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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한 권 살펴보다가
스님의 큰관심분야의 하나인 '동이족의 뿌리와 이주 역사'라는 큰 주제에서
관련 지식이 급발진하게 된 계기가 있어 글을 적습니다.
우리는 우리 민족을 흔히 '동이족'이라 칭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동안 배운 것은
동이족(東夷族)은 고대 중국의 한족(漢族)이 자신들을 중심으로
동쪽에 거주하던 민족을 멸칭(낮추어 부르는 말)으로 부르던 명칭으로
'동쪽(東)의 오랑캐(夷)'라는 뜻으로,
중화 중심주의에서 나온 호칭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또 글자를 보면서 '이(夷)'를 큰 활을 쏘는 사람들,
즉 '대인(大人)' 또는 '군자의 나라'로 해석하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이거 둘 다 거짓말입니다.
첫 째 동쪽 오랑캐라는 것은 노예민족인 한족의 한풀이식 명칭이고요.
둘째 큰활 어쩌고 하는 것은 틀린 말은 아니지만
상형문자인 한자를 해석한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우리민족의 아이덴티티, 즉 정체성을 표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두 의견 다 우리 민족 역사상 한참 후대에 만들어진 얘기에 불과합니다.
동이족은 그런뜻이 아니라
'퉁구스(퉁그흐스)-퉁흐스-토고스-토호스-도화스-도화석-동호스-동호족-동이족'
이게 맞는 수순입니다.
저들은 모두 음차 문자로 민족을 부르는 이름 소리를 한자로 적은 것입니다.
저 사이에도 다른 음차가 더 존재했으리라 여겨집니다.
뜻은 뭐냐?? '장남'이란 뜻이고요. 9라는 뜻입니다.
퉁그스=동이족 이뜻은
'9개의 부족들이 있고 그 중 전부 장남들'로 이루어진 가족이란 뜻입니다.
그래서 구이족(9개의 이족), 구리족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여기서 생기는 한 가지 강한 의문...
그러면 동이족이 장남부족이면 나머지 가족은 어디 있을까요?
성중님께서 충격적인 말씀을 해주십니다.
'전멸했다'하십니다.
전염병이래요.
이건 아무도 모르는 내용인데요..충격이군요..
흑피옥 인류로 부터 천산(한탱그리)에서 살아남은 4명의 여성에게
아수라신이 교접하였고
(짐승들에게도 교접 했답니다.. 그래서 모든 태아류가 아수라 신을 닮았답니다)
이런 유사 모습이랍니다.
그렇기에 임신자를 천신님들은 싫어하신데요.
태아의 모양을 더럽다 여기신답니다.
태아가 아수라를 닯아서인거고요.
실제로 임신자들은 산신기도나 용왕기도, 제사 등에는 출입이나 참여를 조심하셔야 해요.
아수라가 교접되어 그대로 두면 위험해서 하늘에서 회의 결과
추가로 4대천왕님 유전자를 심었답니다.
일종의 유전자 조작.
좌측은 돌고래, 우측인 인간.
유사하죠?
모든 신들은 변화신이 가능한데 본모습은 따로 있답니다.
아수라의 본모습이 저태아와 유사하데요.
지 씨를 심었으니 당연한거죠.
이후 후손들이 지구상에 퍼졌고요.
흑인이랍니다. 백인들은 돌연변이.
흑피옥 여인 4명 후손 가운데 일부가 천산(알타이)에 잔류했답니다.
이후 인류에게는 여러 일이 있었고요.
파미르로 국한하면
파미르를 떠난 장남 부족이 퉁그스(동이족,구이족)이랍니다.
떠난 이유는 장남은 떠나야 했답니다.
학자들은 그걸 유목민의 전통이라했는데요.
성중님은 그게 아니라 짐승의 전통이랍니다.
암사자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짐승은 크면 독립.(내쫓거나 차지하거나)
이후 파미르에 있던 본종족은 전염병으로 전멸.
뒤에 장남으로 이루어졌던 구이족이 파미르로 되돌아 왔고.
파미르로부터 다시 현생인류 구이족의 새로운 역사 시작.
이 일파가 한반도로 왔고 그 부족에게 경남 산청쪽에 환웅천왕님이 하강.
여기에 밝은 황금 피부의 유전자를 심으신 것이랍니다.
그게 우리.
우리의 속피부는 백인과 유사한데요 약간 다릅니다.
밝은 황금색이 섞여 있습니다.
밝은 황금색인 이유는 천신님들의 몸이 색이 그렇답니다.
이에 반해 백인은 질병으로 돌연변이라고 해요.
여기서 다시 위(대륙)로 퍼지기 시작.
모든 구이족에 유전자 퍼지기.
그래서 환웅천왕의 유전자는 모든 구이족에 퍼져 있데요.
