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ᠠᠪᡴᠠ ᡤᡝᠴᡝᠨ ᠰᡳᠯᡝᠩᡤᡳ ᠪᡝ ᠸᠠᠰᡳᠮᠪᡠᡶᡳ ᡶᡠᠨᡩᡝᡥᡠᠨ ᠣᠪᡠᠮᠪᡳ ᠪᠠᠨᠵᡳᠪᡠᠮᠪᡳ᠈ ᡝᠨᡩᡠᡵᡳᠩᡤᡝ ᡥᠠᠨ ᡝᡩᡝ ᠠᠴᠠᠪᡠᠮᡝ ᡥᠣᡵᠣᠨ ᡝᡵᡩᡝᠮᡠ ᠪᡝ ᠰᠠᠰᠠ ᠰᡝᠯᡤᡳᠶᡝᠮᠪᡳ᠉ ᡝᠨᡩᡠᡵᡳᠩᡤᡝ ᡥᠠᠨ ᡩᡝᡵᡤᡳ ᠪᠠᠪᡝ ᡩᠠᡳᠯᠠᡥᠠ ᠵᡠᠸᠠᠨ ᡨᡠᠮᡝᠨ ᠴᠣᠣᡥᠠ ᡴᡠᠩᡤᡠᡵ ᠰᡝᠮᡝ ᡤᡝᡵᡝᠨ᠈ ᡨᠠᠰᡥᠠ ᡦᡳ ᡤᡠᡵᡤᡠ ᠊ᡳ᠋ ᡤᡝᠰᡝ᠈ ᠸᠠᡵᡤᡳ ᠠᠮᠠᡵᡤᡳ ᡤᡠᡵᡠᠨ ᡤᡝᠮᡠ ᠠᡤᡡᡵᠠ ᠪᡝ ᠵᠠᡶᠠᡶᡳ ᠵᡠᠯᡝᡵᡳ ᠣᠵᠣᡵᠣ ᠪᡝ ᡨᡝᠮᠰᡝᡵᡝᠩᡤᡝ ᡥᠣᡵᠣᠨ ᠠᠮᠪᡠᠯᠠ ᡤᡝᠯᡝᠴᡠᡴᡝ ᡴᠠᡳ᠉ ᡝᠨᡩᡠᡵᡳᠩᡤᡝ ᡥᠠᠨ ᡠᠮᡝᠰᡳ ᡤᠣᠰᡳᠨ ᠣᡶᡳ ᡤᠣᠰᡳᠮᡝ ᠸᠠᠰᡳᠮᠪᡠᡥᠠ ᡥᡝᠰᡝ ᡤᡳᠰᡠᠨ᠈ ᠵᡠᠸᠠᠨ ᠵᡠᡵᡤᠠᠨ ᠊ᡳ᠋ ᠸᠠᠰᡳᠮᠪᡠᡥᠠ ᠪᡳᡨᡥᡝ ᡥᠣᡵᠣᠩᡤᠣ ᠪᡳᠮᡝ ᡥᡡᠸᠠᠯᡳᠶᠠᠰᡠᠨ᠉ ᡩᠠᡩᡝ ᠯᡳᠶᡝᠯᡳᠶᡝᡶᡳ ᠰᠠᡵᡴᡡ ᠣᡶᡳ ᠪᡝᠶᡝ ᠵᠣᠪᠣᠯᠣᠨ ᠪᡝ ᠪᠠᡳᡥᠠ᠈ ᡝᠨᡩᡠᡵᡳᠩᡤᡝ ᡥᠠᠨ ᠊ᡳ᠋ ᡤᡝᠩᡳᠶᡝᠨ ᡥᡝᠰᡝ ᡳᠰᡳᠨᠵᡳᡥᠠ ᠵᠠᡴᠠᡩᡝ᠈ ᠠᠮᡥᠠᡶᡳ ᡨᡝᠨᡳ ᡤᡝᡨᡝᡥᡝ ᡤᡝᠰᡝ᠉ 天降霜露 載肅載育 惟帝則之 竝布威德 皇帝東征 十萬其師 殷殷轟轟 如虎如豼 西蕃窮髮 曁夫北落 執殳前驅 厥靈赫赫 皇帝孔仁 誕降恩言 十行昭囘 旣嚴且溫 始迷不知 自貽伊感 帝有明命 如寐之覺 하늘은 서리와 이슬을 내려 마르게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데, 황제께서 이를 본받으시어 위엄과 은덕을 함께 펴셨네. 황제께서 동방을 정벌하시니 그 군세 십만이라, 우르릉거리는 소리가 호랑이 같고 표범 같았네. 서쪽 번국 불모지와 북쪽 부락 사람들도 창을 잡고 앞서가니 그 위세 혁혁하도다. 