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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지숙 씨를 다시 만났다. 처음 인터뷰한 날은 날씨가 더워질 무렵인 5월 16일이었는데, 이제는 날씨가 추워지고 있다. 기온이 뚝 떨어진 11월 3일 오 씨는 대검찰청 앞에서 시위 중이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
피 말리는 6개월이었다. 유가족들이 직접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해 거리로 나서는 기막힌 상황이 벌어졌다. 국회의원들은 유가족들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하지 않았고, 언제든 찾아오라고 말했던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유가족들은 국회 본청에서, 청운동에서 노숙을 시작했다. 고 김유민 양의 아버지 김영오 씨가 46일간 단식했다. 고 인태범 군의 아버지 인병선 씨가 갑자기 말기 암 판정을 받고 숨졌다. 고 황지현 양이 197일 만에 가족 품으로 돌아왔다. 세월호 참사는 200일을 넘겼지만, 아직도 물속에서 나오지 못한 사람이 9명이다.
그동안 오지숙 씨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오 씨는 4월 28일부터 광화문에서 홀로 시작한 1인 시위를 6월 2일 팽목항에서 마쳤다. (관련 기사 : 다섯 아이의 평범한 엄마가 호소합니다) 평일 4시간씩 시위를 계속하기에는 체력이 부쳤다. 분노와 서러움으로 1인 시위를 접었을 때,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다시 1인 시위를 시작했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라 7명이 돌아가면서 했다. 동참하고자 하는 사람은 계속 늘었다. '리멤버0416'이라는 모임이 만들어졌다. 현재 리멤버0416 페이스북 그룹에는 2200여 명이, 온라인 카페에는 326명이 가입되어 있다. 리멤버0416 회원들은 광화문광장, 국회의사당, 안산 합동 분향소 등 10곳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오지숙 씨는 리멤버0416 창립 멤버이자 핵심이다.
▲ 오지숙 씨의 신앙 얘기도 들을 수 있었다. 그에게 1인 시위는 신앙생활이기도 했다. 그는 '이런 기독교인도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싶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
외연이 넓어지고 모임을 이끄는 역할을 하고 있지만, 오지숙 씨는 처음 1인 시위를 할 때와 똑같은 마음으로 거리에 선다. 요즘에는 일주일에 두 번씩 오전 11시 반에서 오후 1시 반까지 대검찰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한다. 지난 10월 6일, 검찰은 해경 123정장에게 형사책임을 묻는 것으로 세월호 관련 수사를 마무리했고, 이는 '윗선'의 책임을 묻지 않으려는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을 받았다. 오 씨는 그때부터 대검찰청 앞에서 시위를 시작했다. 그가 직접 제작한 피켓에는 '참사의 진실, 그것이 진짜 끝?', '대한민국 검찰, 부끄럽지 아니한가?'라고 적혀 있다. 피켓 한 개는 손에 쥐고, 다른 한 개는 거센 바람에 날아갈까 봐 끈으로 연결해 오른쪽 종아리에 묶었다.
대검찰청 앞에 서 있는 오지숙 씨를 보며 여러 가지가 궁금했다. 어떻게 평범한 엄마가 이렇게까지 할 수 있었을까. 200일이 지난 지금까지 그를 추동하는 건 무엇일까. 시위가 끝난 후 피켓을 서초역 인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무실에 맡기고, 근처 카페에서 대화를 시작했다. 오지숙 씨의 근황과 함께, 지난번에는 충분히 얘기하지 못했던 신앙에 대한 얘기도 들을 수 있었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람들, '리멤버0416'
- 혼자 1인 시위를 했을 때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리멤버0416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도 얘기해 달라.
6월 2일 팽목항을 끝으로 1인 시위를 마칠 무렵, 기사와 SNS를 통해 내 소식을 접한 사람들이 페이스북으로 연락을 해 왔다. 자신들도 1인 시위를 하고 싶다고 했다. 7명이 모였고 한동안 광화문광장에서 릴레이로 1인 시위를 했다. 동참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계속 늘었다. 사람이 많아지다 보니 소통할 수 있는 장이 필요했다. 회원 중 한 분이 페이스북 그룹을 만들었는데, 이름을 '리멤버0416'으로 했다. 현재 페이스북 리멤버0416 그룹과 페이지에 각각 2000명이 가입했다. 실제로 활동하시는 분들은 주로 온라인 카페에서 얘기하는데 회원이 326명(11월 3일 기준)이다.
