교사 말콤 펜윅이 원산에 들어옴으로 전래되었으며, 1906년 충남의 강경에서 대회를 열고 대한기독교회를 조직, 46개조의 회칙을 만들 수 있었고 일제가 볼 때 대한기독교회란 명칭이 불순한 이름이어서 박해가 심했는데 결국 3․1운동 후 일제가 포교 허가제를 포교 신고제로 바꾸자 펜윅은 대한기독교라는 교명을 동아기독교로 바꾸어 등록하였다. 펜윅은 1933년 동아기독교라는 교명을 동아기독대로 변경하였다
펜윅이 사망하자 1940년 동아기독대는 다시 동아기독교로 교명을 바꾸었다. ‘대’라는 명칭이 군대를 연상하여 일제로부터 박해를 받을 여지가 있을 뿐만 아니라 이 명칭은 펜윅이 고집하였을 뿐 다른 사람들은 이 명칭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제 말기에 침례교는 성결교 등과 함께 신사참배를 끝까지 반대하여 교단이 해체되는 위기를 겪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 당시 침례교의 예배와 집회가 금지당한 것은 물론이고, 교회 건물과 대지 그리고 종각까지 국방헌금이라는 명목으로 몰수당하였다고 한다.
동아기독교는 1946년 감목체제를 회중체제로 바꾸고 임원 명칭도 전통적인 명칭을 버리고 일반 다른 교파에서 사용하는 명칭으로 변경하였으며, 교역자도 종전의 파송제에서 청빙제로 바꾸었다. 그러자 구체제를 옹호하는 일부 교인들을 중심으로 10여 개의 교회가 대한기독교라는 교명을 걸고 분리해 나갔다. 이후 대한기독교는 대한기독교침례회라는 교명으로 활동을 하다가 1952년 충남 칠산에서 개최된 42회 총회에서 대한기독교침례회는 다시 대한기독교침례회연맹으로 교명을 바꾸었다.
한국침례회연맹은 1976년 교명을 다시 기독교한국침례회로 변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또한 1954년 미국 선교사 아이잭 포스터에 의해 한국성서침례친교회가 선교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대한선교침례회연합회라는 침례교 교단이 있다.
4.성결교(聖潔敎, The Holyness Church) : 약 120년
19세기 후반 미국에서 영적 대 부흥 운동이 일어났는데 성령 충만을 통한 거룩한 삶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새롭게 초대교회의 모습으로 돌아가고자 모인 것이 성결교의 시초이다.
감리교 창시자인 웨슬리(Wesley,J.)의 완전주의적 입장을 강조하며 형성된 교파이다. 완전주의적 입장이란 기독교인은 내적인 죄뿐만 아니라 외적인 죄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어야 완전한 성결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죄 없이 완전한 기독교적 삶을 이루게 해주는 회심(回心)의 경험이 중요하게 부각된다. 대체로 성서의 무오류성·축자영감설, 그리스도의 임박한 재림 등을 신뢰하는 근본주의적 신앙을 지니고 있으며, 세속적 관습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분리주의적 입장을 취한다.
한국성결교회역사 : 약100년 역사
한국성결교회의 시작은 미국인 카우만과 일본인 나카다 주지가 1901년 아시아의 모든 나라에 온전한 복음을 전파한다는 목적에서 일본에 세운 동양선교회로 19세기 후반 미국 감리교회가 웨슬리의 정신을 제대로 이어받지 못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웨슬리안 성결운동을 일으키고 그 일환으로 설립한 단체
나카다 주지가 1904년 한국에 순회전도여행을 하며 '성결'과 '재림'의 복음을 전한 것이 계기가 돼 김상준과 정빈이 동경성서학원에서 큰 감명을 받고 한국으로 돌아와 1907년 5월 30일 '동양선교회 복음 전도관'을 설립한 것이 한국성결교회의 시작이었다.
5월30일 창립집회에서 5명의 구도자가 나왔고, 전도관을 연지 6개월만인 1908년 1월에 272명이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1911년에는 <경성성서학원>을 세워 4중복음의 전도자들을 양성하기 시작하였는데 이가 바로 서울신학대학교의 전신입니다. 1921년에는 `조선예수교 동양선교회 성결교회'를 설립, 교회를 조직하고 국내 성결교 선교의 포문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1949년 4월 기독교대한성결교회로 명칭 변경.
1950년 6월 6. 25동란으로 다수의 교회가 파괴, 폐쇄되고 다수의 성도가 순교 당함.
