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음들]을 쓰고 난 뒤, 랭보(1854~1891)는 그의 시 《착란 2ㅡ언어의 연금술》을 통해 "나는 모음들의 색깔을 발명했다. 검은 A, 하얀 E, 붉은 I, 파란 O, 초록의 U. 나는 각 자음의 형태와 운동을 조절했고, 본능적인 리듬으로 나는, 언젠가는 온갖 감각에 이룰 수 있는 시어(時語)를 발명하리라 자부했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다섯 개의 모음에 감각은 물론 시공간의 의미까지 부여해 '감각의 착란'과 '의미의 마술' 그리고 '언어의 연금술'을 꾀했던 것이다. 모음 하나하나에 풍부한 상징성을 부여함으로써 시 해석의 열쇠를 오롯이 독자의 몫으로 남겨둔 셈이다. 이 작품은 가히 혁명적인 작품이었고, 훗날 전위적인 실험시의 본보기가 되었다. 랭보는 당시 평단의 반응에 힘입어 [취한 배(Le Bateau ivre)](1871)를 발표했는데, 전통적인 작시법을 따르고 있지만 언어 구사의 기교가 놀랍고 상징과 은유의 선택이 파격적이어서 당대 최고의 문제작이 되었다.
앙드레 지드(1869~1951)가 그를 "타오르는 가시덤불"이라고 불렀던 것처럼 그는 가히 '초신성의 폭발'이었다. 그는 [지옥에서 보낸 한철(une saisun en enfer)](1873)과 [일뤼미나시옹(Illuminations](1886) 불과 두 권의 시집을 남겼지만 작품의 독창성은 상징주의는 물론 초현실주의를 거쳐 오늘날 시에 이르기까지 '불멸의 빛'을 던져주고 있다.
랭보의 '창작시론'은 이른바 '견자(見者)의 편지'로 불리는 두 통의 편지에 집약되어 있다. 그 하나는 샤를빌중학교 재학시절 담임교사였던 조르주 이장바르에게 보낸 것이고, 다른 하나는 스승의 친구이자 저명한 시인인 폴 드므니에게 보낸 것이다. 랭보는 1871년 그가 17세에 발송한 이 편지들을 통해 '견자(voyant)'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조르주 이장바르에게 보낸 편지에서 랭보는 "이(견자가 되려는 노력)는 모든 감각들이 착란을 통하여 미지에 도달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라고 말했는데, 이때의 '미지'는 보들레르나 말라르메가 추구하던 공통의 목적지로서, 정신과 언어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야만 도달할 수 있는 곳이다. 이를 위해 시인은 정신을 단련시키고 스스로에게 의도적인 형벌을 가해야 한다.
저는 지금 최대한 타락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왜냐고요? 저는 시인이고 싶고, 또 견자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전혀 이해하실 수 없을 것이고, 제가 설명해드릴 수도 없을 것입니다. 모든 감각의 착란을 통해 미지에 도달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고통이 극심합니다. (중략) '나'는 하나의 타자입니다. 나무가 자신을 바이올린으로 여기더라도 어쩔 수 없고 또 자기가 모르는 것에 궤변을 늘어놓는 분별없는 자둘 따위는 아무 소용도 없습니다.
-1871년 조르주 이장바르에게 보낸 편지
스스로 "불량소년(voyou)'이 됨으로써 정신의 해방을 도모해야 하고, 인간의 정신과 감각을 속박하는 모든 것을 파괴해야 한다. 이를 통해 기존 질서와 인간 정신의 퇴적층으로부터 벗어나는 내적 혁명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랭보가 이 같은 생각을 굳히게 된 이유는 기존의 문화적 전통에 대한 반발 때문이었다. 그것은 '견자의 두 번째 편지'라고 불리는 폴 드므니에게 보낸 편지글에 그 내용이 소상하게 나타나 있는데, 랭보는 이 편지글을 통해 지난 2천 년 동안의 시를 통렬하게 비판한다.
지금부터 말하는 것은 시의 미래에 관한 산문입니다. 고대시라면 모두가 그리스 시에 귀착됩니다. 즉 그것은 조화로운 삶을 노래한 것입니다. 그러한 그리스 시대에서 중세를 거쳐 낭만주의 운동이 있기까지많은 문인과 시 작자들이 있습니다. 에니우스에서 테롤두스까지 데롤두스에서 까시미르 들리뷰나까지•••••• 모든 것은 운을 붙인 산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수많은 우둔한 세대들의 장난이며, 무기력함이며 영광이넜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라신느의 시는 순수하고 박력이 있으며 위대합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운을 흐트러뜨리고 반구들을 뒤섞어놓으면 그거룩한 바보는 오늘날 오리진스의 저자 같은 평범한 사람만큼이나 무시당했을 겁니다. 라신느 이후에는 그러한 장난이 시들해졌지요. 그런 일이 이천 년씩이나 계속되었다니!
랭보는 "조화로운 삶을 노래한" 고대 시에서부터 낭만주의에 이르기까지 모든 시를 "운을 붙인 산문"이라고 통박하면서, 그것은 "우둔한 세대들의 장난이며, 무기력함"이라는 비난을 퍼붓는다. 그는 "나는 새 사상의 개화를 목도합니다."라고 천명하면서, 견자를 향한 의지를 다짐한다.
