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으려면
일본은 자동판매기의 나라이다. 자동판매기로 살 수 있는 것이 아주 많아 말을 하지 않고서도 여행을 할 수 있다. 일본인들은 대면하는 것을 부담스럽게 여긴다. 지하철에서 책을 열심히 보는 것은 다른 사람과 시선이 마주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라는 말이 그럴 듯하다. 자동장치를 이용해 하는 파칭코 놀음을 좋아한다.
중국과 불국에서는 자동판매기를 찾아보기 어려워 말을 알아야 견딜 수 있다. 증국에는 인력이 너무 많아 자동판매기를 설치하는 것이 적합하지 않다. 열차 운행에 종사하는 사람, 공원이나 유원지 근무자, 식당 종업원 등, 어디서 무엇을 하는 사람이라도 너무 많다. 북경 천안문 광장 동편의 거대한 호텔 北京飯店(북경반점)의 식당 입구에서 손님이 오면 절을 하면서 맞이하는 여종원이 너댓 명 정도 된다.
불국인들은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는 수다쟁이여서 자동판매기 설치를 바라지 않는다. 가게 주인과 물건 사는 사람은 많은 수작을 한다. 불어를 고쳐주기도 한다. 열차 승차권을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이 끝없이 이야기를 해도 나무라지 않고 뒤에서 기다리는 나라이다.
중국이나 불국은 음식의 나라이다. 음식을 신앙으로 삼는 나라라고 하는 것이 더 적합한 표현이다. 조리사들이 비밀로 삼는 과정을 거치고, 공개하지 않는 양념을 쳐서 별난 요리를 창작하는 것을 자랑으로 삼는다. 음식마다 유래 설명이 한 보따리여서, 힘들여 공부하지 않고서는 식도락 근처에 가지 못한다.
중국인은 여럿이 둘러앉아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을 좋아한다. 菜譜(채보)라고 하는 메뉴에 적힌 음식이 거의 다 여럿이 함께 먹어야 하는 요리이다. 여덟 사람 정도가 요리 몇 개를 주문해 나누어 먹는 것이 제격이다. 대학에서 강연을 하면 저녁 초대가 있다. 학과 교수들이 가족을 모두 대동하고 와서 음식을 산더미같이 시켜 놓고 먹고 또 먹는다. 공금을 쓰니 돈 걱정을 하지 않는다. 음식 남는 것은 걱정할 필요도 없다. 남은 음식을 다 싸가지고 간다. 두 끼쯤은 두고 먹을 분량이다.
北京論壇(북경논단, Beijing Forum)이라는 거대한 학술회의에 발표자로 초청되어 가서 人民大會堂(인민대회당)에서 식사를 했다. 밥 먹는 것 외에는 일이 없는데 검색을 요란하게 했다. 복도에 사람 키보다 큰 도자기가 군인들처럼 줄을 서서 기를 죽었다. 식당의 크기, 좌석에 앉아 먹는 사람들, 나오는 요리의 가지 수가 입이 딱 벌어지고 다물지 못하게 했다. 중국이 큰 나라인 줄 모른다고 여기고 확실하게 알려주는 것 같았다. 미국은 저리 가라고 점잖게 이르는 것 같았다. 그러나 크기가 다는 아니다. 한 자리에 같이 앉아 먹는 미국인들은 서비스가 불친절하고, 음식이 거칠고, 과일을 통째 내놓았다고 줄곧 군지렁거렸다.
혼자 식사를 하려면 길가 노점에서 국수나 먹어야 한다. 국수가 싫고 제대로 먹으려고 식당에 들어가면 난감하다. 혼자 밥을 먹는 것은 인정할 수 없는 반칙이어서 배려가 전연 없다. 일인분 음식은 밥뿐이다. 반찬은 모두 여럿이 먹는 요리이다. 요리 하나와 밥 한 그릇을 시킬 수밖에 없다. 밥이 넘어가지 않고 요리는 남는다.
중국에서는 네 발 달린 것은 책상을 빼고 다 요리 재료로 쓴다고 한다. 이름난 식당은 어마어마한 크기이다. 요리 가지 수가 너무 많고, 시키기도 많이 시킨다. 최고임을 자랑하는 북경 오리집에 가서, 초대한 한국 제자가 요리를 너무 많이 시켜 나중에 나온 오리 구이는 겨우 맛을 조금 보기나 했다. 西太后(서태후)가 즐겨 들었다는 만두를 西安(서안)에서 먹었는데, 맛이 있으면서 양이 많아 이중으로 질리게 했다.
일본인은 혼자 있어야 마음이 편하다. 여럿이 함께 식사를 해도 개개인의 먹을 것것을 따로 차려주어 혼자 먹게 한다. 전통 茶室(다실)은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크기이다. 오늘날에는 작은 공간에서 혼자 식사를 하는 곳들이 있다. 자동판매기에서 식권을 사서 좌석 앞 구멍에 넣으면 밥이 나와 식당 종업원과 대면하지 않고, 가리는 판이 있어 옆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식사하는 곳이 흔하다.
일본인은 별다른 가공을 하지 않고 식재료를 그냥 먹는 것을 선호한다. 음식 가지 수가 많을 수 없다. 생선회나 생선초밥이 최고의 음식이다. 간장이나 설탕을 이용할 따름이고 양념이라고 할 것이 별반 없다. 유래를 자랑하는 음식은 별 것 아닌데도 여러 시간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먹는다. 생선초밥의 가격은 생선을 가져온 자료를 수송한 거리에 역비례한다.