1957년 5월 50주년(희년) 기념사업으로 기념관 건립, 기념선교집 발행.
1961년 4월 연합기관(N.C.C. 및 N.A.E.) 탈퇴문제로 교단 분열.
1965년 7월 분열되었던 교단 역사적인 합동성취.
2005년 9월 양 교단 첫 강단교류 실시.
2006년 3월 양 교단 1백주년 대회를 위한 공동기도회 개최.
2007년 5월 양 교단 창립 1백주년 및 기념대회.
(2007. 5. 16. 한국기독공보 / 신동하 기자)
현재 성결교는 기독교대한성결교회와 예수교대한성결교회 두 교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상으로 4개교파만 살펴보았다.
역사적으로 보면 로마 카톨릭 이후에 생겨난 개신교는 정통이 아니다 그러나 정통은 오랜 역사로 결정되는 것도 아니며 더욱 다수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오직 성경을 최고의 권위로 두며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가를 살펴보고 그대로 따르는 것이 정통이다.
하나님말씀 성경 (고린도전서1:11~13)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편으로서 너희에게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이는 다름 아니라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는 것이니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뇨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뇨”
종교개혁의 기수였던 캘빈, 루터, 웨슬레 등 하나님의 사람들은 어떠한 종파나 교단 또는 조직도 만들려고 하지 않았으며 진리를 밝히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자 했는데 그들을 따르던 사람들이 특정한 가르침을 강조하면서 분파가 생겨났다.
거대한 종교조직으로 타락한 로마 카톨릭에 대항하여 신앙을 지켜온 모임들은 다양한 모습을 갖고 있었지만 성경을 통해 올바른 평가를 받기도 전에 로마 카톨릭에 의해 이단이라 하여 극심한 박해를 받으면서도 종교개혁 이전 기독교는 성경에 나타난 신약교회의 순수한 신앙을 가지며 경건하게 생활했다는 것이다.
외형적으로 로마 카톨릭이 정통으로 인식되어 왔으나 종교개혁을 통해 로마 카톨릭의 비성경적 교리에 맞서 오직 성경에 계시된 진리를 고수한 무리들이 정통이었음을 역사는 증거하고 있다.
신약에 기록된 초대교회의 순수한 신앙과 진리를 회복하는 것을 소명으로 여기고 복음을 전하며 진리를 지켰던 16세기의 종교개혁이나 17세기의 경건주의 운동, 18,19세기에 일어났던 신앙 부흥운동의 초점은 『성경으로 돌아가자』였다.
장로교나 감리교, 침례교나 성결교 등 정통적이라고 말하는 교파에 속했다고 해서 정통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만을 신뢰하며 성령의 감동에 순종하는 교회가 정통이다.
전통은 이런 초대 그리스도인의 신앙정신과 교리를 본받는 것이다.
훌륭한 믿음의 선배들의 궁극적인 신앙 목표는 초대교회의 신앙이었다.
내가 속한 교회와 같지 않고 다수와 같지 않다고 해서 함부로 판단하는 것은 무척 어리석은 행동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모든 것을 분별할 수 있도록 성경을 통해 기준을 제시하였는데 내가 속한 교단의 가르침과 유명한 신앙지도자들의 말이 기준이 될 수 없다.
오직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 깊이 살펴 본 뒤 정통성을 결정해야 할 것이다.
어떤 모임이 정통이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기준은 성경이어야 한다.
교단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도는 한국기독교계를 제외하면 그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한국의 경우 교인끼리 만나면 처음 던지는 질문이 어느 교파에 속한 교회에 다니냐 입니다. 이는 물론 쉽게 이단 집단에 속해있는지를 구별하는 손쉬운 방법 중의 하나라고 긍정적으로 보아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중생한 그리스도인인가에 대한 교제가 어느 교파소속 교인인가보다 훨씬 중차대한 문제입니다. 그 이유는 교회출석이 구원을 보증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기존교단에 소속된 교회가 아니면 무조건 잘못된 교회로 생각하는 것은 무지의 소치일 수밖에 없습니다. 기실 미국기독교계의 경우 기존 교단에 소속하지 않을지라도 정통신앙을 고수하며 복음을 증거하는 교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같은 교회를 일컬어 독립교회(Independent Church)라 부릅니다.