특징은 몽골반점.
다만 이건 우리 구이족에 국한된 이야기입니다.
우리 말고도 지구상에는 타종족들도 존재하는 것입니다.
출발은 동일하지만 파미르에 잔류했던 국한된 종족 이야기.
그래서 우리민족을 말한다면 퉁그스만 놓고 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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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퉁구스(퉁그흐스)-퉁흐스-토고스-토호스-도화석-도화스-동호스-동호족-동이족'
저 음차가 변하는 과정을 보면 여러가지 사실을 알수 있습니다.
아..저렇게 소리가 변할수 있고 한자가 바뀔수 있구나 하는 것입니다.
과거엔 한자가 다르면 다른종족으로 알았습니다.
무식했죠.
예를 들면 나와너가 기본이라면
니와내가 나와너가 니랑내랑 니캉내캉 너랑냐랑
이게 모두 같은건데 과거엔 다르게 봤다는거죠.
여기다 저걸 한자로 다양하게 쓴걸 다 독립적으로 보며 분류.
'스'는 뭘까요? 한자로 석(石), 족(族)으로 변한걸 알수 있죠.
한자 역사서를 읽다가 민족이나 나라 다음에 석(石)이 나오면 족(族)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하지만 성중님은 족(族)자가 아니라고 하십니다.
잘못 썼데요.
'씨(氏)'랍니다.
우리가 김씨 이씨 하듯 그렇게 써야 한데요.
'즈'가 있어 족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스''시''즈''석''치'는 '씨'로 이해하는게 맞다는거.
(동이족임을 알리는 뒷 단어는 더 있답니다.)
그리고 일단 저런 것을 민족 뒤에 쓰면 그건 동이족으로 이해해도 된답니다.
그리고 우리민족을 대표하는 단어..
'겨레'라는 발음이랍니다.
뜻은 까마귀..
이것은 대제사장 가운데 한 분이 알려주신 것으로
태양신 숭배가 동이족의 근본 신앙이었기에 당연히 까마귀(삼족오)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시, 즈,치, 석,씨, 겨례 라는 말이 등장하면 동이족임을 직감하고 보하야 한다는 거죠.
스님은 주로 '겨레(케레이, 커레이)'를 봤습니다.
이렇게 해서 남으로 알고 있던 여러 종족이 찾아졌습니다.
겨레가 음차로 변하면서 무수한 발음을 양산했거든요.
그러던 중에 조성금선생의 책을 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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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구르(Uighur)’는 스스로를 칭하던 용어로 6세기 말~7세기 초에는
‘위흘韋紇’, 788년 이전에는 ‘회흘回紇’, 788년 이후부터 ‘회골回鶻’로 기록하였으며,
현재 중국에서는 ‘웨이얼維吾爾’로 표기하고 있다.
이들은 중앙아시아 몽골초원에서 유목생활을 하던 ‘철륵’ 곧 투르크계 종족의 일원으로,
남북조南北朝시대부터 중국의 문헌에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위구르는 본래 흉노의 후예로서 이들의 무리는 수가 적었으나,
그 습속이 용맹하고 강했으며
돌궐에 속하게 되면서 특특特勒이라고도 불리었다.
위구르는 흉노, 선비鮮卑, 돌궐에 이어 몽골고원에 거주한 민족으로
8세기 중엽 회흘부回紇部의 크틀룩빌게(骨力裡羅, Qutlugh Bilge)
회흘한국回紇汗國을 건립하였으며,
9세기 초 회흘을 회골로 개칭하였다.
몽골고원의 회골한국은 전성기에 그 세력이 동쪽으로 홍안령,
서쪽으로 알타이산에까지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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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목입니다.
공부좀 하신 분이라면 여기서 충격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겨레'라는 발음인데
여기서 '구르' 이게 뭘까요??
'위구르'는 '위겨레'라는 말입니다.
다음 글에서 알려드릴 내용이지만 '위'는 천문도인 윷판에서 '윷씨'부족입니다.
윷씨부족에는 지금 현재 유태인이 대장급이고요.
그유태인에 속한 부족이 위구르분들인 것입니다.
이거 아무도 모르는 내용이죠.
'겨레''구르''흘''골''결''홀''올''얼''일'..
이게 겨레라는 뜻이란걸 알수 있는거죠.
전부 음차문자인데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르게 발음.
이제 더 찾아야겠죠?
'몽골=목구려=모겨레' - 'ㅇ'이 들어 갔으니 본래 여성이 왕(제사장)
'무굴=무골=무겨레' - '무'는 서양놈들이 부르던 거로 영어 'moo'는 '모'로 몽골. 모겨레.
