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존재의 강
1.추상抽象
인간이 AI를 만들고
AI가 인간을 지배하고
머지않아
공장에서
아이들이 양산하게 된다
에이!
아이까지?
2.괜스레
處暑가
지났는데도
달라붙어 있는 폭염
그래도
노하지 말게나
가을
너무 짧아
우리 인생
익기도 전에
쭉정이로 남을까
걱정이 되
괜스레
3.누가 수행자 인가
달구犬 저 녀석
주인이 오라는데도
기를 쓰고 도망간다
온몸에 진드기 더덕더덕 달고
어서 구제救濟해 주고
진드기 몸 바꿔 주고 싶은데
지 몸
보시하며 도망 다닌다
누가 수행자 인가
4.공부인
자연은
온갖 오물을 다 취하고
삭히어 꽃을 내놓는다
낮아지고
낮아져서
모든것 받아드리고
그리하여
부처님을 내놓자
5.신이 내게 준 선물
나에게
내일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내가 잠에서 깨어날 수 있거든
나에게
내 일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내가 당신을 사랑할 수 있거든
내일은
신이 내게 준 선물이다
6.시집살이
열 손가락 깨물어 봐
아프지 않은 여석 어디 있어
자식이 그래
내 새끼 애지중지 키워 내 출가 시키는 날
기쁨보다 걱정이 앞서
시댁 식구들 사랑은 받을는지
좀 더 잘 길러 내놓을 걸
후회해 봐야 이미 때는 늦었어
시집詩集살이가 그래
7.고부간
며느리가 작업복을 사 보냈다
일 할 때 입으면 좋겠다고
입고
텃밭에 나서니
붉은머리오목눈이 닮았다
꼭 닮았다고 웃으며 걷는데
숲속에서
뽓 삣 삣 삣 삐이
뻐꾹새가 숨어 지켜보고 있다
*뻐꾹새 울음소리
암컷 : 뽓 뽓 삣 삣 삣 삐이
수컷 :뻐꾹뻐꾹
8.존재의 강
시간을
휘젓어서
그림을 그린다
하얗다
생과 사가 하나다
강물의 숨소리
그 흰 속에 내가 있다
9.시인이여
전능하신 조물주께서
세상 모든것 두루 만드시고 시 짓는일 만은 당신 몫으로 남겨 두었다고 하는데
이를 믿어도 되겠는가
시인이여 오늘은 어떤 글로
방황하는 이 영혼을 일깨워 주려하는가
시인이여
ㅡㅡㅡㅡㅡ
제2부 달무리
1. 혼밥 친구
가자
밥 먹으러
점심은
뭣으로 할까
냉면집에 앉아
내가
나에게 물냉면 대접한다
잘먹어야 해
고맙다
친구야 잘먹고 있다
2.노하지 말게
친구야
여름
지겹다고
노하지 말게
가는 세월
다시 오지 않아
우리 인생도 그래
3.개똥참외로 살고 싶다
간밤에 대지를 할퀴고 간 폭우
참외는 진흙탕 속에서 배꼽 내놓고
인간의 욕심 원망한다
하우스 안에
유리 안치된 불쌍한 것들
별이 되고 싶은 내마음
꼭 잡아준 포도나무 아저씨가 유일한 희망이었는데
자갈밭도 좋다
어서 이 지옥 벗어나야 한다
이놈의 짐승들
지구는 죽어가고 있는데
자연을 난도질해
입맛대로 살아가고 있는 인간들
개똥참외로 살고 싶다
4.풍경
처마 끝에
달아매 놓은
큰스님 법어 한마디
동자승 놓치고 지나가자
바람이 얼른 일어나
읽어 준다
뎅그렁 덩그렁 뎅그렁
5.야생마
뛰어라
봄
들판을
가로질러
달려오는 아지랑이
6.악수
까짓것
잘못 둘 수도 있지
그래 있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손 내밀어
잡아 주는 거야
삼세판은 해야 될 것 아니야
7.타다
인생은 등산이다
산을 타고 넘어야 한다
말을 타고
버스 타고
기차 타고
비행기 타고
여기까지 왔다
Al
두러워 하지 말라
우리는 이 녀석을 타고
아리랑 고개 넘어
세상을 지배할 것이다
8.사천왕
이노 옴,
너 죄를 알렸다
.....
