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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아 목사
도입
신창원은 감옥에 있을 때부터 곤충학자인 ‘지그 지글러’의 ‘정상에서 만납시다’라는 책을 좋아했습니다. 모두 열 번 이상 읽었습니다. 그 책은 인간 능력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었습니다. 그 책은 치밀한 계획, 사전답사, 신중한 방법선택, 연습, 대담한 행동과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의도만 있다면 0.5퍼센트의 가능성을 99퍼센트까지 올릴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정상에서 만납시다>라는 책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국내에도 수많은 독자들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작가 지그 지글러는 오늘날 가장 유명한 대중 연설가 중 한 사람이며 '최고의 동기 부여가', '자기 계발과 성공 학의 대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3백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그의 강연을 직접 들었으며 수백만 명이 테이프와 비디오를 통해 영감을 얻었습니다.
신창원은 한번은 워낙 급하게 쫓기다가 건물 5층에서 그냥 뛰어내린 적도 있었습니다. 당연히 발목뼈가 상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의외로 발톱 하나 다치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더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도 아무렇지 않았습니다. 그걸 보면서 인간의 능력에는 한계가 없다는 걸 그는 실감했습니다.
신창원이 권력자, 가진 자와의 전쟁을 시작하겠다며 전두환(全斗煥),노태우(盧泰愚)전 대통령이 살고 있는 서울 연희동을 찾아간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신은 경찰에 압수된 일기장을 통해 “이제 나는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전쟁을 선포한다”며 “나는 인간을 죽일 수 있는 무기를 만들고 사용하는 법을 알고 있으므로 전쟁 후의 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라고 썼습니다.
박남진 원장(익산신경정신과)은 신창원의 행각을 과대망상에 사로잡힌 ‘영웅심리’의 표현으로 분석했습니다. 박원장은 “신창원의 일기장에 나타난 ‘전쟁선포’와 같은 말은 자신이 사회적 지탄을 받고 있는 사람들을 응징함으로써 자신을 ‘영웅’으로 포장하려 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당시의 신창원 신드롬은 사람들이 그의 범죄행각을 통해 우리 사회의 온갖 부조리와 비리, 모순, 추태 등을 적나라하게 보면서 대리만족을 했다는데 가장 큰 원인이 있습니다. PC통신에 ‘신창원 동호회’가 생기고 중학교 1학년 7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50명 가까운 학생들이 “신창원은 좋은 사람이며, 검거돼서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인 것이 이를 여실히 입증한 것입니다.
경찰은 전자제품 수리공인 김모(48)씨의 신고를 받고 경찰관과 전경 등 46명을 출동시켜 아파트를 에워싼 뒤 문을 열고 들어가 신을 검거했습니다. 신은 경찰이 문을 두드리자 처음에는 문을 열기를 거부하다 상황이 악화된 점을 알았는지 스스로 자신이 신임을 확인하고 문을 열어줬습니다. 이와 동시에 이만근 경사 등 베테랑 경찰관 3명은 뒷 베란다를 통해 들어가 신을 덮쳤습니다.
경찰은 신의 도주에 대비, 경찰관이 중무장하고 출동했으나 신이 "도망가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는 등 비교적 순수히 검거에 응했다"고 말했습니다. 신창원은 대도 조세형과 조폭 조양은 이후로 가장 유명한 범죄자의 화려한 도피행각은 이렇게 막을 내렸습니다.
그동안 동원된 연인원만 수천 명에, 수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면서도, 2년 6개월 간 200여건에 10억 이상의 강절도 행각을 벌인 신창원은 전자제품 수리공의 신고로 검거했습니다.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는 야스퍼스는 이러한 상황을 "한계상황" 이란 말을 했습니다. 그 한계 상황은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고/면할 수 없고/변화시킬 수도 없는 실존적인 현실을 말합니다. 실존적인 한계상황/출생/죄/죽음/질병/고통이 있습니다. 때문에 인간은 이 고통을 피할 수 없어 직면하여 느끼며 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사주팔자로 알고 운영에 맞겨 살며 체념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고통을 통해서 한계상황을 통해서 절대자인 신에게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한다" 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신창원이는 자기의 한계를 알지 못하고 완전 범죄를 행하여 자신을 영웅시하였고 지그 지글러의 사상을 온전히 신앙처럼 신뢰한 것입니다. 잘못된 사상 잘못된 이론을 믿고 신뢰하여 결국은 지그 지글러의 설이 진리가 아님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잘못된 지식 잘못된 신념 잘못된 이론을 쫓을 땐 온전히 패가망신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인생을 책임지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의 솔로몬은 하나님 앞에 인간의 유한한 한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 모두는 이 한계적인 상황을 깨닫게 될 때에 겸손하게 되고 여기서부터 우리는 한계를 뛰어넘는 십자가의 복음을 예수 그리스도를 요청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직도 자기 힘을 믿고 자신을 의지하면서 사는 인간은 주님의 말씀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
당신은 지금 무엇을 신뢰하며 살고 있습니까?
