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문예대학 출신 작가 작품>
낚시하는 여자
김창수
강태공의 부류도 여럿이다. 인생무상이라며 허송세월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와신상담 때를 기다리는 사람도 있다. 언제부턴가 ‘SNS의 바다’에도 새로운 낚시꾼이 등장했다. 뻔히 보이는 수법임에도 지적 수준이나 학력․지위에 관계없이 쉽게 걸려든다고 한다.
5년 전 ‘카카오스토리’가 등장하던 초창기였다. 개인의 온갖 사진들이 그 공간을 도배했다. 거기서 친구가 되고 자료도 공유하는 공개된 마당이었다. 가족사진, 특히 손주 사진을 많이 올리곤 했다. 서로 칭찬하고, 위로받기도 했다. 나도 손녀의 해맑은 모습을 실은 적이 있다.
잠시 일상이 무료하고 나른한 어느 날이었다. 딩동 하는 소리에 대문을 열어봤더니
“아이가 참 예쁘네요.”라는 댓글이 달렸다.
“별말씀을요.”라고 응대했다.
그렇게 서로 말문이 트였다. 지리산 언저리 산 높고 물 맑은 산청에서 식당을 운영한다고 했다. 각자 사는 곳의 중간 지점 어디쯤에서 얼굴 한번 보자는 제안까지 들어왔다. 열린 공간에서 처음 알게 된 여성의 언행이 좀 생뚱맞았다. 하지만 기분은 괜찮았다. 그곳에 언젠간 한번 가 보고 싶던 터였다. 근처에 갈 기회가 있을 때 밥 먹으러 한 번 들르겠다고 했다. 그 후 문자를 주고받다 보니 서로 한 발짝씩 다가서게 되었다.
그녀의 SNS상 프로필 사진은 아들의 초등학교 졸업식 때 교정에서 찍은 것이었다. 이름을 ‘ㅈㅇ’으로 썼으며, 수더분한 촌부의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방목하는 염소 떼가 몰려다니고, 닭들이 여기저기서 노닐고, 김장용 절임 배추를 산더미처럼 쌓아놓았다. 마당에 소형자동차도 한 대 보였다. 친정어머니로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이러한 모습들이 전원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삼복염천이었다. 가지 밭에 풀을 뽑다가 너무 더워서 샤워하고 누워있다고 한다. 관능적인 이야기를 농밀하게 뱉어낸다. 이어서 젖무덤이 살짝 드러난 사진을 보내온다. 감질날 만큼이었다. 청정 계곡물에 텀벙 뛰어드는 영상도 있었다. 인간 내면에 잠재된 동물적인 욕구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달콤한 밑밥 냄새가 훅 끼쳤다. ‘설마….’ 하면서 강력한 흡인력에 무작정 끌려가고 있었다.
어느 토요일, 비밀 쪽지 대화방으로 나를 초대했다. 내게 배꼽 아래 ‘거시기’ 사진을 보내달라고 한다. 그냥 장난인 줄 알고 지나쳤다. 며칠간 잠잠하더니 또 연락이 왔다. 마치 빚쟁이처럼 노골적으로 채근했다. “남자가 그렇게 자신 없느냐.”라고 빈정거리며 자존심을 은근히 건드리기도 한다. 그때부터 내 눈에는 빨간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뜻대로 잘 안 돼서 그런지 무엇에 쫓기듯 불안하고 절박해 보였다. 급기야는 승부수를 던지는 건가. 자기 배꼽 아래라며 민망한 사진 한 장을 내게 보냈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화들짝 놀랐다. 식겁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건가 싶었다. 드러내서 아름다운 ‘거시기’는 식물의 생식기인 꽃뿐이 아니던가. 즉시 삭제해버렸다. 아예 그 ‘이야기’방을 빠져나와 버렸다. 그 뒤로 카카오스토리나, 페이스북 등 SNS 공간에 거의 들어가지 않는다.