황제께서 크나큰 인자함으로 은혜로운 말씀을 내려주시니, 열 줄로 내려주신 밝은 회답이 엄하고도 또한 따뜻하였네. 처음에는 미욱하여 알지 못하고 스스로 재앙을 불러왔으나, 황제의 밝은 명령 있고 나서는 마치 잠에서 깬 듯하였네. ᠮᡝᠨᡳ ᠸᠠᠩ ᡤᠠᡳᡶᡳ ᡩᠠᡥᠠᡥᠠᠩᡤᡝ ᡥᠣᡵᠣᠨ ᡩᡝ ᡤᡝᠯᡝᡵᡝ ᡨᡝᡳᠯᡝ ᠸᠠᡴᠠ᠈ ᡝᡵᡩᡝᠮᡠ ᡩᡝ ᡩᠠᡥᠠᡥᠠᠩᡤᡝ ᡴᠠᡳ᠉ ᡝᠨᡩᡠᡵᡳᠩᡤᡝ ᡥᠠᠨ ᡤᠣᠰᡳᡶᡳ ᡴᡝᠰᡳ ᡳᠰᡳᠪᡠᠮᡝ ᡩᠣᡵᠣᠯᠣᠮᡝ᠈ ᠰᠠᡳᠨ ᠴᡳᡵᠠ ᡳᠨᠵᡝᡵᡝ ᠠᡵᠪᡠᠨ ᠊ᡳ᠋ ᠠᡤᡡᡵᠠ ᠪᡝ ᠪᠠᡵᡤᡳᠶᠠᡶᡳ᠉ ᠰᠠᡳᠨ ᠮᠣᡵᡳᠨ ᠸᡝᡳᡥᡠᡴᡝᠨ ᡩᠠᡥᡡ ᠰᠠᠩᠨᠠᡵᠠ ᠵᠠᡴᠠᡩᡝ ᡥᡝᠴᡝᠨ ᠊ᡳ᠋ ᡥᠠᡥᠠ ᡥᡝᡥᡝ ᡠᠴᡠᠯᡝᠮᡝ ᠮᠠᡴᡨᠠᡵᠠᠩᡤᡝ᠉ ᠮᡝᠨᡳ ᠸᠠᠩ ᠨᡳ ᠪᠠᡥᠠᡶᡳ ᠪᡝᡩᡝᡵᡝᡥᡝᠩᡤᡝ᠈ ᡝᠨᡩᡠᡵᡳᠩᡤᡝ ᡥᠠᠨ ᠊ᡳ᠋ ᠪᡠᡥᡝᠩᡤᡝ ᡴᠠᡳ᠉ ᡝᠨᡩᡠᡵᡳᠩᡤᡝ ᡥᠠᠨ ᠮᡝᠨᡳ ᡳᡵᡤᡝᠨ ᠪᡝ ᠪᠠᠨᠵᡳᡴᡳᠨᡳ ᠰᡝᠮᡝ ᠴᠣᠣᡥᠠ ᠪᡝ ᠪᡝᡩᡝᡵᡝᠪᡠᡥᡝ᠉ ᠮᡝᠨᡳ ᡶᠠᠴᡠᡥᡡᠨ ᠣᡥᠣ ᠰᠠᠮᠰᡳᡥᠠ ᠪᡝ ᡤᠣᠰᡳᠮᡝ᠈ ᠮᡝᠨᡳ ᡠᠰᡳᠨ ᠊ᡳ᠋ ᠸᡝᡳᠯᡝ ᠪᡝ ᡥᡠᠸᡝᡴᡳᠶᡝᠪᡠᡥᡝ᠈ ᡝᡶᡠᠵᡝᡥᡝ ᡤᡠᡵᡠᠨ ᡩᠠ ᠠᠨ ᠊ᡳ᠋ ᠣᡥᠣᠩᡤᡝ ᡝᡵᡝ ᡳᠴᡝ ᡨᠠᠨ ᠊ᡳ᠋ ᡨᡠᡵᡤᡠᠨ ᡴᠠᡳ᠉ 我后祇服 相率而歸 匪惟怛威 惟德之依 皇帝嘉之 澤洽禮優 載色載笑 爰束戈矛 何以錫之 駿馬輕裘 都人士女 乃歌乃謳 我后言旋 皇帝之賜 皇帝班師 活我赤子 哀我蕩析 勸我穡事 金甌依舊 翠壇維新 우리 임금 이에 복종하면서 서로 이끌고 귀순해오니, 위세가 두려워서만이 아니라 또한 그 덕에 의지함일세. 황제께서 이에 용서하시며 넉넉히 예로써 맞아주시니, 표정을 고치고 웃는 낯으로 온갖 무기를 거두시었네. 무엇을 주셨던고? 준마와 가벼운 갖옷, 도성의 남녀가 노래하고 칭송하네. 