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역사문화 탐방기] 정병경
ㅡ남도 예향의 숨결ㅡ
단풍이 물들어가는 가을 중턱이다. 광주廣州문화원에서 1박 2일 일정으로 27명이 진도 역사문화 탐방 행사에 나선다. 이상택 원장을 비롯해 정책자문위원과 이사, 직원도 함께 참여하는 행사이다. 이창희 전임 원장과 신금철 직전 원장도 함께해 마음이 든든하다. 전임 원장 모두 함께 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시청에서 배려해 준 버스에 동승하여 새벽 6시 30분 광주를 출발해 천리길을 달린다. 차막힘이 없어 점심 무렵 남도의 끝자락 진도에 무사히 도착했다. 촉촉이 내리는 가랑비를 맞으며 진도 ‘궁전’ 문을 들어서니 맛의 향기가 코로 스민다. 소갈비 듬뿍국은 특별식 요리이다.
첫 공식 일정인 진도문화원을 들어서니 예술의 향이 느껴진다. 오판주吳判珠 진도문화원장의 따뜻한 환대 속에 행사가 시작된다. 행사에 앞서 시청한 영상에서 진도의 역사와 문화를 읽게 된다. '미래를 여는 진도'를 통해 가사도, 십자동굴, 고깔섬, 사자섬 등 보는 각도에 따라 천태만상의 형상을 보니 직접 가보고 싶은 마음이다. 다도해 비경 지력산과 양덕도, 주지도와 불도(佛島)의 수려함이 가슴으로 다가온다.
ㅡ인연의 고리ㅡ
광주문화원과 진도문화원간의 협약식이 성대히 이어지니 마치 형제가 만난 느낌이다. 인구 40만명 광주시와 2만7천명인 진도의 번듯한 문화원사를 비교해 본다. 광주문화원사의 조속하고 현대적인 건립이 시급한 과제인지 실감한다.
박식한 진도 한석호 해설사의 안내로 운림산방(雲林山房)에 들어선다. 소치 선생의 작업실이 운무에 감싸여 한폭의 수묵화로 보인다. 소치 허련으로부터 시작된 수묵화는 5대째 이어오고 있다. 수묵화 묵선 위주인 남종화와 채색 기법인 북종화는 대조적이다. 예술과 정신세계를 중시하는 남종화의 진수를 학술적으로 조망해 보는 뜻깊은 시간이다. 남종화는 당나라 왕유를 수묵의 거장으로 여긴다.
허련(許鍊1808~1893)선생이 수묵화와 인연이 된 계기가 있다. 부유한 환경에서 몰락한 집안에서 예술에 대한 열망이 있는 허련이다. 독학으로 그림을 그리던 중 윤두서의 화첩을 접하면서 녹우당을 찾게 된다.
허련의 재능을 간파한 대흥사 초의선사는 서화 대가 추사 김정희에게 소개한다. 추사는 허련의 그림 솜씨를 극찬하며 제자로 삼는다. 중국 남종화가 황공망(大癡)의 호를 따서 소치小癡라는 호를 쓰게 된다. 인연은 우연히 맺어지는게 아니다. 진도와 광주 문화원도 김희숙 부원장과 조성은 스핏치 대표의 수고로움으로 맺어진 인연이다. 영원히 선연으로 이어지길 기대해본다.
오후에는 ‘진심밥심’ 홍주 제조소를 찾았다. 전통 홍주의 막걸리 거르기 작업을 직접 체험하는 시간이다. 현장을 찾아 환영 인사를 전한 면장님과 이장님께 감사한 마음이다. 탐방 내내 동행해 준 진도군 홍보대사 조성은 도우미의 정성에 깊은 감동을 받는다.
명량대첩의 울돌목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진도타워 전망대로 향한다. 13척의 배로 130여척의 왜적을 물리친 바다를 보니 경이로움이 느껴진다. 울돌목 '광주식당’에서 양쪽 기관이 함께 나눈 마음의 정은 필연인 듯하다. 가랑비 내리는 운치를 눈에 담으며 쏠비치 숙소로 향한다.
밤새 비를 뿌린 하늘은 구름 사이로 간간이 아침 햇살이 끼어든다. ‘제일음식점’으로 아침 일찍 찾아온 진도 군청 관계자와 나눈 겸손의 인사에 정이 샘솟는다.