지금은 거점 10군데를 선정해 평일에 매일 1인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안산 합동 분향소 △광화문광장 △국회의사당 △새누리당·새정치민주연합 당사 △KBS 본사 △MBC 본사 △해양경찰청 △교육부 △대법원 △대검찰청 등 10곳이다. 각 거점마다 요일 담당자가 있다. 지방에서도 1인 시위에 동참하고 싶어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분들에게는 피켓을 제작해서 택배로 보내 드린다.
▲ 리멤버0416은 페이스북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공개 그룹과 페이지에 1인 시위 후기와 세월호 관련 소식을 공유한다. 2200여 명의 사람들이 리멤버0416의 소식을 받아 보고 있다. (페이스북 갈무리) |
- 몇 백 명이 자발적으로 모이는 게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1인 시위를 하시는 분들은 대체로 어떤 사람들인가?
그냥 평범한 아줌마들이 많다. 우리가 주로 점심시간에 1인 시위를 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직장에 다니는 남자들은 참여하기가 어렵다. 남자들은 주로 온라인에서 언론 보도를 링크하거나 자신의 의견을 덧붙여서 기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나도 그렇지만 회원 대부분 이런 시위를 처음 해 보는 사람들이다.
한번은 경남 진주에서 한 분이 올라오셨다. 8월부터 페이스북으로 리멤버0416의 소식을 받아 보고 계셨다. 자신도 뉴스를 접하며 답답하고 억울해서 뭐라도 하고 싶다고 하셨다. 그래서 우리가 피켓을 제작해 드렸다. 그분은 지금도 진주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또 한 분은 어린이대공원에서 아이들에게 노란 리본을 나눠 주곤 하셨다. 언니 오빠들 잊지 말자고 하면서. 그런데 지난 9월 16일 교육부가 교사들의 노란 리본 착용을 금지하는 공문을 보내지 않았나. 이분이 그때부터 교육부 앞으로 시위를 나갔다. 리멤버0416 회원들은 다 그런 사람들인 것 같다. 오직 세월호 참사가 이렇게 잊히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나오는 분들이다.
- 날씨가 추워졌다. 가만히 서 있는 건 여름보다 겨울이 더 힘들다고 한다. 활동하는 데 무리는 없나.
사실 요새 회원 가입이나 1인 시위 신청이 조금 주춤해지기는 했다. 사건 이후 시간이 많이 지났고, 1인 시위의 효과가 미미하다는 생각도 점점 드는 것 같다. 그럴 만도 한 게, 우리는 지금까지 '진상 규명 특별법 제정' 하나만을 외치며 1인 시위를 해 왔다. 그런데 몇 차례 있었던 여야의 특별법 합의 내용을 보면서 실망을 많이 했다.
그렇다고 해도 멈출 수는 없다. 1인 시위라는 게 실효성보다는 상징성이 더 강하지 않나. 유가족들이 노숙하고 국민들이 단식하고 1인 시위했으니 그나마 여기까지 온 것 아니겠나. 진실이 낱낱이 밝혀지고, 유가족들이 마음의 짐 하나 덜 수 있을 때까지 계속할 거다. 우리는 이미 핫팩도 다 준비해 놨다.
