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수왕국 LG는 어떻게 몰락했나 (2)
90년대 LG 황금기를 이끌었던 이광환 감독은 96년 시즌 도중 성적 부진을 이유로 감독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비록, 약속된 임기를 채우지는 못했지만 LG에서 4년이 넘는 기간 동안
감독 자리를 지킨 사람은 지금까지도 이광한 감독이 유일하다.
이광환 감독의 뒤를 이어 LG의 사령탑에 오른 인물은 96년 후반기 감독 대행을 맡았던 천보성 전 수석코치다.
천보성 감독은 2년 연속 팀을 한국시리즈에 진출시키는 등 초짜 감독으로서 대단한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투수왕국' LG는 94년 이후 서서히 동력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동력을 잃다
94년 팀을 정상으로 이끈 LG 선발 투수들의 향후 행보를 살펴보자. 정삼흠은 96년을 끝으로 은퇴를 했으며,
99년 은퇴한 김태원 역시 96년이 사실상 커리어의 마지막 시즌이었다.
당시 신인 투수로 10승을 거둔 인현배는 94년 시즌 후반 당한 어깨부상의 후유증으로 이후
단 1승도 거두지 못하며 2000년 유니폼을 벗었다.
95년 20승을 거둔 '에이스' 이상훈은 습관성 어깨탈골과 손가락 혈행장애로 96년 후반기 마무리로 전환했으며,
97년을 마치고 일본으로 진출했다. 전력에서 이탈 한 것은 선발투수들뿐만이 아니었다.
그 시절 LG의 아주 특별한 강점으로 꼽혔던 중간계투 투수들도 나가떨어지기는 마찬가지였다.
97년 천보성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을 때(물론, 감독 대행으로 96년 후반 이미 팀을 맡았지만)
94년 우승을 일궜던 주력 투수들 12명 가운데 정상적으로 가동이 가능했던 투수는
김용수, 차명석, 민원기, 김기범 그리고 마무리로 돌아선 이상훈 다섯 명뿐이었다.
특히, 94년 선발로 뛴 투수들 가운데 97년 선발 로테이션에 정상적으로 포함 된 투수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당황스러울 만큼 빠르게 투수진의 교체가 이뤄진 것이다.
'고인 물은 썩는다'는 격언도 있는 마당에 변화 자체를 부정적으로 볼 이유는 없다.
중요한 것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가 이뤄졌는지 여부다.
97년 LG는 73승을 거두며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그해 LG 투수력(평균자책점 2위)은 여전히 리그 최상급이었다.
그러나 10승 이상을 거둔 4명의 투수 가운데 2명이 단 한 차례도 선발로 등판하지 않았던 불펜 투수(이상훈, 차명석)였다.
그해 10승을 거둔 선발 투수 가운데 한 명은 하루라도 LG를 떠나고 싶어 했던 임선동이었으며,
팀 내 최다승인 12승을 거둔 투수는 30대 후반에 접어든 김용수였다. 변화는 찾아왔지만,
결코 긍정적인 방향의 변화가 아니었다.
상승 동력을 찾기 위한 노력
투수진을 이끌어줄 상승 동력을 발굴해 키우는 것이 LG에 주어진 지상과제였다.
프로야구단이 전력을 보강하는 보편적인 방법은 신인 지명, 거래를 통한 외부 영입 두 가지다.
그러나 LG는 94년 이후 한 동안 전력을 보강하는 첫 번째 방법인 신인 투수 영입에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96년 연세대 투수 이정길을 1차 지명한 것을 제외하면 94년부터 98년까지 5번 가운데 4번의 1차 지명권을 야수에게 사용했다.
사실 대부분의 경우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주인공들이 유지현(94년)-심재학(95년)-이병규(97년)였기 때문이다.
유지현의 어깨부상설이 나돌았던 94년을 제외하면, 주사위 승자였던 LG에게 매번 우선권이 주어졌고
LG는 미련 없이 이들에게 지명권을 행사했다. 연고권 라이벌인 OB는 투수인 류택현(94년)-송재용(95년)-이경필(97년)을 지명했다.
조인성(LG)-김동주(두산)로 갈렸던 98년에는 주사위 승자가 OB였다.
이유야 어쨌든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 할 수 있는 1차 지명을 통해 투수를 얻는 데 실패한 것이다.
2차 지명에서도 사정은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92년-임선동(1차/96년 입단), 차명석, 민원기 93년- 이상훈(1차),
강봉수 94년- 인현배, 박철홍 등 신인 지명을 통해 제법 쏠쏠하게 투수력을 보강했던 LG는
95년 드래프트를 통해 단 1명의 투수도 얻지 못하게 된다.
물론, 95년 2차 지명에서는 LG뿐만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투수 지명률
이 떨어졌다.
