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흐르는 밤에가 사랑한 캐나다 밴드, 클라투
1980년대 초 MBC FM ‘음악이 흐르는 밤에’를 통해 다양한 뮤지션을 소개하던 시절, 청취자들에게 단연 가장 뜨거운 사랑을 받았던 그룹은 캐나다 출신 밴드 클라투(Klaatu)였다. 당시 폭발적인 리퀘스트에 힘입어 여러 차례 특집방송을 진행했고, 음악이 흐르는 밤에 홍보 책자였던 “Underground Papyrus”의 마지막 Zero호에서는 대대적인 특집기사로 이들을 다루기도 했다. 이 기사를 통해 멤버들의 실명이 국내에 처음 소개되었고, 당시 구하기 힘들었던 이들의 3집과 4집 앨범커버들도 최초로 소개되었다.
당시 ‘음악이 흐르는 밤에’의 숨은 청취자이자 방송 게스트로 출연 중이던 팝 칼럼니스트 전영혁 씨가 애타게 빌려달라고 요청했던 음반들이기도 한데, 내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기 직전 미아리에 있던 그의 집 문 앞에서 선물로 건네주었던 기억이 아련히 떠오른다(작년 한국은행 사보 11-12월호에 실린 이종원 차장의 글이 이 잊힌 추억을 다시 일깨워주었다). 국내에서는 귀하디귀했던 이 음반들을 1980년대 중반 캐나다 토론토의 음반 매장에서 단돈 1~2달러에 쉽게 구했을 때 마주했던 묘한 감회는 지금도 생생하다.
“비틀즈가 돌아왔다!” 세상을 흔든 소문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인 1976년, 신비에 싸인 그룹 클라투의 데뷔 앨범 “3:47 EST”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사건이 펼쳐졌다. 클라투라는 이름보다 먼저 세상을 흔든 것은 그들의 음악이 아닌 거대한 '소문'이었다.
1976년 9월(본국인 캐나다에서는 8월) 발매된 “3:47 EST” 음반 어디에도 멤버들의 이름이나 세부 정보는 적혀 있지 않았다. 그저 비틀즈를 연상시키는 완벽한 사운드만이 담겨 있을 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믿기 힘든 소문이 번져나갔다.
“클라투가 사실 비밀리에 재결성한 비틀즈가 아닐까?” 소문의 진원지는 로드아일랜드주 “프로비던스 저널(Providence Journal)”의 팝 칼럼니스트 스티브 스미스(Steve Smith)였다. 그가 쓴 칼럼은 작은 불씨였으나, 하트포드 WDRC의 DJ 찰리 파커가 방송에서 “정말 비틀즈가 돌아왔는가?”라는 의문을 던지면서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이 퍼졌다. 영국의 NME 등 전문 음악지들이 터무니없는 억측이라 일축했음에도 열광은 식지 않았다. 비틀즈 해산 후 그리움에 목말라 있던 팬들은 클라투의 음악 속에서 재결합의 증거를 찾아내기 시작했다.
미국 캐피톨(Capitol) 레코드에서의 발매, 베일에 싸인 멤버 정보,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를 빼닮은 음색, 음반 커버 속 태양이 두 사람의 얼굴을 합성한 듯하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심지어 'Sub-Rosa Subway'를 역재생하면 “It's Us... It's Beatles”라는 음성이 들린다거나, 곡 끝의 모스 부호가 “From London to New York”이라는 메시지라는 억측, 링고 스타의 솔로 앨범 “Goodnight Vienna” 커버와의 연관성까지 거론되며 소문은 점차 '사실'로 굳어져 갔다.
사람들은 확인된 사실보다 믿고 싶은 판타지를 선택했고, 앨범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싱글 'Calling Occupants of Interplanetary Craft / Sub-Rosa Subway'는 6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이들을 단숨에 세계적 화제의 중심에 올려놓았다. 비록 “롤링 스톤”지가 이 사건을 '올해의 과장 광고(Hype of the Year)'로 선정하긴 했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오로지 “클라투가 대체 누구인가”에 쏠려 있었다.
클라투의 정체는 3집 “Sir Army Suit”를 거쳐 4집 “Endangered Species”에 이르러서야 공식적으로 공개되었다. 하지만 이미 1977년, 열성 팬들이 저작권 협회 문서에서 이 곡들이 이름 없는 캐나다인 3명의 명의로 등록된 것을 확인하면서 진실은 드러난 상태였다.
비틀즈의 재결성은 없었다. 그저 뛰어난 역량을 지닌 캐나다의 세 뮤지션이 자신들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비틀즈라는 거대한 그림자가 이들을 알리는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은 아이러니하지만, 소문이 거품처럼 사라진 뒤에도 그들의 음악은 단단하게 남았다. 이것이야말로 클라투의 가장 위대한 승리라 할 수 있다.
영화 '지구가 멈추는 날'과 '클라투'의 탄생
유학 시절, TV에서 우연히 흑백 SF 영화 '지구가 멈추는 날(The Day the Earth Stood Still, 1951)'을 보게 되었다. 영화 속 주인공은 특수 임무를 띠고 외계에서 찾아온 우주인 '클라투(Klaatu)'였고, 그의 곁에는 거대한 로봇 '고트(Gort)'가 있었다. 클라투가 지구에 머물며 사용했던 가명은 '미스터 카펜터(Mr. Carpenter)'였으며, 지구 파괴 명령을 받은 고트를 멈추게 한 명대사 “Klaatu Barada Nikto”는 아직도 강렬한 잔상을 남긴다. 오늘날처럼 화려한 특수효과는 없었지만, 탄탄한 각본과 연기, 기묘한 외계 문명의 이야기는 오랫동안 가슴속에 남았다.