건강 젊음 물질 재능 사람 그 무엇입니까? 바로 그것이 신뢰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까? 목숨을 걸어도 되는 것입니까?
본문의 솔로몬은 세 가지 면에서 인간의 한계성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인생의 권세의 한계
인간의 권세나 권력의 한계가 있습니다. 2절에 "왕의 명령을 지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대통령 중심제에서 대통령의 권한은 막강합니다. 인간은 권력이나 권세가 무한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권세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1)권력자가 다 개인적인 종말을 맞습니다.
레이건이 금년 90세입니다. 렌시 여사가 인터뷰한 기사를 보니까 레이건 자신이 대통령이었던 것도 알지 못합니다. 자신의 기억 속에도 그 당당한 권세가 안개처럼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100세까지는 동반자로 살았으면 한다고 소망했습니다. 언젠가는 죽습니다. 모든 사람의 뇌리에서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2)권력은 이양되게 마련입니다.
임기가 끝나면 권좌에서 물러나야 합니다.
인간세상에서 절대 권력자는 왕입니다. 왕은 하고자 하면 무엇이든지 합니다.
권력에 저항하는 자는 견디지 못합니다. 꺾이든지 쿠테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든지 하는 것입니다.
이승만 정권의 3.15 부정선거가 기폭제가 되어 4.19 학생 의거가 일어나고 이승만은 당시 "국민이 원한다면" 이라는 말을 남기고 실각하게 됩니다. 그 후 장면 내각이 들어서지만 무능함을 보이다가 1961년 5.16혁명으로 단명하게 됩니다. 윤보선 정권도 4.19의거로 무릎을 꿇고
박정희가 5.16군사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뒤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에 의해 박정희 전대통령이 시해되면서 18년 간의 독재와 유신체재가 막을 내리게 됩니다. 최규화 대통령은 전두환에 의해서 권좌를 물리고 전두환 정권도 노태우 정권에 권좌를 내어주고 백담사로 유배를 갔으며 노태우 정권도 김영삼 정권에 의해서 감옥을 갔었습니다. 김영삼 정권도 김대중 정권에 의해 권자를 내어주고 이젠 김대중 정권이 권좌에서 내려올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요,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 절대권력은 없는 것입니다.
필리핀 아로요 대통령은 전 대통령 에스트라다를 탄핵제판을 통해 구치소에 수감하였습니다. 뇌물수수, 부정부패, 헌법위반, 국민 기만.. 아시아 지도자 중 처음으로 탄핵재판에 회부된 필리핀 에스트라다 대통령의 혐의 내용입니다. 부통령이 있던 아로요가 실권을 잡으니까 법과 지시대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녀는 시민혁명으로 쫓겨난 에스트라다 정권의 부통령이었고, 코라손 아키노 대통령에 이어 2번째 필리핀 여성 대통령이기도 합니다.
아로요 대통령으로 말할 것 같으면 150cm도 안 되는 단신의 여성으로 그 권세를 누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절대 권력이 아닌 인간의 왕에게 권력에 명령을 지켜야 하고 거역할 수 없는 것인데 하물며 왕이신 하나님께 거역하고 그 말씀을 불순종한다면 어떻게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시편5:2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라고 했고 시10:16"여호와께서는 영원무궁하도록 왕이시니" 시44:4 "주는 나의 왕이시니"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전성기에 다윗 왕의 입으로 "하나님은 나의 왕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3번째 왕인 솔로몬 왕은 “하나님은 왕이시니 너희는 그 왕의 명령을 따르라"고 말합니다.
권력 위에 권력이 있고 왕위에 왕이 있음을 깨닫게 되면 모든 권력자들이 겸손해 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를 다스리시는 주님의 주권에 삶을 맡기고 살아야 합니다.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시신 우리 주님 외에는 어느 권세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분은 영원히 다스리실 만왕의 왕이신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의 자녀인 황태자인 것입니다. 영원히 썩지 않고 쇠하지 아니할 기업을 무를 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능력의 말씀에 순종하여 겸손하게 주의 뜻을 쫓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2.인생의 예지의 한계
"무릇 명령을 지키는 자는 화를 모르리라 지혜자의 마음은 시기와 판단을 분변하나니 무론 무슨 일에든지 시기와 판단이 있으므로 사람에게 임하는 화가 심함이니라 사람이 장래 일을 알지 못하나니 장래 일을 가르칠 자가 누구이랴"(전8:5-7)
(약 4: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전3:11)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전7:14)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 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인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한순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의지합니다. 기도합니다. 말씀을 붙듭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말씀을 통하여 성령의 하심을 통하여 시기를 압니다. 판단을 압니다. 날마다 주시는 에언의 말씀으로 시기를 분별하게 하십니다.