우리 임금 돌아올 수 있었던 것도 황제께서 은사를 베푸심이라. 황제께서 군사를 물려주시니 우리 백성들 살게 되었네. 흩어진 우리 백성 불쌍히 여겨 농업에 힘쓰도록 하여 주시니, 금구(金甌)의 제도 옛날과 같고 비취빛 단은 나날이 새로워라. ᠸᡝᠰᡳᡥᡠᠨ ᡝ᠊ᡵᡩᡝᠮᡠᠩᡤᡝᡳ ᡨᡠᡳᠴᡳ ᠠᠨ᠋ᡳᠶᠠ ᠵᠣᡵᡥᠣᠨ ᠪᡳᠶᠠᡳ ᡳᠴᡝ ᠵᠠᡴ᠌ᡡᠨ ᡩ᠋ᡝ ᡳᠯᡳᠪᡠᡥᠠ 崇德 四年 十二月 初八日 立 숭덕 4년(1639) 12월 8일 세우다 삼전도는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 근처에 있는 비석. 사적 제101호로 지정되어 있다. 정식 이름은 만주어로 '대청국의 성스러운 한의 공덕비(ᡩᠠᡳ᠌ᠴᡳᠩ ᡤᡠᡵᡠᠨ ᠊ᡳ᠋ ᡝᠨᡩᡠᡵᡳᠩᡤᡝ ᡥᠠᠨ ᠊ᡳ᠋ ᡤᡠᠩ ᡝᡵᡩᡝᠮᡠᡳ ᠪᡝᡳ)', 한문으로 '대청황제공덕비(大淸皇帝功德碑)'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청나라 황제가 청태종 홍타이지이므로 '청태종공덕비(淸太宗功德碑)'라고도 한다. *나무위키에서 발췌 |
제2의 삼전도비, 용산비 또는 도쿄비는 세워질 것인가
모두 알다시피 삼전도비는 조선 역사상 가장 무능했던 임금인 인조가 만들어낸 작품이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고 하지만 광해군이 계속 집권했다면 과연 이런 굴욕적인 역사비를 후손들에게 남겼을까?
왕조 때나 민국 때나 일단 대가리를 잘 만나야 민족의 자존심이 지켜지고 백성의 안전이 보장된다.
어쨌든 인조는 무능에다 힘이 딸려 청태종에게 삼궤구고두례(三跪九叩頭禮) 즉, 세 번 큰 절을 올리고 한 번 절할 때마다
세 번씩 머리를 바닥으로 조아리는 오랑캐식 항복예식을 거쳐야 했다.