96년에는 보도 자료를 통해 " 149km를 던지는 국가대표출신 우완정통파 " 라고 소개된 1차 지명 이정길과
2차 1순위 손혁을 비롯해 무려 12명(고졸 우선 지명 2명 포함)의 투수를 지명했지만, 손혁만이 살아남는
극악의 생존률(8.3%)을 기록한다. (고졸 경헌호는 2000년 입단)
2년 동안 신인 보강이 손혁 단 1명에 그쳤더라도 기존 투수들이 급격하게 균형을 잃지만 않았다면
별다른 곤란을 겪지 않을 수도 있었다.
실제로 LG는 97년 지명에서 김민기-장문석-전승남 등 대어급 신인 투수들을 무더기(?)로 얻게 된다.
그러나 이들이 주력으로 성장할 기간 동안 버텨줄 연결고리가 될 투수들을 얻지 못한 2년,
그 위태로운 타이밍에 믿었던 기존 투수들이 버텨내지 못하고 나가떨어졌다.
점진적인 자연스러운 변화를 이끄는 데 실패한 것이다. 자연스럽지 못한 스윙은 부작용을 초래하기 마련이다.
부작용-좌완투수 심재학
신인 지명을 통한 투수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서 서서히 균열이 보이기 시작하자 이광환 감독은
좌타자 심재학의 보직 이동을 고민하기 시작한다. 심재학이 이름값에 비해 기대만큼 좋은 활약을 하지 못한 것이
쓸데없는 고민을 하게 만든 근본적인 이유였다.
140km 이상을 던질 수 있는 강한 어깨도 한몫을 거들었다. 더군다나 심재학은 좌완이었다.
당시 140km는 우완투수에게도 강속구로 분류되던 시절이었다.
"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140km를 쉽게 넘기는 좌완 투수를 만난 건 처음이다
" 이광환 감독은 93년 신인투수 이상훈의 투구를 지켜보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1년 뒤 이상훈과 함께 생애 첫 우승을 일궈냈었다.
그 짜릿한 기억이 좌완 강속구 투수 심재학에게 집착을 한 이유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광환 감독의 계획은 당시 천보성 수석 코치와 당사자인 심재학의 강한 반발 때문에 수포로 돌아간다.
정작 심재학이 투수 전향을 한 것은 이광한 감독이 떠난 99년이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광환 감독의 계획에 그토록 반대하던 천보성 코치가 감독이 된 후 심재학의 투수 전향이 이뤄졌다는 사실.
물론, 정삼흠 당시 투수 코치의 권유가 크게 작용을 한 결과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심재학의 투수 전향은 서로에 깊은 상처만 남기고 처참한 실패로 끝이 난다.
96년부터 98년까지 3시즌 동안 44개의 홈런과 226타점을 올린 타자 심재학이 투수로 전향해
남긴 성적은 15경기 3승 3패 평균자책점 6.99.
" 결국, 돌아온 것은 아픔뿐이었다 " 심재학은 당시를 이렇게 표현했다.
트레이드만은 피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투수 전향을 받아들였지만, 등판을 하면 왜 자신이 마운드에 서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만 들었다고 한다.
시즌 중 선수단 합류를 거부하는 등 당초 원치 않는 투수 전향에 강한 불만을 품은 심재학은
최원호(당시 현대)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팀을 떠났으며,
이듬해인 2000년 타자로 복귀해 21개의 홈런을 쏘아 올리는 등 이후 3년 동안 60개의 홈런과 220타점을 기록하게 된다.
심재학 투수 전향 사건은 일종의 씁쓸한 해프닝이었지만,
당시 LG가 투수 수급에 곤란을 겪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했다.
LG는 자체 발굴이 여의치 않게 되면서 마운드 흐름에 문제가 생기자 96년 이후 3년 동안 9번의 트레이드를 시도하는 등
외부 영입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계속)
첫댓글아주 야구학 박사시네요. 제 개인적으론 야구를 별로 좋와하진 않지만, 야구에 대한 한기홍회원님의 열정이 숭어 있는 좋은글 같아 보입니다. 제가 발견한 이글에서의 느낌은 끊임없는 지기쇄신 변화가 없는 어떤 단체도 결국 몰락의 길을 갈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아마도 변화와 혁신의 시도가 없어진다면 바로 그때가 몰락의 시작이 아닐까하고 생각합니다.
첫댓글 아주 야구학 박사시네요. 제 개인적으론 야구를 별로 좋와하진 않지만, 야구에 대한 한기홍회원님의 열정이 숭어 있는 좋은글 같아 보입니다. 제가 발견한 이글에서의 느낌은 끊임없는 지기쇄신 변화가 없는 어떤 단체도 결국 몰락의 길을 갈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아마도 변화와 혁신의 시도가 없어진다면 바로 그때가 몰락의 시작이 아닐까하고 생각합니다.
동호회에서 발취한 내용입니다 ^^* 저역시 82년 프로야구 개막때부터 관심이 많은터라 조계현 선동렬 한대화 김재박 최동원선수들 좋아합니다 지금은 감독 코치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