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무례한 사람을 만나기 마련이다.
그들은 내게 상처를 주고 당혹감을 안기며,
기껏 붙잡고 사느라 힘든 자존감을 뒤흔들어 놓는다.
그들을 처음 봤을 땐 엉엉 울기만 했는데,
계속해서 마주하는 동안 나름대로 대응법이 생겨났다.
그들을 만났을 때 내가 대응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문제가 되는 발언임을 상기시켜주는 것이다.
우리는 자유롭게 말할 수 있지만,
다른 이의 인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그렇다.
누군가 그 선을 넘었을 때 경고하는 것은 언어폭력에 대처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식이다.
편견이 심한 말을 들었을 때
흥분하지 않고 “제3자가 듣는다면 오해하겠는데요?”라고 말하거나
“당사자가 들으면 상처받겠네요”라고 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감정을 싣지 않고 최대한 건조하게 말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되물어서 상황을 객관화하는 것이다.
상황을 이해 못 한것처럼 천진난만하게 되물으면 더욱 좋다.
예를 들어 누군가 농담이라며 “저 사람은 얼굴이 참 이타적이네”라고 한다면
“아 저 사람이 못 생겼다는 뜻이죠?”라고 되묻는 것이다.
그렇게 물어보면 상대는 순간적으로 머쓱해하며 자신의 표현은 점검할 것이다.
세 번째는
상대가 사용한 부적절한 단어를 그대로 들려 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 “영감탱이는 욕이 아라니 친근한 표현으로 썼다”고 한다면
“저도 친근하게 영감탱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하고 응수할 수 있다.
상대가 사용한 논리를 그대로 가져와 돌려줄 수도 있다.
‘가슴이 작은데 외 브레지어를 해“하고 묻는 남자에게
그럼 오빠는 왜 펜티를 입어라고 할수 있듯
이상한 논리로 상대를 공격하는 사람에게는 역지사지를 경험하게 할 필요가 있다.
네 번째는
무성의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육아 전문가들은 아이에게 여러 번 설명했음에도 계속해서 소리를 지르거나 때를 쓴다면
달래주지 말라고 조언한다.
아무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처다 보거나, 하던 일을 멈추고 그 자리를 떠나는 것도 방법이라고 한다. 지지받지 못한 상황을 마주했을 대 아이가 상황을 스스로 판단해서 멈추게끔 하는 것인데, 이 원리는 어른에게도 유효하다.
메신저에서 벗어나고 싶은 상황을 마주한다면
“ㅎ ㅎ" 또는 ”그렇군“ 정도로 답해 대화를 중단 시킬 수 있다.
정도가 심하다면 아에 메신저를 읽지 않거나 읽었어도 답을 해주지 않는 것이 좋다.
직접 만난 상황이라면
“그렇게 생각하시는 군요”
“네” 정도의 표현만 의도적으로 반복하는 것으로 의사를 표현할 수 있다.
다섯 번째는
유머스레 대답하게 하는 것이다.
시대착오적인 말을 들을 때 특히 유효한데,
누군가 가부장적인 편견이 가득한 말을 할 때
“우와, 조선시대에서 오셨나 봐요 상평통보 보여주세요!” 하고 받아치는 것이다.
애정은 없고 자기 자랑만 있는 잔소리를 들으면
“요즘은 잔소리하려면 선부 주고 해야 한다던데요?”라고 하거나
“저희 부모님도 30년동안 노력하다 포기하셨는데 어떻게 가능하시겠어요?” 하고 농담하듯
받아치면 상대도 더 이상 말을 하기 힘들 것이다.
말이 길어질 것 같으면
“그건 제가 알아서 할게용” 하고 화제를 돌리는 것이 좋다.
단 농담을 자연스럼게 하는데는 내공이 좀 필요하므로 경험치가 좀 쌓인후 시도하길 바란다.
여섯 번째는
<물론 내가 새로히 추가 한것이지만>
마음공부차원에서 상대방의 의식이 그런 수준밖에 안되므로
그러려니 이해하고 연민을 품는 것이다.
의식의 그 수준밖에 안되니 그 이상은 안 나오고 있음을 이해하고
상대방의 무지를 빨리 깨닫고 사랑의 의식으로 도달하길 기원하는 것이다.
마무리 하면서
나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들은 자꾸 참으로면 내가 무기력해진다.
무례한 하감들 만난다면 피하는게 능사가 아니다.
나만의 대처법을 갖춰야 한다.
“다들 괜찮다는데 왜 너만 유난을 떨어?” 하는 사람에게
그 평안은 다른 사람들이 참거나 피하면서 생겨난 가짜임을 알려 주어야 한다.
인류는 약자가 강자에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나?라고 함으로써
이전 세대와 구별되는 문화를 만들어냈다.
부당함을 참지 않기로 하는 것,
우리가 살고 싶은 세상은 이런 것이라 말하기를 멈추지 않는 것,
세상의 진보는 지금까지 그렇게 이루어져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