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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제8권
회양懷讓 선사의 제3세 ①
앞의 백장百丈 회해懷海 선사의 법손
담주潭州 위산潙山 영우靈祐 선사
그는 복주福州 장계長谿 사람으로서 성은 조趙씨이다.
15세에 부모 곁을 떠나 출가해서 본군本郡 건선사建善寺의 법상法常 율사律師에 의하여 머리를 깎았고,
항주杭州 용흥사龍興寺에서 계를 받은 뒤에 대소승大小乘의 경전과 계율을 연구하였다.
23세에 강서江西에 가서 백장百丈 대지大智 선사를 뵈었는데,
백장이 한 번 보고는 바로 입실入室을 허락해서
마침내 참학參學하는 사람들의 우두머리를 차지했다.
어느 날 시립侍立해 있자, 백장이 물었다.
“누구냐?”
“영우靈祐입니다.”
“그대는 화로 속에 불이 있는지 헤쳐 보았는가?”
대사가 헤쳐 보고서 말했다.
“불이 없습니다.”
백장이 몸소 일어나 깊숙이 헤쳐서
조그마한 불을 얻고서는 그에게 들어 보이면서 말했다.
“이것이 불이 아닌가?”
대사가 깨닫고서 절을 한 뒤에 자기의 견해를 펴니,
백장이 말했다.
“그것은 잠시 나타난 갈림길일 뿐이다. 경전에 말하기를
‘불성을 보고자 하면 마땅히 시절인연時節因緣을 관찰해야 한다’고 하였는데,
시절이 이르게 되면 마치 미혹했다가 홀연히 깨달은 것 같고 잊었다가 홀연히 기억한 것과 같아서,
비로소 자기 물건이지 남에게서 얻은 것이 아님을 성찰하게 된다.
그러므로 조사께서 말씀하시기를
‘깨달아 마치면 깨닫지 못한 것과 같고, 마음이 없으면 또한 법도 없다’고 하셨으니,
이는 다만 허망하게 범부다 성인이다 하는 따위의 마음이 없고,
본래의 심법心法이 원래 스스로 갖추어진 것이다. 그대가 이제 그렇게 되었으니, 잘 보호해 지녀라.”
이때 사마司馬 두타頭陀가 호남湖南에서 오자,
백장이 그에게 말했다.
“노승이 위산潙山으로 가고자 하는데 어떻겠는가?”
[사마司馬 두타頭陀는 참선하는 것 외에 인륜의 덕을 쌓고 교리의 이치를 궁구하니, 제방의 선원에서 그의 말을 많이 따랐다.]
사마 두타가 대답했다.
“위산은 기이하고 묘하여서 1,500명이 모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화상께서 머무실 곳은 아닙니다.”
“왜 그런가?”
“화상은 뼈의 사람인데 그 산은 살[肉]의 산이니, 설사 거처한다 하여도 무리들이 1천 명을 채우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면 나의 무리 가운데 거기에 살 만한 사람이 없겠는가?”
“두루 살펴보겠습니다.”
백장이 시자를 시켜서 제1좌[화림華林 화상]를 불러오게 하고서 물었다.
“이 사람이 어떻겠나?”
두타가 기침을 한 번 시키고 몇 걸음 걷게 한 뒤에 대답했다.
“이 사람은 안 됩니다.”
다시 전좌典座 전좌典座는 음식을 장만하는 직책이다.
[영우靈祐 선사를 말한다.]를 불러오니, 두타가 말했다.
“이 사람이야말로 위산의 주인입니다.”
백장이 밤에 대사를 방으로 불러들여서 법을 부촉하며 말했다.
“나의 교화 인연은 여기에 있다. 위산은 빼어난 경계이니,
마땅히 그대가 살면서 나의 종지를 계승하여 후학들을 널리 제도하라.”
이때 화림華林이 이 말을 듣고서 말했다.
“외람되지만 제가 대중의 우두머리에 있었는데, 영우 대사가 어찌하여 주지를 합니까?”
백장이 말했다.
“만일 대중에게 격식을 벗어난 한마디를 내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당장에 주지를 시키리라.”
그리고는 정병淨甁을 가리키면서 물었다.
“정병이라고 부르지 못한다. 그대는 무엇이라 부르겠는가?”
화림이 대답했다.
“말뚝이라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백장이 수긍하지 않고, 다시 영우에게 물었다.
