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인제군 서화리에 있는 DMZ평화생명동산에서 대화모임. 평화생명동산 활동가들, 인제 천리길, 풍류예술단의 주민들이 함께 했다. 멀리 빛고을광주에서 김경석, 이승민 학생도 와서 순례단에 합류했다. 아침 일찍 광주를 출발해 버스를 타고 이리저리 돌아 해질무렵에 이곳까지 온 친구들. 반가웠다.
먼저 인제군 각 지역의 남녀노소 주민들로 구성된 DMZ평화풍류예술단의 고구려의 북소리 공연이 있었다. 2017년에는 6월민주항쟁 10주년 기념식에서 공연을 했고, 올해 평창올림픽때도 공연을 했던 팀이다. 지성철 단장님의 "오늘 은빛순례단의 평화순례에 북소리로 응원하고 싶었다"는 말씀이 고맙고 고마웠다.
"고구려 북소리는 말이 달리는 듯한 힘찬 소리를 비롯해 요동반도와 만주벌판을 호령하던 우리 민족의 기상과 역동성을 느낄 수 있는 소리와 무예. 기천의 일체의 화려함과 깊이가 있어 일반 난타와는 다른 전통적인 우리 가락"이라고 한다.
우리가 평창패럴림픽 행사뉴스를 통해 들었던 그 고구려 북소리 공연이다.
정말 말이 대지를 박차고 달리며, 심장이 고동치는 것 같은 시간. 정말 큰 기운을 받았다. 북소리 공연을 마치고도 힘차게 뛰는 심장의 박동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그 가운데서 대화모임이 열렸다.
이부영 은빛님은 ""어제 오늘 고성과 인제를 걸었는데, DMZ 접경지역이 우리 남한에서 얼마나 특별한 곳인가를 대번 느낄 수 있었다. 38도선 이북이었다가 수복된 곳이어서 갖는 아픔과 상처가 많은 곳이라 어떤 말을 하기가 매우 조심스럽기도 하다."면서 "그렇지만 아픔과 상처가 많은 곳이니만큼 젊은 세대들에게 은빛세대의 갈등과 대립을 물려주는 것은 죄업을 물려주지 말자는 은빛순례의 마음이 잘 전해졌으면 하는 마음이 더 크다."고 했다. 그리고 은빛순례에서 느낀 바를 전했다.
도법스님은 "그간 순례하면서 돌아본 강정마을도 성주 소성리를 비롯하여 모든 곳이 좌우대립과 분단으로 인한 전쟁이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 현장이었다고 느꼈다."면서 "한반도 평화라는 것도 일상의 평화, 지역의 평화를 포함하지 않으면 뜬구름 잡는 일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남북정상회담을 잘 보면, 한 가지 화두가 보인다. 그것이 무엇이겠는가.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니고, 오늘 여기 대한민국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이 무엇일까. 북녘동포들에게 가장 절실한 게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한반도 평화다. 그래서 만나고 대화하는 거다. 정상회담의 그 문제의식과 지혜를 우리 일상으로 가지고 와서 지역에서도 만나고 대화하는 일을 해나가야 한다. 그것은 우리 일상의 평화, 지역의 평화를 만들어가는 일이고, 남북평화를 만들어가는 데도 귀중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우리 사회문제와 삶이 문제는 만나고 대화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다루지 않아서 커진 것이다. 만나지 않는 것, 대화하지 않는 것, 그게 사실은 우리 안의 가장 큰 적폐다. 우리안의 정상회담이 필요하다."
그리고 주민들의 말씀을 경청하는 시간을 가졌다.
고성과 마찬가지로 인제에서도 접경지역의 아픔과 상처에 대한 고백이 많다.
비어 있는 역사.
저는 우리 인제의 역사에 관심이 많다. 그러다 보니 80세가 넘은 어른들을 모아서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는 활동이 많다. 인제에는 45년부터 55년까지의 역사에 대한 자료가 별로 없다. 역사라고 복원된 것들이라고 해봐야 미국이 노획한 자료에서 알 수 있는 노동당 활동 같은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니 실제로는 비어있는 역사다. 어른들이 해주시는 옛날의 일상이야기를 들으면서 많이 채워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느낀 것이 많다. 이런 일도 몇 차례 경험했는데, 사람이 죽어가는 이야기를 너무 담담하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총맞아 죽고 밥먹다 죽고 그랬다는 이야기들을. 눈빛 하나 흔들리지 않고 말이다. 누군가 죽었는데, 그것은 내가 될 수도 있었고, 또는 내가 죽일 수도 있는 상황들에 대한 이야기인데, 어떻게 저렇게 담담하게 말할 수 있을까. 처음에는 그게 이해가 안 갔다. 지금 어렴풋이 알 것 같다는 생각도 들지만 여전히 의문을 갖고 있다. 그분들은 전쟁당시에 사람이 죽고 죽이는 것을 비일비재하게 보아왔던 거다. 죽음이 항상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다. 자신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어떤 힘이 자기 삶을 짓누르고 자기 인생이 바뀐 거다. 두려움이다. 아마 집집마다 태극기가 걸려있는 것을 보셨을 거다. 그게 단순히 애국심일까? 자신이 남한체제 지지자임을 어떻게든 보여주려는 마음은 아닐까? 8.15 해방 이후 이럴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그 마음을 어떻게 어루만지고 같이 안고 갈 수 있을까.
