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합의 들은 적 없어” 윤미향 오리발, 말문 막혔다 [박근혜 회고록 1]
박근혜 회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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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생각을 가다듬게 된 것은 2007년 2월 15일 미국 국회의사당에서다. 그날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 아시아·태평양환경소위가 개최한 일본군 종군위안부 청문회에 이용수 할머니가 증인으로 참석했다.
이 할머니는 “16세 나이에 위안부로 대만에 끌려갔다. 강제 성(性)추행은 물론 온갖 폭행과 고문에 시달렸다. 일본군들은 개돼지보다도 더 추악했고, 한국말을 하면 폭행당하기 일쑤였다”며 울먹였다.
2014년 12월 19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민추천포상 수여식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평생 모은 재산 1억여원을 기부한 위안부 피해자 김군자씨에게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여하고 있다. 중앙포토
당시 방미 중이었던 나는 청문회가 끝난 뒤 마련된 별도 만찬에 참석해 이 할머니와 고(故) 김군자 할머니를 만나 그간 겪었던 고초를 위로드리고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 약속드렸다. 그때 나는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선 상태였다.
대통령에 당선되면 이 문제를 제대로 그리고 확실히 매듭지어야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당 경선에서 이명박 후보에게 패배하면서 이 결심은 뒤로 미뤄야 했다. 그래도 6개월 후인 2007년 8월 1일 미국 하원이 ‘일본군 성노예 결의문’을 채택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朴 커터칼 테러때 도착한 쇠고기, 거기엔 아베 편지 있었다 [박근혜 회고록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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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내가 처음 만난 건 2004년이다. 일본의 공동 여당인 자민당과 공명당의 간사장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였다.
당시 그는 자민당의 간사장으로서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로 꼽히는 정치인이었다. 후유시바 데쓰조(冬紫鐵三) 공명당 간사장과 8월 31일 노무현 대통령을 만난 그는 9월 1일 한나라당 대표인 나를 만나기 위해 서울 염창동 당사를 방문했다.
당시 우파 색채가 강한 일본의 일부 역사 교과서가 양국 관계에서 큰 이슈였다. 나는 “역사 교과서 문제는 양국 간 해결해야 할 큰 문제다. 미래세대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까 봐 제기하는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그러자 아베 간사장은 “역사를 직시해야 한다는 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검정 교과서를 합리적으로 선택하도록 하겠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