위산이 정병을 걷어차서 넘어뜨리니, 백장이 웃으면서 말했다.
“제1좌가 도리어 위산에게 졌구나.”
드디어 대사를 위산으로 보냈다. 이 산은 원래 험준하여 인적이 아주 끊겼다.
그래서 대사는 원숭이 떼를 벗 삼고 도토리와 밤을 주워서 끼니를 때우니,
산 밑의 사람들이 차츰 알게 되어서 무리를 거느리고 와서 함께 절을 지어 주었다.
대장군[連帥]인 이경양李景讓이 황제께 아뢰어 동경사同慶寺라 이름하였고,
상국相國인 배휴裵休가 와서 현묘한 진리를 물으니 천하의 선객들이 모여들었다.
대사가 상당하여 이렇게 설법을 했다.
“도인의 마음은 솔직해서 거짓이 없고, 등지지도 않고 바라보지도 않으며,
허망한 심행心行도 없어야 한다. 하루 종일 듣고 보는 평상한 일에서 왜곡이 없어야 하며,
또한 눈을 감거나 귀를 막지도 않고, 다만 정情을 사물에 붙이지 않으면 된다.
위로부터의 모든 성인은 단지 혼탁한쪽의 허물과 걱정을 말했을 뿐이니,
만약 허다한 나쁜 지각과 정견情見이나 상습想習의 일이 없으면,
마치 가을 물이 맑은 것처럼 청정하여 함이 없고 담박하여 장애가 없다
이런 사람을 도인道人이라 부르는데, 또한 일 없는 사람이라고도 한다.”
이때에 어떤 스님이 물었다.
“돈오頓悟 일시에 깨닫는 것을 말한다. 한 사람도 더욱 닦아야 합니까?”
“만일 참다운 깨달음으로 근본을 얻은 사람이라면 그 스스로 때[時]를 알 것이니,
닦는다거나 닦지 않는다 함은 두 갈래의 말일 뿐이다. 가령 지금 처음으로 발심한 사람들이 인연에 따라 한 생각[一念]에
스스로의 이치를 단박에 깨달았더라도, 아직도 비롯함이 없는 광겁曠劫의 습기는 단박에 청정해지지 않으므로 반드시
그로 하여금 현재의 업과 흐르는 의식을 청정하게 제거해야 하나니, 이것이 닦는 것이다.
그로 하여금 닦아 나아가게 하는 법이 따로 있다고 말하지 말라.
법을 듣는 데서 이理에 들어가고, 이理의 깊고 묘함을 들으면,
마음이 스스로 뚜렷이 밝아서 미혹의 경지에 머무르지 않으리라.
설사 백천 가지 묘한 뜻으로써 당대를 올렸다 내렸다 해도 이는
자리에 앉아서 옷을 입었다가 다시 벗는 것으로 살림을 삼는 것이니,
요약해서 말한다면 실제의 이지理地는 한 티끌도 받아들이지
않지만 만행을 닦는 부문에서는 한 법도 버리지 않느니라.
만일 단도직입單刀直入으로 깨달으면,
범부와 성인의 정견情見이 다하면서 체體가 드러나 항상 참되고,
이理와 사事가 둘이 아니라서 그대로 여여如如한 부처이니라.”
앙산仰山이 물었다.
“어떤 것이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매우 좋은 등롱燈籠 댓살로 틀을 만들고 겉에 종이나 헝겊을 덮어 씌워 그 속에 등불을 넣는다이다.”
“단지 그것이면 문득 옳지 않겠습니까?”
“그것이라니, 무엇인가?”
“매우 좋은 등롱 말씀입니다.”
“과연 모르는구나.”
어느 날 대중에게 말했다.
“허다한 사람들이 단지 대기大機만을 얻고
[구본舊本에서는 ‘대식大識’이라 하였으나, 여기서는 ‘대기大機’로 고쳤다.
광등병별록廣燈幷別錄을 살펴보면, 모두 “단지 대기大機만을 얻을 뿐이다”라고 했는데,
제16권 구봉九峰 혜慧 선사의 글에서는 “단지 대체大體만을 얻을 뿐이다”라고 하였으니, 확실한 것은 알 수 없다.],
대용大用은 얻지 못했다.”
앙산이 이 말을 들면서 산 밑의 암주庵主에게 물었다.
“화상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암주가 말했다.
