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일본 힘의 균형과 한국
서태평양 지역은 미국에 시급한 위기를 제기하고 있지 않다. 인도-중국 간 힘의 균형에 대한 상당한 관심이 있다. 하지만 이 두 나라는 히말라야산맥이 장벽으로 나누여져 지속적인 충돌이나 육로를 통한 대량무역이 불가능하다. 이 들의 관계는 해상으로만 이뤄진다. 제2의 경제 대국 자리를 향한 경쟁에서는 중국과 일본 간의 대립이다. 양국은 거대한 경쟁이 이뤄지고 있다. 지리가 다른 경쟁을 허용할 때만 경제는 힘의 균형에 영향을 미친다. 그 자체로 상당한 경제적 힘을 가진 한국을 비롯한 지역 국가들은 모두 중국-일본-미국 간 균형의 틀 안에 존재한다.
일본은 해양 산업 국가이며 생존을 위한 원료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엄청난 인구와 영토를 가진 중국은 육지에 의존한다. 산업화를 추진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일본은 중국의 시장과 원료, 노동을 필요로 했을 뿐 아니라 이것을 가장 유리한 조건으로 얻고 싶어 했다. 반면 중국은 외국 자본과 전문 지식이 필요로 했으나 일본의 통제를 받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상호 경계하는 상호의존은 중일전쟁과 태평양 전쟁으로 이어졌고, 이 기간에 일본은 중국의 상당 부분을 점령했다. 냉전 시대에 미국은 중국 및 일본과 복잡한 관계를 유지했다. 미국은 한국전쟁 중, 그 이후에도 미국을 지원해줄 일본의 지리가 필요했다. 거의 30년간, 이 기간에 미국은 중국공산당에 강한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일본은 19세기에 급속도로 산업화를 이룬 덕분에 중국이 유럽에 당한 경험을 피할 수 있었다. 유럽은 산업기술과 군사훈련의 형태로 일본에 원조를 제공했다. 영국은 일본 해군을, 독일은 육군을 조직했다. 일본은 덕분에 러일전쟁에서 러시아를 패배시켰다. 일본의 등장에 놀란 국가는 태평양 연안의 미국이었다. 일본은 원료를 대부분 동남아시아와 말레이 제도에서 수입했다. 이런 공급원의 접근성을 확보하기 위해 대규모의 군사력, 해군이 필요했다. 일본의 해군력 증강은 미국의 안보에 위험이 된다, 판단한 미국은 일본의 안보를 위협했다. 이 상호 위협의 결과가 태평양의 2차 세계대전이다.
중국도 미국을 멀리할 여력이 없다. 중국이 미국에 의존하는 것은, 원료 공급로를 미국이 통제하고 있기보다는 미국이 중국의 산업제품의 소비자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유럽과 미국 시장을 확보해야만 한다. 다음 10년은 중국이 일본처럼 무역 상대국인 미국과 관계에서 발생할 최악의 시나리오, 즉 미국 시장에 대한 중국의 접근을 차단하는 정치적 결정에 대비하는 데 초점을 맞출 것이다. 경제적으로 자유로운 행위자가 된다면, 일본은 중국에 반하는 자신의 이해관계에 대해 미국으로부터 보증받거나 아니면 자신의 처지를 바꿔야 할 것이다.
1980년대 중국이 획기적인 성장을 한, 이유는 마오쩌둥이 그 이전까지 성장을 극도로 억제했기 때문이다. 덩샤오핑이 권력을 잡아, 단순한 이데올로기의 변화만으로 중국은 해방되었고, 그간 억눌린 수요, 재능, 국민의 능력을 기반으로 성장을 일궈낼 수 있었다. 중국은 거의 100년 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안정과 통합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외부 세력들이 중국에 투자는 중국의 인적자본을 이용하는 공장과 회사를 세우는 것이다. 다른 나라에 팔 제품을 생산하는 데 있다. 투자의 주된 초점은 항구나 접근성이 좋은 곳이다. 중국은 인구 대부분이 해안지역에 밀집하여 기반 시설은 내륙에 지을 필요가 없다. 대부분 해안에서 160킬로 안에 위치한다. 중국인민은행에 따르면 유럽에서도 큰 규모의 국가인구인, 6천만 명의 중산층이 있다. 전체 인구의 고작 5%도 되지 않는다.
