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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실상초(諸法實相抄) 전편 : 생사일대사혈맥초와 함께 자주 읽고 심간에 새겨야 할 어서말씀
작성자:세계광선유포
작성시간:2023.06.10 조회수: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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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실상초(諸法實相抄)
文永十年五月 五十二歲御作
與最蓮房日淨
물어 가로되, 법화경(法華經)의 제일(第一) 방편품(方便品)에 가로되 「제법실상(諸法實相) 내지(乃至) 본말구경등(本末究竟等)」 운운(云云). 이 경문(經文)의 의(意)는 어떠하오. 답(答)하여 가로되 하지옥(下地獄)으로부터 상불계(上佛界)까지의 십계(十界)의 의정(依正)의 당체(當體)가 모두 일법(一法)도 남김없이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상(相)이라고 하는 경문(經文)이니라. 의보(依報)가 있으면 반드시 정보(正報)가 주(住)하느니라. 석(釋)에 가로되 「의보(依報)와 정보(正報)가 항상 묘경(妙經)을 말함이라」 등(等) 운운(云云). 또 가로되 「실상(實相)은 반드시 제법(諸法)이요, 제법(諸法)은 반드시 십여(十如)요, 십여(十如)는 반드시 십계(十界)요, 십계(十界)는 반드시 신토(身土)라」. 또 가로되 「아비(阿鼻)의 의정(依正)은 전부(全部) 극성(極聖)의 자심(自心)에 처(處)하고 비로(毘盧)의 신토(身土)는 범하(凡下)의 일념(一念)을 넘지 않느니라」 운운(云云). 이들의 석의(釋義)는 분명(分明)하니 어느 누가 의심할 수 있으리오. 그러므로 법계(法界)의 상(相)이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오자(五字)와 다름이 없느니라. 석가(釋迦) 다보(多寶)의 이불(二佛)이라 함은 묘법(妙法) 등(等)의 오자(五字)로 부터 용(用)의 이익(利益)을 베푸실 때·사상(事相)으로 이불(二佛)로 나타나 보탑(寶塔) 속에서 서로 수긍(首肯)하시었다. 이와 같은 법문(法門)은 니치렌(日蓮)을 제외(除外)하고는 말하는 사람 한 사람도 없느니라. 천태(天台)·묘락(妙樂)·전교(傳敎) 등(等)은 마음에는 알고 계셨으나 말로써 나타내시지는 않고 가슴속에 간직해 두셨느니라. 그것도 도리(道理)였으니 부촉(付屬)이 없는 고(故)로·때가 아직 이르지 않은 고(故)로·부처의 구원(久遠)의 제자(弟子)가 아닌 고(故)로. 지용(地涌)의 보살(菩薩) 중(中)의 상수창도(上首唱導)인 상행(上行)·무변행(無邊行) 등(等)의 보살(菩薩) 이외(以外)는 말법(末法)의 초(初)의 오백년(五百年)에 출현(出現)해서 법체(法體)인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오자(五字)를 홍통(弘通)하실 뿐만 아니라, 보탑(寶塔) 중(中)의 이불병좌(二佛並座)의 의식(儀式)을 만들어 나타낼 사람이 없느니라. 이는 즉(卽) 본문(本門) 수량품(壽量品)의 사(事)의 일념삼천(一念三千)의 법문(法門)인 까닭이니라. 그러니 석가(釋迦) 다보(多寶)의 이불(二佛)이라 해도 용(用)의 부처이며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야말로 본불(本佛)이시니라. 경(經)에 가로되 「여래비밀신통지력(如來秘密神通之力)」이 이것이로다. 여래비밀(如來秘密)은 체(體)의 삼신(三身)으로서 본불(本佛)이고 신통지력(神通之力)은 용(用)의 삼신(三身)으로서 적불(迹佛)인 것이니라. 범부(凡夫)는 체(體)의 삼신(三身)으로서 본불(本佛)인 것이며 부처는 용(用)의 삼신(三身)으로서 적불(迹佛)이니라. 그러므로 석가불(釋迦佛)은 우리들 중생(衆生)을 위해서는 주사친(主師親)의 삼덕(三德)을 갖추셨다고 생각하였으나 그런 것이 아니라, 도리어 부처에게 삼덕(三德)을 갖게 해 드린 것은 범부(凡夫)이니라, 그 까닭은 여래(如來)라 함은 천태(天台)의 석(釋)에 「여래(如來)라 함은 시방삼세(十方三世)의 제불(諸佛)·이불(二佛)·삼불(三佛)·본불(本佛)·적불(迹佛)의 통호(通號)이니라」고 판정(判定)하시었다. 