“그 내용을 다시 말해 보시오.”
앙산이 다시 들어 보이려고 하다가 암주에게 걷어 차여서 쓰러졌다.
그가 돌아와서 이 일을 대사에게 말하니, 대사가 껄껄 웃었다.
어느 날 대사가 법당에 앉았는데, 고두(庫頭:창고를 관리하는 스님)가
목어木魚를 치자, 화두(火頭:불을 관리하는 스님)가 부젓가락을
던지고 손뼉을 치면서 크게 웃으니,
대사가 말했다.
“대중 가운데 그런 사람도 있었더냐?”
그리고는 그를 불러다가 무슨 까닭인지 묻자, 화두가 대답했다.
“제가 죽을 먹지 않았는데, 시장한 탓에 기뻐했습니다.”
위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사東使가 듣고 말하기를 “위산潙山의 무리에는 그런 사람이 없는 줄 알았다”라고 하였다.
와룡臥龍이 말하기를“위산의 무리에는 그런 사람이 으레 있을줄 알았다”라고 하였다.]
울력으로 차를 따던 중에 대사가 앙산에게 말했다.
“종일토록 차를 따도 그대의 소리만이 들리고 그대의 형상은 보이지 않으니,
본래의 형체를 드러내서 서로 보이도록 하자꾸나.”
앙산이 차나무를 흔드니,
대사가 말했다.
“그대는 단지 그 용用만을 얻었을 뿐 그 체體는 얻지 못했다.”
앙산이 물었다.
“화상께서는 어찌하시겠습니까?”
대사가 잠자코 있으니,
앙산이 말했다.
“화상께서는 단지 그 체만을 얻고 그 용은 얻지 못하였습니다.”
“그대에게 스무 방망이를 때리리라.”
[현각玄覺이 말하기를 “허물이 어디에 있는가?”라고 하였다.]
대사가 법당에 오르자, 어떤 스님이 나서서 말했다.
“화상께서 대중에게 설법을 해주십시오.”
“내가 그대들을 위해 사무치게 애썼다.”
그 스님이 절을 하였다.
[뒷사람이 설봉雪峰에게 이야기하니 설봉이 말하기를 “옛사람은 그토록 노파심이 간절했구나”라고 하였다.
현사玄沙가 말하기를 “산두山頭 화상이 옛사람의 일을 그르쳤구나”라고 하였다. 설봉이 이 말을 듣고 현사에게 묻기를
“어떤 것이 내가 그릇된 곳인가?”라고 하니,
현사가 대답하기를 “시원찮은 위산이 그 스님의 한마디 질문에 백 조각이 났다”라고 하니, 설봉이 기침을 하고 그만두었다.]
대사가 앙산에게 말했다.
“혜적아, 빨리 말해서 음계陰界에 들어가지 말라.”
“저는 아직 믿음도 서지 않았습니다.”
“그대는 믿어 마쳐서 서지 않았는가, 믿지 않아서 서지 않았는가?”
“다만 혜적慧寂일 뿐이니 다시 누구를 믿겠습니까?”
“그렇다면 정성성문定性聲聞 괴로움을 보고 괴로움의 원인을 끊으며 적멸해지기를 희망하여
적멸하게 되는 방법을 닦아 적멸해진 경지에 만족하여 다시 전진하지 않고 수승하다는 견해를 내는 사람을
정성성문定性聲聞, 즉 고정적인 성문이라 한다.
“혜적은 부처도 보지 않습니다.”
대사가 앙산에게 물었다.
“열반경 40권에서 부처님의 말씀은 어느 정도이고, 마魔의 말은 어느 정도인가?”
“모두가 마魔의 말입니다.”
“이 뒤에는 어느 누구도 그대를 어쩌지 못하겠구나.”
앙산이 물었다.
“혜적의 일생사[一期之事] 무종의 법난에 의한 퇴속의 일을 말한다. 의 행리行履는 어느 곳에 있습니까?”
“다만 그대의 안목이 바른 것만을 귀하게 여길 뿐이지,
그대의 행리는 말하지 않겠다.”
앙산이 빨래를 밟다가 빨래를 쳐들고 대사에게 물었다.
“바로 이러할 때에 화상께서는 어찌하시겠습니까?”
“바로 그러할 때에 나의 이 속에는 어찌할 것이 없다.”
“화상께서는 몸은 있으나 용用은 없으십니다.”