지혜자는 지금이 무슨 일을 해야 할 시기인지, 어떤 때인지를 압니다. 아무리 지혜로운 척해도 때와 장소를 분별할 줄 모르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시킬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전3:1-8)
각각 주어진 때에는 그 일을 해야 합니다. 지나가 버린 뒤에 그 일을 하려면 불가능하기도 하고 설사 가능하다해도 몇 갑절의 더 큰 수고를 감내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배울 때 배우십시오. 일할 때 일하십시오. 헌신할 때 헌신하십시오. 봉사할 때 봉사하십시오. 돈벌 때 돈을 버십시오. 범사에 때가 있는 것입니다.
7절 사람의 장래 일을 알지 못하나니 장래 일을 가르칠 자 누구이랴 솔로몬의 그 말의 결론은 오직 세상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며 섭리하시는 우리 주님의 손안에 미래가 약속된 내일이 있다는 말입니다.
3.인생의 능력의 한계
(전 8:8) “생기를 주장하여 생기로 머무르게 할 사람도 없고 죽는 날을 주장할 자도 없고 전쟁할 때에 모면할 자도 없으며 악이 행악자를 건져낼 수도 없느니라”
누가 생명을 주장하며 머물게 할 수 있느냐/달려가는 기차는 세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생명의 생기는 주장하지 못합니다.
죽는 날을 주장할 수 없고 인간의 능력은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김우중이 누구입니까?
‘세계경영의 전도사’ ‘재계 서열 2위의 재벌총수’ ‘한국 최고의 비즈니스맨’이라고 불리던 사람입니다.
1967년 서울 충무로 뒷골목의 10평 남짓한 사무실에서 자본금 500만원에 5명의 직원으로 출발한 지 30년 만에 정말 ‘꿈’같은 신화를 창조한 사람입니다. 대우는 IMF 직전까지만 해도 고용인원 32만(국내 10만, 해외 22만)명, 해외지사·현지법인·연구소·건설현장 등 글로벌 네트워크 590개(110개국), 총매출 71조원, 총수출 151억달러라는 경이로운 실적을 쌓아왔던 기업이었습니다. 그 기업의 총수가 바로 김우중입니다.
그는 한때 젊은이들과 샐러리맨들의 살아 있는 신화이자 우상이었으며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화두로 세인의 찬사와 이목을 집중시킨 인물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이제는 ‘세계는 넓고 숨을 곳은 많다’는 식의 조롱을 받으며 도피자 신세로 전락한 것입니다. 그 원인을 그의 무능한 자신을 신뢰한 사례인 것입니다.
▶첫째는 김우중은 팽창된 자신감 또는 과대 망상적 사고자입니다.
그가 자서전에서 언급한 ‘도사론’은 그가 자신을 얼마나 과대 포장하고 있는 가를 보여줍니다.
“100m 높이의 산을 마음대로 넘나드는 도사가 있습니다. 그도 처음에는 우리처럼 1m밖에 뛰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100m의 산을 뛰어넘을 목표를 세우고 날마다 조금씩 장대 높이를 높여가며 높이뛰기 연습을 했을 것입니다.. 사람의 능력은 무한합니다. 요는 그 잠재된 능력을 끄집어내 사용하느냐, 않느냐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도사와 범인의 차이도 따지고 보면 거기서 생깁니다. 겸연쩍은 얘기지만 내 별명이 ‘도사’다고 자신 있게 말했던 그였습니다.
▶둘째 특징은 생각과 말, 행동 속도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앞서갔습니다.
김우중과 대화한 소감을 한 기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김회장의 말은 말보다 생각이 앞선다. 그래서 한 문장이 끝나기도 전에 다음 문장이 시작되는 까닭에 말이 겹쳐 나오는 경우가 많다.”
아이디어가 넘치다 보니 말이 그 아이디어를 담아내기에도 바쁜 것입니다. 이때는 말을 한다기보다 ‘말이 밀려나오는(pressure of speech)’ 형국이 된다는 것이지요.
김우중은 잠을 4시간 이상 자지 않고, 식사를 해도 가장 빨리 나오고 빨리 먹을 수 있다는 이유로 항상 설렁탕과 비빔밥만 시켜 먹었습니다. 낮에도 30분마다 사람을 바꿔 만날 만큼 바쁘게 움직여서, 체력 좋고 기력이 왕성한 총각만을 수행비서로 쓰는데도 그들의 체력이 달려 1∼2년 단위로 비서가 바뀌었다고 합니다.