진도의 지리와 인문적 특성을 고찰해 본다. 한때 인구 12만에 달한 전성기에서 현재 2만여 명으로 줄었다. 진도는 단순한 섬에 그치지 않는다. 넓은 평야를 품어 배추와 벼 농사가 매우 풍성한 복받은 땅이다. 여전히 명창이 배출되어 국악의 맥을 잇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송가인 공원’을 지나 전복 따기 체험을 위해 포구로 나선다. 세찬 파도와 빗줄기에 시달리며 갚진 체험을 해본다. 해산물을 편히 먹는 내륙인으로서 어부의 수고로움에 대해 백분 이해가 된다. ‘보배야 놀자’ 전복 요리집은 남도의 풍미를 만끽하게 한다. 체험 후의 맛은 한층 별미로 느껴진다.
호국 기상이 서린 ‘벽파 충무공 전첩비’로 향한다. 솟아있는 암석에 거북상을 쪼아 만든 거북돌 위에 3.8m높이로 세운 비문이다. 유형유산 5호로 기록된다. 글씨체가 특이하고 웅장하다. 먼 바다에서도 조망이 가능해 맑은 날 등대 역할도 가능하다.
조선시대 수많은 유배객의 한과 시문이 서린 ‘벽파정(碧波亭)’엔 목판에 새긴 시문이 걸려있다. 전첩비 바로 아래 세워져 있어 접근성이 좋다. 조선시대 작가들의 시를 진도 출신 양재복, 김민재 서예 작가 등이 친필로 쓴 시판이 해풍을 맞으며 세월을 삭인다. 안내판에 새겨진 명랑해전은 명량해전의 오타로 여겨진다.
ㅡ문화와 예술적 고찰ㅡ
다도해의 해양문화 진도와 내륙 왕실도자의 광주를 비교해본다.
역사문화 탐방을 통해 얻은 가장 큰 학술과 문화적 가치이다. 지리적 풍요와 문화적 기질의 차이로 여긴다.
진도는 섬이면서 넓은 들판을 품고 있어 농경과 어로가 결합된 풍요로운 경제적 기반을 갖추고 있다. 해상교통의 요충지이며 옛부터 유배지라는 역사적 상흔이 더해진다. 민초들의 한과 신명이 어우러진 ‘진도아리랑’이 있다. ‘진돗개’로 대표되는 강한 생명력의 ‘해양·예술문화’를 꽃피운다. 운림산방으로 대표되는 남종화의 맥 역시 풍류와 예술적 예기(藝氣)의 산물이다.
왕실 품격의 도자문화를 갖춘 광주는 한강 수계와 땔감과 흙이 풍부한 지역이다. 조선 시대 500년간 왕실 관요(分院)를 담당한 ‘왕실 도자문화’의 본산이다. 광주 문화는 왕실의 품격과 유교적 절제미가 갖추어져 있다. 장인정신이 집약된 우아하고 고결한 미학을 지니고 있는 지역이다.
바다를 품고 예향의 신명을 노래하는 진도가 해양문화로 일컸는다. 흙과 불로써 조선의 품격을 담아낸 광주를 내륙 도자문화로 칭한다. 전통문화 양대 축으로서 함께 호응하며 미래의 문화적 자산으로 승화되길 기대해본다.
오후 들어 날은 개었으나 울돌목의 심한 해풍으로 인해 해남 케이블카 운행이 중단되어 버스로 진도대교를 건너야 한다. 소리의 고장 진도는 왕실 도자기 고장인 광주와 서로 다른 문화를 공유할 수 있는 계기이다. 예술을 문학적으로 풀어나가며 진보하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바이다. 무사히 행사를 마치고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시조를 읊조리며 발걸음을 돌린다.
가랑비 토닥토닥
다도해 적셔주고
남도의 멋을 살려
아리랑 흥이 나네
허 소치 운림산방에
먹향 깊은 수묵화
울돌목 거센 물살
수군의 호국 영혼
유배객 한이 서린
벽파정 파도 소리
해풍에 아리랑 실어
광주 땅을 울리리
진도 섬 소리 퍼져
흙 불에 피어나고
예향의 품격 담은
고결한 광주 백자
남도 길 동행한 인연
보배로이 이어져
2026.10.20~21.
첫댓글 광주문화원과 진도문화원의 자매결연 협약 체결을 축하합니다.
활발한 문화 교류가 있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