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부의 권유로 인삼재배
“인삼농사에 늦둥이까지 더 이상 바랄게 없다.” 전남 영암군 시종면 이재진(51)씨는 91년에 귀농을 하면서 사전에 철저한 준비가 이뤄진 상태에서 농촌으로 들어왔다. 특히 그는 인삼농사를 하고 있는 매부의 권유로 도시생활을 접고 농촌으로 들어오기로 결심한다.
그는 농촌으로 들어오기 전 서울에서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공장에서 무려 15년 동안이나 직장생활을 순탄하게 해 왔다. 이런 그에게 인삼 고장인 충남 금산출신 매부의 인삼농사 제의는 쉽게 받아들일 수는 없었지만 결국 인생역전의 계기가 됐다.
이 씨는 원고향인 나주 동강면의 인근인 영암 시종에 새로운 둥지를 틀고 인삼으로 희망을 일구기에 나선다.
# 귀농 전에 철저하게 협조자 얻어야
물론 이 같은 인삼농사는 매부의 결정적인 도움으로 시작됐다. 인근지에서 성공적으로 인삼농사를 짓고 있는 상황을 지켜 볼 수 있었고 기술습득도 가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가정적으로 도시생활에서 농촌생활로의 전환은 온 가족이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고통이었다. 여기에 인삼농사를 짓기 위해 필요한 자금문제로 또 한번 커다란 진통을 겪을 수밖에 없는 절대절명의 상황에 직면한다.
이 씨는 이때를 회상하면 사람이 바르게 열심히 살면 반드시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커다란 진리를 얻었다고 말한다.
평소 테니스를 좋아하던 그는 농촌지역에 내려와 어린이들에게 틈틈이 테니스를 가르치며 지역주민들에게 성실성을 인정받았다.
# 지역민과 동화돼 성실하게 일해
이런 성실한 모습에 결국 지역 농협과 축협 등에서 그 당시에는 큰 돈인 3억여원을 빌려 쓸 수 있게 된다. 물론 갚아야 할 이자는 정확하게 반드시 갚아 나가며 신용을 쌓았다.
이런 인간성과 신용이 지역민들과 동화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고 열심히 일하는 모습에 ‘일벌레’라는 애칭까지 얻는다. 거의 일을 못해 미친 사람처럼 일만 쫓았다.
92년 인삼 종묘를 3000평에 심고 6년근을 생산할 때까지 무려 5년 동안은 한번도 접해보지 않았던 논농사 축산 등 닥치는 대로 생계를 위해 일만했다. 92년도에 심은 인삼이 드디어 6년근으로 97년 첫 소득을 올렸다.
또한 매년 소득의 거의 대부분을 재투자해 98년 2만평 99년 3만평 2000년 3만3000평 올해는 무려 10만평을 확보하고 6만5000평에 인삼이 식재돼 있다. 13년만에 33배로 규모를 확대한 것이다.
이는 평당 7~8만원 하던 소득을 20만원대로 끌어 올리고 성공과 희망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또 가뭄이 들어 어려움을 겪을 때 스프링클러를 이용한 급수시설을 고안해 인삼밭에 적용하기도 했다.
현재 순소득은 연 3억원 정도. 지금 것 생산된 인삼전량은 일반상인보다 가격은 낮지만 담배인삼공사와 계약재배로 판매에 어려움은 없이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하고 있다.
앞으로 면적은 더 이상 늘리지 않고 전남 아니 우리나라에서 최고품질의 인삼생산에 나서겠다는 당찬 목표를 세워 놓고 있다.
# 농촌의 자녀교육 문제는 최대의 고민
이씨는 농촌에서의 가장 큰 문제를 자녀 교육으로 꼽는다.
“대도시에 자녀가 학교에 다니면 이중생활을 하야야 하고 문제가 될 수 있다. 농촌의 열악한 교육환경이 개선되어야 한다.”
또한 이씨는 농촌에서도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공간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서울에 가면 전철역에도 사람이 쉴 수 있는 의자와 자판기가 있는데 농촌에서는 일하다가도 맨바닥에서 쉬는 것이 일상”이라며 “일을 마치고 마을회관에 가도 휑하니 빈 공간만 있을 뿐 그 흔한 컴퓨터 한 대도 없는 곳이 비일비재하다”며 실질적인 복지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인삼농협이 주변에 없는 불편도 호소했다. 전남의 경우 인삼농협이 있다가 없어지고 다시 설립을 추진하고 있는데 인삼 재배농가를 위해서는 반드시 설립되어야 한다고 이씨는 주장했다. 그는 “현재는 필요한 경우 전북진안에 있는 인삼농협으로 다녀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 농장명 : 월출인삼농장
♣ 귀농기간 : 13년
♣ 귀농 전 직업 : 자동차 부품공장 근무
♣ 귀농동기 : 인삼농사 하는 매부의 권유로
출처 : welcho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