▲ 리멤버0416 회원들은 오프라인으로 만나기도 한다. 고 인태범 군의 아버지 인병선 씨의 빈소(왼쪽)와 고 황지현 양의 빈소를 방문했을 때. (사진 제공 오지숙) |
'종이호랑이' 같은 특별법에 생기를 불어넣자
- 10월 31일, 참사 199일 만에 여야가 세월호 특별법에 최종 합의했다. 역시나 유가족들의 목소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 오지숙 씨가 직접 제작한 피켓. 오 씨는 6개월간 수십 개의 1인 시위용 피켓을 제작했다. 리멤버0416에서 '피켓 제작' 담당이라고 한다. (사진 제공 오지숙) |
(한숨) 후… 물론 인적 구성에 있어서는 신경을 많이 쓴 것 같다. 유가족이 추천하는 사람이 4·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이 되고, 유가족이 반대하는 특검 후보는 사전에 제외하도록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수사권·기소권이 주어지지 않았다. 수사권과 기소권이 없는데 핵심 관계자들이 자료를 내놓겠나. 이런 법으로 얼마나 진실을 밝힐 수 있을지 모르겠다. '종이호랑이' 같다. 호랑이를 그려 놓기는 했는데, 이빨도 없고 발톱도 없는.
유가족들도 이대로 특별법이 제정된다면 성역 없는 진상 규명에 장애물이 많을 것이라 예상하고, 11월 7일까지 특별법을 좀 더 보완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유가족들이 너무 지쳤다. 한순간에 아이를 잃은 슬픔을 추스를 시간도 없이 거리로 나왔다. 지지와 성원도 받았지만 온갖 비방과 욕설도 당했다. 이 만큼 버틴 것도 인간의 한계를 몇 번이나 극복한 것이다.
우리에게 많은 과제를 남긴 특별법이다. 국민들이 더 힘을 내야 한다. 종이호랑이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건 국민들의 '감시'다. 특별법이 제정되고 위원회가 활동을 시작하면 국민들의 관심이 시들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나도 사실 어떤 과거사에 대해, 이슈가 될 때는 막 관심을 갖다가 막상 진실을 규명하는 위원회가 꾸려지면 관심이 사라졌다. 그러면 안 된다. 이제 구호도 바뀌어야 한다. 피켓 문구도 바꾸려고 한다. 진짜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강도 만난 사람 도우면 그리스도인, 제도를 바꾸자고 하면?
- 참사 202일째(11월 3일 기준)다. 지금까지 해 온 것도 그렇지만, 이제 제2의 싸움을 시작해야 한다. 지치지는 않나.
힘들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몸이 힘든 것보다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너 하나 그렇게 시위한다고 뭐가 달라지겠느냐', '네가 뭐라도 되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 '리멤버0416 대표 노릇하려는 것이냐'는 등의 얘기를 듣는 게 더 힘들다. 그런 말 들을 때마다 참 슬프다. 나는 무슨 조직이 커져서 억지로 1인 시위하는 게 아니다. 나 하나 노력한다고 세상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그런 생각을 한 명 두 명 하게 되면 세상은 정말 바뀌지 않을 것이다.
정말 힘들었을 때가 한 번 있었다. 8월 7일 여야가 첫 번째로 세월호 특별법에 합의했을 때였다. 그때는 정말 유가족이나 우리 국민들이나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생각했다. 김한길·안철수 체제를 벗어나 박영선 의원이 이끄는 새정치민주연합에 내심 기대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합의 내용이 '야합' 수준임을 보고 절망했다. 그 전까지는 항상 리멤버0416 회원들에게 "그래도 힘내자"고 독려해 왔는데, 그날은 도저히 힘을 낼 수가 없었다. '이 땅에 희망이 있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깊은 무력감에 빠져 들었다.
때마침 중국에서 10여 년간 선교 사역하는 친구를 만났다. 이런 분함과 억울함을 다 털어놨다. 그 친구는 사역 현장에서 매일 그런 절망을 경험한다고 하더라. 그러면서 나에게 세상이 점점 나아질 거라는 생각은 버리라고 말했다. 그 말을 곱씹으면서 전제 자체를 바꿨다. 성경에도 세상은 점점 악해질 것이라고 나오지 않나. 그렇다면 이 희망 없는 세상에서 악에 물들지 않은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 마음 쓰고 노력한 만큼 실망도 컸겠다. 그럼에도 이렇게까지 당신을 추동하는 건 무엇인가.
양심의 외침인 것 같다. 나는 다섯 아이를 키우면서 참 행복하다. 그런데 더 이상 자기 아이의 행복한 웃음을 보지 못하는 부모가 500명이 넘는다. 내가 힘들다고 해도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힘든 것이다. 그러나 유가족들은 아니다. 내 아이를 보면서 계속 이런 생각이 든다. 그 힘듦을 내가 감당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그런 마음이 나를 계속 거리로 나오게 하는 것 같다.