대사가 잠자코 있다가 문득 쳐들고서 물었다.
“그대는 바로 이러할 때에 어찌하겠는가?”
“바로 그러할 때에 화상께서는 되돌아서 그를 보셨습니까?”
“그대는 용用은 있으나 몸이 없구나.”
[이는 2월에 있었던 문답이다.]
대사가 홀연히 앙산에게 물었다.
“그대가 지난봄에 한 말은 원만치 못했으니, 이제 다시 말해 보라.”
“바로 그러할 때에 진흙을 휘젓는 것을 꺼려야 합니다.”
“감옥살이하는 동안에 지혜가 늘었구나.”
어느 날 대사가 원주院主를 불렀는데, 원주가 오자 대사가 말했다.
“원주를 불렀는데 네가 왜 오느냐?”
원주가 대답하지 못했다.
[조산曹山이 대신 대답하기를
“화상께서 저를 부르지 않은 줄은 알고 있었습니다”라고 하였다.]
또 시자를 시켜 제1좌를 불러오라 해서 제1좌가 오자,
대사가 말했다.
“제1좌를 불렀는데 네가 왜 왔느냐?”
역시 대답이 없었다.
[조산曹山이 대신 말하기를 “시자를 시켜서 부르셨으니 안 올 수도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법안法眼이 따로 말하기를 “아마 시자가 불렀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대사가 새로 온 스님에게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그 스님이 월륜月輪이라고 하였다.
대사가 동그라미 하나를 그려 놓고 물었다.
“이것과 어떻게 닮았는가?”
그 스님이 대답했다.
“스님의 그런 말씀을 제방의 사람들은 아무도 수긍하지 않습니다.”
“나는 그렇다 치고, 그대[闍梨]는 어떤가?”
스님이 말했다.
“월륜月輪을 보셨습니까?”
“그대는 그렇게 말하나 여기서는 아무도 제방諸方을 수긍하지 않는다.”
대사가 운암雲巖에게 물었다.
“그대가 오랫동안 약산藥山에 있었다는데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약산의 대인상大人相이 어떻던가?”
“열반 뒤에 있습니다.”
“열반 뒤에 있는 것이 어떤 것인가?”
“물을 뿌려도 묻지 않습니다.”
운암이 도리어 대사에게 물었다.
“백장 스님의 대인상大人相은 어떠합니까?”
“우뚝하고 당당하고 휘황하고 찬란해서 소리이전 이어서 소리가 아니요
색色의 뒤이어서 색이 아니니, 모기가 무쇠 소[鐵牛]에 붙은 것 같아서 그대의 주둥이를 댈 곳이 없다.”
대사가 앙산에게 정병淨甁을 주려는데 앙산이 받으려 하자,
대사가 얼른 손을 오므려 거두며 말했다.
“이것이 무엇인가?”
“화상께서는 무엇이 보이십니까?”
“그렇다면 어째서 나에게서 찾는 것이냐?”
“그렇지만 인의仁義의 도리로 보건대 화상의 정병을 받아서
물을 떠다 드리는 것이 본분사本分事이겠습니다.”
대사가 그때서야 정병을 넘겨주었다.
어느 날 앙산과 같이 가다가 잣나무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앞에 있는 것이 무엇인가?”
앙산이 말했다.
“잣나무일 뿐입니다.”
대사가 다시 등 뒤의 늙은 농부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저 늙은이도 앞으로 5백 명의 대중쯤은 거느리겠다.”
어느 날 앙산에게 물었다.
“어디서 돌아오는 길인가?”
“밭에서 돌아옵니다.”
“벼를 잘 베었는가?”
“잘 베었습니다.”
“푸르게 보이던가, 누렇게 보이던가,
푸르지도 누렇지도 않게 보이던가?”
“화상의 등 뒤의 것은 무엇입니까?”
“그대는 보았는가?”
앙산이 벼이삭을 번쩍 들면서 물었다.
“화상께서 언제 이것을 물으신 적이 있습니까?”
“이것은 거위가 우유를 가려내는 것이다.”
정법념처경正法念處經에 말하기를 “우유와 물을 담아서 한 자리에 두면 거위는 우유 그릇을 가려서 마시고,
물은 마시지 않는다”라고 하였으니, 자기가 그일, 즉 본분사本分事를 잘 안다는 뜻이다.
겨울철에 대사가 앙산에게 물었다.
