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1-23
이스라엘의 최후 / 한서노회
1,조상의 부패를 이어 받은 이스라엘
2,이스라엘이 포로가 된 이유
3,이스라엘이 포로가 된 사실의 의의
하나님께서 세우신 한 나라의 성패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 인생들을 교훈하고 있다.
비록 긴긴 한 나라의 역사이지만 이는 한 인간의 한 평생을 잘 묘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1,조상의 부패를 이어 받은 이스라엘
오늘 본문의 호세아 왕은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이다.
이스라엘은 19번째의 왕을 마지막으로 멸망을 고한다.
그 19명의 왕들에게는 한결같이 일치점이 있다.
그 일치점들이 사람들이 본을 받아야할 좋은 것이라면 얼마나 좋으랴만 그렇지를 못하고 다 악명 높은 왕들로 일치하고 있다.
예를 들면 왕하16;2절의 말씀과 같이 "아하스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 육년을 치리하였으니 그 조상 다윗과 같지 아니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치 아니하고"
" 여기에 다윗과 같지 아니하여"라는 말이 있다.
오늘 새벽에 시132편을 함께 상고했다.
132;2-6절에 다윗의 신앙을 보여주고 있다.
"저가(다윗) 여호와께 맹세하며 야곱의 전능자에게 서원하기를 내가 실로 나의 거하는 장막에 들어가지 아니하며 내 침상에 오르지 아니하며 내 눈으로 잡들게 아니하며 내 눈꺼풀로 졸게 아니하기를 여호와의 처소 곧 야곱의 전능자의 성막을 발견하기까지 하리라 하였나니이다 우리가 그것을 에브라다에 있다 함을 들었더니 나무 밭에서 찾았도다"
실지로 이스라엘은 다윗보다는 솔로몬과 더 연관이 있는데 왜 솔로몬과 같지 아니하고...라는 말이 없고 다윗과 같지 않다는 말을 사용 하고 있는가?
이는 솔로몬이 이방 여인들을 데려다가 아내로 삼음으로 하나님의 명을 어겼고 또 이것이 이방신을 국내에 수입하는 결과를 가짐으로 말미암아 결국 이스라엘을 타락케하는 씨앗을 뿌렸던 것이다.
다시 왕하15;18절을 보자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케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평생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이스라엘 나라에 여로보암이란 왕이 생기게된 원인이 바로 그 앞 직전 왕이 솔로몬인데 그 솔로몬은 여로보암의 아비가 아니다.
이 말은 무슨 말인고하면 솔로몬이 이방신들을 끌어드린 장본인으로서 이스라엘로 타락케한 왕이기에 그 죄악의 씨앗으로 나라가 두동강으로 갈라졌는데 남쪽은 유대로 솔로몬의 아들인 르호보암이 왕이 되었고 북쪽인 이스라엘엔 솔로몬과 전혀 관계가 없는 여로보암이 왕이 되었던 것이다.
직속 직계 자식이라도 좋은 것을 본따기가 어려운 실정인데 아무런 관계가 없는 자가 왕이되었으니 이스라엘의 장래는 처음부터 그 앞날이 불을 보는 것처럼 훤히 내다 보였던 것이다.
또 왕하16;3절에 "이스라엘 열왕의 길로 행하며 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
여기에는 이스라엘의 열왕의 길로 행하며...라는 말이 있다.
이스라엘 열왕이 바로 여로보암의 길인 것이다.
그런데 19명 전부가 다 다윗의 길이 아니고 여로보암의 길이었다.
이들이 대를 이어 오면서 점점 악한 길에 깊에 빠져들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죄악이 누적되었던 것이다.
한 세대가 자기 선조들의 유산을 이어받는 것은 역사적으로 당연한 일이며 따라서 좋든 나쁘든 그 영향력에서 벗어나기는 어렵다.
비록 조상은 죽어서 썩어 흙으로 돌아 갔지만 그들의 사상과 삶의 방식은 살아 남아 여전히 생활 속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조금도 없다.
그리고 한 번 잘못된 것의 유산을 물려 받았던지 아니면 내가 잘못하여 잘못된 길에 일단 들어 서기는 쉬우나 그 길에서 돌아 서기는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어떤 분은 사람들의 잘못된 길에서 돌이키는 일의 어려움을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지프스(Sisyphus)와 같다고 했다.
즉 무거운 돌을 산 꼭대기에 굴려 올리면 되 굴려 떨어지고 또 올려 놓으면 또 되 굴려 떨어지고 그러기를 한 없이 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참으로 사람들의 도덕성의 개선은 이렇게 어렵고 힘든 일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이스라엘의 역대 왕들은 한결같이 하나님과 함께 하였던 다윗왕과 같은 왕이 되기를 원하지 않았을까?
즉 인간의 한계를 깨닫지 못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의지하려 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이스라엘의 실패한 왕들의 역사를 한 사람만이 아니고 저부 다 소개를 하고 있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이는 오늘도 이를 보고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이 아닐까?