내가 가진 신앙도 내 행동에 위배되지 않는다.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강도 만난 자를 돕는 것도 좋다. 그런데 만약 그곳에서 강도를 만나는 사람이 계속 발생하면 어떻게 할 건가. 사람들을 모아 강도를 잡든지 해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 한국 기독교인들은 강도 만난 자를 돕는 사람만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게 제도를 바꾸자고 하면 색안경을 끼고 본다.
- 분당우리교회 이찬수 목사가 9월 7일 설교에서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언급할 때 오지숙 씨 얘기를 한 게 맞나. 이 목사는 당시 설교에서 "세월호 사건이 터졌을 때 모든 국민이 유가족을 위로하고, 더 이상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법과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얘기했다. 그러나 사단은 얼마나 교활한 존재인지, 세월호 사건을 진영의 논리, 정치의 논리로 변질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그 설교하기 며칠 전에 이찬수 목사님과 만났다. 내가 먼저 이 목사님께 편지를 썼고 이 목사님이 만나자고 하셨다. 서로 배우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목사님은 나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 갖춰야 할 균형을 강조하셨다. 리멤버0416 활동을 하면서, 우리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미워하거나 적으로 돌리지 말라고 하셨다. 나도 이 목사님께 유가족들의 상황이나 심정을 자세하게 말씀드렸다. 이 목사님께 유가족에게 받은 노란 리본 배지를 드렸다. 이 목사님은 이미 그 주의 설교를 다 완성했지만 일부를 빼고 세월호 이야기를 넣겠다고 약속하셨다.
- '균형'이라는 말이 애매하다. 한국교회는 보수적인 성향이 짙어, 시위하는 사람들을 '묻지 마' 식으로 좌파 혹은 사회주의에 경도됐다고 판단해 버리기도 한다. 실제 신앙생활은 어떤가.
막내가 어려 교회에서 어떤 봉사나 직책을 맡은 것이 없기 때문에 예배만 참석한다. 반드시 교회에서 봉사해야만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가 1인 시위를 하는 이유는, 그것이 내 양심에 충실한 일이고 정의로운 세상을 만드는 일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나 사상에 영향을 받은 게 아니다. '신앙생활'이라는 것을 주일 하루, 예배드리는 그 시간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주일보다는 평일, 일상을 어떻게 사는지가 진짜 신앙생활이 아닐까.
나는 내가 기독교인이라는 것을 일부러 드러내지도 않지만 일부러 감추지도 않는다. 다만, 신자이든 비신자이든, 사람들에게 '이런 기독교인도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막말이나 뱉어 대는 '개독'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보여 주고 싶다. 하나님은 약한 자의 눈물을 닦아 주는 분이라는 것을 내가 경험했고 이를 나누고 싶기 때문이다. 1인 시위를 멈출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다.
▲ 오지숙 씨는 1시간여 동안 흐트러짐 없이 서 있었다. 평범한 엄마인 그는, '나도 할 수 있을까'라고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용기가 되고 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1인 시위를 하는 오지숙 씨도 처음 거리에 나섰을 때는 걱정이 많았다고 한다. 1인 시위가 법으로 보장된 일인 것을 알면서도 신상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두려웠다. 1인 시위는 시민의 정당한 권리라고 스스로에게 되뇌면서 큰맘 먹고 집을 나섰다. 그는 지금 그렇게 큰맘 먹고 거리로 나오는 다른 엄마들에게 용기가 되고 있다. 행동하지 못하는 기독교인들에게 도전이 되고 있다.
그를 '시민 오지숙'이라 불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권리를 알고 행동하는 '진짜 시민'. 이것은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니다. 더불어 하나님나라의 새 시민이 되는 것 또한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면서 예수의 가르침대로 살고자 행동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 그 나라를 맛볼 수 없다. 기독교적인 용어로 포장하지 않더라도, 고통받는 사람과 함께 고통받는 사람이 하늘의 시민증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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