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알바니아 내전은 1990년부터 자국으로 침투한 특수 조직에 의해 촉발되었다.
이 조직은 군복대신 양복을 입고 다녔으며, 총이나 칼 대신 출처 불명의 차트를 가지고 다녔다.
이들은 공산주의 시절에 군림했던 비밀경찰보다 더 위력적인 힘을 발휘했는데,
이들이 바로 금융계의 흰개미, 사기계의 본좌로 불리는 피라미드였다.
이들은 말 몇 마디로 7년 만에 전 국민을 다단계의 함정으로 몰아 넣었으며,
단 한번의 클릭으로 알바니아 본토 자체를 슬럼가로 만들어버렸다.
그리고 이어진 다음 식순은 무엇이었겠는가? 바로 내전이었다.
역사상 가장 빠르고 가장 확실했던 전 국민의 거지화!
북한의 김일성 조차도 30년 만에 이룩했다던 이 미스테리한 거지 사건은
20세기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 알바니아에서 실제 일어났던 일이다.
침투
알바니아는 발칸반도 서부에 위치해 있으며 아드리아해를 끼고 있는 나라이다.
이 나라의 인구는 337만명으로 대다수 주민이 이슬람교를 신봉하고 있다.
이곳의 면적은 우리나라의 경상남북도 크기로 비교적 작은 나라에 속한다.
알바니아는 소련이 붕괴되면서 자본주의의 급격한 변화를 맞이하였는데,
보통 이런 나라의 국민들은 평소 경험해보지 못한 자본주의에 대한 환상 때문에
금융사기 사건에 쉽게 노출되는 경향이 있었다.
1990년, 시대는 바야흐로 금융 사기의 최강자 피라미드의 전성기였다.
수익과 손실에 대한 기본 개념조차 없었던 알바니아 국민들은
황금알을 낳는다는 이 다단계 사업에 아무런 의심없이 빠져들었고,
시민들은 집을, 농민들은 소를, 거지들은 깡통을 팔아 투자자로 나섰다.
과열
당시 알바니아 전체 인구 중에서 무려 200만명이 이 사업에 참여했으니,
전 국민의 3분의 2가 투자자로 나선 꼴이었고, 비경제활동 인구까지 감안한다면
사실상 전 국민이 이 거대한 피라미드에 뛰어들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결국 이 수렁에 쏟아진 금액은 알바니아 GDP 총액의 50%를 넘어섰다.
특히, 유력한 피라미드 회사중에서 최강의 선두를 달렸던 '하 페리' 신탁회사는
투자자들에게 월 47%의 고수익을 제시하여 118만명이라는 압도적인 회원수를 자랑했는데,
이것은 개울가에 버려진 불발탄에 전기 충격을 가하는 짓이나 다름없었다.
심지어 이러한 피라미드를 관리 감독해야 할 정부마저도 여기에 빠져들었는데,
당시 베리샤 대통령과 집권 민주당까지 이 투자를 적극적으로 장려하였고,
선거에 나선 정치인들까지도 이 피라미드를 선거 전략으로 이용했다.
이 결과 피라미드는 정부가 인정하는 합법적인 사업으로 여겨졌고,
이제 이 투자의 대열에 끼지 못한 사람은 아예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할 정도였다.
이에 알바니아인들은 바닥이 모래인지도 모른채 위험한 바벨탑을 쌓기 시작했다.
결국 피라미드의 구조적 모순은 한계를 드러냈고 다단계 특유의 먹튀 수순이 도래했다.
모든 건축물은 비싼값을 치르만큼 더디게 무너지지만 다단계는 그 반대였다.
1997년, 탑이 무너지는 속도는 순식간이었고, 그에 비례하여 절망은 치솟았다.
1차 내전
이 와중에 베리샤 대통령이 피라미드 회사로부터 거액의 정치자금을 받은 사실이 알려지자,
시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고 곧바로 70여만명의 시위대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얼마 뒤, 이들에 손에 쥐어졌던 피켓과 프랑카드는 자취를 감추고
총, 칼, 도끼, 오함마, 쇠사슬, 삽자루, 몽둥이, 파이프렌치 등이 등장했다.
이 시위는 남부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했는데,
무장한 시민들은 도시에서 닥치는대로 때려 부수고 약탈하고 불을 질렀다.
이때부터 국민들은 인생포기, 국가는 무정부 상태로 치달았다.
물론 이 과정에서 수천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내전 초기였던 1997년 2월엔 다소 과격한 시위형태로 출발했으나,
한달 후 정부군의 공중 폭격이 시작되자, 시위대는 무장 조직으로 변모했다.
이들은 정부군에 대공사격을 가하고 6척의 무장 함정을 탈취하여 해군기지까지 장악하였다.
이로인해 알바니아 정부는 남부 지역에 대한 통제력을 완전히 상실해 버렸고
전투는 적과 아군과 목표가 불명확한 상태에서 밤 낮없이 진행되었다.
이 때 아이부터 어른까지 총을 들 수 있는 남자는 모두가 총을 들고 다녔으며,
이 광경은 마치 소말리아의 내전을 방불케 했다.
타협
이때 유럽국가들은 불안에 떨었다.
5년간 발칸반도를 뜨겁게 달궜던 세르비아 사태가 전정된지 얼마 안되었고
바로 옆에선 코소보 독립 투쟁이 극에 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럽은 불씨가 번지지 않도록 알바니아 정부에 압력을 넣기 시작했다.
결국 정부는 고민끝에 시위대에게 최후통첩을 보냈다.
"48시간 이내에 모두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면, 전원 사면 시키겠다!"
그리고 서방세계의 권고에 따라 조기 총선을 실시한다는 중재안도 발표했다.