'길림=겨레' '거란=걸겨레=겨레' '고려=겨레' '구려=겨레'
'말갈=마겨레' '우크라이이나-=우(유)겨레' '위구르=위(유)겨레'
'크로아타아=겨레' ''고구려=고겨레' '홉스골=고씨겨레"
'애신각라=신라=아이신가르=알친겨레=알지겨레=김겨레(김알지=김김(금))"
'신라=금나라=청나라(후금)=금성=졸본(골본. 홀본)=촐몬=추모=초모"
'헝가리=훈가리-훈겨레=고(ㅎ)겨레=혼겨레=훈족=흉노'
'독일=절만=졸본=게르만=겨레'
'일본=졸본=홀본=골본=겨레본=여성부족장(제사장)이 있는 겨레의 영토'
'졸본=촐몬=주몽=솔로몬=추모=처모=조선본=윷부족땅=유태인땅'
'대한민국=코리아=고려=고리=꼬리=께레이=겨레'
'솔로몬=졸본=홀본=일본=절먼=독일(저먼)=게르만'
'(이스라엘)유태인=쥬이쉬(주씨)=쥬=유=윷(겨레.즃,륯)=유씨=류씨=루씨=우씨=리씨(맃씨,맇씨)=이씨'
인도 싹하문이 부처님 연관은
'가비(순경음 ㅂ)라=가이라=겨레'
'콜리=골리=겨레'
현재 인도
'망갈라(모겨레),가우리(겨레),라즈기르(루씨겨레).....'
또 겨레의 어원은 본래 골(골짜기)랍니다.
구이족은 골짜기에 살았고요.
이유는 당연히 살기 좋은 곳이어서죠.
골짜기에는 물이 있잖아요.
그래서 구이족이 사는 곳을 '골'이라 한건데
골을 분석하면 묵음이 있습니다.
'고 ㄹ ㅎㅇ'
이런 발음이죠.
여기서 이 묵음이 되는 경우가 많으니
'겨레''구르''흘''골''결''홀''올''얼''일'..
이런 다양한 발음들이 가능하고
그걸 조성금 선생 책에 위구르 민족명칭 변천사에 그대로 박혀 있는 것입니다.
성중님께서 추가로 알려주신 내용은
'겨레' 단위 아래에 '가야'가 있답니다.
~가(마가 저가...)의 뒤에 복수형을 부르는 존칭 접미사인 '야'가 붙은것이 '가야'랍니다.
6가야라고 하면 김해 김겨레 아래의 형제 작은집들이란거죠.
실제는 6가야가 아니랍니다.
6은 완성 숫자로 6을 맞춰야 해서 6가야지
실제는 더 많았고요 구성원들이 계속 변동 되었답니다.
6가야에서 이탈 결원이 생기면 다시 만들고 만들고 그런 과정이 있었답니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6가야 말고 가야 400여년 역사 속에서 가야는
10개가 더 있었다고 하시네요.
여기서 일본으로 간 가야가 3, 북방으로 떠난 가야가 5, 멸망 당한 가야가 2이랍니다.
이가야는 아리랑부족인 동이족(아리얀족이라 부릅니다)이 건너갔던 인도에도 그대로 있답니다.
그 일파가 싹하족(석가족).
'부다가야'.. 이게 우리 가야와 같은뜻이랍니다..
큰겨레에 속한 여러 가야(부족) 중 하나..
이렇게 '겨레'는 우리민족(구이족)을 말하는 중요한 단어입니다.
'겨레'말고도 더 있는데 그것은 '조선'입니다.