그런데 21세기 들어 변형된 삼궤구고두례(三跪九叩頭禮)가 꿈틀대고 있다. 겉으로는 국가간 정상의 만남으로 보이지만 들여다 보면 우리 국민의 자존심은 개에게 줬는지 일본의 요구만 들어준 굴종의 결과만 가져왔기 때문이다. 이런 무능과 나약함은 21세기 삼전도비를 세워야 할 지경이다.
병자호란 때와 달라진 것은 대상국이 청국이 아닌 일본이고 인조처럼 남한산성에 포위당해 어쩔 수 없이(?) 한 항복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찾아가 항복을 했다는 것이다. 우리 민족의 자존심은 자신이 기르는 토리에게 준 것이 분명하다. 우리가 일본을 향해 해야 할 말은 생략하고 역사왜곡을 서슴치 않는 왜구의 말에는 '이해한다'. '공감한다'며 추임새만 넣다 귀국했다.
삼전도비가 한강 나룻터였던 삼전도에 세워졌기에 삼전도비라 했는데 이제 용산에 용산비 또는 도쿄에 도쿄비가 세워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윤석열은 친일을 넘어 숭일의 길을 가고 있다.
전범기업이 강제동원 피해자에 배상해야 한다는 우리나라 대법원의 판결이 잘못됐다는 것이 윤석열의 생각이다.
일본의 '강제동원은 없었다'에 윤석열은 '구상권 청구는 없다'고 화답했다. 그리고 기시다 총리의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해서는 강한 지지를 보냈다. 일본의 말대로 조선의 종군위안부나 징용 노동자들이 강제로 끌려간 게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 자발적으로 간 것이라면 북한에 간 일본인들도 납치당한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얻으러 스스로 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런데 왜 강제동원은 없었다는 말에 동의하면서 북한이 일본인을 강제납치해 갔다는 주장에는 강한 지지인가?
기시다에게 사적인 어떤 약점이라도 잡힌 것일까? 일본이 하자는 대로 따르면서 우리가 하자는 것은 없다.
윤석열은 일본이 북한·중국 등 주변국의 미사일 기지를 직접 타격하는 ‘적기지 공격 능력’(반격 능력) 보유 방침을 결정한 것과 관련해 “충분히 이해한다”고 말해 일본우익이 원하는 일본재무장에 힘을 실어주었다.
또한 일본의 '국가안보전략' 문서에 “우리(일본)의 고유 영토인 다케시마(독도) 영유권에 관한 문제에 대해 우리(일본)의 일관된 입장에 기초해 의연히 대응”할 것이라는 대목이 있는데 윤석열은 이에 대해 침묵했다. 말이 침묵이지 대한민국의 영토를 수호해야 하는 헌법상 책무를 가진 국가 원수가 독도가 자신들의 땅이라고 밝힌 일본 문서에 대해 암묵적으로 동의한 것이다. 이는 헌법의 영토수호를 포기한 것으로 탄핵사유이다. (국가원수元首가 아닌 국가웬수怨讐다)
'종군위안부'나 '강제징용'에 대해 일본의 입장을 이해하고 독도에 대해서도 일본의 문서에 암묵적 동의를 하고 온 것이 성과라면 성과일 것이다. 한일 미래청년기금', '북의 위협에 공동 대응' 등 하나마나한 개 풀 뜯어 먹는 소리에다 조공하고 와서 셔틀외교가 어떻다는 둥 토리 짓는 소리를 하고 있다.
윤석열은 이제 친일 숭일을 넘어 아예 일본인이 되고자 하는 것 같다. 언젠가 일본으로 망명을 하든 귀화를 하든 그것을 말릴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남은 임기가 얼마일지 모르겠으나 더는 민족의 자존심에 흠집내기를 그쳤으면 좋겠다.