정부는 이 약속을 이행한다는 뜻으로 3월 8일, 정부군의 철수를 명령했다.
이 후 내전은 겨우 위기를 모면하였고 다국적 군이 들어왔다.
약속대로 3개월 뒤에 총선이 실시되었고, 집권 여당은 참패했다.
베리샤 대통령과 민주당은 쓸쓸히 퇴장했고, 사회당의 나노 총리가 등극했다.
이 후 서방 세계는 IMF의 지원을 약속하였다.
그러나 안심하기엔 아직 일렀다.
2차 내전
피라미드의 악몽이 채 가시지 않은 1998년 9월 12일, 단 한 발의 총성이 울렸다.
바람을 가른 총알은 유력한 민주당 지도자 하즈다리를 그 자리에서 쓰러트렸다.
죽은 자는 말이 없었지만, 야당 지지자들에게는 총과 몽둥이가 있었다.
무장한 야당 지지자들과 정부군 사이에 격렬한 충돌이 발생했다.
9월 15일, 정부는 반정부 세력의 배후를 베리샤 전 대통령으로 지목하고
이틀 후, 그의 면책특권을 박탈함과 동시에 체포 가능성을 시사했다.
베리샤는 이에 항의하며, 민주당의 의회 보이콧을 선언했다.
원래 인간은 피를 보면 더 흥분하게 되는데, 기름까지 부어진 것이다.
"아놔~ 지들이 죽여 놓고 왜 엄한 사람한테 뒤집어 씌워~!!"
여야의 극한 대립은 시위대를 더 광적으로 몰아갔다.
이 와중에 이웃한 코소보에서는 세르비아와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 쪽에서 피워진 화약 연기는 남서풍을 타고 알바니아로 전해졌다.
"아~ 이 본능을 자극하는 스멜~"
사태가 벌어진지 보름만인 9월 27일, 나노 총리가 전격 사임했다.
담배는 한 번 끊었을 때 완전히 끊어야 한다. 금단증상이 반복되었다.
어쩌면 희망없는 가난 보다는 전쟁을 더 선호했는지도 모른다.
내전의 불씨는 명동 갈비집 숯불보다 더 오래갔다.
서방 세계는 이 사태가 발칸 전체로 옮겨 붙을 것을 염려하였다.
그리스와 이태리는 난민 유입을 우려하여 국경경비를 강화하였고
미국과 서방 세계는 경제원조 중단을 시사하면서 폭력 자제를 호소하였다.
서방 세계의 강력한 개입으로 사태는 수그러 들었다.
코소보 사태
1999년 3월, NATO가 코소보 사태에 적극 개입하기 시작했다.
원래 재수없는 사람은 뒤로 넘어져도 옥수수가 빠진다고 했던가?
두 번째 내전을 겨우 수습하고 있는 알바니아에 난민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코소보에서 발생한 난민 70만명 중에서 45만명이 이곳으로 몰려든 것이다.
"아놔~ 하루 세끼 먹기도 힘든데..."
알바니아인들은 원래 같은 동포로서 이들을 받아주어야 했지만,
그렇게 되면 세르비아가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알바니아는 고민에 빠졌다.
그때 서방 세계에서 알바니아에 경고를 보냈다.
"난민을 받아주지 않으면 IMF 지원은 없다. 오바!"
알바니아는 이 협박에 못이겨, NATO에 적극 협력하기로 했다.
그러자 코소보 반군들이 알바니아 북부로 들어왔다.
"어어~ 저러면 완돼는데, 또 불안해진다. 이거~"
아니나 다를까, 세르비아에서 포탄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아놔~ 이놈의 땅 바닥엔 자갈 보다 탄피가 더 많아!!"
그 해 6월, NATO의 공습으로 세르비아가 무릅을 꿇었다.
"휴~ 이제 다 끝났겠지?" 알바니아는 문턱에 털썩 주저 앉았다.
원래 재수없는 사람은 앉은 자리에도 꼭 못이 튀어나와 있다.
"앗~ 뭐야 이거??"
정정불안
전쟁이 끝나자 무장강도와 범죄 조직이 기승을 부렸다.
이 과정에서 유럽 안보협력기구의 직원까지 사망하게 되자,
국제 구호단체는 사무실까지 페쇄하기에 이른다.
이 상황에서 알바니아의 정치인들은 집안 싸움에 몰입했다.
그 해 7월, 민주당의 베리샤는 의회 복귀를 선언했지만,
당내 반대파들이 이의를 제기하며 지도부와 거센 충돌을 벌였다.
'정상화는 무슨~ 여당과 붙어 먹으려는거지?"
한편 집권당인 사회당도 마찬가지였다.
세 번째 총리인 마이코에게 반대파들이 당권을 요구하면서 내분이 일어났다.
이에 총리가 사임하고, 제3의 인물 메타가 뒤를 이었다.
이 후 알바니아는 차츰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전국에 걸쳐 12개 범죄 조직을 소탕하였고, 무정부 지역도 질서를 회복하였다.
이어서 외교를 정상화하여 세르비아를 제외한 주변국과도 관계를 개선했다.
결론
현재 알바니아는 유럽 연합의 틀 안에서 공동 발전을 모색하고 있으나,
피라미드로 거덜난 자국의 경제와 민심의 분열은 쉽게 회복되지 않고 있다.
만약, 최근 발생한 미국발 금융 위기가 동유럽을 이대로 계속 흔들어 댄다면?
안타깝지만 알바니아는 이번에 화약 대신 향 냄새를 맡을지도
첫댓글 감사합니다
다단계로 파탄난 가정도 많이 있지요
참으로 답답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