이 조선에는 엄청난 의마가 들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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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크로드의 대제국 천산 위구르 왕국의 불교회화 검색" 저자:조성금 p.22 Ⅱ. 천산天山 위구르 왕국의 성립 ‘위구르(Uighur)’는 스스로를 칭하던 용어로 6세기 말~7세기 초에는 ‘위흘韋紇’, 788년 이전에는 ‘회흘回紇’, 788년 이후부터 ‘회골回鶻’로 기록하였으며, 현재 중국에서는 ‘웨이얼維吾爾’로 표기하고 있다. 이들은 중앙아시아 몽골초원에서 유목생활을 하던 ‘철륵’ 곧 투르크계 종족의 일원으로, 남북조南北朝시대부터 중국의 문헌에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위구르는 본래 흉노의 후예로서 이들의 무리는 수가 적었으나, 그 습속이 용맹하고 강했으며 돌궐에 속하게 되면서 특특特勒이라고도 불리었다. 위구르는 흉노, 선비鮮卑, 돌궐에 이어 몽골고원에 거주한 민족으로 8세기 중엽 회흘부回紇部의 크틀룩빌게(骨力裡羅, Qutlugh Bilge) 회흘한국回紇汗國을 건립하였으며, 9세기 초 회흘을 회골로 개칭하였다. 몽골고원의 회골한국은 전성기에 그 세력이 동쪽으로 홍안령, 22 서쪽으로 알타이산에까지 이르렀다. 위구르는 국가의 체계를 정립한 744년부터 투르판으로 서천하는 840년까지 약 백여 년 동안 15명의 카간可汗을 두었으며, 정치의 중심은 막북 초원에 있었다. 막북 초원에서의 백여 년간의 위구르 제국의 역사는 초기의 유목국가의 건설시기(744755), 중기의 유목국가의 발전시기(755787), 후기의 유목제국의 전성기와 붕괴시기(787~839)로 구분할 수 있다. 위구르는 유목국가 건설초기에 당시 초원을 지배하던 유연 또는 돌궐에 복속되기도 하다가, 646년 당조의 지배를 받으며 세력을 확대하여 744년에는 카를루크(葛邏祿, Qarluq)의 도움을 받아서 몽골초원을 차지하는데 성공하였다. 이때에 크틀룩빌게가 오르콘강 상류에 있는 본거지에서 카간에 등극하였고 당의 현종은 그에게 ‘회인懷人’이라는 칭호를 주었다. 그후 위구르 제국은 동돌궐 제국을 대신하여 약 1세기(744~840) 정도 몽골초원의 지배자로 군림하였다. 당시 위구르의 수도는 오르도 발릭(Ordu Baligh)20이라 불리었던 카라발가순 지역에 위치해 있었다(그림 I-1-5). 이곳은 오르콘강의 상류로 과거 흉노의 선우와 돌궐 카간들의 거처가 있었으며, 후일 몽골제국의 수도인 카라룸(哈喇兒幫)이 자리잡게 되는 지역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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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의 대제국 천산 위구르 왕국의 불교회화 "
저자:조성금
출판: 진인진 2019-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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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동서양 문명의 교차로였던 실크로드의 동쪽 관문 투르판에서 번성했던 천산 위구르 왕국의 불교회화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서이다. 저자인 조성금 박사는 <천산 위구르 왕국의 불교회화 연구>로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미술사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래 해당 지역의 불교문화를 대상으로 연구와 강의에 천착해 온 미술사학 연구자이다. 중앙아시아 지역에 대한 우리나라의 관심은 높아 지고 있지만, 해당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국내 연구실적이 많지 않은 가운데,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 문화가 동서양 문명의 교차로였던 중앙아시아 지역을 거쳐 해당 지역의 고유 문화 및 조로아스터교, 경교, 마니교 등 다양한 종교와 영향을 주고 받아 변화된 형태로 동아시아에 까지 이르는 연관성을 불교회화 작품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통해 밝히는 것이 <실크로드의 대제국 천산 위구르 왕국의 불교회화>의 저술 목적이다. 목차 머리말 Ⅰ 위구르인의 삶과 종교 1. 위구르 왕국 15 2. 위구르인들의 종교 33 3. 위구르 불교미술의 후원자 57 Ⅱ 위구르인의 염원을 형상화하다 1. 명부 세계를 그리다: 투르판 출토 〈불설예수시왕생칠경변상도〉 85 2. 도솔천왕생을 바라다: 북정 (전)서대사 〈미륵상생경변상도〉 117 3. 모든 고통에서 구원해 주소서: 〈천수천안관세음보살도〉 145 4. 성불을 서원하다: 베제클릭 20굴 〈비나야약사변상도〉 183 5. 하늘의 별에 치성드리다: 베제클릭 석굴 18굴 〈소제재난경변상도〉 217 6. 