아이고
이 죄 많은 놈아
9.달무리
(서정주 시 '국화옆에서'에 화답함 )
저 모래톱 하나 만들어 내려고
하늘은 그렇게 폭우를 퍼부었나 보다
저 모래톱 하나 만들어 내려고
탄천은 도심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강 입구에 모래톱 하나 솟아났다
세월의 머언 뒤안길에서
그립고 아쉬움에
우리 어머니 젖가슴 같은
모래톱 하나
다시 돌아와 자리 잡고 앉아있다
왜가리 청둥오리 가마우지 철새들 놀고 있는 자리에
갈매기 두어 마리 날라들어
이곳은 우리들의 고향이었는데...
끼룩 끼룩 눈물을 훔치고 있다
어찌 내 아니 다를소냐
고향 떠나온 길손
한가위 보름달
그 고향 달빛 그리워서 멈춰 선 나그네
네 서린 품속에서
망향의 눈물 짜 내려고
간밤에 달무리는 그리도 외로웠나 보다
ㅡㅡㅡㅡㅡㅡㅡㅡ
●국화옆에서/
서정주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필라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보다
~~~~~~
◇.시 '국화옆에서'는 4연 13행의 자유시로 서정주의 대표작이다. 1947년 11월 9일자 경향신문에 발표되었다. 이 작품이 시집에 수록된 것은 서정주시선 徐廷柱詩選 (1956)에서 비롯된다. 이 시는 국화를 소재로 하여 계절적으로는 봄·여름·가을까지 걸쳐져 있다.
국화꽃의 처연한 이미지가 시 전반을 지배하고 있다. 아울러 소쩍새의 울음소리와 천둥의 청각적 이미지가 국화꽃이 상징하는 죽음과 함께 공명한다.
젊음의 뒤안길을 돌아 한 송이 노란 국화꽃으로 핀 누이의 모습 앞에서
화자는 슬픔을 삼킨다.
우리네 삶에도 슬픔, 상실, 아픔이 존재햐다. 화자가 누이를 잃은 아픔을 느끼듯 말이다. 그러나 언젠가 그 아픔은 한 송이의 국화꽃처럼 피어날 것이다.
국화 옆에서 아름답게 부활한
아픔을 마주하며 그렇게 우리도 한 송이 국꽃으로 피어날 것이다.
'국화 옆에서'의 ‘국화’는 괴로움과 혼돈이 꽃피는 고요에로 거두어들여진 화해의 순간을 상징하는 꽃으로 이 시에서 ‘국화’의 상징성은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봄부터 울어대는 소쩍새의 슬픈 울음도, 먹구름 속에서 울던 천둥소리도, 차가운 가을의 무서리도 모두가 ‘한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서이다.
이러한 시적 발상법은 작자 스스로 생명파로 자처하던 초기 사상과도 관련되고 있다. 그리고 이 시의 핵심부가 되는 3연에서 ‘국화’는 거울과 마주한 ‘누님’과 극적인 합일을 이룩한다. 작자는 여기서 갖은 풍상을 겪고 돌아온 안정된 한 중년 여성을 만나게 된 것이다.
젊은 시절 흥분과 모든 감정 소비를 겪고 이제는 한 개의 잔잔한 우물이나 호수와 같이 형型이 잡혀서 거울 앞에 앉아 있는 한 여인의 영상影像이 마련되기까지 시인은 오랜 방황과 번민을 감수해야만 하였다. 지난날을 자성自省하고 거울과 마주한 ‘누님’의 잔잔한 모습이 되어 나타난 ‘국화꽃’에서 우리는 서정의 극치를 발견하게 된다.
작자는 이 시에서 한국 중년 여성의 안정미安定美를 표현했다고 하여 제3연의 ‘누님’이 그 주제적 모티프(motif)가 된다고 하지만, 그것에 못지않게 ‘국화’의 상징성도 중요하다. 이 시에서 우리는 국화가 피어나는 과정을 통하여 한 생명체의 신비성을 감득할 수가 있다. 찬 서리를 맞으면서 노랗게 피는 국화는 강인한 생명력으로 표상되고 있다.