지난 연말 김우중은 대우직원 모두에게 작별 서한을 보냈다. 그의 마지막 작별인사는 회한과 허무로 얼룩진다.
“여러분과 함께 했던 꿈과 이상 또한 이제 가눌 수 없는 고독이 돼 제 여생의 반려로 남게 되었습니다. (중략) 제가 기억 속에 묻히는 이 순간을 계기로 대우와 임직원 여러분이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지고…”
결과적으로 김우중은 실패했습니다.
실패해서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실패한 것입니다. 인간의 능력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자신을 믿고 그 생각과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것은 인간의 능력의 한계를 들어낸 대표적인 사례인 것입니다. 인간의 능력의 한계를 모르고 자만하고 교만하여 말씀보다 기도보다 앞선 불 신앙은 이러한 패망과 실패로 우리의 삶을 인도합니다.
메이어 박사
"문제를 붙잡은 당신은 손을 하나님의 손안에 집어넣으시오 그리고 문제 때문에 고민하지 말고 문제와 당신 사이에 하나님이 개입하게 하십시오 그렇게 되면 나의 문제가 하나님의 문제가 되고 나의 고민이 하나님의 고민이 되고, 나의 기쁨이 하나님의 기쁨이 되며 하나님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되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4.우리의 한계를 극복할 우리의 왕/전능하신 하나님
(전8:1-2) "지혜 자와 같은 자 누구며 사리의 해석을 아는 자 누구냐 사람의 지혜는 그 사람 의 얼굴에 광채가 나게 하나니 그 얼굴의 사나운 것이 변하느니라(2) 내가 권하노니 왕의 명령을 지키라 이미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였음이니라"
1)세상을 살아갈 능력을 주십니다.
빌4:13/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부활이요 생명이신 주님을 믿고 신뢰할 때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승리 한다.
2)환난 속에서도 건지십니다.
(사 43: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 43:2)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3)죄사함의 은총을 주십니다.
(엡1:6-7)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榮光)을 찬미(讚美)하게 하려는 것이라(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시85:2) "주의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고 저희 모든 죄를 덮으셨나이다(셀라)"
(사1: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辯論)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찌 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찌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4)모든 질병에서 우리를 치유하십니다.
(사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눅6:19) "온 무리가 예수를 만지려고 힘쓰니 이는 능력이 예수께로 나서 모든 사람을 낫 게 함이러라"
(시103:3)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5)우리를 도와 주십니다.
(사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지혜 자와 같은 자 누구며 사리의 해석을 아는 자 누구냐 사람의 지혜는 그 사람의 얼굴에 광채가 나게 하나니 그 얼굴의 사나운 것이 변하느니라"(전8:1)
얼굴이 빛나는 사람이 지혜자라고 말합니다.
어떤 경우에 사람은 얼굴이 빛나게 됩니까?
잠언 15:13을 보면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얼굴이 빛나는 사람은 마음에 늘 즐거움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항상 기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도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4:4)고 했습니다. 우리는 왜 기뻐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기뻐할 때 우리에게는 어떤 유익이 있습니까? 기쁨은 사람에게 약이 되지만 심령의 근심은 뼈까지 마르게 합니다. 근심은 마음의 고통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건강까지도 해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기뻐하기 싫어서 기뻐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상황과 환경을 바라볼 때 걱정과 염려가 앞섬으로 근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똑같은 입장이라도 장래에 대하여 소망과 좋아질 것이라는 확신을 가진 사람은 기뻐할 수 있습니다. 현실 때문에 기쁜 것이 아니라 앞으로 좋아질 미래의 상황을 내다보면서 오늘 기뻐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지혜 자는 좋은 여건을 주셨으면 그 조건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뻐합니다. 나쁜 형편 속에서도 이제 앞으로 하나님이 주실 축복을 바라보며 기뻐합니다. 결국 사람이 즐거워하거나 근심하는 것은 상황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차이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진 지혜자의 얼굴은 항상 광채가 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희망과 용기를 주게 됩니다. 내가 적극적이고 소망 적일 때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나를 보고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내가 적극적이고 소망 적일 수 있는 이유를 묻게 되고 우리는 그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감사와 불평은 다같이 강력한 전염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결론
인간의 능력의 한계 권세의 한계 예지의 한계를 깨닫고 살아야 합니다.
사람에게 여러 가지 능력이 있습니다. 지적 능력 판단의 능력 경제적인 능력 성취능력 자제능력 등 많은 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능력을 주셔야 시련도 이기도 세상을 이기고 사단을 이길 수 있습니다. 주의 영이 인도하셔야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잇는 지혜가 주어집니다.
내 인생의 왕되신 주님께 전폭적인 순종과 약속을 믿음으로 우리는 권세의 한계 예지의 한계 능력의 한계를 극복하여 승리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