중국 전체 인구 중 6억 명은 연 소득 1천 달러 미만, 또는 일일소 득 3달러 미만의 가정에 살고 있다. 4억 4천만 명의 중국인은 연 소득 1,000~2,000달러 또는 일일소득 3~6달러인 가정에 살고 있다. 이것은 인구의 80%가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와 비슷한 수준의 빈곤 속에 살고 있음을 의미한다. 중국 인구의 15%를 차지하는 산업 종사자들이 거주하는 지역인 해안에서 160킬로미터 이내도 빈곤하기는 마찬가지다. 부를 이전시키려는 시도는 중앙정부를 약화하거나 독재적으로 변하게 만든다. 청 왕조는 영국의 침입 이후 쇠약해졌다. 마오쩌둥의 해결책은 광범위한 억제, 외국인 추방, 그리고 부의 몰수와 빈곤한 내륙지역으로의 재분배였다. 사회적 분열 등이 증가할지라도 중국인의 생활 수준은 높아지며, 이러한 양상은 사람을 수동적으로 만드는 효과가 있다.
중국에서 제조되는 아이폰과 의류제품은 자국민에게 판매되지 않는다. 중국의 임금은 더 이상 파키스탄이나 필리핀 같은 국가보다 우위에 있지도 않다. 반숙련 노동자의 수가 한정됨에 따라 임금은 증가해왔다. 치열한 경쟁과 고객 국가들의 더딘 성장률에 직면한 중국의 경쟁력도 저하될 것이다. 기업은 대출 상환이 어려워질 것이고 금융시스템 전체는 압력이 가중될 것이다. 중국은 현실적으로 실업을 유지할 능력이 없다. 일자리를 찾기 위해 도시로 이동한 농민들이 실업자가 되면 도시는 불안정을 유발하고, 농촌은 빈곤의 수준을 악화시킨다. 중국은 자국 은행들에 파산했어야 할 기업에 대출을 종용하거나, 수출에 보조금을 주거나, 혹은 국유 기업을 만듦으로써 일자리를 유지했다. 그러나 이런 노력은 결국 경제의 핵심을 공동화시킨다.
다가올 10년 안에 답을 내야 하는 장기적인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중국은 그들의 문제를 마오쩌둥이 했던 것처럼, 풀려고 할 것인가이다. 나라를 폐쇄하고 해안지역의 사업가들을 없애며 외국인 투자자를 추방할 것인가? 아니면 20세기 중반까지 그랬던 것처럼 지역 주위와 불안정의 패턴을 따를 것인가? 분명한 것은, 중국 정부가 경쟁 세력들 간의 균형을 잡기 위해 노력하면서 내부 문제에 몰두하게 될 것이고, 일본과 미국의 의도에 대해 점점 더 예민해질 것이란 점이다.
일본은 1990년대에 현재 중국이 겪기 시작하는 경제 하락 decline과 같은 것을 경험했다. 게이레츠 keiretsu라 불리는 대기업 복합체들은 상당한 자유를 누렸다. 자본의 문제는 이렇다 할 연금제도가 없는 사실로 악화하였다. 시민들은 금리가 매우 낮은 우체국에 돈을 맡겼다. 정부는 우체국의 예금을 게이레츠와 연결된 시중은행에 빌려주었다. 이 시스템은 이자율이 5% 미만일 때는 일본기업에 유리했다. 그러나 이 돈은 수익성이 보장된 산업에는 대출되지 않았다. 일본의 경제는 중국 경제와 마찬가지로 수출에 있으며, 특히 대상은 미국이었다.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경쟁이 심해지자 일본은 가격을 낮췄고 수익 감소로 이어졌다. 이 상황에서 기업이 성장하려면 더 많은 돈을 빌려야 했다. 나중에는 돈을 갚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이에 뒤따르는 것은 경제의 추락이었다. 서양의 경제학자들은 일본 경제가 침체하였던 20년을 ‘잃어버린 20년’이라 이름 붙였다. 그러나 다행히도 일본은 빈곤 속의 10억의 인구가 없다는 점이다. 일본의 근본적인 약점은 석유, 고무, 철 등 산업을 위한 천연자원이 없다는 점이다. 산업 강국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본은 전 세계에 사고, 팔아야 하며, 해상 항로에 대한 접근성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된다. 문제를 내부적으로 해결할 수단을 찾을 수 없을 때, 일본은 다시 한번 공격적(일본의 미국 본토 공습.)으로 변할 가능성이 크다고 필자는 주장한다.
중국은 바다를 통해 세계와 연결되지만, 지리적 여건이 미국보다 대단한 해군력을 보유하고 있지는 않다. 해군력은 기술을 개발하려면 수세대가 걸린다. 필요한 기술과 훌륭한 지휘관을 기르기 위한 축적된 경험을 전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발전은 지상용 대함 미사일에서 이뤄진다. 중국은 대함 미사일마저도 미국의 공군이나 미사일 공격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다음 10년 이내에 중국해군이 미군을 지역 해역에서 몰아내지 못할 것이라고 필자는 주장한다.
2023.04.05.
( 비 오는 봄날에 전국 동시다발 35개소 산불 발생하여 모두 꺼지고, 홍성 산불도 3일 만에 봄비로 완전히 꺼졌다.)
21세기 지정학과 미국의 패권 전략-3
조지 프리드먼 지음
김앤김북스 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