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중 처음 맞이하는 위기(19일 차)
오늘 드디어 레온 도착하여 어느 성당에 들어가니 미사 중.
영성체 함.
매일 은총의 나날
오늘 묵는 알베르게는
베네딕토 수도회 수녀님들이 세심하게 운영하고 있으며
수녀원 예배당에서 7시 미사,
9시 순례자 축복기도가 열림.
오늘 도착 후 오른쪽 발등과 발목이
시큰거리고 아파 걷기 불편
시내 관광 대충하고 숙소에 와
스포츠테잎으로 조치했으나 여전히 발을 디디면 아픔.
내일 일이 걱정.
자고 나서도 아프면 버스라도 타고 갈까 생각
7시 미사 때 양형영성체 한 후 신부님 안수 받음
이곳 알베르게는 갈멜수도회에서 운영하는 곳으로
인기가 있어 접수하는 곳에 장사진을 이룸
앞 빨간 모자 쓴 친구를 까미노에서 제일 많이 만나게 됨
저녁 통증도 가라 앉힐 겸 마트에서 과일과 맥주 2캔 구입
식당에서 한국에서 가져온 육포를 꺼내
캔맥주를 마시려고 따는 순간
아뿔사 이건 맥주가 아니고 코카콜라
마트 냉장고에 콜라와 맥주가 같이 있었는데
6팩에서 2개 남은 것을 선택.
마호우(mahou)맥주와 코카콜라가
구별이 안될 정도로 비슷함.
황당하여 약 50미터 떨어진 마트에 다시 가서
마호우 맥주 구입
주인에게 마호우 맥주 산다는 것이 콜라를 샀다고 하자
그저 웃을 뿐
맥주를 사가지고 주방에서 먹으려는데
독일여자 2명이 들어옴.
레드와인 1병과 과일 그리고 샐러드 종류를 가지고
내가 한국에서 가져온 육포를 권하자
고개를 절레절레.
맛있다고 해도 웃으며 사양
그러면서 와인을 권하기에 내가 맥주를 보이며
난 맥주가 와인보다 좋다고 하자 수긍
말하고 나니 미안한 마음이 들어
사실 난 맥주회사에 근무하다 퇴직했다고 하자
그제야 웃은 띤 얼굴로 이해한 듯
이후 맥주 이야기
독일이 맥주 본고향이지만 맥주에 대해선 나도 일가견
독일맥주와 한국맥주의 차이점
독일은 맥주회사가 수 천개인 반면
한국은 2~3개지만 규모가 큼.
한국에서 독일 레벤브로이
하이네켄 버드와이저도 생산한다는 것
독일 옥터버 페스트 이야기등 나누는데
순례자 축복기도 있다고 봉사자가 알려 중단
9시부터 40분간 15명의 수녀님과 순례자 축복예절을 한 후
순례자 기도문 함께 봉독.
끝나고 말씀사탕 같은것 뽑음(사진)
유다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한 성 에디트 슈타인의 말씀
잠자리에서 발을 움직이니 통증이 사라진 듯.
아침에 정상으로 돌아오길 기대하며 잠자리에 들었는데
옆 사람 코를 너무 골아 잠을 못 이룸.
그분 (70대)은 서양인 특유의 냄새도 나고
침대 배정 시, 가운데 침대가 자기 것인데
내 침대를 먼저 가로챔(벽쪽)
봉사자 일본인 할배가 수 차례
당신 침대는 가운데인 옆 침대라고 애기해도 무시한 분임
조금 지나자 다른 침대에서도 코를 골기 시작,
9명 자는 방이 천둥 치듯 돌림노래도 아니고
스트레오 같이 울린데다 옆 할어버지는 잠꼬대까지
룸메이트를 잘 만나는 것도 복인데
혼자 큰소리로 떠들다 으악 비명도 지르고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어
방명록 쓰는 휴게실에 나와
방명록에 글을 쓰고 내용을 보니
많은 순례자들이 이곳에서 중단하거나
컨디션 조절, 치료 등을 위해 2~3일 묵고 가는 경우 많음.
나도 예외는 아닌 듯
지금 12시 40분 오늘은 쓸 것이 많은 날임
데스크 탑이면 양손으로 타이핑하겠지만
스마트폰은 엄지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치고
그것도 틀린 글자를 눌러 수정하느라
시간이 많이 걸림
출발 5일 이내 한 번 어려움이 닥치고,
반환 점을 막 지난 레온이 2번째 위기
레온에서 포기하며 아쉬움을 달래고
다시 도전하겠다는 글도 많고
대도시인 이곳이 의료시설이 좋고
수도원에서 1박 이상 허용하는 알베르게라
이곳에 며칠 머물며 치료도 하고
휴식한 후 출발하는 사람도 많음
나도 첫 번째 위기가 찾아옴
사랑의 까미노(20일 차)
잠을 설쳤지만 6시가 되어 발 상태를 보니
걸을만하여 천천히 걸을 요량으로 출발
레온시를 벗어나려는 곳에서 누가 차 한잔 하고 가라고,
무료라고 한국말로 이야기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았지만 보니 한국인 2명.
