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워야단 사냥의 불가능성(1-8)
피조물에 대해서 이렇게 무능한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께 대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자신의 정체를 바로 알게 하심으로 자신이 감히 하나님 앞에서 자기주장을 펼 수 없는 존재임을 바로 인식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이는 또한 모든 인류가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자기 주제를 알고 겸손히 엎드리어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해야 함을 교훈합니다.
1네가 낚시로 리워야단을 끌어낼 수 있겠느냐 노끈으로 그 혀를 맬 수 있겠느냐 2너는 밧줄로 그 코를 꿸 수 있겠느냐 갈고리로 그 아가미를 꿸 수 있겠느냐 3그것이 어찌 네게 계속하여 간청하겠느냐 부드럽게 네게 말하겠느냐 4어찌 그것이 너와 계약을 맺고 너는 그를 영원히 종으로 삼겠느냐 5네가 어찌 그것을 새를 가지고 놀 듯 하겠으며 네 여종들을 위하여 그것을 매어두겠느냐 6어찌 장사꾼들이 그것을 놓고 거래하겠으며 상인들이 그것을 나누어 가지겠느냐 7네가 능히 많은 창으로 그 가죽을 찌르거나 작살을 그 머리에 꽂을 수 있겠느냐 8네 손을 그것에게 얹어 보라 다시는 싸울 생각을 못하리라(1-8)
하나님께서는 육지의 동물인 베헤못에 이어 바다의 동물인 리워야단에 대해서 질문하기 시작하십니다. 리워야단은 구약에서 신화적 존재와 실제적 존재 모두로 등장하고 있는데, 이 본문에서는 이 둘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베헤못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피조물인 바다생물로 여겨집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많은 학자들이 베헤못과 마찬가지로 리워야단의 정체를 실제적인 바다 생물과 연결시키기 위해서 노력하였으며, 악어나 고래 혹은 수중 공룡 등으로 해석해왔습니다. 하지만 41장에 나온 리워야단에 대한 묘사와 맞는 동물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욥기에서 나온 리워야단은 기본적으로 실제적인 피조물이긴 하지만, 당시 고대 근동에 알려진 리워야단에 대한 신화적인 요소들을 사용하여 묘사하였습니다. 이렇게 현대의 과학적인 눈에서 보면 실제적인 것과 신화적인 요소들이 섞여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신화적 세계관을 가진 당대의 관점에서 보면 리워야단과 베헤못은 실제적인 존재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첫 번째 질문은 리워야단을 낚을 수 있나는 것으로 1-2절은 모두 낚시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40:24에서는 베헤못을 사냥하는 모습으로 마무리되었는데, 리워야단에 대한 질문은 리워야단에 대한 낚시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코를 꿰다’는 동일한 단어를 사용하여 사냥의 이미지를 연결하고 있습니다. 3-5절은 리워야단이 인간에게 잡혀 살려달라고 애원하거나 인간의 손에 길들여져 소녀들 즉, 가장 연약한 인간들의 애완동물이 되게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6-7절은 3-5절보다 좀 더 폭력적인 상황으로 비록 평화적인 협상이 안 된다면 리워야단을 잡아다 팔거나 그것도 안 되면 죽일 수는 있냐는 것입니다. 대답은 “불가능하다”입니다. 7절에서 많은 창을 가지고 그의 가죽을 찌르거나 작살을 그의 머리에 꽂을 수 있느냐는 질문을 통해 인간이 리워야단을 잡는 것도 죽이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6절에서 리워야단을 잡는 모습은 전쟁 시 포로를 다루는 모습과 유사한데, 일단 전쟁에서 이기면 포로를 묶어서 옵니다. 그리고 포로들은 살려달라고 애원을 하고 협상을 하게 되며, 그들을 노예로 삼거나 혹은 노예상인들에게 팔아넘깁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리워야단과 싸워 이길 수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하지만 이전과는 다르게 8절에서 하나님께서 답을 하십니다. 만약 인간이 리워야단을 실제로 접하고 그와의 전쟁이 어떨지를 생각할 줄 안다면, 결코 리워야단과 전쟁할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리십니다. 이 결론을 통해 리워야단은 결코 인간이 상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알려주십니다.