악귀에서 신이 되다: 투르판 교하고성 출토 〈귀자모도〉 一考 241 후기 265 Abstract 269 참고문헌 273 그림 및 표 목록 289 중앙아시아 탐험사 연표 299더보기 --------------------------------- 저자 및 역자소개 조성금 (지은이 중앙아시아 불교회화 전공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강사, 동국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강사, 예술의 전당 아카데미 강사 성신여자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석사(「키질석굴 捨身飼虎本生圖 연구」, 2003) 동국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박사(「천산 위구르 왕국의 불교회화 연구」, 2013) e-mail: skcho91@hanmail.net [저서] 조성금 외 공저, 『실크로드사전』, 2013, 창비. 조성금 외 공저, 『상생과 소통의 유라시아, 그 시원을 찾아서』, 2017, 민속원. [논문] 「摩尼敎與冥府系圖像」, 『第三届吐魯番學硏究』, 上海古籍出版社, 2010. 「吐魯番出土 <佛說預修十王生七經變相圖>」, 『東岳美術史學』11호, 2010. 「에르미따쉬 미술관 소장 吐魯番出土 <千手千眼觀世音菩薩圖>」, 『미술사학연구』271호, 2011. 「北庭 伝西大寺 <彌勒上生經變相圖>의 도상 고찰」, 『중앙아시아연구』16호, 2011. 「成佛에 대한 위구르인들의 念願: 베제클릭 20굴 毘奈耶藥事變相圖」, 『중앙아시아연구』17-2호, 2012. 「朝鮮 地藏六光菩薩圖 圖像의 起源」, 『佛敎美術』26호, 동국대학교박물관, 2015. 「유림19굴 목련변문변상도 고찰」, 『東岳美術史學』17호, 2015. 「베제클릭 석굴 18굴 <消除災難經變相圖> 연구」, 『미술사학연구』290·291호, 2016. 「베제클릭 석굴 18굴의 석굴조영과 위구르 공양자 一考」, 『東岳美術史學』20호, 2016. 「투르판 交河古城 출토 <鬼子母圖> 一考」, 『東岳美術史學』21호, 2017. 「아미타극락정토 도상의 성립과 조로아스터교에 관한 一考」, 『東岳美術史學』23호, 2018 ------------------------------------- 출판사 제공 책소개 동서양 문명의 교차로였던 실크로드의 동쪽 관문 투르판에서 번성했던 천산 위구르 왕국의 불교회화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서인 『실크로드의 대제국 천산 위구르 왕국의 불교회화』가 발간되었습니다. 저자인 조성금 박사는 『천산 위구르 왕국의 불교회화 연구』로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미술사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래 해당 지역의 불교문화를 대상으로 연구와 강의에 천착해 온 미술사학 연구자입니다. 중앙아시아 지역에 대한 우리나라의 관심은 높아 지고 있지만, 해당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국내 연구실적이 많지 않은 가운데,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 문화가 동서양 문명의 교차로였던 중앙아시아 지역을 거쳐 해당 지역의 고유 문화 및 조로아스터교, 경교, 마니교 등 다양한 종교와 영향을 주고 받아 변화된 형태로 동아시아에 까지 이르는 연관성을 불교회화 작품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통해 밝히는 것이 『실크로드의 대제국 천산 위구르 왕국의 불교회화』의 저술 목적입니다. 『실크로드의 대제국 천산 위구르 왕국의 불교회화』는 총 9편의 글을 2 묶음으로 구분하여 구성되었는데, 1부 1장에서는 불교회화 번성의 배경이 되고 있는 9세기~13세기 천산 위구르 왕국의 역사적, 지리적 배경을 소개하고, 2장에서는 천산 위구르 왕국의 문화를 다양한 종교를 중심으로 소개합니다. 천산 위구르 왕국은 몽골초원에서는 마니교가 국교였지만, 투르판으로 이주한 이후 9세기부터 13세기 몽골에 멸망할 때까지는 불교가 번성하는데, 동서양 문명의 교차지답게, 조로아스터교, 마니교, 경교, 유교 등과 활발하게 교류하여 영향을 주고 받게 됩니다. 3장은 천산 위구르 불교회화가 융성한 배경에 대해서 베 제클릭 18굴의 조영과 공양자상을 중심으로 고찰합니다. 2부에서는 천산 위구르 불교회화를 대표하는 6건의 작품/유적에 대한 개별적인 사례를 소개합니다. 6건의 작품/유적들은 각각 천산 위구르 왕국의 불교 문화의 단면을 특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대표작품들로 각각 다른 시대적 배경과 종교적 목적으로 조성된 작품들로서, 저자는 불교 문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해당 지역에 대한 상세한 정보, 직접 작품들을 관찰하여 취득한 치밀한 분석을 통해 개별 작품을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을 뿐 아니라, 종교적 의미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제시하고, 해당 작품들이 동아시아 불교회화에 끼친 영향까지 폭넓게 조망하고 있습니다. 1장에서는 불교의 명부관을 표현한 투르판 출토 <불설예수시왕칠경변상도>를 소개합니다. 