10.아내의 빈자리
이른 아침
울 밑에 자꾸만 눈이 간다
백합이 피어 있다
아내가 서있던 그 자리에
11.수박 파티
여름밤
안해와 나는
파티를 하곤 했지요
붉은 입술로
까만 씨를 찾아 헤매며
단물이 쭉쭉 흐르는
수박 파티
ㅡㅡㅡㅡㅡ
제3부 꾸역꾸역
1.관세음보살
아침
비포장 길에
지렁이 한마리 길게 꿈틀거린다
어서 가라
이대로 있으면 죽는다
오후에
살펴 보았더니
지렁이 그대로 있다
아직 살아 있다
작약꽃 그늘에 옮겨 놓았다
다음날
다시 살펴 보니
사라지고 없다
관세음 보살
2.바다가 되겠습니다
이 세상에
저보다 낮은 사람은 없다
내게로 오세요
바다가 되겠습니다
3.서울의 자존심
높고 푸른 하늘 아래
雲霧속
123층 555m
미래의 가치를 창출하는
대한민국의 랜드마크,
롯데월드타워
4.오수의 단꿈
나는 더위가
언제 절정에 이르는지
잘 안다
폭염에 지친 육신 둘 곳 없어
안절부절하다가
죽부인 껴안고 잠이 든
칠월 어느날 오수의 단꿈
나는 과감하게
폭염을 쓰러뜨리고
그녀의 속적삼 풀어헤친다
아, 이 뜨거운 젖가슴
부채 하나로 숲을 헤집고
계곡을 찾아든다
질벅한 물놀이
계곡으로 빨려 들어가는 변강쇠
폭염은 까무러지고
알몸으로 누워있는 그녀 곁에
앉아 신선이 된
나는 더위가 언제
절정에 이를 줄을 잘알고있다
5.울컥
봄나들이 중이다
전주 한옥마을
이곳저곳 기웃거리다
다리도 뻐근하고 지쳐서 전통찻집에 앉아있다
요즘 쑥이 제철 아닌가
쑥차 시켜 놓고
어머니가 끓여주신
쑥국만 생각하고 있다
오래만에
어머니를 뵙고있다
울컥
6.입춘
이 땅에
봄의 소식
기다리고 있습니다
삭막한 겨울 가슴 따뜻하게 열어 주는
당신은 희망입니다 당신은 바람입니다
당신의
봄소식을
기다라고 있습니다
설한풍 가슴속에 흐르는 개울물 소리
당신은 사랑입니다 당신은 바람입니다
이 땅에
봄소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모두가 하나 되어 파랗게 옹알이하는
당신은 주인입니다 당신은 바람입니다
7.두고 가는 것
하늘 아래 첫 동네
티베트에서는
몸을 ‘루’라고 하는데
이 말은
‘두고 가는 것’이란다
그렇습니다
이 육신
저세상 갈 때 '두고 가는 것'이라고
강을 건너면
나룻배는 두고 가는 것입니다
8.만지면 열리는 문
전철역 하객들
겟 자루 풀리듯 흩어져 가고
엘리베이터 앞에 선 승객들
밀고 들어선다
승강기 잠깐
문이 닫히다 말고 다시 열린다
"그냥 두세요
만지면 열려요"
또 닫히다 열린다
" 여자도 마찬가지여"
끼어든 젊은 익살
키큰 할아버지 이 빠지게 웃는다
그래 맞아
만지면 열리는 것이여
9.꾸역꾸역
아나콘다 뱃속에 사람이 있다
꾸역 꾸역 꾸역마다
꾸역꾸역 들고나는 사람들
진돗개 하나씩 손에 들고 있다
나는 지금 출근 중이다
책가방이 무거운 학생
청바지가 짧은 아줌마는
진돗개에게 먹이를 주고 있고
빨간 모자 할머니는 진돗개 안고 졸고 있다
임산부 보호석 옆자리에 앉아있다
미래의 유일한 희망이 자라고 있는 임부 뱃속
덜컥 덜커덩 눈까풀에 눌려 바깥세상 꺼내 자근자근 씹고 있다
난기류 속 승객들
자동차 급발진
빈번한 전기차 화재
뚜껑 열린 자연재해
입맛 지옥이다
낙토, 낙토는 어디에 있는가
비탈에선 세상
앞에,
대책 없이 불안에 떨고 있는 인간들
안전지대 찾아
들고나는 아나콘다 뱃속
꾸역꾸역
10.정문골 호랑이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덫에 걸린 짐승
애원하는 눈빛,
안돼 살려 줘야 한다
몽둥이 쥔 친구
돌맹이 든 이웃 무장해제 시키고
옛날 깊은 산속에서 길잃은
약초할머니 구해 주었다는 호랑이가 된다
꺾인 다리 질질 끌며 힐긋 뒤돌아 보고 산속으로 사라진 담비
햇살 고운 아침
정문골 호랑이 어슬렁 어슬렁
제 영역을 순찰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