그때서야 비로소 ‘몸캠피싱’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의도적으로 유도한 음란 영상 통화나 화상 채팅을 트집 잡아 금전을 갈취하는 행위가 그것이다. 최근 한 언론 기사가 눈길을 끈다. 2018년을 기점으로 해마다 1만여 명의 피해자가 발생한다고 한다. 2020년의 피해자가 예년보다 20% 정도 늘어난 것은 코로나 확산으로 집 안에 머무르며 디지털 기기를 쓰는 빈도가 높아진 데 기인한 것으로 보고 있다. 피해자의 99%가 남성이라고 한다. 수컷의 본능을 건드려 돈을 뜯으려는 계략, 그 수법이 먹혀드니 낚시꾼이 나댈 만도 하다. 10대부터 80대까지, 고학력 전문직부터 초등학생에 이르기까지 노소를 불문하고 다양한 직업군에서 걸려든다고 한다. 미늘에서 벗어나기까지 정신적으로 얼마나 피폐해질까?
낚시는 기다림과 인내가 필요한데 그녀는 너무 성급했다. 오랜 기간 서서히 꼬리치며 접근을 한 후에도 보름 가까이 콩깍지 연정이 싹 틀 정도로 신뢰를 쌓아야 한다. 그런 다음, 미끼를 툭 던져 덥석 물게 하는 것이 그 바닥의 정석이라고 한다. 하나 그녀는 바늘허리에 실을 매어 내게 덤벼드는 꼴이었다. 또 물고기에 따라 미끼를 달리해야 하는데 서툰 것 같았다. 새우 미끼를 좋아하는 상대에게 지렁이를 던진 것은 아니었을까. 정념에 사로잡힌 불타는 청춘도 아닌데 그런 미끼를 놓다니…. 의심이 많고, 입이 밭은 식성에는 맞지 않은 미끼였다. 먹이가 푸드덕거리며 유유히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가슴 치며 통탄했을까. 노련한 낚시꾼일수록 시울질을 잘해야 하는데, 호리는 기술도 많이 모자라는 것 같았다.
낚시에 걸려드는 것은 개별적인 가닥들이다. 그래서 직접 겪어봐야만 알 수 있는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재미 삼아, 호기심에 자칫 말려들 수도 있을 것이다. 번연히 알면서도 끌려들어 가기도 한다. 그럴 때 귀신이 씌웠다고 하는 것 같다. 그 여자는 지금도 어딘가에서 밑밥을 던져놓고 찌가 흔들리는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음습한 눈으로. 한때 공직에서 퇴직한 이의 정보만 캐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여자가 낀 사기 사건의 미끼로 쓰기 위해서.
나중에 안 일이지만 미끼로 사용한 영상물은 대부분 진짜가 아니고 미리 준비한 것을 보내는 것이라고 한다. 비슷한 모습이 많은 것은 그 때문이란다. 그런데 그녀는 나를 어떤 물고기로 판단했을지 궁금하다. 미끼를 쉽게 덥석 무는 어리석은 대상으로 보았을까. 아니면, 은린옥척으로 보았을까. 이도 저도 아니면 그냥 드레질 한번 해 본 것일까.
잠시나마 힐끔힐끔 곁눈질한 것이 얼굴을 화끈거리게 한다. 하지만, ‘낚시 면역’ 백신을 맞은 덕에 같은 미끼는 물지 않을 항체가 생겼다. 무사독학無師獨學에 길든 내가 이번에도 돈 안 들이고 좋은 경험을 했다. 자칫 한눈팔다간 낭떠러지로 곤두박질칠지도 모를 요지경 세상이다. 인간의 역사와 함께하는 유구한 유혹의 낚시질이라 덤덤해 하다가도 그런 것까지 다 피해가면서 살아야 하는 세상이 씁쓸하다.
(《수필문예》 제20집, 2021. 수필문예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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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프로필
2017년 《수필과비평》 등단
수필과비평작가회의 ․ 수필문예회 회원.
대구수필과비평작가회의 회장
대구수필문예대학 수료.
arrowsu@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