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야무야' 의 어원은 有我無蛙(유아무와)의 오발음에서 비롯.
이조 말 부패정치 속에서 과거 낙방한 이규보에 의해서 유래
- 경남교육삼락회신문- 2012.12.01
* 蛙 : 개구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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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을 보고 현재 쓰이는 유야무야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니 익히 아는 바와 같이
아래 설명으로 되어있고...
유야무야 [有耶無耶]
있는 듯 없는 듯 분명하게 끝맺어지지 않고 흐지부지하게 되다, 어떤 일이 있는 듯 없는 듯
분명하게 끝맺어지지 않고 흐지부지 한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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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유아무와>의 유래를 찾아보니 아래와 같았습니다
유아무와 인생지한의 이규보 이야기

[有我無蛙 人生之恨]
"나는 있으나 개구리가 없는 게 인생의 한이다"
란 뜻으로
고려 말 유명한 학자이셨던 이규보 선생께서
몇 번의 과거에 낙방하고
초야에 묻혀 살 때 집 대문에 붙어있던 글이다

* 이 글에 대한 유래*
임금이 하루는
단독으로 야행을 나갔다가
깊은 산중에서 날이 저물었다.
다행히 민가를 하나 발견하고
하루를 묵고자 청을 했지만
집주인(이규보 선생)이
조금 더 가면 주막이 있다고 하여
임금은 할 수 없이 발길을 돌려야했다.

그런데
그 집(이규보)대문에
붙어있는 글이 임금을 궁금하게 하였다.
유아무와 인생지한
(有我無蛙 人生之恨)
'나는 있는데,
개구리가 없는 게 인생의 한이다.
개구리가 뭘까?'
왕은 한 나라의 임금으로서
어느 만큼의 지식은 갖추었기에
개구리가 뜻하는 걸
생각해 봤지만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주막에 가서
국밥을 한 그릇 시켜먹으며 주모에게
외딴집(이규보집)에 대해 물어봤지만,
대답은 과거에 낙방하고
마을에도 잘 안 나오고 집안에서
책만 읽으며 살아간다는 소리를 들었다

궁금증이 발동한 임금은
다시 그 집으로 가서 사정사정한 끝에
하룻밤을 묵어갈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다.
잠자리에 누웠지만
집 주인의 글 읽는 소리에 잠은 안 오고
궁금해서 면담을 신청했다.
궁금하게 여겼던
유아무와 인생지한이란
글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옛날,
노래를 아주 잘하는 꾀꼬리와
목소리가 듣기 거북한 까마귀가 살고 있었다.
하루는 꾀꼬리가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하고 있을 때
까마귀가 꾀꼬리한테 내기를 하자고 했다.
바로
"3일후에 노래 시합을 하자"는 거였다.
두루미를 심판으로 하고서...
꾀꼬리는 한마디로 어이가 없었다.
노래를 잘 하기는커녕
목소리 자체가 듣기 거북한 까마귀가
자신에게 노래시합을 제의하다니,
월등한 실력을 자신했기에 시합에 응했다.
3일 동안 목소리를
더 아름답게 가꾸고자 노력했다.

그런데,
반대로
노래시합을 제의한 까마귀는
노래 연습은 안하고
자루 하나를 가지고
논두렁에 개구리를 잡으러 돌아 다녔다.
그렇게 잡은 개구리를
두루미한테 갔다 주고 뒤를 부탁하였다.

약속한 3일이 되어서
꾀꼬리와 까마귀가
노래를 한곡씩 부르고
심판인 두루미의
판정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꾀꼬리는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고운 목소리로
잘 불렀기에 승리를 장담했지만
결국 심판인 두루미는
까마귀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 말은,
불의와 불법으로 얼룩진 나라의 실상을
비유해서 한 말이라고 설명하고
이어 이규보 선생은
자신이 생각해도
자기는 그 실력이나 지식은
어디 내놔도 지지 않는데
과거를 보면 꼭 떨어진다고 말했다.
돈이 없고,
정승의 자식이 아니라는 이유로...
자신은,
노래를 잘하는 꾀꼬리 같은 입장이지만,
까마귀가 두루미한테 상납한
개구리 같은 뒷거래가 없었기에
번번이 낙방하여 초야에 묻혀 살고 있다고...

그 말을 들은 임금은
이규보선생의 품격이나
지식이 고상하다고 생각이 들어.....
자신도 과거에 여러 번 낙방하고
전국을 떠도는 떠돌인데
며칠 후에 임시과거가 있다 해서
한양으로 올라가는 중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궁궐에 돌아와
임시과거를 열 것을 명하였다.

과거를 보는 날,
이규보선생도
뜰에서 다른 사람들과 같이
마음을 가다듬으며
과거 볼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시험관이 내 걸은 시제가
'有我無蛙 人生之恨'
이란 여덟 자 였다.

다른 사람들은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를
곰곰히 생각하고 있을 때
이규보선생은
임금이 계신 곳을 향해
큰 절을 한 번 올리고
답을 적어 냄으로서 장원급제 하여
차후 유명한 학자가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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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와명(蟬躁蛙鳴)...
매미는 떠들석하게 울고 개구리는 시끄럽게 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