갈라진 마음들을 아우를 수 있는 더 큰 화두는 무엇일까.
한국전쟁 전후에 있었던 사건들과 이후 개인사적으로 얽히고 설킨 이야기들이 어떤 화두를 통해 풀어질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한다. 이분들이 어떠한 것을 가지고 모든 것을 내려놓거나 덮을 수 있을까. 아직도 답을 찾고 있다. 오늘 은빛순례단과 인북천을 함께 걸으면서 그 생각을 더 했다. 인북천을 따라 걷다보면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과거 인제군이었던 펀치볼(현재는 양구에 속함)로 향하고, 우측으로 꺾어지면 금강산으로 올라간다. 즉 인북천 제일 꼭대기로 간다. 북쪽 서쪽으로 갈라지는데, 오늘 걷는데 자꾸만 그 생각이 나더라.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은 각자의 편의대로가 아니라 또 하나의 선택이 있어야 하는 일이 많다. 예를 들어 땅 문제만 봐도 미수복지구 또는 북한에 땅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 북은 북대로 남쪽에 땅이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진동같은 동네는 땅주인이 하나도 없다. 전쟁 당시에는 북한세상이었고, 전쟁이 끝나고 남한땅이 되자 보복이 두려워 주민들이 전부 월북을 해버렸기 때문이다. 그후 적산처리하듯이 처리 되었다. 그런 갈등들을 어떤 큰 화두로 덮거나 중화할 수 있을까.
상대방의 경험에 녹아있는 맥락을 들여다보겠다.
마을사람들을 일상적으로 만나는 입장이다 보니 일상의 평화, 마을의 평화, 지역의 평화라는 말이 굉장히 마음에 많이 와닿았다. 그리고 그것이 궁극적으로는 큰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말을 들으면서 마을이 중심이라는 말이 다시 생각나고,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인제는 전쟁 전후의 경험에서 수동적인 의식도 많지만, 또 한편으로 마을이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고, 열린 모임이나 광장도 약해서 폐쇄적인 측면도 많은 것 같다.
저희도 어떻게 보면 그분들이 가졌던 역사적 경험, 개인적 경험에 녹아있는 맥락들을 고려하지 않고, 내가 옳다는 관점에서만 적대시한 태도를 취하지 않았나 하는 반성도 해본다. 좀더 열어야 되겠다. 마을에서부터 그분들과 대화를 통해서 녹여내고 화해하는 작업들을 해보고 싶다. 오늘 은빛순례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희가 어떤 마음과 태도로 마을사람들과 만나야 되는지 많이 참고가 되어서 좋았다.
남북화해라는 큰 그림을 보느라 놓치는 것은 없는가.
지금 시기가 정말 중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작년에 한반도 전쟁위기상황으로 모두 두려움이 많았는데, 남북대화, 북미대화의 문이 열려서 그래도 희망을 갖게 되었다. 만약 이러한 분위기가 깨지면 훨씬 안 좋아질 것이다. 그래서 많은 노력이 있어야 하는데, 은빛순례단도 그런 노력의 일환이라고 생각하니 고마울 뿐이다.
지금의 상황들은 큰 파도와 같다. 겉으로는 남북대화, 북미대화만 보이지만 구체적으로는 함께 일렁이는 많은 포말들을 함께 봐야 한다. 예를 들어 GP(휴전선 감시초소) 철거문제도 그렇다. 남쪽에 80개 북쪽에 160개의 GP 가운데 우선 남과 북 반경 1키로미터 이내에 있는 11개씩을 없애고, 한 개씩은 남기기로 했다고 하더라. 이번 주 내내 GP철거문제가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고, 어제부터 10개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철거를 시작했다. 맨 처음에는 폭파방식으로 제거하려고 했으나 문제제기를 하니까 지금은 포크레인으로 철거를 하고 있다.
