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데없는 한자
나는 한문 전공자 출신으로 다행히 운이 좋아 초등학교 방과 후 한자반 수업을 몇 년째 이어오고 있다.
며칠 전 수강 신청을 취소한 학생이 있어 취소 이유가 무척 궁금했었다. 같이 공부하던 한 학생은 그 친구와 같은 반이어서 수강 취소 이유를 알까 싶어 물어보았다. 돌아온 답은 절망적이었다.
“‘한자는 쓸데없어’라고 부모님이 말했다고 그랬어요.”
이 무슨 말인가 싶어 행여나 내가 수업 중에 실수한 것들이 있나 돌아보았다. 하지만 내가 궁리한 결과는 ‘맞아. 한자는 쓸데없지’였다. 지금 우리들이 실생활에서 한자를 접할 수 있는 곳이 거의 없다. 교과서에도 일반 동화책, 서적에서도 한자는 거의 없다. 한글 전용 시대를 살고 있다. 중, 고등학교에 취학하면 ‘한문’ 교과목이 있지만 학교 재량으로 ‘한문’ 과목이 없는 학교도 많다. 시험에도 나오지 않는 한자, 한문을 공부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한자를 익혀도 써먹을 데가 없다. 대학교에서조차도 한자는 전공자 외에는 공부할 필요가 없는 과목이다. 그러니 한자는 쓸데없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초등학교 방과 후 한자반이 그래도 인기가 있던 때가 있었다. 독해력, 문해력, 어휘력을 키워준다는 말이 유행하고 있을 때였다. 우리말에 한자어 어휘가 많으니 한자를 알면 단어 뜻을 아는 데 도움이 많이 될 거라는 믿음이 강하게 있었다. 부모들이 방과 후 한자반에 학생을 등록시켜 공부를 시키던 그때가 아마 7~8년 전쯤이다. 전성기였다고 생각한다. 코로나 이후로 한자반 등록생이 급감하기 시작했다. 이는 초등 입학생 인구가 줄어든 것도 하나의 이유겠지만, 한자반 학생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이 재미없고 힘든 한자를 왜 시켜야 하는지 의구심이 들었을 것이다. 시험에 나오지도 않는 것을 왜 공부해야 하는가 싶었던 것이리라. 학교도 폐교를 하는 마당에 한자반 수강 인원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이치겠다. 또한 신나고 재미난 놀이 학습이 많은 데 굳이 외우고 암기하는 한자 공부는 학생들의 기피 1호 수업이 아니겠나.
다시 생각해 봐도 한자는 쓸데없다. 대학교 졸업을 하고서도 한자 이용이 필요 없는 우리나라다. 신문에도 책에도 인터넷에서도 한자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유튜브, 포털 사이트에 들어가 봐도 한자는 보이지 않는다. 한자의 필요성이 느껴질 수 없는 구조다. 그러니 한자는 중요하지 않게 된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일본어에서도 한자어가 많다. 신기하게도 일본은 한자를 버리지 않았다. 온갖 매체에서 한자를 표기한다. 실용 한자 1800자 정도를 꾸준히 공부하게 만들었다. 초등시절부터 계속 일상생활에서 한자에 노출되게 했더니 암기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외워지게 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한자 표기를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모양이다. 우리나라는 한글로 된 교과목 공부와 독서도 힘든 데 어찌 한자까지 해야 하나라는 공부량과 공부 무게에 대한 두려움이 컸던 모양이다. 하나라도 안 배우고 덜 배우면 훨씬 편하고 좋지 않겠나. 다른 과목 공부에 더 많은 집중을 할 수 있으니 입시 공부에 더 도움이 될 거라고 여겼는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한자 표기, 한자 병기를 하지 않는 이유 중에는 한자 공부를 따로 해야 해서라고 한다. 그렇게 되면 또 공부에 격차가 생긴다고 한다. 한자를 알고 잘 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생긴다는 것이다. 우리 어휘에 60% 정도가 한자어임에도 불구하고 한자 공부가 하기 싫고 이 한자 때문에 공부와 지식에 격차가 생겨서 한자를 표기하면 안 된다고 한다. 일본처럼 실생활에서 자연스럽게 노출되어 시민사회가 모두 한글(한자 병기)를 하면 큰 힘들이지 않고 한자 실력이 늘어날 것 같은데 전혀 그런 기대가 없고 부모와 시민사회는 오히려 반감과 부정적, 적대적 반응이 크다.
한자와 한문은 중세 표기언어다. 우리나라가 고려, 조선시대에 사용하던 문자다. 말은 우리말을 했을지라도 표기는 한자를 사용했다. 지금에서야 한자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시대를 살아서 한문이 있는지조차도 느껴지지 않지만, 우리 선조들이 사용한 문자요, 글이었다. 이제는 이 글을 해독하고 해석하는 일은 소수의 전공자들의 몫이 되었다. 한문 전공자가 아니면 한문책을 읽고 이해하고 번역하기는 힘들다. 그래도 우리말 속에는 한자어가 남아 있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순우리말로는 대화도 성립이 어렵고, 문장을 쓰기에도 어렵다. 학술 용어와 전문 용어로 들어가면 한자어가 주를 이루고 순우리말 단어는 점점 줄어든다.