외국인들은 그냥 지나쳤지만 난 멈추어 담소
남편은 시각장애인인데 까미노 순례길을 꼭 오고 싶어 해,
전 코스를 걷지는 못하고 주요지점에서 봉사한다고
이곳에서 며칠 더하다 산티아고에 가서 하고,
바르셀로나를 거쳐 귀국할 예정이라 함
따뜻한 믹스커피를 오랫만에 마시고
곱은 손을 비비며 감사인사 전하자
남편이 하모니카로
'일어나 걸어라' 연주(오늘의 배경음악)
사진찍고 작별인사.
까미노는 은총의 연속
10여분 걷자 외국인 한명(아까 나에게 길 물어본 사람)이
내가 커피 마시는 동안 추월해 앞장섰던 분이
길을 되돌아 오며 양말 한 짝
(예쁘고 알록달록 색깔있는:
누가 선물 아니면 떠준 것 같이 소중한 것)을 들고
다른 한 짝 못 봤느냐며 만나는 사람마다 물어오고 있음.
나 같으면 한 짝 포기했을 텐데
나에게 묻길래 모른다고 하자
포기한 듯 돌아서 내 뒤를 따라옴.
2~3분 걷자 앞에서 환호성
가보니 양말 한 짝이 전봇대의
튀어나온 부분에 걸려있는 게 아닌가.
아마도 발견한 사람이
주인이 찾을 때 찾기 좋도록 걸어놓은 듯
6~7명이 잠시 멈춰 환호와 함께 축하해줌
성경에 잃어버린 동전 하나 찾았을 때의 기쁨을 느낌.
정말 작은 일에도 서로 축하해주는
사랑의 까미노
10킬로 오자 갈림길.
어느 길을 가든 내일 저녁에 만나게 됨.
까미노에는 선택할 수 있는 길이 다수 있음.
한쪽 길은 2킬로 짧지만 자동차 도로를 따라가는 길로 시끄럽고 산만함.
다른 길은 길지만 조용하고 평화로운 길
같이 가던 사람들 짧은 길 선택.
나는 한동안 망설임
발도 아픈데 따라갈까 하다 로버트 푸르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 생각남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 났습니다
나는 그 두 길을 함께 다 가지는 못할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오랜 동안 서서
한 쪽 길이 굽어 꺾어져 내려간 곳 까지
될 수 있는 한 멀리까지 바라 보았읍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읍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의 발자취가 적어서
아마 좀더 걸어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 길을 걷게 되더라도, 그 길도
다른 길과 거의 비슷해 질 것 이라고 여기면서.....
그날 아침, 두 개의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읍니다.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다른 한 길은 남겨 두었읍니다.
길은 길로 이어져 끝없이 뻗어 감으로
내가 다시 돌아 오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먼 훗날 나는 어디선가에서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 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들이 적게 다닌 길을 택했다고
그리고 그 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 졌다고.
나도 사람들이 덜 선택한 길을 택해 걸으니
앞에도 뒤에도 사람의 그림자라곤 없었습니다
보이는 건 앞서가는 내 그림자(서쪽으로 가기 때문),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
곧게 쭉 뻗은 자갈도 아닌 모래도 아닌
걷기 딱 좋은 비포장 도로,
들리는 건 사각사각 내 발자국소리,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
볼에 스치는 바람, 코끝에 풍기는 꽃 내음.
정말 내 페이스에 맞게 노래도 부르고 기도도 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평화롭고 조용한 길이었습니다
숙소에 도착해 보니 인구가 500명도 안 되는
평화로운 마을로 선물가게 박물관 아트갤러리가 전부였고
여장을 풀고 재충전하기에 안성맞춤입니다
정말 탁월한 선택.
숙소에도 사람이 적어 잠자리도 편하고
빨래 샤워 잠자리도 편합니다
오는 길에 나무에 걸린 신발 한 켤레 발견.
겉으로 보기엔 말짱
낡아 버린 것인지 아니면 필요한 사람 신으라고 한 것인지.
걸어놓은 사람만 알겠지요
오늘도 은총의 까미노는 계속 됩니다
첫댓글
대단한 열정의 순례길입니다.
가시는 곳곳이 바로 역사의 길이네요.
감명깊게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