나는 감히 견자이어야 하며 의식적으로 견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겠습니다. 시인은 모든 감각의 오랜, 엄청난 그리고 추리해낸 착란에 의해서 자신을 의식적으로 견자로 만듭니다. 사랑과 고통, 광증의 모든 형태들이 다 그런 것입니다. 시인은 그 자신을 추구합니다. 사랑과 고통, 광증의 모든 형태들이 다 그런 것입니다. 시인은 그 자신을 추구합니다. 자신 속에 모든 독소를 걸러내어 오직 그 정수만을 간직하려는 것입니다. 그의 모든 신앙과 초인적인 모든 그의 힘이 필요한 말할 수 없는 고역입니다. 거기에서 그는 가장 위대한 죄인 가운데 가장 위대한 범죄자, 가장 위대한 저주받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즉 그래서 최상의 박식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가 미지 세계에 도달하기 때문입니다. 왜냐면 그는 그의 영혼을 단련해서 가꾸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그 누구보다도 풍요해진 영혼을! 그는 미지에 도달합니다. 그리고 미쳐 날뛰며 자기 환각들에 관한 지식을 상실하고 말 때에 그는 반드시 그들 환각들을 본 것입니다. 그는 지극히 엄청나고 이름조차 붙일 수 없는 사물들에 의한 그 약동 속에서 죽어도 좋습니다. 그때에는 가공할 만한 다른 작업자들이 올 것입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쓰러진 바로 그 지평선에서 다시 시작할 것입니다.
견자의 편지는 이렇게 계속되는데, 랭보는 이 편지에서도 "감각의 착란"을 언급한다. 그 착란이란 "사랑과 고통, 광증의 모든 형태"라고 말한다. 결국 시인은 그러한 착란 속으로 자신을 던져넣어야 하며, 그리하여 "가장 위대한 범죄자, 가장 위대한 저주받은 자" "최상의 박식한 자"가 된다는 것이다. 그때서야 비로소 시인은 미지의 세계에 도달하고, 그곳이 바로 '시인이 태어나느 자리'이며, '견자로서의 시인'이 첫 발걸음을 내딛는 공간이 된다.
일반적인 의미의 '견자'와 달리 랭보의 '견자'는 감각을 착란시키는 훈련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가 자신이 예언자이자 시인임을 알아보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견자'가 되기 위해서 '나'는 '타자'가 되어야 한다. 이는 "의도적으로 국외자가 되는 것"인데, 그 이유는 시적인 추진력은 정신의 자기훼선, 고의적인 추화(醜花)에 의해 작동되기 때문이다.
랭보는 '미지의 것에로의 도달'을 시의 최종 목표로 삼았다. "시인은 그 시대의 만유론 속에서 움직이는 미지의 것을 척도로 정의한다."고 말했는데, 이는 "불가시적인 것을 보고, 들을 수 없는 것들을 들음"이다. 따라서 그 실질적인 내용은 채워지지 않는다. 그러니까 '미지의 세계'란 "내용 없는 긴장의 극"이자 "공허한 비밀"이란 것이다. 이는 '지성적 두뇌에서 나온 문장"이나 진부하기 그지없는 일상적 소재로선 얻을 수 없고, "무의식의 혼돈"을 통해 직관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랭보는 '무의식의 꿈'을 자기 정신의 총체로 파악했기 때문에 '나는 생각한다'가 아닌 '나는 생각되었노라'는 명제를 던지게 된 것이다.
랭보의 시는 의미를 초월하는 '혼돈의 진동'이었고, "그 오랜 관습"의 원고지 위에 "낯선 세계의 얼굴"을 남기는 작업이었다. 랭보는 "시에 대한 단죄를 선언하면서 그의 시를 시작했고, 현대시의 위대한 금자탑을 떠받히는 초석이 되었다.
[모음들]
A 까만색, E 백색, I 빨강색, U 초록색, O 파랑색: 모음들이여,
내 언젠가 너희들의 은밀한 탄생을 말하리.
A, 코를 찌르는 악취 주변에서 윙윙거리는
빛나는 파리떼의 가는 털에 덮인 시커먼 콜셋,
어두운 검은 만 E, 아지랑이와 천막의 눈부신 백색,
자랑스럽구나 빙하의 창, 백발의 왕, 산형화의 떨림,
혹은 분노를 머금은 아름다운 입술의 미소,
U, 파도, 청록색 바다의 신성한 전율,
가축들로 뒤덮인 목장의 평온함, 넓고 학구적인 이마에
신기한 힘이 새겨놓은 주름살의 평화,
O, 이상하게도 가슴을 후비는 듯한 숭고한 나팔 소리
온 세상과 천군 천사가 지나간 뒤의 정적
ㅡ오오, 오메가, 그녀 눈에서 흘러나오는 보랏빛 광채!
[취한 배]
이때부터 나는, 별들이 우러나와, 젖빛으로 빛나고,
초록 창공을 집어삼키는, 바다의 시에
몸을 담갔다. 거기, 창백하고 넋을 잃는 부유물,
사념에 잠긴 익사자 하나가 이따금 떠내려가고,
거기, 대낮의 광채 아래 착란과
느린 리듬, 갑자기 그 푸름을 물들이며,
알코올보다 더 강하고 우리의 리라보다 더 광활한,
사랑의 쓰디쓴 적갈색들이 발효한다!
나는 안다, 번개로 갈라지는 하늘을, 회오리 물기둥과
되밀려오는 파도와 해류를. 나는 안다, 저녁을,
비둘기 떼처럼 솟구치는 새벽을, 그리고
나는 때때로 보았다, 인간이 본다고 믿었던 것을!
나는 보았다, 신비로운 공포로 얼룩진, 낮은 태양이,
까마득한 고대의 연극배우들을 닮은,
보랏빛 기다란 응고물들을 비추는 것을,
파도가 그들 빗살창의 떨림을 멀리 굴리고 있는 것을!
나는 꿈꾸었다, 바다의 눈으로 서서히 올라오는 입맞춤,
눈부시게 눈 내리는 초록의 밤을,
전대미문의 정기(精氣)의 순환을,
노래하는 인광(燐光)들의 노란 그리고 푸른 깨어남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