이 석(釋)에 본불(本佛)이라 함은 범부(凡夫)이고 적불(迹佛)이라 함은 부처이니라. 그러나 미오(迷悟)의 부동(不同)으로서 생불(生佛)이 다름에 의(依)하여 구체(俱體)·구용(俱用)의 삼신(三身)이라고 함을 중생(衆生)은 알지 못하느니라. 이러한 까닭으로 제법(諸法)과 십계(十界)를 들어서 실상(實相)이라고 설(說)하시었소. 실상(實相)이라고 함은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이명(異名)이요, 제법(諸法)이라 함은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를 말하는 것이니라. 지옥(地獄)은 지옥(地獄)의 상(相)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 실(實)의 상(相)이요, 아귀(餓鬼)로 변(變)하면 지옥(地獄)의 실(實)의 상(相)은 아니로다. 부처는 부처의 상(相) 범부(凡夫)는 범부(凡夫)의 상(相), 만법(萬法)의 당체(當體)의 상(相)이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당체(當體)라고 하는 것을 제법실상(諸法實相)이라고 하느니라. 천태(天台) 가로되「실상(實相)의 심리(深理) 본유(本有)의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라고 운운(云云). 이 석(釋)의 의(意)는 실상(實相)의 명언(名言)은 적문(迹門)이 주체(主體)가 되고 본유(本有)의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라 함은 본문상(本門上)의 법문(法門)이니라. 이 석(釋)을 깊이 깊이 심중(心中)에 생각하도록 하시라.
니치렌(日蓮)이 말법(末法)에 태어나서 상행보살(上行菩薩)이 홍통(弘通)하시게 될 묘법(妙法)을 앞서서 대략(大略) 홍통(弘通)하고 만들어 나타내시게 될 본문(本門) 수량품(壽量品)의 고불(古佛)인 석가불(釋迦佛)과 적문(迹門) 보탑품시(寶塔品時)에 용출(涌出)하신 다보불(多寶佛)과, 용출품시(涌出品時)에 출현(出現)하신 지용(地涌)의 보살(菩薩) 등(等)을 먼저 만들어 나타내 드린다는 것은 나의 분수로는 중대(重大)한 일이로다. 니치렌(日蓮)을 미워하지만 내증(內證)에는 어찌 하여 미칠 수 있으리오. 그러므로 이와 같은 니치렌(日蓮)을 이 섬까지 원류(遠流)한 죄(罪)는 무량겁(無量劫)을 지나도 소멸(消滅)하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노라. 비유품(譬喩品)에 가로되 「만약 그 죄(罪)를 설(說)한다면 겁(劫)을 다해도 진(盡)하지 못함이라」고 함은 이것이니라. 또한 니치렌(日蓮)을 공양(供養)하고 또 니치렌(日蓮)의 제자단나(弟子檀那)가 되심은 그 공덕(功德)을 부처의 지혜(智慧)로써도 다 헤아리지 못하느니라. 경(經)에 가로되 「부처의 지혜로써 주량(籌量)할지라도 다소(多少)의 그의 변(邊)을 알지 못함이라」고 하였느니라. 지용(地涌)의 보살(菩薩)의 선구(先驅)는 니치렌(日蓮) 일인(一人)이로다. 지용(地涌)의 보살(菩薩)의 수(數)에도 들어가리라. 만약 니치렌(日蓮)이 지용(地涌)의 보살(菩薩)의 수(數)에 든다면 어찌 니치렌(日蓮)의 제자단나(弟子檀那)·지용(地涌)의 유류(流類)가 아니리오. 경(經)에 가로되 「능(能)히 은밀하게 한 사람을 위하여 법화경(法華經)의 내지 일구(一句)를 설(說)한다면 마땅히 알지어다. 이 사람은 곧 여래(如來)의 사자(使者)요, 여래(如來)가 보낸 바로서 여래(如來)의 사(事)를 행(行)함이니라」고, 어찌 다른 사람의 일을 설(說)하셨겠느뇨. 그러므로 너무나 남이 나를 칭찬할 때는 어떻게라도 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느니라. 이는 칭찬하는 바의 말에서 일어나느니라. 말법(末法)에 태어나서 법화경(法華經)을 홍통(弘通)하는 행자(行者)는 삼류(三類)의 적인(敵人)이 있어 유죄(流罪)와 사죄(死罪)에 이르리라. 그러할지라도 참고 견디어 홍통(弘通)하는 자(者)를 옷을 가지고 석가불(釋迦佛)이 덮어 주실 것이로다.