10-11세기에 완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해당 작품은 독일 베를린 아시안 아트 뮤지엄에 보관되고 있는데, 막고굴에서 수습되어 영국 대영박물관이 보관하고 있는 북송시대 작품을 폭 70cm의 도판을 통해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2장은 천산 위구르인의 미륵사상을 표현한 <미륵상생변경변상도>입니다. 해당 작품은 10세기 중반에서 13세기 전반에 건립된 북정의 서대사의 벽화로 존재하고 있는데 9세기 이후 중국에서 쇠퇴한 미륵신앙이 천산위구르에서 10세기 이후 번성했음을 암시하는 중요한 작품입니다. 저자는 서하 문수산 만불동의 <미륵상생경변상도>와의 비교를 통해서, 제작 시기 및 두 지역간의 상관 관계 등을 밝히고 있습니다. 3장은 20세기 초 러시아 탐험대에 의해 발견 수집되어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예르미타시 미술관에 보관되어 있는 <천수천안관세음보살도>를 소개합니다. 본 작품은 보존상태가 양호하며, 훼손된 벽화의 공백과 꼭 맞아,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중요한 사례 입니다. 저자는 본 작품 연구를 통해 태장계 만다라의 일부가 돈황 지역을 중심으로 10세기 이전에 제작된 반면, 10세기 이후에 제작된 벽화들은 태장계 만다라의 구성요소를 충실히 옮기고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4장은 천산 위구르인들의 종교적 소망을 표현한 서원도 베제클릭 20굴 <비나야약사변상도>입니다. 베제클릭 석굴은 투르판 최대의 석굴 사원으로서, 화염산과 무르툭 계곡이 만나는 초승달 모양의 절벽에 조성되어 있으며 위구르어로 ‘아름답게 장식한 집’이라는 의미입니다. 6세기부터 조성되기 시작해서 13세기까지 지속되었으며, 9세기 말부터는 천산 위구르 황국의 왕실 사원이기도 했습니다. <비나야약사변상도>는 <비나야약사>에 도상학적 근거를 두고 있는 서원도입니다. 본 서에서는 폭 85cm를 할애하여 평면도 1건과 3차원 모델 도판 8건을 제시하여 배제클릭 20굴의 생생한 모습과 불화 배치 상황을 표현하였습니다. 5장은 천산 위구르인의 우주관과 결합한 베제클릭 18굴 <소제재난경변상도>를 소개합니다. 이 작품은 20세기 초 독일 탐험대에 의해 절취되어 베를린으로 옮겨졌으나, 2차 대전 폭격으로 소실 되었습니다. <소제재난경변상도>는 별에 의한 환난을 물리치고 화를 복으로 바꾸어 준다고 알려진 ‘치성광 여래’를 표현한 작품으로서 우리나라에서도 <치성광여래강림도>나 <치성광여래 설법도>등이 제작된 사례가 있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6장은 투르판 교하 고성 출토의 <귀자모도>로서, 귀자모란 원래 인도 북부지역에서는 천연두를 일으키는 야차였는데, 간다라 지방을 통해 투르판에 전해지면서 어린아이를 수호하는 수호신으로 변화 되었고, 오늘날에는 다산과 풍요의 신으로 대접받고 있습니다. 하댕 작품은 베를린 아시안 아트 뮤지엄이 소장하고 있으며 저자는 그림에 표현된 인물의 복식을 중심으로 9세기 중후반으로 제작시기를 해석했습니다. 또한 『실크로드의 대제국 천산 위구르 왕국의 불교회화』가 수록하고 있는 폭 37cm의 대형 지도 2면과 최초로 시도된 3차원 모델 도판을 포함한 159건의 도판 자료는 해당 작품들의 진면모를 상세하게 관찰하고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입니다. 유라시아 교류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앙아시아 지역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피상적이고 단편적인 수준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진인진은 『중국의 부상과 중앙아시아』(2015), 『흉노』(2017), 『유라시아의 심장 다시 뛰다! 』(2017), 『유라시아의 십이지 문화』(2019), 『공산주의 이후 이슬람-중앙아시아의 종교와 정치』(2019), 『중앙아시아 이슬람의 역사적 경험과 문화』(2020) 등 중앙아시아/유라시아 사회와 문화, 역사 이해를 돕는 도서를 발간해 왔습니다. 이번에 발간되는 『실크로드의 대제국 천산 위구르 왕국의 불교회화』는 중국 서역 돈황에 비해 덜 알려져 있는 천산 위구르 왕국의 불교문화에 대한 한층 깊은 이해를 제공해 주는 기초가 될 것입니다. ---------------------------------------------- 머리말 ‘중앙아시아’는 서쪽의 카스피해와 이란, 남쪽의 인도와 접해있고, 동쪽으로는 중국 그리고 북으로는 유목 세력과 연결되는 사통팔달의 교통의 요충지이다. 이러한 지정학적인 이점으로 인하여 이 지역은 고래로 동서의 교역로인 실크로드의 핵심지역으로서 번영을 구가할 수 있었으며, 교역 활동의 부수적인 현상으로서 동서의 문화가 교차하는 중추적 존재로서 세계문화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여 왔다. 중앙아시아는 9세기 중엽 이후 몽골고원에서 이주해 온 위구르인의 정착을 계기로 투르크화가 진전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기 때문에, 학계에서는 이 지역을 ‘투르키스탄’ 또는 ‘투르케스탄’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투르크인의 땅’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 투르키스탄은 다시 파미르 고원을 중심으로 동투르키스탄과 서투르키스탄으로 나뉜다. 