“날씨가 차가운가, 사람이 차가운가?”
“여러 사람이 그 속에 있습니다.”
“어째서 곧바로 말하지 않는가?”
“본래부터 굽지 않았습니다[不曲].
화상께서는 어떻습니까?”
“곧바로 흐름을 따를 뿐이다.”
어떤 스님이 와서 절을 하자, 대사가 일어나는 시늉을 했다. 그 스님이 말했다.
“화상께서는 일어나지 마십시오.”
대사가 말했다.
“노승老僧은 본래 앉은 적이 없다.”
“저도 절을 한 적이 없습니다.”
“왜 절을 하지 않는가?”
그 스님이 대답이 없었다.
[동안同安이 대신 말하기를
“스님, 괴이하게 여기지 마십시오”라고 하였다.]
석상石霜의 휘하에 있는 두 선객이 와서 말하기를
“여기는 한 사람도 선禪을 아는 이가 없구나”라고 하였다.
나중에 울력으로 나무를 운반하다가 두 선객이 쉬는 것을 보고는,
앙산이 장작 한 개비를 들고 가서 물었다.
“말할 수 있겠소?”
두 선객이 모두 말이 없으니, 앙산이 말했다.
“선을 아는 이가 없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 좋을 뻔했다.”그리고는 돌아와서 위산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늘 그 두 선객이 저[慧寂]의 감정을 받았습니다.”
대사가 말했다.
“어느 곳에서 그대의 감정을 받았는가?”앙산이 앞의 이야기를 하니,
대사가 말했다.
“혜적도 나에게 감정을 받았다.”
[운거雲居 석錫이 말하기를“어디가 위산潙山이 앙산仰山을 감정한 곳인가?”라고 하였다.]
대사가 조는데 앙산이 와서 문안을 드리니,
대사가 문득 얼굴을 돌려서 벽을 향했다. 앙산이 말하였다.
“화상께서는 어찌 그러십니까?”
대사가 일어나면서 말했다.
“내가 아까 꿈을 꾸었는데, 그대가 시험 삼아 나를 위해 풀어 보라.”
앙산이 물 한 대야를 떠다가 대사에게 세수를 시켜 주었다.
조금 있다가 향엄香嚴도 문안을 오자,
대사가 말했다.
“내가 아까 꿈을 꾸었는데, 혜적이 풀었으니 그대도 해몽을 해 보라.”
향엄이 차 한 잔을 갖다 바치니, 대사가 말했다.
“두 사람의 견해가 사리자[鶖子]를 능가하는구나.”
어떤 스님이 말했다.
“위산潙山의 일정립一頂笠 삿갓의 이름이며, 위산潙山의 종지를 뜻한다.
을 만들지 않고는 막요촌莫傜村 위산 아래의 마을 이름이다.
에 이르지 못한다고 했는데, 어떤 것이 위산의 일정립입니까?”
대사가 즉시 그를 차 버렸다.
대사가 상당하여 대중에게 말했다.
“노승이 죽은 뒤에는 산 밑에 가서 한 마리 검정 암소[水牯牛]가 될 터인데, 왼쪽 겨드랑이 밑에다 ‘위산의 승려 아무개[潙山僧某甲]’라고 다섯 자를 쓰겠다. 이때 위산의 승려라 부르면 곧 검정 암소라 하고,
검정 암소라고 하면 위산의 승려라 할터인데, 뭐라 불러야 옳겠는가?”
[운거雲居 석錫이 대신 말하기를 “스님에게는 다른 법호가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자복資福이 대신 동그라미를 그려 놓고, 옛사람의 시구[頌]를 들어 말하기를 “위산이라 할 수도 없고 소라고 말할 수도 없으니, 한 몸에다 두 이름을 붙이기란 실로 어렵구나. 두 쪽을 떠나서 말해 보라.어떻게 말해야 예사 무리에서 벗어나겠는가?”라고 하였다.]
대사가 종승의 가르침을 편 지 40여 년에 달관한 이는 셀 수 없었으며 입실入室한 제자는 41인이었다.당나라 대중大中 7년 정월 9일 양치질과 세수를 하고 나서 편안히 앉아 태연히 열반에 드니, 수명은 83세이고 법랍은 64세였다. 본산(위산)에다 탑을 세우니, 대원大圓 선사라 시호를 내렸고, 탑호는 청정淸淨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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