제천(諸天)은 공양(供養)을 할 것이로다. 어깨에 올려 놓고 등에 업을 것이로다, 대선근(大善根)의 자(者)로다, 일체중생(一切衆生)을 위(爲)해서는 대도사(大導師)일지니라고. 석가불(釋迦佛) 다보불(多寶佛)·시방(十方)의 제불(諸佛)·보살(菩薩)·천신(天神)·칠대(七代)·지신오대(地神五代)의 신(神)들·귀자모신(鬼子母神)·십나찰녀(十羅刹女)·사대천왕(四大天王)·범천(梵天)·제석(帝釋)·염마법왕(閻魔法王)·수신(水神)·풍신(風神)·산신(山神)·해신(海神)·대일여래(大日如來)·보현(普賢)·문수(文殊)·일월(日月) 등(等)의 제존(諸尊)들에게 칭찬받음으로써 무량(無量)의 대난(大難)마저도 참고 견디었느니라. 칭찬을 받게 되면 자신(自身)이 손상(損傷)되는 것도 돌아보지 아니하며 비방(誹謗)을 당할 때는 또한 자신(自身)이 파멸(破滅)됨도 알지 못하고 행동(行動)하는 것은 범부(凡夫)의 예상사(例常事)니라.
어떻게 하여서라도 이번에 신심(信心)을 다하여 법화경(法華經) 행자(行者)로서 일관(一貫)하고 끝까지 니치렌(日蓮)의 일문(一門)이 되어 나아가시라. 니치렌(日蓮)과 동의(同意)란다면 지용(地涌)의 보살(菩薩)이 아니겠느뇨. 지용(地涌)의 보살(菩薩)로 정(定)해진다면 석존(釋尊)의 구원(久遠)의 제자(弟子)라 함을 어찌 의심하리오. 경(經)에 가로되 「나는 구원(久遠) 이래(已來) 이들 중(衆)을 교화(敎化)하였다」라고 함은 이것이니라. 말법(末法)에 와서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오자(五字)를 홍통(弘通)하는 자(者)는 남녀(男女)를 가리지 말지니라. 모두 지용(地涌)의 보살(菩薩)의 출현(出現)이 아니고서는 부르기 어려운 제목(題目)이니라. 처음엔 니치렌(日蓮) 한 사람이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불렀으나 이인(二人)·삼인(三人)·백인(百人) 이렇게 차례로 불러서 전(傳)하느니라. 미래(未來)도 또 그러하리라, 이 어찌 지용(地涌)의 의(義)가 아니리오. 더구나 광선유포(廣宣流布)의 때는 일본일동(日本一同)으로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게 될 것은 대지(大地)를 과녁으로 하는 것과 같으리라. 어떠한 일이 있을지라도 법화경(法華經)에다 이름을 세우고 몸을 맡기시라. 석가불(釋迦佛) 다보불(多寶佛)·시방(十方)의 제불(諸佛)·보살(菩薩)·허공(虛空)에서 이불(二佛)이 서로 수긍(首肯)하여 정(定)하신 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오로지 말법(末法)의 영법구주(令法久住) 때문이니라. 이미 다보불(多寶佛)은 반좌(半座)를 나누어서 석가여래(釋迦如來)께 드릴 때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기(旗)를 꽂아 나타내시고, 석가(釋迦)·다보(多寶)의 이불(二佛)이 대장(大將)으로서 정(定)하신 일이 어찌 헛되리오. 이는 오로지 우리들 중생(衆生)을 성불(成佛)시키고자 하는 담합(談合)이시니라.