우리들이 조상들로부터 어떤 것을 물려 받았느냐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나를 나답게 만들기 위하여 하나님을 얼마나 의지하고 있느냐 하는 것은 그런 것들과 비교도 할 수 없이 중요하다.
2,이스라엘이 포로가 된 이유
이스라엘은 호세아 왕때 앗수르에 포로가되고 만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앗수르 나라에 조공을 받치는 나라가 되고 말았다.
어째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렇게 남에 나라의 포로 신세가 되었는가?
앗수르 나라는 포로로 잡아 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앗수르 변방에 흩어서 강제 너역에 종사하게 했다.
이스라엘이 이토록 비참한 나라로 전락하게 된 근본적 이유는
첫째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인간방법으로 살았기 때문이다.
즉 사사들의 시대처럼 각기 자기들의 소견에 옳다고 생각되는 대로 행동하고 판단하고 살았던 것이다.
둘째는 하나님을 거역했기 때문이다.
왕하17;7-18절 ...
7,다른 신을 경외
8,이방 규례를 행하고
9,성읍에 산당을 세움
10,모든 산과 모든 나무 아래 목상과 아세라 상을 둠
11,모든 산당에서 분향함
12,우상을 섬김
13,악한 길에서 떠나라는 여호와의 명을 거역함
14,여호와의 명을 듣지 않고 목을 굳게했다.
15,여호와의 세우신 언약을 버렸다.
16,우상을 만들었다.
17,자기 자녀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했다.
18,여호와를 심히 노하게 했다.
이스라엘이 어찌 하나님을 떠나서 이렇게 우상을 섬기게 되었을까?
선민됨을 자랑으로 여기는 민족인데...
이는 오늘의 우리들도 바알과 아세라만 아니지 능히 우리들의 생활 가운데그리고 주변에 그럴 수 있는 것들이 많음을 암시하고 있음이다.
절대로 자만하지 말자.
전적인 하나님의 사람이 되자.
전심으로 하나님만 사랑하는 사람이 되자.
3,이스라엘이 포로가 된 사실의 의의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은 솔로몬 한 사람이 하나님의 바른 길로 가지 못할 때 그 딸린 백성이 얼마나 비참한 최후를 맞아야 하는 가를 보여 주십이다.
또 이스라엘이 둘로 쪼개어 질때 12지도 나뉘어 졌다.
즉 남쪽 유대는 두지파인 반면에 북쪽 이스라엘엔 10지파가 갈라져 나갔다.
그러면 계산적으로는 많은 지파가 갈려 나간 북쪽 이스라엘이 더 잘되었어야 하는데 하나님이 없는 많은 지파는 별볼일 없는 것임을 보여주시고 있다.
그리고 이 10 지파가 갈려 나갈때 솔로몬의 계승자인 르호보암의 지배를 거절하기 위하여 뛰쳐 나갔던 것이다.
이것은 한마디로 반역이었다.
이 반역이 정치적 탄압으로부는 벗어날 수 있었는지는 몰라도 그 이후 그들은 그들을 위한 왕을 제되로 세울 수가 없었다.
그것은 여로보암의 죄악의 결과였다.
여로보암은 평소에 반역을 계획해 왔던 솔로몬의 신하였다.
그 반역의 씨았이 자기에게서 끝나지 않고 이스라엘 역사와 함께 오래 계속했던 것이다.
또 그 반역의 역사는 계속해서 반역의 왕을 만들어 내었던 것이다.
그래서 150년 동안 임의대로 왕을 가라치우곤 했던 것이다.
이것은 곧 저들의 지도자 불신을 양산하는 길을 열었을 뿐이다.
지도자의 불신의 결과는 무질서를 초래하게 되었다.
결국 정치는 물 정치가 될 수 밖엔 없었다.
21-23절 "이스라엘을 다윗의 집에서 찢어 나누시매 저희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으로 왕을 삼았더니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을 몰아 여호와를 떠나고 큰 죄를 범하게 하매 이스라엘 자손이 여로보암의 행한 모든 죄를 따라 행하여 떠나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그 종 모든 선지자로 하신 말씀대로 심지어 이스라엘을 그 앞에서 제하신지라 이스라엘이 고향에서 앗수르에게 사로잡혀 가서 오늘까지 미쳤더라"
교훈
01,나라의 통치자를 정당하게 평가를 해야한다.
직장의 상사 단체의 장들을...
이스라엘이 바로만 평가를 했더라면 여로보암을 왕으로 세우지 않았을 것이고 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02,오늘 우리들이 참으로 두려워해야할 대상이 누군인가를 잘 말해준다.
03,오늘날의 이스라엘을 보라.
아직까지도 고향에 돌아오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비록 돌아 온자들이 있기는 있지만 얼마나 고생인가?
04,자식들에게 무었을 물려 주어야하는가를 보여준다.
05,또 나는 나를 하나님께서 원하는 나로 다듬기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인가를 말하고 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이스라엘처럼 끝을 멸망으로 장식하는 어리석은 자들이 되지 말고 생명의 면류관 금면류관 썩지않을 면류관으로 아름답게 장식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아 멘
출처 한서노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