동쪽의 동투르키스탄은 현재의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해당하며, 서쪽의 서투르키스탄은 카자흐스탄의 남부,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과 북부 아프가니스탄을 포함하는 지역이다. 서투르키스탄의 경우 실크로드 국제교역의 센터에 해당하는 소그디아나와 박트리아를 중 심으로 하는 지역으로, 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 시대부터 알렉산더 제국을 거쳐 사산조 페르시아 시대에 이르기까지, 중앙아시아 문화의 토대 위에 소위 고대 페르시아 문화와 헬레니즘 문화가 화려하게 꽃핀 곳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불교는 쿠샨왕조 시대에 이 지역에서 이미 기층문화로 자리 잡은 조로아스터교와 헬레니즘 문화의 세례를 받은 후 커다란 문화변용을 거쳐 파미르 이동 지역으로 동점하게 되었다. 이런 점에서 중앙아시아는 동아시아의 불교문화를 고찰함에 있어서도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중요성을 지닌 곳이다. 한편 동투르키스탄 지역은 고래로 ‘서역’이라 불려왔다. 서역이란 명칭은 한 무제의 적극적인 진출 결과 『한서』 「서역전」에 처음 등장하게 되었으며, 「서역전」에는 천산산맥과 곤륜산맥으로 둘러싸인 타림분지 주변의 여러 오아시스의 지리적 개념과 각 오아시스 국가의 명칭, 영토의 구역, 인구, 관직, 해당 지역에서 생산되는 물품 등 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실크로드는 타림분지 내부의 타클라마칸 사막을 중심으로 천산산맥 남록을 따라 점재하는 오아시스를 이은 서역북도와 곤륜산맥 북쪽의 서역남도로 나누어진다. 이 지역의 오아시스 도시들은 천산산맥과 곤륜산맥의 만년설이 녹아 흘러내린 물을 이용하여 농경생활을 영위하다가, 오아시스 도시들을 연결하는 실크로드의 형성에 따라 대상무역에 의한 중계교역의 활성화로 인하여 상업도시로서 변모하는 한편 동서의 문화가 융합되어 독특한 지역문화로 발전하며 주변 지역에도 영향을 끼치는 문화의 중 심지로서도 번영을 구가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서역은 그 지리적 위치 때문에 일찍부터 동서의 문화가 만나 상호 습합과 변용을 통한 문화의 재창조가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으며, 그중에서도 특히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가 동아시아에 전래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불교는 기원을 전후한 시기에 중앙아시아에 전해져, 이슬람화하는 14세기 후반까지 번영과 쇠퇴를 반복하였다. 이 지역의 불교미술은 중앙아시아에 전래된 다양한 종교와 문화를 흡수하여 토착문화로서 뿌리를 내리는 한편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한 새로운 종교문화로서 인접 지역 및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 전파되었다. 서역 지방의 동측에 위치한 투르판(고창)은 불교가 번영했던 대표적인 오아시스 도시로서, 중국에서 중앙아시아로 향하는 동서교통의 입구에 해당하는 요지이며, 천산 북쪽의 모든 유목세력이 타림분지로 남하할 때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군사적 요충이었다. 투르판은 일찍부터 고창국의 수도로서 번영을 구가하였으며, 당의 지배가 서역에까지 미쳤을 때는 당의 직할시인 서주, 그리고 위구르 왕국 시대에는 고창고성을 왕성으로 삼아 수도의 역할을 담당하였던 곳이다. 이와 같이 투르판은 사통팔달한 지리적 조건을 배경으로 다양한 문화가 교류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지역과의 교역을 통해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이러한 경제적•문화적 발전은 투르판 지역에 거주하던 다양한 민족들이 각자 신앙하고 있던 종교 시설을 조영하고 그 내부를 장엄할 수 있는 배경과 원동력이 되었다. 그런데 투르판은 천산산맥의 동쪽 끝자락에 위치한 분지로서, 분지 중앙에 화염산이 자리하고 있어 사 막의 열기가 쉽게 분출되지 않기 때문에, 하절기와 동절기의 혹한과 혹서가 반복되는 열악한 자연조건을 극복하고 보다 효율적인 불사 운영을 위하여, 계곡의 암벽에 석굴을 개착하여 사원을 운영하는 삶의 지혜를 발휘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자연환경으로 인하여 투르판에는 4세기경부터 석굴사원이 조영되기 시작하였으며, 동시에 불교미술 역시 다양한 형태로 발전해 왔다. 