니치렌(日蓮)은 그 자리에는 없었지만 경문(經文)을 보건대, 조금도 흐림이 없도다. 또 그 자리에도 있었겠지만 범부(凡夫)이므로 과거(過去)를 알지 못하노라. 현재(現在)는 뚜렷하게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이니 또한 미래(未來)는 결정(決定)코 당예도량(當詣道場)이 되리라. 과거(過去)도 이로써 미루어 생각하건대 허공회(虛空會)에도 있었으리라. 삼세각별(三世各別)은 있을 수 없느니라. 이와 같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노라니 유배(流配)의 몸이지만 희열(喜悅)은 한량(限量)없도다. 기뻐도 눈물이오, 괴로워도 눈물이라, 눈물은 선악(善惡)에 통(通)하는 것이니 저 천인(千人)의 아라한(阿羅漢)들이·부처님의 일이 생각이 나서 눈물을 흘렸고, 눈물을 흘리면서 문수사리보살(文殊師利菩薩)은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이라고 부르시니, 천인(千人)의 아라한(阿羅漢) 중(中)의 아난존자(阿難尊者)는 울면서 여시아문(如是我聞)이라고 대답하시었다. 나머지 구백구십인(九百九十人)은 눈물을 벼루의 물로 하여 또 여시아문(如是我聞) 위에도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이라고 써 두었느니라. 지금 니치렌(日蓮)도 그와 같도다. 이와 같은 몸이 된 것도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오자(五字) 칠자(七字)를 홍통(弘通)하기 때문이로다. 석가불(釋迦佛)·다보불(多寶佛)이 미래(未來)의 일본국(日本國)의 일체중생(一切衆生)을 위(爲)하여 남겨 놓으신 바의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라고 이와 같이 나도 들었기 때문이니라. 현재(現在)의 대난(大難)을 생각하는데도 눈물이오, 미래(未來)의 성불(成佛)을 생각하여 기뻐함에도 눈물을 막을 길이 없느니라. 새와 벌레는 울어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데 니치렌(日蓮)은 울지 않지만 눈물이 마르지 않느니라. 이 눈물은 세간(世間)의 일이 아니라, 다만 오로지 법화경(法華經) 때문이로다. 만약 그렇다면 감로(甘露)의 눈물이라고도 해야 하리라. 열반경(涅槃經)에는 부모(父母)·형제(兄弟)·처자(妻子)·권속(眷屬)과 이별하여 흘리는 눈물은 사대해(四大海)의 물 보다 많을지라도 불법(佛法)을 위하여는 한 방울도 흘리지 않는다고 쓰여 있느니라.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가 되는 것은 과거(過去)의 숙습(宿習)이니라. 같은 초목(草木)이라도 부처로 만들어지는 것은 숙연(宿緣)이며 부처라도 권불(權佛)이 되는 것은 또한 숙업(宿業)이니라.
이 문(文)에는 니치렌(日蓮)의 중대(重大)한 법문(法門)들을 썼으니 차근 차근히 읽고 해석(解釋)하여 이해(理解)하도록 하시라. 일염부제(一閻浮提) 제일(第一)의 어본존(御本尊)을 믿으실지어다. 기필(期必)코 기필(期必)코 신심(信心)을 강성(强盛)히 하여 삼불(三佛)의 수호(守護)를 받도록 하시라. 행학(行學)의 이도(二道)를 힘쓸지어다. 행학(行學)이 끊어지면 불법(佛法)은 없느니라. 나도 행(行)하고 남도 교화(敎化)하시라. 행학(行學)은 신심(信心)에서 일어나는 것이로다. 힘이 있는 한 일문일구(一文一句)라도 설(說)할지니라,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공공근언(恐恐謹言).
五月 十七日 日蓮花押
추신(追伸)하외다. 니치렌(日蓮)이 상승(相承)한 법문(法門)들을 전(前)에도 써 보냈는데 특히 이 문(文)에는 중대(重大)한 일들을 써보내니 불가사의(不可思議)한 계약(契約)이로다. 육만항사(六萬恒沙)의 상수(上首)·상행(上行) 등(等)의 사보살(四菩薩)의 변화(變化)인가, 필정(必定)코 연유(緣由)가 있으리라. 대체로 니치렌(日蓮)의 일신(一身)에 해당(該當)한 법문(法門)을 써보냈노라. 니치렌(日蓮)은 아마도 육만항사(六萬恒沙)의 지용(地涌)의 보살(菩薩)의 권속(眷屬)일 것이로다.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불러서 일본국(日本國)의 남녀(男女)를 인도(引導)하려 생각하기 때문이니라. 경(經)에 가로되 일명(一名) 상행(上行) 내지(乃至) 창도지사(唱導之師)라고 설(說)하여져 있지않소. 참으로 숙연(宿緣)에 의(依)하여서 나의 제자(弟子)가 되시었다. 이 문(文)을 깊이 깊이 간직하시라. 니치렌(日蓮)의 기증(己證)의 법문(法門)들을 써놓았소이다. 각필(擱筆)하오.
사이렌보답서(最蓮房答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