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구미아시아연극제 - 셋째날
[신문지 이야기]
성이 신 이름이 문지인 이야기
혼자봐서 아이(초6이지만)의 생각을 들을수 없어 아쉽다.
신문지의 이야기에서 우리의 삶으로 보였다.
큰아이들 어릴때 교육 목적이라는 이유로 2개의 신문과 어린이 신문까지 받아보았다. 지금은 포장할때 완충제 역할로 사용된다. 얼마전까지 폐지에 신문지도 가끔 보였는데 지금은 보이지도 않는다. 많은 것이 디지털로 전환되어 편리함으로 나아갔지만 난 아직도 종이가 좋다. 요즘 패드로 책을 읽고 다양한 활동을 하지만 책은 아직도 종이가 좋다. 손끝에 잡히는 질감을 느끼며 넘기는 맛이 아직은 좋기 때문이다.
연극에서 보여준 신문지의 여정에서 인간의 삶과 겹쳐보인것이 나만은 아닐것이다.
처음 사회에 나갔을 때는 모즌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새롭고.
하지만 한번 두번씩 나의 의도와는 다르게 흐르거나 엉뚱한 결말을 보면서 힘이 빠지고 서서히 힘들지며 '나는 아무것도 아니네, 나는 왜 태어났을까, 이 세상에서 난 사라져야 할 존재'라는 생각에 서서히 아래로 아래로 빠져들다 바닥 아주 밑바닥에 떨어져서 아무것도 할 수도 생각까지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이때 아주 아주 작은 말한마디 손길, 눈빛하나에 다시 시작할수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니 누군가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용기를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순간 나는 그런 따스함을 줄 수 있는 사람일까 아집과 고집으로 가는 것은 아닌가 많은 것이 스쳐지나갔다. 아주 작은 30분의 연극으로 나와 다시 만나는 기회가 되었다.
마지막 신문지로 종이를 접어 날리는 장면에선 충만함이 밀려왔다. 순수한 마음이 계속 될 수 있기를 마음껏 날아갈 수 있기를 기원하면서 ...
[인간을 보라]
처음 제목을 보고 뭐야하며 웃었다. 누구에게 인간을 보라는거지하며 내용을 읽으니 신, 바퀴벌레, 외계인... 그들 눈엔 인간이 어떤 존재로 보일까 왜 보라고 한것일까 궁금했다. 캉디드와 제5도살장에서 나온 외계인이 떠오르면서 그들에게 인간은 하찮은 존재이고 필멸의 존재인데 그들은 그 사실을 잊고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야한다며 싸우고 더 많은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극을 보면서 많은 웃음 코드에 관객들의 웃음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신들의 이야기에서 선과 악은 누구의 기준인지,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 선은 반드시 선일까하는 질문과 바퀴벌레의 이야기를 들으며 벗어날 수 없는 그물에 갖혀 있으면서도 나는 아니야. 빠져나갈 수 있어하며 발버둥을 치는 모습에 인간이 겹쳐보이면서 탁상공론에 뫼비우스 띠의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계인의 시선은 인간 또한 지구에서 보면 사라져야 할 존재들인데 멸종을 당할 수도 있는데 왜 그것을 생각하지 않고 무작위로 마음대로 우월한 인간이라는 생각에서 알 수 없다. 공존이라는 단어는 허상에서 허우적 거리는 느낌을 지울수 없었다.
웃음 뒤에 숨어서 말하는 인간의 적날한 비판과 철학적 사유에는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두 이야기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해보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