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란 선원 하멜일행 요리사
얀 클라슨의 족적을 찾습니다.
전) 남원문화원장/ 위생약국 약사
노상준
1653년 화란 선원 하멜 등 일행 36명이 제주도 모슬포 근해에 표착하였다. 이때 이미 26년 전에 표착하여 한국 땅에 귀화, 정을 붙이고 살고 있던 화란 사람 얀 얀스 벨테브레[朴燕]를 데려다가 통변(通辯)을 시켰다.
26년 만에 만난 반가운 고국 사람들에게 벨테브레가 한 말은 인상적이다. “이 나라는 사람들이 좋아 정을 붙이고 살만하다.”고 귀화를 종용하고 있다. 하멜 일행은 여수·남원 등지에서 13년 동안 조선에 처자식을 두고 살다가 더러는 도망치고 외교 교섭으로 되돌아갔지만, 남원에 살았던 요리사 얀 크라즈젠만은 남아서 아들, 딸을 낳고 살았다.
남원 고로들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 감영이 있었던 사창 뒤, 요천의 대밭 모퉁이에서 살았다고 들었다. 앞서 벨테브레의 자식들이며 화란 선원들이 뿌려놓고 간 혼혈 인간들이 적지 않았을 텐데도 얼굴색이 다르다고 해서 격리하는 법 없이 통혼(通婚)하여 한민족 속에 녹아 사라져 버렸다.
이인종(異人種)이나 이민족에 대해 한민족처럼 관용하는 민족도 드물다. 지금 남원에도 귀화하여 살고 있는 사람이 많다. 남원시 통계를 보면 2020년부터 2026년 7월까지만 해도 148명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도 단일 민족에서 다민족 국가가 되어 가고 있음을 실감한다. 고려, 조선 시대에 귀화한 거란족, 여진족 수는 기록에 나타난 것만도 수십만이나 된다. 한데 이들의 흔적이 어디 하나 남아 있는가. 개화기에는 우리나라에도 유대인들이 많이 들어와 화장품 장사를 했고, 개중에는 거리에 나와 “캄인, 캄인!” 유객을 하여 몸을 팔기도 했다. 그래서 당시 창녀를 ‘감인(甘人)’이라 불렀다.
러시아 혁명 후 백계 러시아 사람들이 망명, 흘러들었는데 이들도 이 인종의 용광로 속에 녹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인종 문제에 있어서만은 한국만 한 박애주의도 드물다. 미국을 보자. 자기네 노동력의 필요로 아프리카에 가서 짐승처럼 잡아 온 흑인 노예에 대한 인종 차별은 새삼 거론할 필요도 없다. 평화롭게 사는 흑인 천지인 남아공에 총을 들고 들어가 살아온 백인들의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인종 격리)’는 21세기 양심의 가장 큰 상처요, 치부로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통 세기적으로 백인과 흑인의 가장 첨예한 대립인자로서 “넬슨 만델라(1918-2013)”란 사람들 기억할 것이다. 그는 남아공에서 반 아파르트헤이트 운동을 하다가 반국가 죄로 몰려 종신형을 받고 오래 동안 옥살이하고 세계 여론에 밀려 풀려나온 흑인 지도자이다. 또한 남아공아국 대통령이 되고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남원 민속박물관 소장고에 하멜 일지가 있었으면 좋겠다. 제주나 여수에서는 하멜 일행이 타고 온 선박을 모형화, 전시하고 관광 기념사업을 하고 온 지 오래되었는데 우리 남원은 무엇 하나 시도하여 본 적도 없다.
화란 선원 하멜 일행의 요리사 얀 크라즈젠만을 기념하는 화란(和蘭)식 식당이나 외국식 음식점을 개점시켜 역사를 뒤돌아보면 어떨까? 그리고 그림으로라도 그려서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여 보자. 남원은 많은 문화유산을 관광 자원으로 활용, 침체한 지역 경제에 도움을 주어야 한다. 문화재의 보고요, 한국 제일의 고전의 요람을 그대로 두어서는 침체를 벗어날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