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고 있는 경기도 가평군 지역은 6·25전쟁 중에 영연방 4개국(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의 도움을 받아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곳이다. 현재 가평 곳곳에 있는 참전비나 관내 학생들에게 수여되는 캐나다·호주 참전용사 장학금 등이 이것을 증명해주고 있다.
또한 내가 다니는 가평고등학교는 전쟁 당시에도 배움의 끈을 놓지 않고 천막교실에서 열심히 공부하던 학생들을 보고 감명받은 미 40사단 군인 1만5천여 명이 각자 2달러씩을 모은 돈으로 가평주민들이 함께 세운 학교다.
처음 학교 이름은 미 40사단의 첫 전사자인 ‘케네스 카이저 하사’를 기념해 ‘가이사 중학원’이라 했다. 당시 사단장인 조셉 클리랜드 장군의 의견으로 부하의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그래서 학교에 새로 짓는 건물에는 ‘클리랜드 기숙사’나 ‘가이사 역사관’ 등 참전 군인들의 이름을 붙여 그들의 도움과 희생의 뜻을 기리고자 했다.
이렇게 유난히 6·25전쟁의 역사와 관련 깊은 지역에서 자란 학생으로서, 그리고 나름대로 역사탐구 동아리에 참여한 학생으로서 정전협정 60주년을 맞아 나의 생각을 조금이나마 풀어보고자 한다.
사실 전쟁 관련 지역에서 자라고 어릴 때부터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어도 내가 전쟁을 직접 겪어본 것은 아니어서 전쟁에 대한 느낌, 심지어는 ‘정전’이라는 단어가 생소하기까지 하다. 1950년 6월 25일 시작된 전쟁은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으로 멈추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6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정전체제의 불편함이나 불안감을 크게 느끼지 못하고 있다. 언제라도 전쟁이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태어나면서부터 평화롭게 살아온 나로서는 앞으로도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컸다.
1953년으로부터 60년이 지난 지금, 그렇게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많은 생명이 쓰러져갔던 지역에 살고 있음에도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던 나의 태도를 먼저 반성해본다. 그러면서 동시에 현실 상황도 생각해본다.
정전협정을 맺은 이후 7·4남북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6·15 남북공동선언 등을 통해 남북의 평화와 교류를 증대하자는 여러 가지 노력들이 있었으나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계속되다가는 정전 100주년이 올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면 그때 또 나처럼 이런 글을 쓸지도 모를 학생은 과연 이 문제에 대해 얼마나 관심이 있을까 의문이 든다. 60년을 맞이하는 내 생각도 이렇게 무디어져 가는데 시간이 더 지나면 더 잊히지 않을까. 이런 상황이 지속될수록 민족의 아픔은 더욱 길어질 것이다.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기 전에 빨리 화해하여 역사와 전통을 함께 이어나가는 민족이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글·이호령 경기도 가평고등학교 3학년
[출처]http://korea.kr/gonggam/newsView.do?newsId=01H8Ao0kDGJMP000§Id=gg_sec_21
첫댓글 이효령군 의 가평이 옛날 어떤 전쟁의 역사였는지만 알어도 감사 합니다