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8일 辛未일
정관 묘, 정재 관대.
未는 천을귀인. 미완성, 결론나지 않는 일, 갑목(비견) 입고(자자 입고), 계수(정인) 입고. 그리고 년살.
갑일주에게 미는 천간에서 기토. 갑기합을 이룬다. 특히 미는 자자 입고의 행위를 하는데
이는 부정적인 의미보다 '자기가 죽을 무덤 자리를 안다'. 즉 자신을 숙이고 낮추고 겸양할 줄 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편관 운엔 법원 경찰청 관아 주변으로 가고, 인성 운엔 학교 뒤로 간다더니
세운에서 인성을 만난 올해 나는 초등학교 앞으로 이사와 매일 학교를 오간다.
오늘은 인조 잔디 깔린 운동장에서 축구하는 아이들을 보며 주변 트랙을 열 바퀴 돌았다.
서울에선 중딩 여학생들의 걸쭉한 욕에 깜짝깜짝 놀라곤 했는데
이곳에선 초딩들부터 시옷, 쌍지읒 욕을 아주 찰지게 구사한다.
그런데 내용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XX” 등등 영해 어르신들이 할 법한
클래식한 어휘라 혼자 웃고 말았다.
하긴 나도 한 때 욕 삼종세트로 유명했다. ‘썩을, 빌어먹을, 얼어죽을’
소설이나 드라마에나 나올법한 문어체 욕을 삼종 세트로 쏟아놓으면
같이 일하는 친구들이 자지러지게 웃곤 했다. 욕을 하고 또 먹어도 유쾌했다.
일이 전부였지만 사실 그 일을 함께 하는 사람들에 기대 흘러간 시절이었다.
초등학교를 나와 발길 닿는 데로 마을 골목을 누비다가 큰 길에서 새로운 놀이터를 발견했다.
영해문화예술회관 옆으로 끝없이 도열한 계단을 올라가니 아주 힘줘서 세운 기념비가 나타난다. 3.1의거탑.
꽤 높은 지대에 위치해서 멀리 관어대까지 보이고 주변 마을 전경도 한 눈에 들어온다.


로터리에도 만세운동 기념비가 있고 도로명도 318만세길에다
마을 외곽에도 의거비를 세운 걸 보면 영해 사람들의 자존감은 참으로 빳빳하고 짱짱하다.
그도 그럴 것이 영해는 신라 때 우시군국이란 독립국가였고 고려에 병합되며 예주가 되었다.
조선조까지만 해도 영덕과 주변 면을 호령하던 도호부였고 영양 남씨 집성촌 등 뼈대 있는 반가 마을이었지만
일제 때 의병 활동의 근거지라 하여 군에서 면 단위로 강등되었고
복권되지 못한 채로 현재에 이르렀다. 영해주민들로선 비분강개할 일이다.
그런 역사가 있어서 영덕이 아닌 영해의 장날이 토산인 주산의 기운을 받아 5, 10일로 전해져오고
장날도 면소재지로선 최대 규모라고 한다.
기세등등한 영해 사람들의 기질은 이젠 선거 때마다 초지일관 빨간 색을 도배하는 것으로 드러난다니
그저 웃지는 못할 일이다.
그렇게 마을 외곽까지 한 바퀴 돌고 집으로 돌아와 씻고 숨 고르니 수업시간이다.
“생명이 길려면 변해야한다.”
“명리는 상징인가? 현실적 도구인가?”
“상징을 그 사람으로 착각하지마라.”
“나에게 속지마라. 나의 고정관념에 속지마라.” 개운법의 신묘한 첩경까지...
다소 혼란스럽고 생각이 많아지는데 어느새 깊은 밤.
캄캄한 하늘엔 먼 개구리 떼 창만 가득하다.
여름밤, 깨어있는 건 오롯이 혼자 였다.
첫댓글 매력적으로 변하고 계시는 군요~~ㅎㅎ
오늘도 영해 잘 느끼고 갑니다~
계속 계속 올려주세요~
영해 탐사보도(?) ㅎ ㅎ
감사요~
즐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