이 지역의 불교미술은 9세기 중엽 위구르인들이 몽골초원에서 남하하여 투르판 지역에 위구르 왕국을 건설하고, 그들이 신봉하고 있었던 마니교로부터 불교에 귀의하여 이를 국교화하면서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와 같이 투르판을 중심으로 번영을 누렸던 위구르 왕국은 중국의 당, 오대, 북송, 남송, 원 그리고 주변 이민족 국가인 거란(요), 서하, 토번, 금 등과 약 9세기 중반부터 몽골에 의해 멸망하는 13세기 중반까지 서역의 정치•군사•경제•문화의 중심으로서 주변 국가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특히 이 시기는 동아시아 불교미술의 발전기와 정립기에 해당하는 중요한 기간이어서, 동서의 문화를 아우른 위구르 왕국의 불교미술이 중앙아시아를 넘어 중국과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불교문화 발전에 미친 영향이 적지 않았을 것으로 본다. 현재 투르판을 포함한 중앙아시아 지역의 종교유적과 그 내부를 장식하고 있었던 벽화 등 제반 문화유산은 천여 년 이상의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에 의한 훼손과 이종교도들에 의한 파괴 그리고 서구 제국주의 탐험대들에 의한 약탈로 인하여 원형을 복원하기가 결코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현지의 석굴사원에 잔존하는 벽화와 새로운 발굴조사 성과 그리고 각국의 탐험대들이 본국으로 가져간 유물들에 대한 보고서와 근자에 계속 간행되고 있는 연구 성 과물을 통해서 위구르 왕국 불교미술의 진면목과 문화의 윤곽이 점차 드러나고 있다. 본서는 9세기 중엽부터 13세기 말기까지 투르판의 고창고성을 중심으로 불교문화를 발전시킨 위구르 왕국의 불교회화에 관한 것으로서, 지역적으로는 투르판을 포함하여 북정지역, 쿠차지역, 언기지역을 대상으로 한다. 기존의 연구는 막북초원의 위구르를 ‘동위구르’라 하고, 9세기 이후 천산산맥 이남으로 이동하여 투르 판을 중심으로 한 위구르 왕국을 ‘서위구르’ 혹은 ‘천산 위구르’라 칭하였다. 그러나 본서에서는 ‘천산 위구르 왕국’이라 칭하고자 한다. 이 지역에서 전래된 다양한 불화 가운데 동아시아 불 교회화사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경변상도(불교 경전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의 도상을 재해석하여 그 도상학적 기원과 위구르 왕국 불화가 주변 문화권에 끼친 영향력과 상관관계를 밝히고자 한다. 서역은 실크로드(오아시스 루트)의 쇠퇴와 함께 그 존재감이 점차 희미해졌으나,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진행된 제국주의 열강들의 중앙아시아 탐험으로 인하여 다시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이 지역은 10세기 이후 서서히 이슬람화화여 서구의 탐험대가 활동을 개시하였을 무렵에는 현지의 관헌이나 주민 모두가 이슬람교도로서 과거의 찬란했던 불교문화재에 대해 무관심으로 일관했기 때문에, 열강의 탐험대들은 이 지역에 대한 군사적 야욕의 일환으로 탐험활동을 후원하는 한편, 석굴사원의 벽화를 비롯하여 고대 언어로 기록된 수많은 문서류 등을 앞다투어 반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석굴사원에서 절취해온 벽화와 수집한 불화, 고문서 등이 학계에 소개되며 중앙아시아의 역사 및 고고 미술 연구는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게 되었다. 그런데 이들 탐험대가 발행한 보고서에 실려 있는 불교자료의 경우, 전공분야를 달리하는 탐험가들이 작성하였기 때문에 작성자에 따라 지역의 명칭, 석굴의 편호, 편년 등이 각기 다른 한계성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중앙아시아 미술에 관한 연구는 이들 탐험대들이 초래한 혁혁한 성과와 방대한 신출 자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기초 자료의 부족과 혼재로 역사학이나 언어학 등 여타 인문학 분야는 물론 유라시아 미술사 연구의 전반적인 발전 수준에도 크게 못 미치는 상황이다. 다행히도 투르판 지역의 석굴사원에서 반출된 대량의 불교회화를 소장하고 있는 독일과 러시아의 해당 박물관이 근자에 이들 자료에 대한 본격적인 보존처리에 착수하여 일반에 공개하기 시작하였을 뿐만 아니라, 외국의 학자들에게도 문호를 개방하여 이들 미공개자료를 직접 열람하고 연구할 수 있게 되어, 연구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지역의 불교회화 연구는 현재까지의 몇몇 연구 사례들을 통해서 볼 때 중앙아시아 지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 불교회화 전반에 걸쳐서 밀접한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중앙아시아 불화는 현재까지도 도상 및 도상학적 기원이 불명확한 중국, 한국, 일본 불교회화의 성립과 발전과정을 밝히는데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본서는 위구르 왕국의 불교회화 연구를 통해서 중앙아시아 미술의 중요성을 제시함과 동시에 불교문화 동점 과정의 횡적 연계성을 밝히고 나아가 실크로드 미술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할 것이라 믿는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