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좋은 계절 5월, 화창한 봄날(2019. 5. 10) 여성 소공동체에서 화성시 양감면에 있는 요당리 성지 순례를 다녀왔다.
옛 지명이 ‘느지지’로 불렸던 요당리 성지는 바닷물이 들어왔던 서해안 바닷가 외진 마을이었다. 신유박해(1801년)를 기점으로 서울과 충청도 내포 등지의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이주하면서 형성된 교우촌(양간 공소)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요당리는 기해년(1839년)과 병인년(1866년)에 일어난 두 차례의 박해를 통해 수많은 순교자를 배출한 신앙의 요람지이다.
모진 박해시대를 통해 오랫동안 우리들 기억 속에 잊혀졌던 요당리 성지는 장주기 요셉(1803-1866) 성인이 태어나 성장하며 신앙의 기반을 다지고 주위 친척과 교우들에게 신앙을 전파한 곳이다. 박해를 피해 배론 성지(원주교구)로 이주(1843년)한 후 자신의 집을 신학교로 쓰도록 봉헌하고, 신학생들에게 한문을 가르치는 등 신학생 및 선교사들의 뒷바라지에 헌신했다. 이후 병인박해(1866년) 때 체포돼 서울로 압송돼 1866년 3월 30일 성 금요일에 충남 보령, 현 갈매못에서 다블뤼 주교, 황석두 루카 회장 등과 함께 참수치명 당했다.
이곳 요당리 성지에서 태어났거나 순교한 분들 가운데는 장주기 요셉 성인 외에 복자 장 토마스 등 여러 명이 있다. 또한 교회 재정 확보를 위한 전답이 운영되었던 곳으로 그 책임을 맡았던 민극가 스테파노 성인과 공소회장을 맡아 신앙전파에 힘쓰다 순교한 정화경 안드레아 성인이 활동했던 곳이다. 그리고 박해를 피해 피신했던 성 앵베르 주교와 그분의 피신을 도운 손경서 안드레아 순교자의 얼이 서려 있는 곳이다.
이런 역사적 중요성으로 인해 2006년부터 전담사제를 파견해 성지 개발을 본격화했다. 2009년 성당과 부속건물들을 완공해 다음해 5월 11일 봉헌식을 가졌다. 아름답게 조경된 성지의 모습은 마치 성모님 품처럼 아늑한 느낌을 주는 예쁜 성지로 전담 신부님의 수고로운 손길과 정성스러운 마음이 느껴졌다.
대성당으로 올라가는 계단 가운데에 손 모양의 조각상은 성당 건축에 큰 도움을 주신 방윤순(마리아) 자매에 대한 감사의 표시인 봉헌의 의미로 조각해놓았다.
대성당 계단 오른쪽에 장주기 요셉 성인상이다. 64세에 돌아가실 때까지 복사를 서시고 총회장님의 직분으로 신자들을 돌보고 성모회장님처럼 뒷바라지를 하셨다.
대성당 입구의 바다의 별 성모자상. 성모님의 변함없으신 사랑의 모습을 상징하고자 금도금으로 장식되었다. 성모님의 모습처럼 변함없는 사랑과 기도를 드려야하겠다.
성당 내부의 은은한 나무 향기가 나는 천정과 한 개 한 개 벽돌로 구워 만든 제대 뒤의 붉은 벽은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느낌이 들었다.
제대 뒤 십자고상은 가로 부분이 없다. 이 십자고상은 성경 안에 나타나는 예수님의 삶 전체를 몸짓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십자가의 가로 부분이 없는 것은 “십자가는 등에 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 안고 가는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이 표현이 마음에 와 닿았다. 십자고상 뒤의 흰 벽돌 부분은 성령의 빛을 나타내며 성령께서 예수님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라고 한다. 예수님의 가녀린 팔과 어깨에서 예수님의 고통의 무게가 얼마나 컸을지 느껴진다.
요당리 성지에는 장주기 요셉 성인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 신부님께서 장주기 요셉 성인의 순교적인 삶이 우리에게도 함께 나누어지기를 바라시면서 미사 후 장주기 요셉의 유해 강복을 주셨다.
대성당 맞은편 소성당은 작고 아담스러웠다.
소성당의 ‘십자가의 길 14처’가 특이했다. 조각가 이효주(아나스타시아, 서울 중림동 본당)씨가 1998년 2월 뜻하지 않은 화재로 일부 소실된 서울대교구 중림동 약현 성당의 불에 탄 나무를 소재로 만든 의미 있는 작품이다. 불에 타다 남은 나무에서 거룩하고 아름다운 십자가의 길이 조각된 모습은 모진 박해 속에서도 신앙을 지켜간 요당리 신앙 선조들의 삶을 묵상하게 했다.
기도의 광장 중앙에는 성모자상이 모셔져 있다. 남양 성모 성지의 성모자상과 같은 것이다. 요당리 성지 개발 초창기의 어려울 때 남양성모성지의 신부님과 후원자들이 봉헌한 것이라고 한다.
기도의 광장 오른쪽에 조성된 예수님의 수난을 묘사한 특이한 십자가의 길 14처는 조각가 이숙자 체칠리아 수녀님(샬트르 성바오로 수녀회)의 작품이라고 한다. 우리가 말을 할 수 없을 때 손짓 발짓으로 언어전달을 하는 것처럼 2천 년 전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된 사랑의 표현을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손짓과 발짓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손과 발로 만들어놓았다고 한다. 많은 기도와 묵상 끝에 나온 작품임을 느낄 수 있었다.
(사진 이해석 수산나)
기도의 광장 왼쪽으로는 묵주기도 길(로사리오 길)이 조성돼 있다. 묵주 알이 항아리 모양이다. 옛날에 옹기를 구어 팔며 생계를 유지했던 교우촌을 상징하기 위해서 항아리 모양으로 묵주 알을 만들었다고 한다.
십자가의 길 14처 기도가 끝나면 ‘성역화 광장’에 이른다. 대형 십자가 아래로 요당리 교우촌에서 신앙을 살다가 순교하신 분들을 기억하기 위해 순교자들의 가묘가 조성되어 있다. 하지만 이곳 성지에서는 장주기 요셉 성인의 유해를 모시고 순교선조들을 현양하고 있다.
순교로 하느님을 증거 했던 많은 성인과 순교자들의 발자취가 스며있는 요당리 성지의 경건한 분위기에서 현재를 사는 우리 역시 신앙이 내 삶의 중심이 되도록 다짐하는 시간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