미국의 유명한 방송설교자인 존 맥아더(John Macarthur)는 ‘두란노 서원’과 ‘생명의 말씀사’ 의 번역서를 통해 한국 교회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고 ‘은혜 공동체교회’(Grace Community Church)의 경우 어떤 특정 교파에 소속되지 않으나 2만 가량의 교인을 둔 교회로 미국에서 여타 교회의 귀감으로 손꼽히는 교회중의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독립교회를 하면서 미국 기독교계 그리고 한국에도 ‘영적싸움’, ‘그리스도의 지체’ 등의 역서로 잘 알려진 레이 스데더만(Ray Stedman)이 목회하는 ‘반도 성서 교회’(Peninsula Bible Church)도 기존 교파와 무관하게 성경을 중심으로 교회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같은 교파를 초월해서 모이고 있는 수많은 독립교회가 결코 이단의 시비를 받아본 적이 없음은 주목할 만한 일입니다. 여기서 한국 교계에 잘 알려진 전도자요 선교 학자로서 교인 한 가정에서 한 사람 꼴로 해외 선교사를 파송한 바 있는 캐나다의 ‘민중교회’(People`s Church)의 목회자 오스왈드 스미스(Oswald Smith)의 글을 되새겨 봅시다.
“우리가 천국에 올라가면 거기서는 장로교인, 감리교인, 침례교인, 오순절교인, 플리머스 형제단, 성결교인 등을 한명도 만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를 통해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만 상봉하게 될 것이다.” (오스왈드 스미스의 저서 ‘나의 가장 사랑하는 나라’ 중에서)
오스 기니스는 교파주의가 현대의 임의적인 개인주의 성향에 기초한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오스 기니스는 기독교 출판물의 베스트셀러인 ‘소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세계 기독교 백과사전에 의하면 20세기 초에는 약 1,900개의 기독교 교파가 있었는데 20세기 말에는 22,000개로 추정된다고 한다. 역사적인 돌발사건인 교파가 현대 세계의 영향력 아래서 하나님의 교회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신학적인 재난이 되어 버렸다. 이에 비해 존 번연(John Bunyan)의 관대한 정신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내가 바라는 대로 나는 그리스도인이고 싶다. 그러나 재침례파, 독립교파, 장로교파 등과 같은 파당적인 호칭에 대하여 나는 그들이 예루살렘이나 안디옥이 아니라 지옥이나 바벨론에서 왔다고 결론 내린다.”(오스 기니스의 ‘소명’ - 한국 기독학생 출판부(IVP))
하나님말씀 (사도행전24:1~27)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염병이라 천하에 퍼진 유대인을 다 소요케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
대제사장 아나니아와 어떤 장로들이 변사 더둘로를 앞장 세워서 사도 바울을 고소하는 내용으로서 그 고발에 대해서 바울이 변호하고 그 다음은 우유부단하고 양심불량이며 요즘 말로 비자금조성의 대표 정치가 벨릭스의 직무태만으로 2년간 바울이 옥고를 치룬 내용인데 타락한 유대의 교권과 정권이 야합해서 사도 바울을 고소 고발에 대한 바울의 명쾌한 변증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놀라운 진리와 삶의 방향을 제시한다고 할 수 있다.
교파는 성경적이지도 않고 출발기원도 올바른 것이 아닙니다.
통영교회는 이러한 교파명을 쓰지 않고 성경을 따라 지역의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인 지역교회로 주님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파명칭을 쓰지 않는다고 하여 이단으로 규정하는 것만큼 어리석고 사려 깊지 않은 비성경적인 행동은 없습니다.
첫댓글 제가 제도권교회를 떠난 사람이지만, 기성 교회에도 좋은면은 있다고 봅니다.
혹시, 추가적으로 알려주고 싶은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교단이 있고 없음으로 정통이냐 이단이냐가 아니라, 성경적이냐에 따라 다릅니다.)
정통적이라고 말하는 교파나 교단에 속했다고 해서 정통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만을 신뢰하며 성령의 감동에 순종하는 교회가 정통이다. ◀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
잘 정리가 된 글이네요. 장로교,침례교,감리교,성결교 .... 대한민국의 주요 4대 교파입니다.
그들이 성경말씀을 따라 운영한다고 말은 하지만, 실상은 성경에서 벗어난 내용이 많습니다.
저 교단들이 어서 빨리 성경으로 돌아가기를 기도합니다. 사람들이 만든 종교는 교회가 아닙니다.
개인적으로는 5대 교단은 장로교회, 감리교회, 침례교회, 순복음교회, 성결교회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