*용산비 또는 도쿄비가 세워진다면 예상되는 내용
용산비(龍山碑) 또는 도쿄비 / 나루히도 천황폐하와 기시다 총리 대신께 바치는 공덕비
나루히도 천황폐하! 선대 폐하가 해오셨듯이 폐하께서도 한국을 지극히 어여삐 여기시고 변함없는 은혜를 베풀어 주심에 한국의 신민 대표로서 감읍할 따름입니다. 또한 기시다 각하께서는 미천한 소인을 아우처럼 편히 대해주시고 같은 상에서 식사를 허락해 주심에 깊은 존경의 마음을 표합니다. 소인은 자나깨나 이 은혜를 어떻게 갚을지 더욱 깊이 고민하겠습니다. 오늘 각하의 세심한 배려를 잊지 않고 앞으로도 한국 국민들의 뜻에 반하더라도 무엇이든 황국을 위해 바치겠습니다. 각하의 말씀대로 종군위안부며 강제징용 노동자며 이것은 잘못된 역사 인식이라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들은 돈을 벌기 위해 자발적으로 창부와 노가다가 되었을 뿐입니다. 설사 강제성이 있더라도 이미 다까끼마사오 정부 때 황국의 양보와 배려에 의해 모두 해결된 문제입니다. 또한 다케시마가 황국의 소유라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사실 한국의 국민들이 자존심이 좀 강하기는 합니다만 소인은 황국의 입국을 허락받은 즉시 그 자존심을 소인이 기르는 토리라고 하는 개에게 모두 줘버렸습니다. 이제 너무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최소한 소인의 임기 내에는 황제폐하나 총리각하께 심려를 끼치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즉, 반일감정을 가진 어리석은 한국인들을 색출해 엄벌하고 황국에 충성하는 자들을 중심으로 내각을 구성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모든 한국인이 따르지는 않지만 소인은 이제까지 아침마다 동쪽을 바라보며 가슴 속으로 기미가요를 불러왔습니다. 그것이 신민의 최소한의 도리라 판단해 하루도 거르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친일세력을 모아 대대로 계승하도록 하겠습니다. 하늘이신 천황폐하의 만수무강과 총리 각하의 무한한 지도를 기원합니다. 대일본제국 만세.
레이와(令和) 5年 3月 16日
한국신민대표 윤석열
龍山碑または東京碑 / 徳仁天皇陛下と岸田総理大臣にささげる功徳碑
天皇陛下!先代陛下がしてきたように陛下も韓国を極めて御愛顧下さり、変わりない恩恵を施して下さるので韓国の臣民代表として感泣するばかりです。,また岸田閣下は、卑しい小人を弟のようにもてなして下さり、同じ食卓で食事を許して下さることに、深い尊敬の念を表します。,今日、閣下の細心な配慮を忘れず、今後も韓国国民の意に反しても何でも皇国のために捧げます、閣下のおっしゃる通り従軍慰安婦や強制徴用労働者であり、これは誤った歴史認識だということに完全に同意します。,彼らは金を稼ぐために、自発的に娼婦や土方になっただけで、たとえ強制性があったとしても、すでに高木正雄政権の時の皇国の譲歩と配慮によって解決された問題であり、また、竹島が皇国の所有であることに全面的に同意します。,事実、韓国の国民は少し自尊心が強いのですが、小人は皇国の入国を許されたとたん、その自尊心を、小人の飼っているトリという犬にすべて与えてしまいました。,すくなくとも私の任期内には皇帝陛下や総理閣下にご心配をおかけすることのないように、すなわち反日感情を持った愚かな韓国人を捜し出し厳罰し皇国に忠誠を尽くす者を中心に内閣を構成します。,最後に、すべての韓国人が従うわけではありませんが、私はこれまで毎朝、東を仰いで心の中で君が代を歌ってきましたが、それが臣民の最小限の道理だと判断して、一日も欠かしませんでした。,天の御国(みくに)の御国(みくに)の御国(みくに)の御名(みな)をあがめさせ給(たま)へる御国(みくに)の御国(みくに)の御名(みな)をあがめさせ給(たま)へ。
令和5年 3月16日 臣民韓國代表 尹石十
첫댓글 이놈을 어찌해야 할까요ㆍ
일단 한국인인지 일본인지 혈통 검사가 필요해 보여요.
제2의 이완용.
이완용보다 국제적으로 위상이 높으니 더 나쁜 놈이죠.
국적 포기 하고 싶더군요
그럼 친일파들만 남아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