이 지역은 오랫동안 분단과 대결의 장소였는데, 너무 급하게 철거를 서두르는 것은 아닌가. 휴전선과 GP가 분단의 상징성이 워낙 크기 때문에 GP철수가 남북화해를 잘 보여주는 상징적인 행위가 된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너무 급하게 철거를 서두르는 것은 아닌가.병력과 무기만 나와줘도 일단은 서로간의 우발적인 충돌은 방지할 수 있지 않은가. 그곳은 이후 평화나 생명에 대한 교육장으로서 의미가 큰 곳이다. 무조건 철거하기보다는 휴전선 철책선, GP, DMZ생태계 등 남북화해 이후에 가질 의미와 활용방안 등에 대해 다각도로 논의해가면서 추진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국민적으로 의미를 더 살릴 수도 있을 것이고.
GP철수문제만이 아니다. 지금 인제군에서는 민통선 안에 도로를 계획하고 있다. 어디 인제뿐이겠는가. 고성도, 양구도, 철원도 다 그런 그림을 그리고 있을 것이다. 예전에 남과 북을 오갔던 도로가 대략 23개가 넘을 거다. 그런데 곳곳에서 너도 나도 복원이니 어쩌니 하면서 도로를 계획하면 휴전선 155마일(248km)는 다시 남북으로 동서로 잘라지게 되는 것이다. 각 지자체들은 무섭게 그 길로 달려갈 것 같은 태세인데, 이런 부분은 또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남북평화시대를 여는 걸음이라고 그냥 두고 보기만 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앞에서 은빛순례단이 하신 말씀에는 공감한다. 지금 조성되고 있는 남북화해의 분위기가 남북평화시대로 이어지도록 전국민적인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는 피해자든 가해자든 이 분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화해할 수 있는 남남갈등 해결노력도 필요하다. 거기에 덧붙여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실제적으로 접경지역인 DMZ를 이후에는 어떻게 가꾸어갈 것인지에 대해서도 공론화가 되고 면밀한 검토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이 지역은 국립공원, 천연보호구역, DMZ이라는 특수성이 있다. 이유야 어떻든 생태환경적으로 보존되어온 것들이 많다. 그런데 남북화해의 큰 그림 속에서 이런 것들이 깡그리 무시되거나 또는 각 지자체의 이해에 따른 열망으로 무분별하게 달려갈 공산이 크다. 지금부터라도 이 부분에 주의와 관심을 촉구해가야 한다.
"다 필요없어. 전쟁만 안 나면 돼."
제 고향은 속초이고 아버지가 북쪽을 고향으로 두신 분이다. … 이산가족찾기가 한창일 때 아버지께 "왜 이산가족찾기에 신청을 안하느냐"고 물은 적인 있다. "북에 있는 가족들에게 피해가 갈까봐서"라는 대답을 들었다. 다시 말하면 북에 있는 가족들이 월남한 자식이 없다고 말하고 살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이산가족 찾기에 신청을 하면 거짓으로 신고한 게 되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이처럼 우리 윗세대는 아직까지도 그런 식의 생각들이 강하게 남아있다. 그래서 휴전 후 70년이 지났지만 그 아픔, 그리고 두려움은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계속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아까 보수와 진보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아버지 세대의 사람들은 거의가 보수적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올해 평화국면이 되면서 아버지를 비롯해 어른들에게 심정을 물으면 이렇게 말씀하신다.
"우리는 다 필요없어. 전쟁만 안 나면 돼."
저는 그게 진심으로 들렸다. 전쟁을 겪으면서 생사의 갈림길을 왔다갔다 하신 분들이다. 전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진짜로 아는 분들이다. 이럴 때일수록 이분들에게 잘해야겠다. 특히 이야기를 잘 들어드려야겠다. 그게 이웃의 평화를 만드는 길일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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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현실감이 느껴지는 대화들, 그리고 현장에서의 깊은 고민들을 만났다. 이미 평화로 살아가고 있는 분들이다.
다들 댁으로 돌아가고 나서도 나눴던 이야기들이 귓가에 맴 돈다.
"우리는 다 필요없어. 전쟁만 안 나면 돼."
갈라진 마음들을 보듬어 안을 수 있는 제일 큰 화두, 그것은 역시 '평화'였다.
DMZ 인근 마을에서 바라보는 밤하늘의 별... 와우, 저런 게 정말 초롱초롱 빛나는 별이지.
하늘 가득 쏟아져 내려올 것 같은 별님들께 그냥 이런 기도가 나온다.
저 이북의 땅에도 이남의 땅에도 반짝이는 희망의 별이 되어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