우리 말과 글 속에 여전히 주를 이루는 한자어를 이해하려면 한자를 익히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따로 공부를 해야 하는 한자가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자연히 저절로 익혀질 수 있도록 한글(한자 병기) 체제로 운영하길 바라는 한 사람이다.
또,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한자 공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선조들이 적어 놓은 수많은 생각과 글들을 읽어보자는 것이다. 그리고 동양 고전들이 한문으로 적혀 있지만, 이 고전들을 읽어 보자는 것이다. 원서와 원문을 글자 그대로 읽자는 것이 아니라 번역된 내용이라도 읽어 보자는 것이다. 그 내용들이 삶에 도움이 되고 나라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들이 지녔던 사상과 가치관이 무시해도 되는 것들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시대착오적인 전통적 사고관, 전근대적 식민사관으로 인한 열등의식, 피지배자의 무능과 무력함으로 치부될 것들도 있지만 우리만이 가진 전통 사관도 있고, 문학세계도 있고, 뛰어난 가치관, 세계관도 있다.
2000년대 생부터 나라 전체가 독서 인구가 줄고 독서 활동도 줄어 들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스마트폰과 유튜브와 인공지능이 개발되면서 더더욱 독서 활동이 줄어들고 있다. 영상물과 게임물에 청소년과 청년들이 점령당하고 중독된 것이라는 평가도 이어진다. 다시금 우리나라의 교육제도를 깊게 살펴봐야 하는 시점이 온 것이 아닐까. 이대로 가다간 20대, 30대가 가진 가치관과 세계관이 이 나라와 인류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고민해 봐야 하지 않겠나.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폰을 손에 잡고 유아기부터 동영상에 노출되었다. 입시 경쟁 속에서 성적 우수자만 인정받는 시대를 살았다. 오로지 연봉 액수에 따라 사람의 등급이 매겨지는 시대를 경험한 젊은 세대들이다. 실력과 능력은 시험 점수에 달려 있으니 오직 시험과 무관한 것은 쓸데없는 무용의 것이 되었다. 이들이 이제 곧 부모 세대에 진입한다.
독서량은 부족하고, 고전 지식은 드물고, 전통 사고방식은 구식이어서 시대 맞지 않는 것이라 여기는 젊은 세대일 수 있다. 더욱 잔인하고 폭력적인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패륜적이고 비인간적이며, 몰상식적 행동이 뉴스에 오르내린다. 자기 통제와 자기 절제가 어려워 일으키는 범죄가 늘고 있다. 여기에 쾌락과 유흥과 오락에 시간과 열정을 쏟고 있는 시대가 되었다. 지금의 우리 자녀 세대, 청년들이 익히고 배워 온 것들과 그로 인한 사회 현상과 결과를 자세히 들여다봐야 할 시점이다. 교육의 문제로 마음을 돌려 본다. 2020년생부터라도 교육체계를 다시 세워봐야 하지 않을까. 그들은 아직 초등 취학 전이다. 국가 교육 체계 안으로 편입될 날이 그리 멀지 않았다. 그들을 키워 낼 10년, 20년의 교육 대계가 필요하지 않을까.
우리가 썼던 중세 국어, 동양 고전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는 없을까 고민해 본다. 우리가 잃었던 광복 이후의 80년의 세월을 생각해 보자. 지금까지 가속, 과속으로 달려오기만 해서 우리가 돌아보지 못했던 것들, 놓친 것들을 생각해 보자. 한자와 한문으로 적혀진 문언과 문헌들이 뭐라고 하는지 다시 새겨들어보면 어떨까. 한자와 한문 공부는 전공자와 연구자에게 맡기더라도 그 내용을 익히고 공부하고 실천하는 것은 초등교육부터 도입해 보는 것을 적극적으로 제안하고 싶다.
[참고 자료]
동양고전종합DB 사이트에서 운용하고 있는 한자로 변환기이다.
https://hanjaro.juntong.or.kr/
한자로 한글한자자동변환기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의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전통문화연구회 가 " 울산대학교한국어처리연구실 옥철영(IT융합전공)교수팀 "에서 개발한 한글한자자동변환기를 바탕하여 지속적으로 공동 연구 개발하고 있는 서비스 입니다. - 현재 고유명사(인명, 지명등)을 비롯한 여러 변환오류가 있으며 이를 해결하고자 많은 연구 개발을 진행 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이를 인지하시고 다른 곳에서 인용시 한자 변환 결과를 한번 더 검토하시고 사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변환오...
hanjaro.juntong.or.kr
첫댓글
漢字工夫之意, 不在習得漢字입니다.
이것을 모르니 매날 개/돼지 국민들이 정치꾼들에게 속고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쁜 개/돼지들이 민짐당이나 국짐당의 당원들입니다.
그렇지 않나요?
[관련 성어]
1. 聲東擊西
2. 圖南意在北
3. 醉翁之意不在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