하나님의 독백(9-12)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 무엇인가를 요구할 권리도, 자격도 없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단지 주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시기를 기대하고 간청하는 것일 뿐임을 기억합시다.
9참으로 잡으려는 그의 희망은 헛된 것이니라 그것의 모습을 보기만 해도 그는 기가 꺾이리라 10아무도 그것을 격동시킬 만큼 담대하지 못하거든 누가 내게 감히 대항할 수 있겠느냐 11누가 먼저 내게 주고 나로 하여금 갚게 하겠느냐 온 천하에 있는 것이 다 내 것이니라 12○내가 그것의 지체와 그것의 큰 용맹과 늠름한 체구에 대하여 잠잠하지 아니하리라(9-12)
이 부분은 하나님의 독백으로 화자가 ‘나’로 등장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리워야단 앞에서 꼼짝도 못하는 인간을 비웃으시면서 하나님의 피조물인 리워야단과 싸울 엄두도 못내는 주제에 감히 세상 만물의 주인이자 창조주이신 하나님 앞에 서서 이 손해를 하나님께서 갚아주셔야 한다고 말할 수 있냐고 물으십니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 서서 말하는 인간은 바로 욥입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자기 앞에 나타나셔서 자신의 결백을 밝혀주셔야 한다고 주장하였던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피조물인 리워야단에게는 꼼짝도 못하면서 감히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대든 형국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의 이런 행동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인지 알려주시기 위해 리워야단에 대해 좀 더 설명을 하십니다
리워야단의 모습(13-32)
주님께 먼저 무언가를 드려서 갚으심을 받을 사람은 없습니다.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께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롬 11:35~36).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오해하여 율법 지키는 것을 자신들의 공로로 여겼습니다. 즉 하나님께 먼저 드려서 그 대가로 구원을 받는 것처럼 착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에게도 율법준수를 강요했습니다. 성도는 모든 주권이 하나님께 속했음을 인정하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구함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구원의 은혜를 받아 누려야 합니다.
13누가 그것의 겉가죽을 벗기겠으며 그것에게 겹재갈을 물릴 수 있겠느냐 14누가 그것의 턱을 벌릴 수 있겠느냐 그의 둥근 이틀은 심히 두렵구나 15그의 즐비한 비늘은 그의 자랑이로다 튼튼하게 봉인하듯이 닫혀 있구나 16그것들이 서로 달라붙어 있어 바람이 그 사이로 지나가지 못하는구나 17서로 이어져 붙었으니 능히 나눌 수도 없구나 18그것이 재채기를 한즉 빛을 발하고 그것의 눈은 새벽의 눈꺼풀 빛 같으며 19그것의 입에서는 횃불이 나오고 불꽃이 튀어 나오며 20그것의 콧구멍에서는 연기가 나오니 마치 갈대를 태울 때에 솥이 끓는 것과 같구나 21그의 입김은 숯불을 지피며 그의 입은 불길을 뿜는구나 22그것의 힘은 그의 목덜미에 있으니 그 앞에서는 절망만 감돌 뿐이구나 23그것의 살껍질은 서로 밀착되어 탄탄하며 움직이지 않는구나 24그것의 가슴은 돌처럼 튼튼하며 맷돌 아래짝 같이 튼튼하구나 25그것이 일어나면 용사라도 두려워하며 달아나리라 26칼이 그에게 꽂혀도 소용이 없고 창이나 투창이나 화살촉도 꽂히지 못하는구나 27그것이 쇠를 지푸라기 같이, 놋을 썩은 나무 같이 여기니 28화살이라도 그것을 물리치지 못하겠고 물맷돌도 그것에게는 겨 같이 되는구나 29그것은 몽둥이도 지푸라기 같이 여기고 창이 날아오는 소리를 우습게 여기며 30그것의 아래쪽에는 날카로운 토기 조각 같은 것이 달려 있고 그것이 지나갈 때는 진흙 바닥에 도리깨로 친 자국을 남기는구나 31깊은 물을 솥의 물이 끓음 같게 하며 바다를 기름병 같이 다루는도다 32그것의 뒤에서 빛나는 물줄기가 나오니 그는 깊은 바다를 백발로 만드는구나(13-32)