일본 음식은 비쌀수록 양이 적다. 실내 장식이 잘 되는 다다미방에서 전통 복장 키모노를 입은 여종업원이 꿇어 엎드려 바치는 생선초밥은 양이 적고 값은 비싼 양면에서 상상을 초월한다. 東京의 불국 식당에서 내놓는 불국 요리는 본국의 절반도 되지 않은 분량이어서 일본인 고객들이 과연 고급이구나 하고 감탄하면서 들도록 한다. 불국을 동경하는 마음이 더 커지게 한다. 꿩 먹고 알 먹는다는 말을 이럴 때 하던가?
대학에 나가 있다가 점심에 근처 식당에서 판모밀을 하나 먹고 저녁까지 견디면 克己(극기) 極致(극치)이다. 당뇨병 진단을 받고 살을 빼기 시작하는 至難(지난)한 苦行(고행)을 일본 덕분에, 일본 음식에 힘입어 해냈으니 두고두고 깊이 감사해야 한다. 은혜를 길이길이 기억해야 한다. 그 시기에 중국에 가 있었다면 큰일 날 뻔했다.
일본인들은 점심을 적게 먹고 저녁까지 견디지 않는다. 대학 연구실별로 둘러앉아 오후 4시에 티타임을 가지고, 抹茶(마차)를 마시면서 아주 단 和菓子(와가시)를 먹는다. 그 과자의 가격과 열량이 점심 식사의 몇 갑절이나 된다. 공금으로 구입하니 가격은 문제될 것이 없으나, 과자에서 모자라는 열량 취하는 것은 일종의 자기기만이다. 나는 차만 마시고 과자는 먹지 않으면서 견디는 엄청난 용맹을 내 자신에게 자랑했다.
일본 대학의 티타임은 영국 대학에서 수입해서 개조했다. 영국 런던대학에서 경험한 영국 티타임과 오후 4시에 모여서 차를 마신다는 것만 같고 다른 것들은 다르다. 모이는 사람이 영국에서는 대학에서 가르치는 사람들 전부이고, 일본에서는 한 연구실 소속 몇 명이다. 영국인들은 서서 돌아다니면서 말을 많이 하고, 일본인들은 정해진 자리에 조용히 마주 앉는다. 홍차와 말차는 그리 다르지 않으나, 영국의 쿠키는 일본의 과자처럼 달지 않다.
일본인도 많은 음식을 앞에 놓고 싫건 먹는 것을 간절하게 바란다. 한국인이라는 말을 듣고 택시 운전수가 한국 여행을 할 때 “많이, 많이 먹었다”고 흥분된 어조로 자랑하고 또 자랑했다. 일본에서 출간한 한국 여행 안내서를 보니, 처음부터 끝까지 먹을 것 소개이다. 일본인의 허기를 달래주기 위해 우리는 음식을 더욱 열심히 잘 만들어야 한다. 일본의 온천은 먹으러 가는 곳이기도 하다. 온천에 몸을 담그고 나와서 호화판 식사를 하는 것이 최고의 사치이고 영광이다. 괜찮은 온천장에서 두 사람이 1박 2식을 하는 값이 한국 돈 60만원이나 된다. 카드는 안 되고 현찰로 내야 하는 것이 예사이다. 빳빳한 현찰을 듬뿍 지불하는 아쉬움이 저녁 먹는 시간에 상쇄된다.
음식은 비쌀수록 양이 적다는 원리가 온천 만찬에서는 사라진다. 규제가 풀린 해방구에 들어서서 자유를 마음껏 누린다. 종업원이 방에 가지고 와서 정성을 다해 차리는 밥상이 너무나도 찬란해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두 사람 앞에 각각 모양과 색깔이 다른 그릇 십여 개씩 놓고, 담아 놓은 갖가지 음식이 예쁘고 사랑스러워 손대기 아깝다. 눈의 즐거움을 입은 따르지 못해도 불평이 있을 수 없다.
불국 사람들은 길거리에 앉아 있는 것을 좋아한다. 돈을 더 내고 노천카페에 앉아 진한 커피를 마시면서, 오랜 시간 수다를 떤다. 노천 가페에 난방장치가 있어 겨울이면 튼다. 간단한 식사는 카페에서 하고, 제대로 먹을 때에는 식당을 예약한다.
불국에서는 새로운 요리를 발명하면 새로운 별을 발견하는 것보다 인류를 더 행복하게 한다고 한다. 요리사는 예술가 대접을 받는다. 불국 대혁명 전부터 있었다는 식당에 초대되어 가서 식사를 하고 메뉴판을 하나 가져가도 되느냐고 하니, 주방장의 사인이 있어야 한다면서 받아왔다, 주방장 사인이 있는 그 식당 메뉴는 가보로 삼을 만하다고 한다. 유명한 식당은 석 달 전에 예약을 해야 한다. 파리의 미식 식당 안내서를 사도 써먹지는 못한다. 그 책에 있는 식당은 오래 전에 예약을 해야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불국인은 점심 식사를 제일 중요하게 여긴다. 예약한 식당으로 가서 정해주는 자리에 앉고서, 전식ㆍ본식ㆍ후식이 갖추어진 정식을 골라 시키고, 좋아하는 포도주를 찾아 가져오라고 하는 데 30분 가까이 보낸다. 장광설을 주고받으면서 천천히 먹고 마시느라고 한 시간 이상을 더 보낸다. 식당은 음식이 늦게 나올수록, 손님은 오래 먹고 마실수록 격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