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흉터가 연민이 되는 순간
◎실용인문학#26》AI수정·협업》삶이 증명한 살아 있는 지혜
by여유시간
9시간전
비주류 시절 자신을 괴롭힌 사람들에게 주류가 된 뒤에도 보복하지 않는다면, 이미 삶의 경지에 오른 사람입니다.
비주류의 생존법과 세상에 대한 애정
우리는 오랫동안 정치를 이분법적인 감정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편을 가르고, 누군가를 열렬히 지지하거나 차갑게 배척하는 두 칸짜리 세계에서 한 사람의 입체적인 삶과 그가 견뎌온 생의 결을 들여다보려는 시도는 점차 사라져갔다. 그러나 지지와 반대라는 소란스러운 깃발 싸움에서 한 걸음 물러나, '평생 의심받아 온 사람이 왜 혐오 대신 연민을 택했는가'라는 인문학적 질문을 던질 때 비로소 한 인간의 진짜 얼굴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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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시장 시절, 자신의 집무실에 CCTV를 설치했던 한 사람의 결단은 단순히 투명성을 보여주기 위한 퍼포먼스가 아니었다. 그것은 바깥의 적보다 내부의 의심이 더 집요하게 따라다녔던 비주류가 몸으로 터득한 생존 방식이었다. "나는 결백하다"라는 말로 억울함을 호소하는 대신, 언제든 다시 확인할 수 있는 명백한 기록과 숫자로 자신을 증명하는 쪽을 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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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생존법은 그가 통과해 온 참혹할 만큼 구체적인 삶에서 비롯되었다. 어린 시절 소년공으로 공장에서 일하다 산업재해를 당해 평생의 장애를 얻고, 어머니가 일하던 시장 바닥의 서러움을 목격하며 자란 삶. 이후 검정고시와 사법시험을 거쳐 법률가와 행정가를 지나 국가 지도자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그는 노동자와 상인, 법률가와 관료의 언어를 모두 몸에 새겼다.
그가 사용하는 언어가 유독 쉽고 구체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높은 지식의 권위를 과시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시장 상인에게 어려운 법률 용어를 사용하면 대화가 끊긴다는 사실을 삶으로 배운 사람은 가장 쉽고 분명한 말로 타인에게 다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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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화려한 간판과 지적 권위, 혹은 기득권 카르텔에 기대어 자신의 영향력을 넓히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아무런 간판 없이 오로지 눈에 보이는 성과와 결과물로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비주류도 있다.
전자가 B급 정서와 비주류라는 반항의 이미지만 빌려 쓰다가 정작 실력이 필요한 순간에 무능과 아마추어리즘을 드러낸다면, 후자는 고통스러운 현장에서 숫자와 실질적인 변화로 자신의 삶을 입증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떤 간판을 달고 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해냈고 그 결과가 누구의 삶을 바꾸었느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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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직접 산업재해를 경험했기에 산업재해 사망자를 줄이기 위한 구체적인 대책을 고민하고, 어둠 속에서 홀로 버텨본 기억이 있기에 자살을 사회적 재난으로 바라보며 벼랑 끝에 선 이들을 한 번 더 붙잡는 시스템을 만드는 일. 이것은 단순히 표를 얻기 위한 정치적 계산으로만 설명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국가의 정책이 누군가의 아픔에 실제로 닿을 때, 연민은 비로소 구체적인 형태를 갖는다. 마음으로만 안타까워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제도를 바꾸고, 위험을 줄이고, 누군가가 다시 살아갈 기회를 얻도록 돕는 것. 연민이 행동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사회를 움직이는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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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를 입었다는 사실 자체가 그 사람의 미래를 결정하지는 않는다. 수많은 선동가와 극단주의자들 역시 거절당하고 상처받은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 상처는 세상을 향한 원한과 복수심의 연료가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세상을 향한 애정과 연민의 뿌리가 된다.
그 차이는 상처를 자신의 존재 자체에 대한 선고로 받아들이지 않고, 스스로를 믿으며 타인을 향해 손을 내밀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칼 융의 이름과 함께 자주 언급되는 '상처 입은 치유자'라는 개념처럼, 자신의 아픔을 통과한 사람은 타인의 흉터를 알아보고 그 고통을 이해할 가능성이 커진다. 자신의 상처가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통로가 될 때, 흉터는 더 이상 원망의 흔적에 머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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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학벌이나 계급적 이력만으로는 포착되지 않는 사람의 결이 있다. 상처를 통과해 본 사람만이 알아보는 무늬, 그것은 간판 없는 이들이 서로를 알아보고 세대를 건너 연결되게 만든다.
단단한 자기 확신이나 거창한 명분이 없어도 자신의 삶과 인간에 대한 믿음으로 냉소 대신 사랑을, 체념 대신 행동을 선택하는 소시민들의 마음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그들은 세상을 바꾸겠다는 거대한 구호를 외치지 않더라도 자신의 자리에서 누군가를 돕고, 불합리한 현실을 개선하며, 주변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다. 그러한 작은 행동들이 모여 사회를 지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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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배경 없이 세상에 던져져 스스로를 증명해야 했던 길 끝에서, 혐오라는 쉬운 도망 대신 연민이라는 용기를 선택하는 삶이 있다.
그 삶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진정한 위엄은 남을 짓밟는 기세나 화려한 간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깊은 어둠을 견뎌낸 뒤에도 세상과 타인을 향해 마음을 열고, 자신의 상처를 다른 사람을 살리는 힘으로 바꾸려는 태도에서 나온다.
흉터는 누구에게나 남을 수 있지만, 그 흉터를 연민으로 바꾸는 일은 선택의 몫이다. 세상을 향한 원망을 넘어 타인의 아픔을 헤아릴 수 있을 때, 한 사람의 상처는 비로소 세상을 향한 애정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