이 영화를 기억하던 토론토 출신의 세 뮤지션이 팀명을 '클라투'로 정한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을 것이다. 앨범명 “3:47 EST”(동부 표준시 오후 3시 47분) 역시 외계인 클라투가 우주선을 타고 미국 워싱턴 D.C.에 착륙한 시각을 가리킨다.
외계인과의 교신을 다룬 'Calling Occupants of Interplanetary Craft', 천왕성에서 온 친구를 노래한 'Anus of Uranus', 그리고 '음악이 흐르는 밤에'의 최고 히트곡이자 웅장한 우주적 사운드가 빛나는 'Little Neutrino'까지—클라투의 시선은 처음부터 지구라는 작은 현실에 머물지 않았다. 특히 첫 트랙은 훗날 카펜터스(Carpenters)가 리메이크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는데, 영화 속 클라투의 가명이 '미스터 카펜터'였다는 점을 떠올리면 묘한 운명의 연결고리를 느끼게 된다.
독창적인 세계관과 '마스코트 쥐'에 얽힌 일화
소문만으로는 200만 장이 넘는 음반이 수십 년간 들려질 수 없다. 본질은 결국 음악이다. 데뷔 앨범 커버부터 그들의 세계관은 독창적이었다. 앞면은 낮이다. 거대한 노란 태양, 호랑나비, 버섯, 그리고 오른쪽 아래에 쪼그려 앉은 작은 들쥐가 그려져 있다. 뒷면은 밤이다. 별이 빛나는 우주 공간에 목성을 닮은 행성 클라투가 떠 있고, 잠옷을 입은 쥐가 이를 바라본다.
디자이너 테드 존스(Ted Jones)와 멤버들이 함께 구상한 이 커버에서 태양은 클라투의 상징이 되었고, 작은 쥐는 팀의 마스코트로 자리 잡았다. 여기에는 흥미로운 일화가 있다. 마지막 트랙 'Little Neutrino'를 녹음한 뒤 멀리서 곡을 모니터링하던 멤버들이 테이프에서 쥐가 찍찍 우는 듯한 소리를 들었고, “커버 속 쥐가 울었다”며 농담을 주고받은 것이 시작이었다.
2집 “Hope”를 런던 스튜디오에서 녹음할 때도 연주자가 “바닥 아래 쥐가 뛰어다닌다!”고 소리치자, 멤버들은 캐나다의 쥐가 자신들을 따라왔다고 믿었다. 나아가 그들은 자신들을 레코드사와 음악 비즈니스라는 거대한 쥐덫에 매여 있는 불쌍한 쥐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마지막 앨범 “Magentalane”의 끝자락에는 쥐덫이 튕겨 나가는 효과음이 등장한다. 클라투라는 이름의 늙은 쥐는 쥐덫에 걸린 것일까, 아니면 마침내 쥐덫을 벗어던진 것일까. 그 답은 음악을 듣는 각자의 몫이다.
우주 저편을 향해 울려 퍼지는 서사시
첫 트랙 'Calling Occupants of Interplanetary Craft'는 1953년 '국제 날아다니는 원반 협회(IFSB)'가 제정한 '세계 접촉의 날' 당시, 회원들이 우주로 보낸 텔레파시 문구에서 가사를 가져왔다. '세계 접촉의 날 공식 찬가'라는 부제처럼 평화를 염원하는 지구인과 이를 관찰하는 외계 존재의 시선이 서정적으로 담겨 있다. 귀뚜라미와 부엉이 소리, 외계인이 풀밭을 밟는 듯한 효과음과 LP 바늘이 얹어지는 소리는 음악을 넘어 한 편의 SF 영화를 감상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후반부의 서정적인 기타 프레이징은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의 'Echoes'를 연상시킨다.
카 라디오에서 이 곡을 들은 리처드 카펜터가 거대한 스케일에 반해 160명 규모의 오케스트라를 동원, 당대 최고 제작비를 들여 카펜터스 버전으로 리메이크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이 커버 곡의 폭발적인 히트로 얻은 로열티는 클라투가 2집 “Hope”를 비롯한 후속 작업을 이어가는 든든한 재정적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앨범은 비치 보이스를 떠올리게 하는 60년대 록 스타일의 'California Jam', 익살스러운 우주 여행기 'Anus of Uranus', 비틀즈 스타일의 정수인 'Sub-Rosa Subway'를 거쳐 'True Life Hero', 'Doctor Marvello', 'Sir Bodsworth Rugglesby III'로 이어진다. 그리고 대미를 장식하는 명곡 'Little Neutrino'에 도달한다.
보코더 보컬과 점층적으로 확장되는 브라스, 파괴적인 폭발 효과음으로 행성 클라투의 파멸과 공존의 메시지를 담아낸 'Little Neutrino'는 클라투 음악 세계의 정수다. 1982년부터 1984년까지 '성시완의 음악이 흐르는 밤에'에서 가장 자주 청취자들을 찾아갔던 이 웅장한 대서사시는, 5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짙은 잔향을 남기며 우주 저편을 향해 울려 퍼지고 있다.
우주 저편으로 떠난 나의 30년 지기 친구 테리 드레이퍼(Terry Draper)를 추모하며...
출처
Behind The Vinyl - Calling Occupants of Interplanetary Craft with Terry Draper from Klaatu
The Band Everyone Thought Was The Beatles (Polyphonic)
https://youtu.be/M-SktmS6SeM
성시완의 ‘음악이 흐르는 밤에(1982~1984)'부활 "클라투(Klaatu) 데뷔 앨범 발표 50주년 기념 특집!" (3차수정)음악이 흐르는 밤에가 사랑한 캐나다 밴드, 클라투1980년대 초 MBC FM ‘음악이 흐르는 밤에’를 통해 다양한 뮤...www.youtube.com
#프로그레시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