리워야단에 대한 묘사는 인간이 리워야단을 이길 수 없다는 앞부분의 결론을 반복하는 수사적 질문으로 시작됩니다. 15-17절은 단단한 비늘에 대한 묘사로 바람이 통과할 틈도 없이 빽빽하게 붙어 있는 비늘의 모습이 강조되는데, 이것 때문에 인간의 작살이나 창이 결코 리워야단의 피부를 뚫을 수 없습니다. 18-21절에서는 리워야단에 대해 실제적인 모습이 아닌 신화적인 모습이 반영된 시적 표현을 하는데. 입에서는 불이 나오고 콧구멍에서는 연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마치 불을 뿜는 용과 같은 모습입니다. 22절에서는 잠시 강력한 힘을 가진 목덜미에 관심을 가지다가 23절부터는 가죽에 대한 묘사로 주로 가죽이 얼마나 단단한지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가슴 부분은 돌처럼 단단한데, 그것으로 인해 리워야단이 일어나면 용사들도 두려워서 도망을 가게 됩니다. 그 이유가 26-29절에 나오는데, 칼, 창, 투창, 화살촉, 몽둥이, 물맷돌 등 모든 인간의 무기들이 그에게는 무용지물이기 때문입니다. 칼이나 투창이나 화살이 전혀 꽂히지 않고 쇠나 몽둥이도 지푸라기같이 여긴다는 것은 인간의 어떤 공격으로 리워야단에게 해를 입힐 수 없음을 표현합니다. 우리나라 전래 동화의 불가사리나 서양 중세의 드래곤을 연상시킵니다.
30-32절은 리워야단의 움직임을 표현하는데, 리워야단의 아랫부분은 날카로운 토기 조각처럼 되어 있어서 진흙 위를 지나가면 그 위에 날카로운 자국을 만들어놓으며 물속을 헤엄쳐 다니면서 그가 지나가는 곳마다 엄청나게 많은 기포를 만들어내어 마치 물이 끓는 것처럼 혹은 향수 기름을 만드는 숱이 끓는 것처럼 보이게 합니다. 이런 끓는 물과 같은 기포는 리워야단의 엄청난 힘과 속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리워야단이 지나간 뒤에 일어나는 하얀 포말이 크고 넓고 깊어 시커멓고 깊은 바다 전체를 백발처럼 하얗게 만든다고 표현합니다. 이것은 리워야단의 크기가 어마어마해서 온 바다를 전부 하얗게 만들 정도로 크고 위력적이라는 것입니다.
리워야단의 뛰어남(33-34)
인간이 피조물의 왕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했더라면 오늘날과 같이 지구환경의 위기를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여 위로는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고 이웃과 환경을 돌보고 구원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33세상에는 그것과 비할 것이 없으니 그것은 두려움이 없는 것으로 지음 받았구나 34그것은 모든 높은 자를 내려다보며 모든 교만한 자들에게 군림하는 왕이니라(33-34)
33-34절은 리워야단에 대한 결론으로 리워야단은 세상 어느 것과 비교할 수 없이 용맹하며 높다고 하는 모든 자들 위에 군림하고 있는 왕으로 그려집니다. 즉,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생물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두 번째 연설을 마치셨는데, 이 마지막 부분이 말하는 것은 이런 리워야단을 과연 누가 통제할 수 있습니까? 오직 하나님만이 이 생물을 통제하고 물리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리워야단에 대한 표현은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힘과 능력과 크기를 가지고 있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구약에서는 이런 리워야단을 하나님께서 만드시고 또한 이것을 물리치셨다고 말씀하심으로 하나님의 능력은 인간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것을 또다시 보여주며 이런 하나님께 항의하며 따지듯 말한 욥에게 그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철저히 깨닫게 해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언제나 기도를 들어주시는 분이라는 생각만 할 뿐, 그분이 얼마나 엄위하신 분인지를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혹시라도 기도가 응답되지 않거나 조그마한 어려움이라도 생기면 함부로 하나님을 원망하고 의심하는 것입니다. 물론 주님이 우리를 위해 스스로 낮아지시고, 우리 가운데 오시는 은혜를 베푸셨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만만히 볼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을 회복합시다. 일방적인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높아졌던 마음을 버리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